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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워크레인 기사와 건설사의 월례비를 둘러싼 공방

 

얼마 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관례상 받아온 '월례비'를 금지하고 최대 면허정지까지 불사하겠다고 했습니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월례비를 받음으로써 수행했던 추가 근무나 위험 근무 등을 거부하며 "법대로 근무하겠다"라고 대응했습니다. 월례비란 철근·콘크리트 업체 등 여러 하청이 타워크레인 업체 소속 기사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하는 수고비입니다. 하청 업체에게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공사 기간을 줄일수록 원청에서 받은 경비를 절약하여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업체 자재보다 자신의 업체 자재를 먼저 타워크레인으로 옮겨줄 것 또는 휴일에 나와서 일해줄 것 등을 요구하며 담배나 소액 현금을 주던 관행이 약 30년 동안 뿌리내린 끝에 지금은 지급액이 수백만 원 단위로 커지고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굳어졌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월례비를 관행이라고만 하기에는 입찰서에도 명시하고 법적으로도 임금으로 분류하는 점입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추가 근무 및 안전 작업 외 업무를 하게 됨으로써 받는 임금으로 인식하고, 건설사는 이것저것 수칙을 지키면 공사가 지연되니 일 처리를 빨리해달라는 대가로 지급한다고 여겨 약간의 입장차가 있습니다. 월례비 문제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법적 다툼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임금으로 결정한 바 있지요.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받는 일방적인 혜택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건설사 측에서도 손해만은 아닙니다. 가령 거푸집 해체 공사를 FM(정석)대로 안전하게 작업할 때 양생 및 해체에도 3-4일을 잡아야 한다면 대부분 건설사는 안전보다도 시간이 돈이라 1-2일 안에 해체해 달라고 하며, 여러 수칙을 회피하면서 다른 장비들을 동원해서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 공기를 단축하고자 지급했던 관례가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즉, 타워크레인 기사나 건설사 일방이 손해나 이득을 보는 게 아닌, 서로가 좋기 위한 비용이었지요. 의외인 것은 건설노조 측에서 이 월례비를 없애려고 했다는 것인데, 노조에서는 노동자가 웃돈을 받는다곤 하지만 계약 외 업무를 여러 안전 수칙을 위반하면서까지 하던 상황이라 이를 없애려고 했던 것이지요. 다만 건설업체와 조합원인 타워크레인 기사 두 쪽 모두 이권이 엮인 문제라 없애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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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BS 극한직업 '건설 현장의 꽃, 타워크레인 설치 기사'>

 

물론 건설노조의 방침과 달리 조합원들이 월례비를 계속 받아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부당하게 금액을 청구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기도 했고, 이에 따라 타워크레인 노동자와 건설사 간 다툼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월례비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불법으로 단정하고, 월례비를 요구하는 경우 면허정지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원희룡 장관의 이 같은 발언 직후, 광주지방법원에서는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상대로 낸 월례비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기각하며 월례비의 임금적 성격을 다시 한번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반발하며 월례비 단속방침을 고수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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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경수/오마이뉴스>

 

건설노조는 월례비를 받지 않는 대신 월례비를 대가로 제공하던 시간 외, 계약 외 업무들을 일절 거부하는 준법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건설 현장들의 공사가 늦춰지게 되었는데, 애초에 시간 외, 계약 외 업무 보상 성격이던 월례비가 사라졌으니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아무 보상 없는 공짜 노동을 하지 않는 터이므로 당연한 결과겠지요. 다만 정부는 이러한 준법투쟁을 사실상의 태업으로 분류하고 이 역시 제재하려고 합니다.

 

2. 정부의 개입

 

이와 관련하여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불성실 업무유형 15개를 제시하고 적발 시 최대 1년간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토부가 제시한 불성실 업무유형은 일반사항 1개, 근무태도 4개, 금지행위 2개, 작업거부 8개 등 총 15개입니다. 특정유형을 월 2회 이상 일으키면 성실의무 위반으로 판단하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대 1년간 면허를 정지하고, '금지행위'나 '작업거부'로 건설공사의 안전과 공정에 큰 영향을 줄 때는 1회만 발생하더라도 처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성실 업무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사항>

①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서 후속 공정 지연 등의 차질이 발생한 경우

 

 <근무태도>

 현장에서 정한 작업개시 시간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조종석 탑승 등 작업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경우 

② 타워크레인의 정상 가동 속도에서 벗어나 고의로 과도하게 저속 운행하는 경우

③ 작업개시 이후에 원도급사 또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 안전 점검을 하는 경우

④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원도급사의 승인 없이 조종석에서 임의 이탈하는 경우

 

<금지행위>

① 작업 도중에 동영상 시청, 촬영 등 작업에 불필요한 행위를 한 경우

② 근무 종료 이전에 음주한 경우

 

<작업거부> 

① 원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지시를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② 원도급사가 인정한 하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요청을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③ 작업계획서에 포함된 인양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④ 산업재해가 발생한 급박한 위험 상황이 아님에도 조종사 본인의 일방적인 판단하에 위험을 이유로 수시로 조종석을 이탈하는 경우

⑤ 비작업 중인 타워크레인의 신호수가 다른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⑥ 원도급사 등 사업자가 정한 타워크레인의 신호수 배치기준을 상회해 신호수 배치를 요구하고, 미충족 시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⑦ 신호수가 배치돼 있음에도 타워크레인의 중량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⑧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

 

15개의 가이드에서 명확히 한 것은 공사의 시공과 안전에 관한 최종권한과 책임은 원도급사에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원도급사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하고, 이 같은 지휘·감독에 불응해 불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할 경우에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에 조종사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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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영훈 기자/뉴스1>

 

15개의 가이드를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지만 몇몇 항목들은 구체적인 기준이나 평가를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가령 일반사항인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서 후속 공정 지연 등의 차질이 발생한 경우"는 무엇을 기준으로 작업이 늦어졌다고 판단할 것이며, 원도급사가 임의로 작업 지연이라고 판단할 경우, 타워크레인 노동자는 정상적인 작업을 수행했음에도 불성실하게 업무를 한 것이 됩니다.

 

또한 현행법령 상 순간풍속이 10m/s를 초과할 경우에는 타워크레인의 설치·수리·점검·해체 등의 작업을 중지해야 하며, 순간풍속이 15m/s를 초과하면 타워크레인의 운전작업을 중지하게 돼 있지만 이때에도 작업 중지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조종석 이탈 등 후속 대응은 원도급사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 국토부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풍속이나 기타 사유로 산업재해가 발생하겠다고 판단한 때에 노동자는 타워크레인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재해에 노출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국토부의 이런 방침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결국 추가수당의 성격인 월례비를 주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공짜 노동을 시키고, 노동자의 안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또한 이미 "공기단축, 기한 내 공사완공 등 월례비 지급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건설사가 스스로 지급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음에도 월례비를 그저 불법행위로만 간주한다는 것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지요. 월례비가 진정 문제가 되고, 과도한 월례비 청구나 지급을 막고자 한다면 기존의 관례와 그 성격, 그리고 법적 판단까지 모두 수렴하여 합리적인 금액의 가이드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는 월례비를 없애고도 공기의 지연을 막고자 한다면 근본적으로 더 많은 수의 타워크레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공사를 진행하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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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상자 7명을 낸 경기도 용인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출처-<연합뉴스>

 

안 그래도 몇 년 전부터 건설사들의 부실 공사나 신규 아파트들의 부실 공사가 문제 되고 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공기를 줄이면서 정말로 지켜야 할 공사의 완성도는 외면, 좋지 않은 여론만 노동자라는 '적'에게 전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부가 표면적으로 내보이는 월례비 지급에 대한 문제는 기존 정부의 입장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노동 탄압입니다.

 

 

 

참고 기사


윤석열 정권, 현장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윤석열, 김진태, 원희룡이 바꾼 건축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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