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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만났던 한국인 중, 영국에서 태어나거나 조기유학을 한 학생 중에 ‘불링’(bullying, 약자 괴롭히기, 왕따시키기)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이민 1.5 혹은 2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안고 있는 ‘왕따’에 대한 기억. 그 강도는 때때로 매우 심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이들도 많다.

 

불링은 영국 내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했다. 물론, 유색인종만 불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 아이들도 불링의 대상이 된다. 약자를 놀잇감으로 생각하는 미숙함은 어디나 존재하니까.

 

단 한 명을 위한 태극기

 

육아를 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게 있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부모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곳에 거주하게 하는지 등. 부모의 선택과 결정은 자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더더욱 두렵다.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아이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부모’, 그 단어의 무게는 여태껏 지었던 어떤 무게보다 무겁다.

 

본디 육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자가 있고, 학교가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겹치기도 하지만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것도 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만의 역할도 분명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오직 그곳에서만 익힐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기에 학교는 더더욱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2019년 가을, 아이가 처음 학교에 발을 딛게 되었다. 전교에는 15개의 인종이 섞여 있었다. 그중 대한민국 국적으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아이는 단 한 명, 우리 아이였다. 학교 입구 게시판은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태극기 아래에 “안녕하세요”라는 문구를 본 아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아마도 낯선 학교에 처음 간 날 아이는, 그 게시판을 보고 무척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더 그 게시판에 마음을 녹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낯선 나라, 낯선 공간에 홀로 보내는 부모의 입장이라 불안했는데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있구나. 이곳은 이러한 배려심과 관대함을 중요하게 가르치는 곳이겠구나. 내 아이의 모교가 될 학교 게시판을 보고, 그런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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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학생들의 국적과 인종, 언어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각 나라의 문화와 삶의 형태도 고려해야 한다. 학교와 교사들은 그 수많은 아이들의 개별적 특성을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소화해야 한다. 그들의 업무를 잠깐만 생각해도 곤혹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영국 교육은 ‘다양성’이라는 큰 우산 아래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어느덧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다행히도, 불링은 경험하지 않았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국 차별금지법의 역사

 

이런 교육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건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흔히 젠더 이슈에서 자주 등장하지만,사실 이법의 배경을 살펴보면 젠더 문제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영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있었다. 전쟁 후, 수십만의 남성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국주의가 막을 내렸다. 식민지 국가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 오기 시작했다. 영국은 더 이상 영국인들을 위한 나라로만 존재하기 어려웠다. 준비 없이 시작된 이민은 불협화음이 많았다. 차별과 배제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했다. 1965년, 일찌감치 인종차별금지법(Race Relations Act)를 제정했다. 공공장소에서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설과 서비스 제공 업체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다. 차별금지법의 시작은 인종차별이었다.

 

6.8 혁명을 기점으로 1970년대부터 민권 운동과 여성해방운동 등 각종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보다 포괄적인 범위에서의 차별을 금지하자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인종뿐만 아니라 성별, 장애, 연령, 종교 등에 따라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미국의 민권법(Civil Rights Act)이나 표결권법(Voting Rights Act)도 이러한 흐름을 통해 이어졌다. 영국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법안까지 제정했다. 2010년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금지법(Equality Act)을 하나로 모아 통합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일명 '평등법'이다.

 

당연히 이 과정이 순탄했을 리가 없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약 5년여간 정치인, 시민단체, 사업체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대규모 설문조사 및 현장 조사가 필요했다.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해당 법 제정에 대한 효과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벌였다.

 

운도 좋았다. 2000년대 영국에서 인기 많았던 토니블레어의 노동당 내각은, 철저한 증거주의(Evidence Based Policy)를 정부 운영 방침으로 내세웠다. 덕분에 평등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조사를 진행해 법안을 마련할 수 있었고, 때문에 시민들에게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010년 Equality Act가 제정된 이래로 영국은, 기존의 인종/성별/장애/연령/종교/신조/성적 지향에 대한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직장/학교/서비스 제공 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더불어 해당 법의 효력을 강화하기 위해, 평등인권협의체(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라는 조직을 설립, 실질적으로 ‘Equality Act’를 시행하고 법에 따른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다. 평등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고용은 훈련이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특정 성별이나 인종 등을 최소 몇% 이상 선발해야 한다는 기준은 또 다른 차별을 유발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특정 인종, 성별이라 하여 되려 차별을 받는다는 것. 무시할 수 없는 한계와 비판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Equality Act’를 통과시킨 이유.

 

1) 지금까지의 역사가 특정 성별과 인종에 희생을 강요해왔다는 데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고

 

2)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 힘이 실렸고

 

3) 다양성이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증대시키며, 문화적인 이해와 상호작용을 증진시킨다는 각종 연구 결과들은 기업들이 차별금지법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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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도덕으로 막을 수 없다

 

사실 차별과 배제는 인간의 본성과 가깝다. 문명이 없던 시절, 그것은 어쩌면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우리 유전자에 강하게 각인된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사건들, 아직도 우리 문명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신문이나 기사에 나오는 피해자가 나나 내 아이가 될 가능성, 얼마든지 있다. 아니, 높다.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률은, 말 그대로 도덕이다. 쉬운 본능보다 어렵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때론, 믿고 맡기는 방법보다는 강하게 제한하는 방법이 더 어울릴 때가 있다. 술 먹고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만 존재하는 도로보다, 음주 운전을 하면 인생을 조질 수 있다는 경고가 담긴 법이 있는 도로가 훨씬 안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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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차별의 도로'는 얼마나 안전할까. 입학하는 초등학생들의 인종만 봐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다양성의 교육이 필요한 국가다. 인종뿐이겠는가. 성별, 지역, 나이, 장애, 종교 등 느슨한 도덕으로만 존재해왔던 차별의 차선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영국이 이런 법을 제정한 후에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는 말은 아니며,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 이랬으니 우리도 이래야 한다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크든 작든 미리 겪어보고 나름의 대처를 한 나라들이 있으니, 거기서 고생하고, 싸우고, 분열하고, 힘들었던 나라의 경험을 잘 써먹어 보면 어떻겠냐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좋은 방법을 만들 영감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과하다고, 예민하다고, 언제부터 그랬었냐고 눙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그 차선에서 위태롭게 서 있을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