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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출처-<민음사>
‘기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

리영희
출처-<한겨레>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 리영희, 『우상과 이성』 中 -
long long time ago,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나라에도 ‘기자’라는 분들이 있었다. 진실 보도와 권력 감시에 대한 사명감으로 직장을 잃거나 심지어 감옥에 가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분들 말이다. 조선일보(놀랍게도) 기자 출신인 리영희 같은 분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4번의 해직과 5번의 구속을 당했다. 지금까지도 명저로 평가받는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2년의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세월이 흐르며 급격하게 사회가 변화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무르익다 못해 터질 정도가 되었으며, 인터넷과 SNS는 대중 속 전문가들에게 검증과 발언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군사,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그들은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기자들이 누리던 권위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기자들은 변화된 환경 속에서 특권과 생계, 두 가지 모두를 보장해주는 직장을 지켜야 했다.
이리하여 ‘적응’과 ‘자연선택’이라는 냉정한 진화의 법칙에 따라 끝내 변신에 성공한 변이종이 탄생했으니 바로 ‘기레기’다.
2019년 당시
압수수색 당하는 조국 장관 집 앞의 기자(?!)들
윤석열 대통령에게 ‘화이링~’을 외친
아리랑TV 문건영 기자(?!)
이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실이 아닌 언론 자본의 이익을 위한 ‘클릭 유도’가 되었다. 이들이 두들겨대는 자판은 권력 감시는 개뿔, ‘개인의 생계와 영달’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런 작금의 언론 현실에 대해 신문의 날인 지난 4월 7일,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싸우다 해직된 원로 언론인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시민들은 걸핏하면 기자를 '기레기' 혹은 '기더기'라고 조롱한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의 작심한 길들이기로 언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라며 비판했다(출처 링크).
대략 2,000년 전, 사막의 선지자 예수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그것은 바로 ‘관종’의 자질인 것이다.
일요일에 일어난 '기자 살인 사건'
일요일 저녁, 27살의 아름답고 우아한 이혼녀이자, ‘블로르나’ 변호사 댁의 가정부인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을 수사하던 경찰 ‘발터 뫼딩’ 경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와 그녀를 보곤 놀란 표정을 짓는 뫼딩 경사에게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조서를 작성하라고 말했다.
출처-영화<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자신이 낮 12시 15분경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으며, 뫼딩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를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했고, 그녀 자신은 12시 25분에서 저녁 7시까지 후회의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했지만, 조금도 후회되는 바를 찾지 못했노라고.」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서 자신을 체포하라고, 그래서 자신도 사랑하는 ‘루트비히 괴텐’이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고.
카타리나 블룸이 사는 법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과 광산 노동에서 얻은 폐병으로 서른일곱 살에 죽었다. 그녀가 여섯 살일 때였다. 그녀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돈을 벌어야 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암에 걸려 병상에 누워야 했으며, 하나뿐인 오빠는 절도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 모든 것을 그녀가 책임져야 했다. 더구나 방직공인 전 남편 ‘브레틀로’와의 결혼 생활은 더 끔찍한 것이었다. 남편인 그가 블룸에게 보여준 것은 ‘다정함’이 아니라 ‘치근댐’이었다. ‘치근댐’은 그녀가 그동안 수도 없이 경험한 것이었다. 블룸은 자신이 이혼의 책임을 지고 반년 만에 결혼 생활을 끝냈다.
블룸은 정육점 가정부부터 유치원 관리인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와중에도 대모인 ‘볼터스하임’이 교사로 있는 ‘생활과학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야간 강습 및 평생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국가 공인 가정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가난했고 힘든 삶이지만, 그녀는 자신에 삶에 대한 충실함과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블로르나 부부는 나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블로르나 부인은 내가 남쪽 위성도시의 아파트, 그러니까 ‘강가에서 우아하게 살자’라는 모토로 광고하던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의 근면성실함이 블로르나 부부를 사로잡았다. 부부는 블롬의 아파트 장만을 위한 신용대출에 보증을 서 줬으며 월급을 계산할 때 식대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때로는 그녀의 손에 먹을 것을 슬쩍슬쩍 쥐여주며 그녀를 격려했다. 블룸은 중고 폴크스바겐을 장만했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블로르나 댁의 일이 끝나면 두 시간 정도를 다른 집에서 또 일했다.
주말에도 프리랜서 관리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리고 아껴 썼다. 그녀는 성실하게 아파트 대출금을 상환해 나갔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차곡차곡 자신의 인생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그녀가 사는 방법이었다.
4일 전 수요일의 댄스 파티
수요일 밤, ‘여성 카니발(독일 라인 지방의 축제)’ 전날 밤이었다.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의 대모이자 친구인 ‘볼터스하임’의 집에서 열리는 작은 댄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댄스 파티 초대에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의 블로르나 부부는 2주 치 임금과 휴가를 내주었다. 그동안 성실하게 빈틈없이 일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스키장으로 겨울 휴가를 떠나니 오랜만에 즐겁게 지내라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었다.
「이제 여기서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은, 블룸 앞에는 끔찍스러운 일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이 댄스 파티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참석하더라도 그, 루트비히 괴텐과 춤을 추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괴텐의 다정함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다. 평생을 어렵게 일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주어진 휴가, 그리고 몇 년 만에 추어보는 춤. 이것들이 선사한 들뜬 기분 속에서 블룸은 괴텐을 만났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그녀가 처음 경험해보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런 카타리나가 괴텐을 보자마자 독차지하다시피 하고는 저녁 내내 그와 춤을 추었을 때 전 더더욱 놀랐죠. 그들은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 같았거든요.”」
둘은 파티가 끝난 후 블룸의 아파트로 향했고, 이 사랑이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지옥으로 바꾸었다.
목요일, 체포된 카타리나
목요일 오전, ‘바이츠메네’ 수사과장은 중무장한 여덟 명의 경찰관과 함께 블룸의 아파트를 덮쳤다. 그들이 일 년간 추적해온 은행강도이자 살인 용의자인 괴텐이 그녀의 아파트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 앞에 괴텐은 없었고 블룸만이 속옷 없이 목욕 가운을 걸치고 서 있었다. 바이츠메네가 블룸에게 던진 첫마디는 “그자가 너랑 붙어먹었지?”였다.
「카타리나 블룸은 욕실에 들어가 플레처 여경이 보는 앞에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도 욕실 문을 완전히 닫지 못하게 했다. 그 문 앞을 무장한 경찰 두 명이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경찰은 블룸의 아파트를 샅샅이 뒤졌다. 몇 가지 물건, 특히 서류 종류는 전부 압수했다. 그런 그들 앞에서도 그녀는 의연했다. 그녀는 경찰들에게 계속 왜 이러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계속해서 물었으나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구속 가능성이 있으니 잠옷과 약간의 화장품, 그리고 읽을거리를 챙기라고 충고했다.
그녀가 경찰에 끌려 나왔을 때, 이 10층짜리 아파트의 로비에는 주민들 30여 명이 모여 있었고 인기 신문사인 ‘차이퉁’ 지(紙)의 사진기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면에서, 뒤에서, 옆에서 수차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자꾸 얼굴을 가리려 했고, 그 와중에 그녀의 핸드백, 화장품 케이스 그리고 두 권의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와 부딪히면서 머리가 헝클어지고 표정은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사진에 찍혔다.」

카타리나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었으나 경찰은 어떤 소득도 얻지 못했다. 카타리나는 기진맥진했으나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뫼딩 경사는 그녀가 엄청난 테러단의 음모에 관련되었다는 바이츠메네 수사과장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결국 경찰은 그녀를 일단 석방했다. 뫼딩 경사가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다주었다. 카타리나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뫼딩 경사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전화에는 아예 손대지 마십시오. 내일 신문도 펼치지 마시고요.”」
포르쉐를 타는 기자의 취재법
스키장의 블로르나 부부에게 차이퉁 지의 ‘그 녀석’이 나타난 순간, 부부는 휴가를 망쳤다. 포르쉐를 타고 온 그 녀석은 바로 차이퉁 지의 기자인 퇴트게스였다. 퇴트게스는 부부에게 다짜고짜 카타리나에 대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그는 카타리나가 오래전부터 수배 중이던 강도와 잔 게 확실하고 대략 오전 11시부터 심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신문의 1면 기삿거리가 될 것이니 카타리나의 성격에 대해 말해 달라고 졸라댔다.
변호사인 블로르나는 카타리나에게 큰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했다. 그는 휴가를 접고 빨리 돌아가 그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로르나가 화난 목소리로 기자에게 ‘카타리나는 매우 영리하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휴가지를 떠날 채비를 할 때, 퇴트게스는 올 때처럼 포르쉐를 타고 떠났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선지는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블룸 부인은 어려운 암 수술을 치른 뒤라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희복은 바로 그녀가 어떤 자극에도 노출되지 않는 데 달려 있기 때문에 인터뷰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기자 정신(!)으로 충만한 이 작자에게는 의사의 충고와 경고도 전혀 소용없었다. 퇴트게스는 이 건물에서 몇몇 페인트공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 올리고는 변장을 하고 기어코 카타리나 어머니의 병실로 밀고 들어갔다. 아무리 아픈 환자라 해도 어머니의 말은 대단한 특종이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블룸의 어머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충격과 당혹감일 뿐이었다. 퇴트게스는 기사를 ‘창작’했다.
「블룸 부인의 진술을 다소 바꾼 것에 대해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금요일의 특종 기사와 두 번째 심문
금요일 아침, 블로르나는 그의 아내가 건네준 차이퉁 지를 받았다. 그 신문의 1면은 온통 카타리나에 관한 기사들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사진, 아주 굵은 활자들. 그 기사들 속에서 카타리나는 강도의 내연녀가 되어 있었고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괴텐의 음모에 연루된 공범자였다. 카타리나의 자랑이었던 아파트는 그녀가 은행에서 괴텐이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했다는 의심의 증거로 둔갑해 있었고, 카타리나의 낡은 폴크스바겐은 포르쉐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매력적인 그녀의 외모는 ‘창녀’로 의심까지 받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블로르나가 퇴트게스에게 말한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표현은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로, 카타리나의 어머니의 ‘왜 그런 결말이 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는 말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겠지요.’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쓰레기를, 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추적하는 이 빌어먹을 쓰레기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읽을수록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문을 읽는 변호사 블로르나와 그의 아내
금요일, 다시 불려온 카타리나에 대한 두 번째 심문이 진행되었다. 경찰은 그녀의 집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뒤지며 그녀를 심문했다. 그들이 압수한 것 중 작고 낡은 초록색 수첩. 그것은 카타리나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이었다. 경찰이 압수한 것은 수첩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는 경찰들 앞에 벌거벗겨졌다.
그녀의 가계부에 적힌 폴크스바겐의 주행거리까지 따져보는 치밀한 심문이었지만, 그 어떤 자료에서도 괴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카타리나가 괴텐의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로써 사실상 카타리나에 대한 경찰의 심문은 종결된 것으로 보아야 했다.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
카타리나는 왜 자신에 대한 심문이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수첩을 봐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 마치 자신에 대한 심문 과정을 지켜본 것 같은 내용들. 예를 들면 어머니의 병원, 이혼한 남편, 심지어 어릴 때 다닌 교회의 신부님과 자신의 차가 없던 시절에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다준 ‘신사들’의 존재까지.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기자가 알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 신사의 방문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카타리나의 이 모든 질문에 그녀를 심문한 젊은 검사는 중대한 사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당연한 권리이며, 사실과 다른 모욕적인 세부 사항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다였다. 이후 카타리나는 경찰 측이 제공한 모든 식사와 그들과의 대화마저 거부한 채 무감각한 표정으로 오로지 ‘차이퉁’을 읽고 또 읽었다.

토요일, 어머니의 죽음과 그녀의 통곡
「살인범 약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한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
「여러분에게 종합적인 정보를 드리고자 항상 노력하는 ‘차이퉁’은 블룸의 성격과 불투명한 과거를 밝혀 줄 진술을 추가로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소박한 행복에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던 거죠. 그녀는 출세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떻게 올곧고 소박한 노동자가 포르쉐를 탈 수 있겠습니까?」
토요일 아침에도 ‘차이퉁’의 1면은 카타리나 차지였다. 이번에는 헤어진 전 남편의 인터뷰 기사까지 실려 있었다. 카타리나의 인생은 변질되었다. 세세한 그녀의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파괴되었다. 그녀가 볼터스하임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그랬다. 함께 탄 두 명의 주민은 그 좁은 공간에서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했으며 카타리나를 거리낌 없이 훑어보는 눈빛은 오직 호기심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전화들이 와댔고 우편함에는 우편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볼터스하임 부인은 카타리나가 전화를 받지 않길 바랐고 우편물을 읽어 보지 않길 바랐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수화기 속에서는 음탕한 말들과 욕설이 흘러나왔고, 우편물들은 섹스 용품 광고거나 종교 단체들이 보낸 충고가 담긴 홍보물들이었다.
「블로르나 부인은 그 신문에 대해, 이 페스트가 세상 어디든 쫓아다니니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카타리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토요일이었다. 괴텐이 체포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괴텐은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괴텐은 무장강도나 살인범이 아니었고 탈영병이었으며 그가 턴 것은 군인 급여와 적립금이 들어 있는 금고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잡히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은 카타리나는 자신이 저지른 짓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죽었다. 퇴트게스가 강제로 인터뷰한 다음 날인 바로 오늘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것이다.
「그들이 시체 안치소를 떠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그러다가 격렬하게, 결국에는 엉엉 목 놓아 울었다.」
다시 일요일, 그녀는 왜 기자를 쏘았는가
카타리나는 자신의 변호를 맡은 블로르나에게 범행 일체를 이야기했다. 뻔뻔스럽게도 퇴트게스는 그녀에게 인터뷰를 제의했고, 자신은 그것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일은 그녀가 퇴트게스를 죽인 일요일이었다.
「“내가 기자들의 술집에 갔던 것은 그저 그를 한 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행동거지는 어떠하며, 말하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 삶을 파괴한 바로 그 인간 말입니다.”」
카타리나는 일요일 아침, 기자들이 모여드는 밥과 술을 파는 식당에 갔다고 했다. 인터뷰 전, 퇴트게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퇴트게스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는 장전한 권총을 가진 채 아파트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아파트는 더러워져 있었고 왠지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12시가 넘어가자 초인종이 울렸다고 했다. 문을 여니 퇴트게스가 서 있었다고 했다. 카타리나는 추잡한 느낌에 그자가 퇴트게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이, 귀여운 블룸 양, 이제 우리 둘이 뭐 하지?’라고요. 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로 물러나며 피했지요. 그는 나를 따라 들어와서는 말했어요.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 하는 게 어떨까?’」
카타리나는 온갖 선정적이고 추잡한 기사로 자신을 음해하고 어머니를 죽게 만든 그의 입에서 ‘섹스’ 이야기가 나오자 권총을 꺼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를 쏘았다고 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몇 발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블로르나는 카타리나가 아마도 8년에서 10년 형 정도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출소 시기와 괴텐의 출소 시기가 엇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차이퉁’ 지를 떠올렸다. 자사 기자의 살해 소식에 대한 ‘차이퉁’ 지의 대응을.
「광적인 흥분! 대서 특필. 1면 기사. 호외 발행. 통례를 벗어난 크기의 부고. 피살 사건이란 어디서나 늘 일어나는 것인데도,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 사건은 뭔가 특별한 것인 양,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언론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
경찰, 군대, 감옥, 법......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폭력’입니다.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폭력배 따위는 질적으로 비교조차 하지 못할 거대하고 막강한 폭력입니다. 이 폭력이 권력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폭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닙니다. 강제성이 없고, 따라야 할 두려움이 없을 때 권력은 통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모든 권력은 곧 폭력입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이 명연기를 펼치는 영화 ‘더 포스트’는 1971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뉴욕타임스’ 지가 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작과 대국민 거짓말의 실상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여 폭로합니다. 대통령 닉슨과 미 정부는 분노하여 뉴욕타임스를 고소하고 1심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 줍니다. 뉴욕타임스는 신문 발행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 사태 앞에서 ‘워싱턴 포스트’ 지는 갈등합니다. 역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했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상장을 앞둔 시점에서 뉴욕타임스 지처럼 발행 금지 처분을 받는다면 회사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워싱턴 포스트’ 지는 진실을 선택하고, 두 언론사는 나란히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됩니다.
“언론은 피치자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 영화 ‘더 포스트’ 中 -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었습니다. 두 언론사는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권력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위임받았을 뿐인 폭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멋대로 휘두른다면 그보다 끔찍한 사태는 없을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민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우리는 이 역할을 언론에 위임했습니다. 언론에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언론이 행정, 입법, 사법에 이은 ‘제4의 권력’이 된 까닭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 권력도 그들(언론)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론 권력이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삶 곳곳에 영향을 끼지는 권력입니다. 그래서 더욱 강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권력입니다. 모든 권력은 폭력이기에 언론 권력 역시 폭력이며 그것도 아주 친근하면서도 위험한 폭력입니다. 오늘 다룬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부제가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자 마지막 세력이 모든 권력의 주인인 우리 자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언론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신문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더 빠르고 더 공신력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보의 바다, 즉 정보를 구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닌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권력의 자리는 ‘자본’이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된 현실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선 한국 언론은 해결책으로 ‘황색 저널리즘’을 선택했습니다. ‘언론’이 아닌 ‘언론사’라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으로 클릭질이나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아닌 ‘기레기’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2022년, SBS는 드디어 매출 1조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흑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흔 번째 인생 탐구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다가 황색 언론과 기레기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져 버린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앞의 서두에서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다 해직된 분들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 인용문처럼 윤석열 정권의 출범과 함께 본분을 망각한 언론, 감시자로서의 권력이 아닌 스스로 권력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언론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날이 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망가진 인생이 소설 속 독일 여자가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제4의 권력인 언론. 그 언론이 자신의 권력을 본분에 맞게 행사하도록 감시하고 견인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보호하고 내 인생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뜻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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