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혈연
우리는 살면서 많은 빌런을 만난다. 쉬는 날 카톡 보내는 상사, 꼭두새벽부터 쿵쾅 뛰어다니는 윗집, 내 플레이스테이션을 빌려 가 팔아먹은 친구. 이 정도는 소소하다. 문제는 지독한 빌런. 심지어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인생이 상당히 고달프고 외로워진다.
아버지는 내 인생 최대 빌런이었다. 10대에는 두려웠고, 2-30대에는 증오했다. 그 무렵, 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후로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이제 내 나이 40줄. 원망의 감정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 대신 한 인간의 영역에서, 그는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나. 그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쯤 되면 눈치채시겠지만 나는 관점에 따라 제법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렇다고 불행 포르노를 쓰려는 것도, 빈곤 포르노를 쓰려는 것도 아니다. 세상엔 많은 언론사가 있고 많은 정치인이 있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자들에게, 우리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시켜주고 싶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으니까.
나의 이 소박한 이야기가, 꽤나 독특한 근현대사를 가진 한국에서, 한국인의 가난과 불행을 이해하는데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위로받을 분이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는, 계속.
강백호와 서태웅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은 지독하게 어려웠지만, 강도 높게 그것도 불쑥 찾아오는 불행과는 잠시도 떨어지기 힘들었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 변화에 예민해 전조증상만으로 상황을 빨리 파악하는 편이었는데(가난하고 눈칫밥 먹고 살아온 애들이 그렇듯)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리.둥.절. 원인을 추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낙엽이 지던 늦가을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학교 갈 채비를 했다. 일찍 일어났지만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등교 시간이 임박해서야 집을 나섰다. 뜀박질을 하니 땀이 흘렀다. 경사진 학교 언덕길을 지나 교실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했지만 세이프. 나무 의자에 털썩 기대 누워 호흡을 골랐다. 나와 어울려 지내던 세 친구, 희철, 상구, 성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만화와 농구를 좋아하는 희철이는 나와 코드가 잘 맞았다. 우린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친해졌고, 나머지 두 녀석은 희철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넷은 자연스레 학급 내 절친이 되었다. 특히 희철이와 난 공통 관심사, 농구를 통해 우정을 쌓았다.
학교에서 만나는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농구공을 들고선, 서로 “강백호!”, “불렀냐, 서태웅!” 하며 장난을 쳤다. 해가 질 때까지 농구를 하다가 귀갓길엔 꼭 떡볶이를 나눠 먹고 헤어졌다. 가족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한 탓에, 난 밖에서 잘 움츠러드는 성격이었다. 희철, 상구, 성호를 만난 뒤, 내 성격은 활달하게 변했다. 이전의 움츠러들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긍정적인 변화를 스스로 느꼈다.
이마에 흐르던 땀이 식을 때쯤, 희철이가 도착했다.
“왔나? 니 오늘은 좀 늦었데이.”
희철이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학교 앞 높은 언덕길을 오르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다시 말을 걸었다.
“언덕 오를 때마다 힘들어 죽겠다. 안글나?”
희철이는 의식적으로 앞만 바라봤다. 뒤이어 들어온 상구와 성호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행동했다. 내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혹시나 우연이라도 나와 눈이 마주칠까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루 만에 우리 사이 공기의 흐름은 바뀌어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함 때문에 난 말이 더 많아졌다. 친구들은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지금이야 흔한 왕따의 징조이지만 당시엔 너무나 충격적인 따돌림 방법이었다.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있어도,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혼자 다닐 때는 있어도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헤어졌던 친구들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일은 그 순간에도, 이후로도 한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음의 다섯 단계

출처 - <게티이미지>
스위스 출신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그녀의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죽음의 5단계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위 다섯 단계를 거친 마지막이 되어서야 인간은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친구들의 변화는 나에게 정신적 사망선고를 내린 것과 같은 규모의 고통이었기에, 나는 퀴블러가 말한 그 과정을 차례로 밟게 되었다.
1. 부정
1교시 국어 수업 시간 내내 골똘히 생각했다. 난 가정에서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채우고 있었다. 이 상황은 당시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일생일대의 사태였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만약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면 미리 방지해야 했던 일이었다.
90년대 초 인기 프로그램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처럼 친구들의 장난이길 간절히 바랐다. 솔직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싸움 없이 잘 지내왔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다시 희철에게 말을 걸었다.
“야, 우리 매점 가지 않을래?”
희철이는 고장 난 로봇 장난감처럼 칠판을 쳐다봤다. 그제야 친구들의 개무시가 현실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 분노
희망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탁탁. 선생님의 판서 소리가 한껏 예민해진 내 신경을 긁었다.
이유를 모르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력감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친구들 눈치만 봤다. 화가 나면서도 아직 현실 부정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오락가락했다. 정작 그런 내 모습을 감지했을 법한 친구들은 미동도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세상에 나서부터 중학생 때까지, 크게 활달하지 않았을 뿐 그럭저럭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로 나쁜 말을 듣거나 적대적으로 대우받은 적도 없었다. 물론 부모님을 제외한 세상 사람들 이야기다.
무난한 만남을 위해 노력했고, 나쁘지 않은 사회성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태도 변화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나만의 것이었다고, 정신 차리라고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난 무난하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유일한, 교우관계에서의 ‘자부심’마저 꺾여버렸다.
3. 타협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1초마다 심경이 바뀌었다. 어이가 없어 실성한 사람처럼 갑자기 웃다가, 싸늘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해답을 찾으려 우리들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대화, 추억들을 되짚었다. 정답을 찾지 못했다. 4교시 과학 시간, 학급 친구들 다 같이 과학실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을 나가고 교실에 몇 남지 않았을 때, 나머지 두 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얌전했던 성호를 붙잡았다.
“성호야, 도대체 이게 뭔 일인데?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말해도. 말해주면 내 바로 사과할게.”
상실감과 분노로 복잡하게 얽혀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울컥 북받치는 바람에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성호는 혹시 누군가 볼까 봐 주위를 둘러봤다. 무언가 말할 듯 말 듯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어렵게 입을 뗐다.
“폭폭아. 진짜 미안하다.”
성호는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슥- 집더니, 재빨리 교실을 벗어났다.
4. 우울
성호는 최소한 이 사태의 주동자가 아니었다. 남은 둘 중 한 명이 주동자이든지, 나머지 두 명이 결탁해 성호까지 동참하도록 했을 것이란 가설이 섰다. 두 가설의 교집합에 제일 친했던 희철이가 있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밀려왔다. 믿었던 친구였던 만큼 타격감이 더욱 컸다.
이 시점에 다시 원인 분석을 해보았다.
1) 거슬리는 행동을 한 경우
부모님의 말투와 행동은 닮고 싶지 않아도 은연중에 자식에게 녹아든다. 내가 악의 없이 한 말에 친구들은 상처받았을 가능성, 충분히 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날이 선 말투를 가졌기에, 친구들에게 말할 때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2) 가벼운 지갑
친구들이 “이번 일요일에 만나서 놀자!”라고 말하면 나는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자주 거절했다. 주말에 만나면 떡볶이는 기본, 오락실까지 들릴 것이 분명한데, 내 수중에 있는 돈이 얼마이니까 이번에는 패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머니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한 번씩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지속되자 나와 절교하기로 마음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왜 죽어야 되는데

출처 - 영화 <어느날>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학교에서 매일 그 녀석들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이번에는 내가 자는 척을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실수로라도 눈을 마주칠까 봐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영혼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학교와 집, 내가 머무는 모든 곳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며 사는 것이 지옥 같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아침에 잠에서 깨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깨어난 현실이 꿈이길 바라면서.
11월 어느 날, 듀스의 김성재가 사망했다. 좋아하던 가수의 죽음 이후 나의 충동은 더욱 강해졌다. 달리는 차를 보고 수차례 도로에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하교 후, 한참 도로를 바라보다가 귀가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TV를 보면서 활짝 웃는 (아버지는 가족들을 보고 웃은 적이 없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식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었다. 무표정으로 저녁밥을 차리고 계시는 어머니도 있었다. 터벅터벅 소리 내 걸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집. 우리 집에는 조언을 구할 곳이 없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가정폭력 현장을 목격한 이후, 어떻게든 잊고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또래의 따돌림은 가족의 무관심과는 또 달랐다.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동아줄이 푸석-하고 끊어져 버린 느낌. 넓은 세상에 완전히 고립된 기분. 언젠가 나아질 거라 기대하기에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지긋지긋했다.
5. 수용
어머니가 끓여주신 찌개에 대충 밥을 말아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을 깔고 누우니 방에 빈 곳이 없어 흡사 관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거실에서 으하하-하고 아버지가 웃었다. 뒤이어 어머니 말소리도 들렸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아 공부하는데 테레비 소리 좀 낮추소.”
아버지: “에이씨. 뭐꼬?”
아버지는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이내 TV 볼륨을 낮췄다. 또랑또랑하던 진행자의 목소리는 소곤소곤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절친이라고 믿었던 세 친구를 잃으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커졌다. 가슴 속에 깊게 배인 감정이 머릿속을 쿡쿡 찌르며 다시 잠을 깨웠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혼잣말을 했다.
“씨발, 내가 뭐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냐고.”
한 번 잠에서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지친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 앉았다.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지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도 해는 뜰 것이다.
내가 죽어도 가족들은 잘 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어도 그 녀석들은 웃으며 잘 살 것이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다시 욕이 나왔다.
“에이 씨발, 그냥 뒤질까.”
마지막 남은 자존감도 잃은 지 오래. 내가 없다고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생각하자 반대로 갑자기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근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죽겠노?”
지금 돌이켜보면 졸라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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