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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를 끌고 나타난 남자

 

시간은 다시 흘러 동분 나이 스물둘이었다. 그때 동분은 언니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야, 말도 말어. 그 좁은 집에 아부지, 어무니 있지, 니네 큰 외삼촌이랑 외숙모 있지, 그 사이에 새끼가 둘이나 있지, 거기에 나, 내 밑으로 여동생 있지. 여덟 명이 한 집에서 바글바글하는데, 얼마나 답답했겄냐. 니네 작은이모야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엄마는 스물이 훌쩍 넘은 처녀인데, 그 집에 있고 싶었겄냐. 그래서 니네 큰이모 집으로 들어간 겨.”

 

그때 동분의 언니는 서른.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모시며 살았다. 그래도 그 집은 형편이 좀 괜찮았다. 식구도 적었다. 무엇보다도 형부가 동분을 친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줬다. 그래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운명의 그날은 설날이었다. 종갓집 며느리인 언니 따라 부지런히 술상을 차렸다. 술상 차리기 무섭게 손님이 또 오고, 그 손님이 나가기 무섭게 또 다른 손님이 왔다. 부엌에서 겨우 한숨 돌리는 찰나, 거실에서 “손님 왔으니 술상 좀 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니네 큰이모가 부엌에 들어오면서 ‘저기 아자씨 왔네, 아자씨.’ 이러는 겨. 그래서 누가 왔나 힐끔 봤더니, 세상에나. 니네 아빠가 거기에 떡하니 서 있는 거 있지. 내가 ‘미쳐 미쳐 어뜩해 언니, 나 어뜩해.’ 그랬더니 니네 큰이모가 ‘아휴 왜?’ 이런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잖어, 예전에 그렇고 그런 사람 있었다고, 그 사람이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 여길 왜 와?’ 했다는 거 아니냐. 호호호.”

 

상황 설명 좀 해야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송일영은 어쩌자고 동분의 언니 집에 세배를 하러 온 걸까. 상황이 복잡하니까 설명 잘 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 인물은 동분의 형부다. 동분을 친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줬던 그 형부 말이다.

 

그 사람 이름이 ‘송인대’다. AI가 바둑 두는 세상에 촌수를 따질 수밖에 없어서 참으로 송구스럽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은진 송(宋)씨 25대손 송인대는 은진 송(宋)씨 24대손 송일영의 아들뻘이다. 그러니까 송일영은 송인대의 어머니(송일영에겐 형수뻘이자 집안 어른), 즉 동분 언니의 시어머니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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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관계도

출처 - 딴지 최첨단 핸드크래프트 일러스트팀

 

그럼 또 이런 의문이 든다. 은진 송(宋)씨가 적지 않을 텐데, 그 많고 많은 은진 송(宋)씨 집안 가운데 송일영은 왜 하필 송인대 집에 인사하러 온 걸까. 상황은 또 이렇다. 2년 전, 송일영과 동분이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만 해도 동분은 신탄진에, 송일영은 대전에 살았다. 그랬던 송일영 집안이 그즈음 송인대가 사는 신탄진의 은진 송(宋)씨 집성촌 주변으로 이사 왔던 것. 그러니까 송인대와 송일영은 윗동네 아랫동네에 사는 이웃사촌이자, 같은 집안사람이었던 거다. 관계가 이렇게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그런 사정으로 동분과 송일영은 또다시 운명 같이 만난 것. 동분 나이 열여덟에 처음 인연 맺고, 스물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가, 스물둘에 또다시 극적으로 재회한 것이니, 이 질기고 질긴 인연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니네 아빠도 나를 딱 알아보더라고. 니네 아빠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여. 그때부터 또 들이대기 시작하는데 그 사연이 또 한 보따리여.”

 

그러면 여기서 또 잠시, 그때의 송일영 상황을 보자. 스물넷에 백수건달로 동분을 꼬시려던 송일영은 스물여섯부터 회사택시를 굴렸고, 스물여덟인 이 시점엔 대한생명으로 이직 준비하고 있었다. 한화생명 전신인 대한생명은 그때도 제법 큰 기업이었다. 서울 본사만으로는 관리가 안 돼서 전국 팔도에 지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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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남대문 대한생명 사옥

 

각 지사를 총괄하는 지사장에겐 고급 승용차 한 대와 수행비서가 한 명씩 딸려있었다. 당시 대한생명 충청북도 지사가 청주에 있었다. 회사택시를 몰던 송일영이 그 충북 지사장 수행비서로 덜컥 취직되었던 것. 하여, 한두 달 안에 청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동분과 재회한 거다. 그러니 이번에 동분을 놓치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터. 그때부터 송일영은 집안사람을 총출동시켰다. 그 첫 번째가 송일영의 작은누나였다.

 

“니네 큰이모랑 작은고모랑 하필이면 또 동네에서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나 봐. 난 전혀 몰랐지. 그런 거 보면 니네 아빠랑 나는 어떻게든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 같어. 아무튼 그때부터 니네 작은고모가 문지방 닳도록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거 있지. 니네 아빠가 시켰다는 겨.

 

‘누나, 인대 마누라의 동생이 내가 옛날부터 알던 아가씨인데, 그 아가씨가 지금 인대네 집에 와 있어. 난 그 아가씨랑 무조건 결혼해야 겄으니까 누나가 가서 좀 어떻게 해봐.’

 

그랬다는 겨. 니네 작은고모가 큰이모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 사람이 쿵짝이 되어가지고는 나를 꼬시기 시작하더라고. 근데 또 웃긴 게 뭔지 아냐? 호호호. 니네 작은고모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더니, 한날은 니네 친할아버지가 와. 말도 안 붙여. 슥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슥 가. 니네 아빠가 보냈겄지. 그러고 또 며칠 있다가 니네 친할머니가 슥 와. 또 차 한 잔 마시고 가. 니네 큰고모가 또 오고. 다들 나한테 말도 안 붙여. 그냥 슥 와서 내 얼굴 한 번 보고 가는 겨. 니네 아빠가 온 집안사람을 들들 볶은 겨. 빨리 가서 얼굴 보고 오라고. 그 집 아가씨랑 결혼할 거라고. 니네 아빠도 그런 거 보면 대단햐.”

 

언니 등쌀에 못 이겼던 동분은 결국, 송일영과의 정식 맞선 자리에 나갔다. 그 사이 송일영은 벌써 대한생명 지사장 수행비서로 취직한 상황. 동분을 두고 청주로 떠날 수 없어,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이사를 미루고 있었다. 다방 앞에서 만나기로 한 송일영이 포니1을 끌고 나타났다. 물론, 지사장에게 딸린 수행 차였지만.

 

“엄마는 차를 잘 모르잖냐. 니네 아빠 말로는 그 당시 신탄진에서 포니1은 니네 아빠가 몰고 다니는 그거 딱 한 대였데. 그때가 1982년이니까. 아무튼 그때 니네 아빠가 벌써 스물여덟이어서 그런가, 스물네 살 때 가다마이 입고 빗질하면서 엄마 꼬시던 때랑은 또 좀 다르더라고. 원래도 말이 많은 양반은 아니었는데, 더 점잖아진 것 같기도 하고. 니네 아빠 얼굴이야 뭐 처음 봤을 때부터 나쁘지 않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래시계의 이정재 같은 느낌이었던 거 같어. 직업도 이정재랑 비슷하고, 분위기도 그렇고. 과묵하면서도 샤프한 느낌 있잖어. 알지? 그런 데다가 월급도 25만 원이나 받는다고 하니까. 야, 그게 40년 전 얘기여. 지금으로 따지면 500만 원 돈이여. 엄청 큰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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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대청댐에서, 짧은 연애 기간에 찍은 유일한 사진.

뒤로 보이는 차가 송일영이 끌고 다녔던 포니1이다.

 

그날의 석양을 기억한다

 

‘나쁜 놈’으로 낙인찍혔던 사람과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선 그 감정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또한 “그냥 운명인가 보다, 하고 만난 거지 뭐.”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무리 우연적인 만남이 몇 차례 반복됐다 해도, 서로의 집안이 얽히고설킨 관계여서 의지와 다르게 떠밀린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운명’으로 눙치고 넘어가기엔, 감정의 점프가 너무 큰 거 아닌가?

 

나는 1982년, 스물둘의 동분을 생각했다. 매일 같이 술에 절어 제대로 된 가장 노릇 한 번 안 해본 아버지, 그런 아버지 대신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깥일 해야 했던 어머니, 거기에 줄줄이 딸린 식구들까지. 그 구질구질한 생활이 싫어 언니 집으로 도망치듯 오긴 했지만, 머무는 공간이 바뀌었다고 동분의 삶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화하진 않았을 거다.

 

밥벌이해야 했던 어머니 대신해 동분은 일찍부터 막내 여동생을 돌봤다. 동분이 국민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뒤로도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집안 살림을 보태왔다. 그렇게 스물둘이 되었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동분은 그때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삶이 대단하게 혹은 눈부시게 빛날 거라고, 스스로에게 기대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 동분 앞에 송일영이라는 사람이 서 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운명과 우연을 넘나들며 어쨌건 지고지순하게 동분만 바라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동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또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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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청주에서 살림 합치자마자 사진관 가서 찍은 사진.

형편이 어려워 이때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꼭 죽고 못 사는 사랑만이 사랑은 아닐 거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사랑이, 혜은이의 노랫말처럼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오를 수 있을까. 같이 있지 못해도 참을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못 봐도 눈멀지 않는 사랑도 있을 게다. 사랑에 정답은 없을 테니. 그렇기에 동분 또한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그러엄~! 그래도 그때는 정말로 니네 아빠를 사랑했지. 막상 살아 보니 ‘꽝’이었지만. 호호호. 엄마가 니네 외할아버지를 보고 컸잖냐.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월급봉투는 술집에 다 갖다주고, 그것 때문에 울 엄니가 얼마나 고생했게. 근데 니네 아빠는 지금도 그렇지만 성실한 거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사람 아녀~! 그런데다가 술도 안 마시고. 맞어, 그러고 보니까 그게 컸어. 니네 아빠가 이날 이때까지 술 마시고 사고 친 적은 없잖어. 그래서 결심한 거지.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그래도 고생은 안 하겄구나. 그런 믿음직한 모습을 사랑했던 거여.”

 

질질 끌어왔던 운명의 시간과 비교하자면 연애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불과 두어 달 남짓. 얘기했듯, 송일영은 동분을 두고 청주로 떠날 수 없었다. 하여,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이사를 미루던 상황. 동분 마음을 확인한 이상, 하루빨리 동분과 청주로 가고 싶었을 것.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래도 아쉬우니, 그때의 연애 이야기를 잠시 따라가 보자.

 

“엄마는 그 당시 다니던 공장 그만두고 잠깐 쉬던 상황이었어. 그러다가 니네 아빠랑 정식적으루 연애를 시작했던 거니께, 시간이 좀 남았지.”

 

한편, 송일영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꿀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말이 좋아 지사장 수행비서지,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 일찍 지사장 집 앞으로 가 지사장을 회사에 모셔다드리고, 중간에 큰 볼일 없으면 퇴근 때까지 ‘대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송일영과 데이트하기 위해 동분은 이따금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로 갔다. 오전 11시쯤 송일영을 만나 함께 점심 먹고, 청주 시내를 돌아다녔다. 옷 구경도 하고, 다방에서 차도 마셨다. 오후 6시쯤 송일영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지사장을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오면, 함께 포니1을 타고 신탄진으로 퇴근했다.

 

그 시절을 송일영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는 니네 엄마가 아빠를 더 사랑했었지. 맨날 시외버스 타고 아빠 만나러 왔었으니까. 허허허.”

 

물론, 동분 의견은 다르다.

 

“웃기시네. 몇 번 안 갔거든? 흥~!”

 

그런 나날이었다. 이 세상 모든 햇살이 스물둘 동분과 스물여덟 송일영 정수리로 쏟아지던 나날. 그날의 석양도 그렇게나 아름다웠다고, 동분은 기억한다.

 

“붉으스름 하니, 뭔가 좀 묘하게 감동적이더라고. 조수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차장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 신탄진에 거의 다 올 때쯤이었나? 니네 아빠가 내 손을 슥 잡더니 이런다. 청주 가서 같이 살자. 그게 다여~!!! 니네 아빠가 그렇게 무드가 없어. 이날 이때까지 장미꽃 한 다발 사준 적 있는 줄 아냐?”

 

탄탄대로를 걷던 두 사람 관계에 제동을 건 이가 있으니, 바로 동분의 작은오빠다. 이 시점에서 잠시 동분의 형제자매 관계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처음에도 언급했듯, 동분은 5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첫째는 동분보다 여덟 살 많은 동순. 동분와 송일영을 연결한 바로 그 언니다. 둘째는 동근.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를 대신한 실질적 가장이었다. 송일영 때문에 동분이 늦게 들어왔던 날, 동분에게 매질을 한 바로 그 큰오빠다. 이즈음 큰오빠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돈 벌러 떠난 상태였다. 셋째는 동운. 동분의 작은오빠로,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와 사우디로 간 큰오빠 대신해 이즈음 집안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째 현희. 동분이 업어 키운 바로 그 막내 여동생이다.

 

그럼, 동분의 작은오빠는 왜 두 사람 결혼을 반대했을까. 송씨 집안의 구구한 내력은 두 번째 에피소드 <젖을 뺏길 줄은 생각도 못했지>편(링크)(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까먹은 사람도 있을 테니 다시 옮겨와 보자.

 

「송(宋)씨 집안 안주인, 그러니까 동분 시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훗날 90세까지 무병장수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가는 그날까지 하루 담배 두 갑씩 태우면서 둘째 며느리 괴롭히는 재미로 살았다나 뭐라나. 여하간 그 팍팍하던 시절에도 새벽 닭 울기 무섭게 일어나 찬물로 머리를 감고, 참빗으로 곱게 쓸어 올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바로 온 집안 문과 창문을 열어 제치고 이불을 죄다 걷어와 탈탈 털어 마당에 널어놓은 후에야 아침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 꼬장꼬장한 성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 집안에 아들이 셋인데, 삼형제 모두 그 꼬장꼬장한 성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첫째는 툭하면 주먹질이요, 막내는 허구한 날 술이었다. 그나마 둘째가 사람 구실을 좀 했는데 핏줄은 타고난 거라, 그 성질은 어디 안 갔다. 하여, 그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옆 동네,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송씨 삼형제라고 하면 혀부터 찼다. 지나가던 개도 그들을 보면 꼬리를 바짝 내리고 벌벌 떨다가 끝끝내는 오줌을 지렸다나.」

 

신탄진이라는 촌 동네가 무슨 워싱턴이나 런던이 아닌 이상에야, 한 다리 건너면 친구요, 선배고 후배였다. 더욱이 동분 작은오빠와 송일영이 겨우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니, 동분 작은오빠도 송일영을 비롯한 송씨 삼형제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모양. 작은오빠가 동분에게 그러더란다.

 

“야, 동분아. 동네 사람들은 송씨 집안 삼형제 가운데 그나마 둘째가 괜찮다고들 하는데, 내가 그 송일영이라는 사람, 오가며 안면이 좀 있걸랑? 근데 그 사람도 성깔 보통 아니여. 너 인마, 아무튼 간에 그 집안으로 시집가면 인생 조지는 줄로만 알어. 큰형도 외국 나가 있는 판에 뭐 급하다고 서둘러. 다 동분이 너 생각해서 하는 얘기니께 쓸데없는 소리 말어.”

 

가장 노릇하는 작은오빠가 반대하고 나선 거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때 송일영은 정면 돌파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분에게 그러더란다. 작은오빠를 한 번 만나서 설득해 보겠다고. 동분과 작은오빠, 송일영이 식당에 마주 앉았다. 동분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날 니네 작은외삼촌이 술만 안 취했어도 엄마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랐던 건데……. 에휴~!”

 

유전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송일영은 살면서 술이라는 걸 마셔본 역사가 없는 사람인데, 그 피가 고스란히 그의 작은아들이자 이 글을 쓰는 송주홍에게 왔다. 인생을 술로 허비한 동분 아버지 핏줄은 고스란히 동분의 작은오빠가 물려받았다. 송일영과 마주한 동분 작은오빠는 밥술 뜨기 전부터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결혼 반대요.”

 

“아니 왜 반대야!”

 

“아무튼 나는 형님이 싫어요.”

 

“아니, 그러니까 왜~!”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사이, 동분 작은오빠는 점점 혀가 고부라졌다. 술 한 잔 입에 안 댄 송일영은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식사 끝내고 다방으로 자리 옮겼을 때, 동분 작은오빠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니네 작은외삼촌이 한창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니네 아빠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더니만, ‘동분아, 나가자.’ 이러는 겨. 그날 진짜로 영화를 찍었다니께. 니네 작은외삼촌은 비틀비틀하면서 쫓아오지, 니네 아빠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도망가지. 엄마도 에라 모르겄다, 니네 아빠 손 꼭 잡고 냅따 뛴 거지. 호호호. 너 그, 신탄진에 한일병원 알지? 그 자리가 옛날엔 야트막한 산이었어. 니네 아빠랑 나랑 그 산으로 막 뛰어 올라갔다니까? 호호호. 그렇게 멀리 돌아서 다시 신탄진으로 들어온 거여. 헐레벌떡하면서.”

 

작은오빠를 따돌리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산으로 뛰어 올라가던 두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드레스 입고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졸업>. 그 영화 마지막 씬처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설렘과 떨림, 이제부터 믿을 건 오직 상대방뿐이라는 굳건한 마음 같은 거. 아마도 그런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서로의 손을 더욱 맞잡았던 건 아닐까.

 

“엄마 손을 얼마나 꼭 잡고 뛰던지, 나중엔 손가락이 다 얼얼하더라니까. 니네 아빠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여. 이대로 이 사람 집에 보내면 놓칠 수도 있겠구나. 신탄진 시내로 다시 돌아와서 숨을 고르는데, 니네 아빠가 그러더라? 오늘, 같이 있자고.”

 

그날, 동분과 송일영은 마침내 ‘역사’를 썼다. 다음 날 아침, 집에 돌아온 동분은 어머니를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다.

 

“엄니, 이제 다~ 끝났어. 어제 그 사람이랑 외박도 했고, 잠을 안 잤으면 모르겄는데 잠을 잤기 때문에 이제는 같이 사는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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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살림 합친 지 10년여 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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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결혼식 직후, 부산 태종대로 2박 3일 신혼여행.

이때는 부산 태종대가 신혼여행의 메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