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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요약>

 

소개: 94년생. 직업 없음. 대학 졸업장 없음.

경력: 몇 개의 사업 경험 +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생활 1년 6개월.

 

이후 택배 일을 시작한 필자의 구역에 대학교가 있었다···


 

1. 택배기사가 대학교 총장실 문을 두들긴 후 벌어진 일

 

층별 배송이 아닌, 1층 배송인 기숙사는 한꺼번에 휴게실에 택배를 모아두고 사진을 찍으면 누군가 택배를 찾지 못할 때 찾아주기도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CCTV가 없다는 거였다. 누군가 물건을 잘못 가져가거나 훔쳐 가서 없는 경우에는 가져간 사람이 도로 갖다 놓지 않는 한 찾을 길이 없었다. 그 때문에 매년 10건 이하로 택배 분실이 일어나는 실정이었다. 만약 기숙사 건물 1층 휴게실에 CCTV가 있고 모든 택배를 그 앞에 둘 수 있다면 어떨까? 일을 하면서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휴게실에 CCTV가 있어서 그 앞에 모든 택배를 두면 간혹 학생들이 잘못 가져가는 택배도 잡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난 예방 효과도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휴게실에 CCTV가 생기면 학생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다른 건물에는 다 있는데 학생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기숙사에만 CCTV가 없다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 한번 두자고 해볼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그날 하루치 배달을 처리하기 급급해 한동안은 상상만 하고 말았다.

 

그러다 분실 사건을 한 번 겪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어떡하죠" 전화 온 학생의 애타는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불안해졌다. 급한 건만 처리하고 바로 기숙사로 달려갔는데, 정말 내가 두었던 그 자리에 택배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은 ‘분실된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물건을 찾아주거나 한 일은 있어도 진짜 물건이 분실되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서도 택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이 아무리 택배를 제대로 배송했다 한들 없어진 물건은 없어진 것이었다. 고객의 탄식에 마음이 아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당장 고객에게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이 없어 그 물건의 금액을 물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물건이 없어진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날 대학교 신문에 ‘택배 분실 사건’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났다. 택배를 쌓아두는데 경비 아저씨가 이리 좀 와보라면서 기사를 보여준 것이다.

 

"분실 사건 많아서 요즘 택배 문제 많다고 학생들이 기사까지 썼어요. 앞으로 분실 안 되게 조심 좀 해줘요." 안 그래도 택배 하나가 없어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편한 차에 그런 기사까지 보게 되니 마음이 몇 배는 더 불편했다. 대학교에 들어오는 여러 택배사가 있고 CJ대한통운만 해도 나 외에 두 명의 택배기사가 학교에 들어오니 어디서 분실 사건이 발생한 것인데, 나까지 분실 사고가 생겼으니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 물건을 놓아둔 기억이 있는데, 차라리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내가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 일을 제대로 했는데 결국 고객이 불편한 일이 일어났고, 내 선에서 그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마음이 안 좋았다. 다행히도 다음 날 없어진 택배를 찾았다는 학생의 전화를 받았다. 누가 자신의 택배로 착각하고 가져갔다가 다시 돌려놓은 모양이었다. 하루 동안 마음을 졸였던 나는 안도가 되면서도 조금 억울해졌다. 기숙사에 CCTV가 있었다면 고객도 나도 하루 동안 불안에 떨 일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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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기왕 바꾸겠다고 결심한 거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게 옳았다. "기숙사에 CCTV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건의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해요?" 처음 찾아간 곳은 가장 접근이 쉬운 기숙사감과 경비실이었다. "글쎄요. 우리는 권한이 없는데." 돌아온 것은 무관심한 반응. "일단 총괄하는 게 총무과니까 거기 얘기해 보든지 해요. 아님 뭐 총장님이라도 찾아가시든가." 반농담으로 덧붙이는 경비 아저씨의 말에 나는 힌트를 얻었다. 

 

그래. 총장님께 직접 얘기해 보자.

 

안녕하세요 총장님 OO구와 OO대를 담당하고 있는 CJ대한통운 김희우 기사입니다. OO대 기숙사를 관리하는 사감과 경비요원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해, 주제넘지만 여러모로 알아보다, 하는 수 없이 총장님에게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OO대 신문을 보고 택배 도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도에만 기숙사에서 택배 분실 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분실 사고가 일어난다면 학생들도 기사들도 마음이 아프고 신뢰가 깨지게 됩니다. 한편 우려로는 택배를 잃어버린 일부 선량한 학생들의 순간적인 보복심리로 인하여 CCTV가 없다는 걸 악용해 다른 학생의 택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학생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절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듭니다. 그래서 총장님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기숙사 1층 휴게실에 CCTV 2~4대를 설치해 주시길 바랍니다. CCTV가 좌우로 하나씩만 있어도 범죄 발생 환경을 제한하고,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다용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CTV가 절도와 범죄를 예방한다는 논문도 많이 발표되어 있고 교육 환경적으로도, 학생들의 편안한 시설로서도 기숙사 휴게실이 학생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부디 한 사람의 소중한 물건도 사라지지 않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OO대 택배사 대표로 총장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J대한통운 김희우 올림

 

편지를 들고 총장비서실을 찾아갔다. 마침 비서실장이 계셔서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편지는 내가 잘 전달하겠네." 그 편지가 정말 잘 전달이 되었는지 며칠 후 기숙사에 CCTV가 설치되었다. 그 후 분실 사건은 물론이고, 택배를 못 찾겠다는 전화조차 사라졌다. 그야말로 분실률 0%를 기록한 것이다. CCTV 설치 후 학생들은 ‘누군가 내 물건을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믿음이 생겨 물건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찬찬히 찾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2. 4시간 일하고 500을 버는 택배기사 현실

 

때는 매일 코로나 확진자 수를 카운트하고 헛기침만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2021년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택배기사인 나는 하루에 12만 제곱미터의 좁지 않은 구역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각종 외부 이물질과 세균을 묻혀오는 위험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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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기숙사 건물은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다 보니 1층에 한꺼번에 택배를 놔두면 되었는데, 대학교의 다른 건물들은 각 강의실 문 앞으로 택배를 갖다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코로나 확진자 택배기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매번 대학교 엘리베이터를 관계자들과 같이 타면서 각 강의실 구역 구역을 돌아다니며 택배를 배송하는 것이 학교 관계자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 생계인 택배 일을 하는데 코로나 감염은 너무나도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고객 입장에서도 그랬다. 여럿이 드나드는 학교 건물 특성상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면 한 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건물을 쓰는 사람들 전부가 위험해질 터였다. 학생들은 코로나로 고통받고, 학교는 학교대로 관리 미흡이라는 오명에 시달릴 게 뻔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제안드립니다. 대학 내 각 건물도 기숙사처럼 1층 배송을 시행하는 게 어떨까요?"

 

각 건물의 경비 아저씨와 경비대장님, 그리고 총무과를 드나들며 몇 번의 미팅을 했다. 다행히 대면 배송도 전부 비대면 배송으로 바뀌어 버린 코로나 시국에 이 제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학교 각 건물에선 택배를 놓을 위치를 새로 정하거나 층별로 구분해 놓은 택배 보관함을 설치해 모든 건물의 1층 배송을 시작하게 됐다.

 

‘택배 문 앞 및 요청 장소’라는 통일된 배송 완료 자동 메시지를 지우고, ‘OO 건물 1층 택배입니다’라는 각 건물의 이름을 새로 입력한 자동 메시지를 새로 작성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각 건물의 1층에 배송을 시작했다. 문 앞 배송을 받다가 1층 배송을 하게 되면 고객의 불만이 많아지지 않을까? 약간의 우려를 안고 배송을 시작했지만 다행히 고객 불만은 한 달 동안 단 두 건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 두 건도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해 선뜻 이해해 주셨다. 그 이후 좋은 일이 생겼다.

 

대학교에서 택배를 못 찾겠다거나 언제 배송이 되냐는 문의 전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로는 모든 건물 1층에 CCTV가 이미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택배를 경비 아저씨와 CCTV 시야 안에 들어오는 1층 택배 구역에 배송하게 되면서 분실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기숙사 택배 배송장소에 CCTV가 설치된 후 ‘분실되었다’는 신고 전화가 확 줄어든 것과 같은 원리였다. 1층 택배 배송은 별일 없이 순탄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고객이 불편을 겪을 것이 뻔한 무거운 택배만큼은 코로나 감염 우려를 뒤로하고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럴 때는 미리 전화를 드려 1층에 놔둘 것인지, 아니면 연구실 앞에 놔둘 것인지만 여쭤보고 고객님의 요청대로 해드렸다.

 

1층 배송 후 고객 불만이 오히려 줄어든 두 번째 이유는 더 빨라진 배달 속도 덕분이었다. 나의 경우 대학교를 첫 번째 구역으로 배송했는데, 터미널에서 대학교로 출발하기 전 고객님들께 배송 출발 문자를 보내고 그 이후 1시간 안으로 대학교 배송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택배가 15개든 150개든 모두 건물 1층에다가 배송을 했기 때문에 매일 각 건물에 가는 시간이 크게 차이 나지 않게 되었고, 늦어도 14시 안으로는 대학교 택배를 모두 배송할 수 있었다. 즉 고객 입장에서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택배가 일찍 오게 되고 택배 분실 위험도 사라지니 1층에 배송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 주시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놀라울 정도로 일도 수월해졌다. 물리적인 배송 시간도 줄고, 문의 전화도 없어지니 다시 가서 택배를 찾아주거나 하는 부가적인 업무시간도 사라졌다. 분류 작업을 제외한 평소에 하루치 배송에 5~7시간이 걸리던, 결코 쉽지 않은 구역이었던 내 구역이 하루에 3~5시간이면 업무가 끝나는 ‘꿀 구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단언컨대 만약 내 구역이 처음부터 이런 구역이었다면 이 자리를 함부로(?) 이직하는 기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 일이 힘들고 정신없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전공서를 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라든지. 저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을까? 분류작업을 제외한 하루 평균 4시간만 일하면서 5-600만 원을 버는 이 생활은 편하기는 했지만 하루하루가 똑같아 변화가 없었다. 통장 잔고는 계속 불어났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큼 내 불안도 커졌다. 이러다 이 자리에서 철퍼덕 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 택배 일이 나쁜 일이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좋은 일이라 그랬다. 내 노력 끝에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지만 업무 시간도 적고, 개인사업자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 없이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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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수입 인증샷

 

12만 제곱미터의 큰 구역이었지만, 몇 개월을 매일매일 가다 보니 나중에는 일이 익숙해져 너무 쉬워졌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쩌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이 일을 더 오래 하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여러 대리점을 운영하는 택배소장이 될 운명일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아니면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 주인공처럼 육체노동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영혼을 보살펴나갈 수 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게임이라든지 등산 같은 푹 빠져 하는 취미생활이라도 있었더라면.

 

하지만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다 시도해 보지 않은 상태였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1억 원이라는 숫자와 내 통장 잔고의 간극이 좁아질수록 지금 이 일을 그만둘 적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꿈틀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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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 패터슨 役 애덤 드라이버

출처-<유튜브 채널 'GREENNARAE MEDIA'>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과거에 거쳐 갔던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택배도 고소득 직종이지만, 그런 택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을 벌었던 코인 마케팅도 있었고, 돈도 꽤 벌면서 어린 나이에 대표님 소리도 듣던 광고 회사 운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내가 정말 즐기며 했었던가? 아니, 아니었다. 택배 일을 하기 전 아는 대표님으로부터 월 400을 줄 테니 회사에 소속돼 마케터로 일해 달라는 제의도 받았었지만 심신이 지쳐있던 상태라 거절했었다. 택배 일은 마케터 일 보다야 훨씬 수월했지만 어느 정도 이 구역을 좋은 자리로 만들고 보니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또 다른 자극을 줄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방랑벽 습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자주 본래 하던 질문을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뭐였지?"

 

머리를 싸매고 과거의 기억을 헤집다 보니 반짝하고 내 머릿속을 관통하는 한 장면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어느 작은 부족의 마을, 갓 완성된 건물을 살펴보고 있는 20대 중반의 내 모습이었다. 그때 광고 회사 일을 하면서,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봉사 단체 일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내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애정을 가졌던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일을 사랑했다. 물론 나중에 후임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목적의 봉사가 아닌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애를 먹었지만, 그전까지는 좋았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내가 행복한 일.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가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