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호텔 손님

출처 - <산케이 신문>
'멍청한 한국 국정원 직원이 외국 특사의 컴퓨터를 훔치려 했다'
- 2011년 2월 일본 산케이 신문의 보도 발췌
2011년 2월 16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수행하는 특사단이 머물고 있던 롯데호텔에 괴한 3명이 잠입. 특사단의 노트북을 꺼내 복사하다가 인도네시아 특사단에 걸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엔 T-50 수출과 같은 현안이 잔뜩 쌓여 있었고, 국정원은 해당 정보를 빼내기 위해 이 ‘막장 짓’을 저질렀다(국정원이 이 사건의 배후인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사건 발생 4시간 뒤 국정원은 사건이 접수된 남대문 경찰서로 방문, 사건에 대한 보안 요청을 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사건을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10여 년 전 이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다. 사실 흐지부지 잊혀졌다 보는 게 맞다. 지금에서야 황당한 실수(?!) 정도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꽤 큰 사건이었다.
출처 - <MBC>
특사단 의전을 맡은 건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군 국방무관(대령). 즉, 한국도 최대한 예우를 갖춰 손님을 모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대통령을 수행하는 특사단의 협상전략이 담겨 있는 노트북을 훔치려고 했다.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러 갔는데, 일본 내각조사실 요원들이 한국 대통령 수행단이 머무는 호텔을 침입해 협상 전략이 담긴 노트북을 빼돌리려 했다면, 당사국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외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파장이 상당할 사건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끝이 났다. 사건 발생 다음날, 인도네시아 특사단은 향후 문제로 삼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하고 노트북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후에 자국 언론을 향해 사건 경위를 설명한다.
“아, 걔네들? 방을 잘못 알고 들어온 호텔 손님이야.”
“그 말을 믿으라고…?”
“진짜라니까! 우리 오해 다 풀었어.”
그럼, 그 ‘호텔 손님’은 누굴까?
당시 호텔 복도에 설치된 CCTV 화면은 너무 어두워서 신원 확인을 하기 어려웠다. 원본 영상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끝까지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정원도 국정원이지만, 롯데호텔은 뻔히 문이 뚫리는 호텔이 되는 게 아닌가.
해당 노트북에는 8점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특사단 지문과 판명 불능의 지문을 제외한 4점의 지문 모두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도청의 역사
인도네시아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적성국’으로 분류되지 않은 국가들끼리도 서로 첩보활동을 하고 정보를 훔치는 일이 일상이란 걸 말하기 위해서다.
“국가 정상이 있는 대통령실을 도청 한다는 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거기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라고.”
혹시 이렇게 생각했다면,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된다. 한국 정부는 최소한 3번 이상 미국의 도청을 확인 했다.
코리아 게이트 박동선
1976년 10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 정부가 박동선 등의 로비스트를 통해 미국 의원과 공직자를 돈으로 매수한 일명 코리아 게이트 사건을 터트렸다. 이 정보의 출처는 놀랍게도 ‘도청’이었다. 당시 미국은 유리창의 떨림을 통해 대화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더 이상 ‘벽’을 믿지 못하겠다며,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청와대 정원 같은 탁 트인 공간에서 나눴다는 썰도 있다).
두 번째 도청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탄(?!)을 터트리면서 밝혀졌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국은 한국을 ‘핵심 감시국’으로 지정하고 아주 치밀하게 도청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이명박 정부 초기에 집중 감시가 이뤄졌는데, 이때가 바로 한미 FTA,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남북문제,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등 미국의 핵심 이익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번 도청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한 솔직한 내 의견을 말하자면...
도대체 뭐가 문젠데
미국의 도청은 일반 상식이다. 국제 정치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도 인도네시아에 ‘멍청한 짓’을 했다고.
타국에 주재하는 외교관을 두고 “공식적인 스파이”로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제 정치라는 게 원래 그렇다. 사실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저 사람은 직함이 외교관일 뿐 우리의 정보를 빼내고, 분석하고, 판단해서 자기들 나라로 보내는 사람이란 걸 말이다. 합법과 불법 사이의 애매한 ‘회색지대’에 있지만, 언제든 불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그들을 대한다. 그게 국제사회다.
출처 - <YTN>
2013년, 미국이 동맹국 주요 정치지도자들을 도청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미국은 베를린 주재 미 대사관에 ‘특별정보수집단’을 구성하고 작정하고 메르켈을 털었다. 2002년부터 10년 넘게 휴대전화를 도청당한 메르켈은 길길이 날뛰었다. 오바마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이런 약속을 한다.
“오케이! 앞으로 미국은 동맹국 지도자들을 감청하지 않을게.”
그때 독일은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장을 추방하고,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과 헌법수호청(BFV)이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전담팀을 구성했다.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 주변을 감시할 계획도 세우면서 상당히 빡이 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남 말할 게 못 되는 것이… 독일은 연방정보국(BND)을 통해서 존 케리(당시 미 국무장관)의 위성 전화를 도청했다. 존 케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 협상을 중재 중이었고, 그 내용이 고스란히 독일 측에 넘어갔다. 이전에는 국무부 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통화도 도청했다. 도청 사실이 발각되자 독일 측에서 대단한 해명이 나오는데
"테러 용의자 추적하다가 우연히 녹음 된 것. 힐러리, 케리인 거 알고 바로 삭제했음."
테러 용의자를 추적하는데, 어떻게 미국 국무부 장관 통화를 녹취하게 됐는지 의문이다(미국이 테러 국가란 소린가;;).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도청했다는 것. 독일이 해당 이슈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일 때란 걸 감안하면, 우연이 몇 번이나 겹쳤다고 이해하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사실… 독일도 뒤가 구렸던 거다.
동맹국을 향한 순진한 믿음
![[오늘 이 뉴스] 윤·바이든 '노룩 악수' 논란, 현장 영상 확인해보니.. (2022.jp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617/291/769/c5271c1b0ca20b332eeb57182eecf407.jpg)
출처 - <MBC>
이제 대충 계산이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도청은 디폴트 값이다. 국제정치는 국익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자신의 국익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의와 염치는 찾을 거리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동맹국인데 도청하다니 너무한 거 아냐?”
다시 말하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굳이 미국, 독일, 한국이 벌인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믿을 곳은 나 자신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다.
한때 프로야구에서 사인 훔치기 논쟁이 있었다. KBO 규정집에 사인 훔치기는 위반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업계 내부적으로 그리고 일부 팬들도 이렇게 생각한다.
“사인 뺏긴 팀도 문제가 있어. 일단 자기네 보안이나 잘 챙기고 말을 해야지. 우리가 페어플레이 하지 말자는 게 아니잖아?”
메이저리그 전설의 외야수이자 감독인 더스티 베이커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이런 일은 항상 있다. 만약 당신이 사인을 읽힐 정도로 멍청하다면, 그건 당신 문제다. 단순한 일이다. 다른 팀이 당신 사인을 훔치는 것 같다면 사인을 바꿔라. 당신이 사인을 훔치면 다른 팀이 사인을 바꾸고, 그게 끝이다.
그렇다. 사인 훔치기는 항상 있는 일이다. 사인을 뺏긴다면 그건 내가 멍청한 것이고, 사인을 뺏긴 걸 확인했다면 당장 사인을 바꾸면 된다.
이번 도청 사건을 프로야구의 사인 훔치기와 비교해 설명했다고 일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탓을 들을 수도 있지만, 둘 다 본질은 똑같다. 늘 있는 일이고,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이 맞지만 국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도청은 엄연한 현실이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펜더가 윤석열 정권을 옹호하는 거냐!, 그래서 지금 도청을 당하고도 바보같이 쩔쩔매는 윤석열 정부가 잘했다는 거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럴리가 있겠냐... '꾼(?)'들 사이에선 이걸 얼마나 한심하게 보는데.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은 도청당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어쩌다 도청 당하게 됐는지, 애초에 도청당한 원인은 뭔지, 그리고 도청을 막을 실력과 용의는 있는지.
그것이 우리가 논의해야 할 거리다.
<계속>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