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의 수도 개경에 궁궐이 있던 곳.
태조 2년(919년)에 창건했고,
고려 말 홍건적의 침략(1362년, 공민왕 11년)으로
불에 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출처 - <문화재청>

개경 왕궁을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연재 목차
1. 이자겸 비긴즈 : 동생이 왕비가 됐는데... 바람을 폈다네?(feat.이자겸) - 링크
2. 훈요십조 코드 : 조선과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 링크
3. 고려판 왕좌의 게임 : 고려판 수양대군과 단종이 있었다 - 링크
4. 여진족 맞춤형 특수부대의 탄생과 척준경의 등장
5. 피의 연회
6. 북방의 댑바람
7. 이자겸 라이즈
8. 이자겸 난의 전말
9. 왕의 반란
10. 묘청의 재림
11. 묘청의 난
<지난 편 역사 요약>
1. 계림공은 이자의와의 권력다툼에서 이겼고, 이자의는 제거된다.
2. 계림공은 명실상부 고려 권력 1인자가 된다.
3. 조선의 수양대군처럼 직접적인 쿠테타는 없었지만, 계림공은 권력으로 조카를 압박, 왕을 양위 받아 15대 왕 숙종으로 즉위한다.
4. 사숙태후가 계림공을 직접 찾아 양위를 제안한 것은 정사에 나와 있지 않다(해당 부분은 여러 정황을 참조하여 각색한 것이다).
5. 헌종은 왕위에서 물러난 뒤 2년 만에 사망했다. 정사에는 병사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진실은...?
6. 즉위 십 년 즈음, 여진족이 강력한 적으로 등장했다.
4. 여진족 맞춤형 특수부대의 탄생 그리고 척준경의 등장
1104년, 고려 숙종이 집권한 지 정확히 9년 차가 됐을 때였다. 외부의 신흥강호가 고려를 덮쳐왔다. 그 이름 ‘여진족’. 불과 얼마 전까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기던 여진족의 공세에 고려 조정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동안 고려보다 밑이라고 깔아봤기에 고려 조정에는 그들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폐하! 여진족의 한 종족이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다 영역을 넓혀 우리의 정주성 코 앞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오만방자한 오랑캐 무리를 섬멸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줄 아뢰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저 자들에겐 관대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북방에 사는 우리 백성들을 상대로 노략질이 심해질 것이 옵니다.”
“알겠다. 지금 정주성 앞까지 세력을 뻗친 자들은 어느 부족이냐?”

여진족은 통일된 국가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각 부족의 성향과 군사력에 따라 고려에 조공을 하기도 하고 침략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북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부족인 완안부가 난립 양상을 보이던 여타 여진족 부족들을 평정하며 치고 나오더니 급기야 고려의 국경에까지 다다랐던 것이다.
이에 숙종은 임간을 관동북면행영병마사로 삼아 여진족에 맞서게 하였다. 임간은 출정 때부터 오만한 마음가짐으로 적을 상대하였고, 전투 초반 승기를 잡으며 더욱 여진족을 얕잡아 보았다.
으하하핫!
“저 여진족 놈들 도망치는 꼴을 보거라. 완안부라고 제법 기세가 높다는 것들이 저 정도니. 내 이번 기회에 여진족의 씨를 말리고 출세도 해야겠다.”
“장군! 이것은 적의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폐하께서 우리 국경에서 적을 내쫓는 것까지만 하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군을 물리시는 것이 상책인 줄 아뢰옵니다.”
“네 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저놈들을 살려두면 또다시 기어오를 것이다. 책임도 내가 지고, 공도 내가 차지할 것이니 네 놈은 목숨이 두렵다면 빠져있거라.”
임간의 결정은 결국 고려군을 위기에 빠뜨렸다. 임간의 명령에 따라 여진족 깊숙이 침투했던 고려군은 몰살 위기에 처했다. 선두에 서 있던 임간은 여진족에게 포위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때 고려군 후방에서 무명의 장수 한 명이 나섰다.
“저에게 날랜 말을 주시면, 부족하지만 제 목숨을 걸고 임간 장군님을 구해오겠습니다.”
“넌 머 하는 놈이냐? 너 같은 놈이 무슨 수로 장군을 구해온단 말이냐!”
“그럼 어쩌실 작정입니까? 그저 넋 놓고 앉아 계실 작정입니까? 누구도 나서지 않기에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는 천한 제가 나서려는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 아니 옵니까?”
“네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보구나. 좋다. 만약 네 놈이 임간 장군을 구출해 온다면 출셋길이 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저승길이 열릴 터. 가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청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칼이 이 모양입니다. 어차피 쓰지 않으실 것이면 검을 좀 빌려주십시오.”
출처-<tvN>
무명의 장수는 그렇게 적진으로 돌격했다. 그 장수는 한치의 두려움과 주저함 없이 눈앞에 여진족이 보이는 족족 신기에 가까운 검술로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결국, 총사령관 임간을 구해냈다.
그의 맹활약으로 여진족의 전열이 잠시 흐트러진 틈을 타, 고려군은 정주성으로 퇴각하여 전멸을 면하게 되었다. 비록 고려군은 대패하였지만, 향후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막대한 공을 세우게 되는 장수 척준경을 얻게 되었다. 왕이 되기 전 숙종의 종자로 일하던 그가 여진족과 전투로 고려사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임간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숙종이 이제 믿을 것은 자신의 오른팔인 윤관뿐이었다. 고려 개국공신 집안에서 태어난 윤관은 문종(숙종의 아버지) 때 문과에 급제했으며, 무까지 겸비한 인재였다. 숙종은 이런 윤관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사람으로 중히 썼다.

윤관은 숙종이 즉위 한 1095년 10월, 형부시랑 임의와 함께 요나라(거란 제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는 단순히 숙종의 즉위를 알리는 전령이 아닌 숙종의 정통성을 황제국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띤 외교사절이었다. 이런 임무를 띤 사신단에 포함된다는 것은 왕의 총애와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윤관은 숙종이 지방호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실시한 화폐 발행 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던, 숙종의 머리이자 다리였다.
“내 또 한 번 공의 신세를 져야겠소이다. 정주성에 출정을 명하니 부디 몸 건강히 돌아오시오.”
1105년 3월, 윤관은 숙종의 명을 받들어 여진족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전투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은 여진족 삼십여 명의 목을 베는 데 그치며 패배하고 말았다. 숙종은 윤관의 패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여진족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다. 여진족 정벌을 국가적 차원의 숙원으로 끌어올리고, 제까지 올리며 결전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숙종의 명에 따라 전쟁에 장수로 나섰지만, 윤관은 본디 문관 출신으로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윤관은 여진족과의 직접 전투를 통해 패인을 분석하고, 전략 전술을 마련하여 숙종에게 여진족 정벌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폐하! 이번 전투의 패인은 자만심이 아니라 전술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진족의 핵심이자 중추는 말 위에서 싸우는 기마병입니다. 말 아래에서 싸우는 우리 보병이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우리도 말과 한 몸처럼 싸울 수 있는 기마부대의 창설이 시급하옵니다. 우선 전국에 말을 가진 자들을 징집하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고려시대 백성들은 전쟁에 징집이 되면 군복과 무기까지 준비해야 했기에, 기마부대 창설의 근간은 말을 소유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폐하! 기마부대인 신기 군만으로는 부족하옵니다. 과거를 준비하는 자를 제외한 전국의 스무 살 이상의 모든 자들을 동원하여 신보군의 창설을 주청 드리옵니다. 여기에는 문벌귀족들의 자제들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백성들의 동원이 용이할 것입니다.”
“끝장을 보자는 말이구려. 좋소이다!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신하들이 분명히 나올 것인데,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하리다.”
여진족과 전쟁 문제 자체도 중요했지만, 숙종은 여진이라는 외부의 적을 이용해 국내적으로 왕권 강화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윤관은 이런 숙종에게 훌륭한 조력자였다.
![[The King in Love]왕은 사랑한다ep.25,26Bo-seok, who does not back down, commands Soo-hyun as a queen 1-36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233/852/771/7f3f930b4ab0918d2e38b8abc8c2a8c9.png)
“고려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불교이며, 짐의 동생이 승려다. 전국의 사찰에서 잡부나 수행자로 일하고 있는 자들로 항마군도 편승하도록 하라.”
이렇게 숙종과 윤관의 의기투합으로 여진족 정벌을 위해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별무반에는 화살부대인 경궁, 돌격부대인 도탕, 적진에 침투하여 방화를 하는 발화군 등이 더 추가되었고, 별무반의 총병력은 무려 17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대도 전술도 아니다. 바로 돈이다. 이런 대규모 병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폐하! 별무반은 대규모 병력인 데다가 몇 년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필시 막대한 군량미와...”
“경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내 즉위 초기부터 괜히 화폐를 유통하고, 상업을 장려한 것이 아니오.”
시행착오가 없진 않았지만, 왕과 신하가 한마음으로 별무반 양성에 전력을 다하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불행이 숙종을 덮쳤다. 이듬해인 1105년, 숙종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였다. 깊은 밤 숙종은 통증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제 재위 십 년인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환궁할 채비를 서둘도록 하라”
“폐하! 용안이 안 좋으십니다. 채비는 하겠사오나 해가 뜨면 이동하심이...
“아니다. 아니야. 한시가 급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인간의 능력과 욕심으로 부와 권력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유한한 생명만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숙종은 끝내 궁궐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환궁하던 중 자신의 수레 위에서 5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숙종이 서거하며 별무반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신하들의 전쟁무용론을 잠재운 강력한 왕 숙종이 승하하면서 별무반이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계속>
<오늘의 역사, 한 줄 요약>
1. 고려 숙종은 집권 9년 차를 맞아 여진족이라는 위기를 맞이한다.
2. 임간, 윤관 등 고려 장군들이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대패했다. 그나마 얻은 소득이라면 척준경이라는 걸출한 장수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 문무를 겸비한 윤관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숙종과 함께 여진족 정벌을 위한 특수부대 별무반 창설을 주도한다.
4. 숙종은 별무반의 출정을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로써 별무반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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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팩토리공장장이 이제와서(?!?!)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나긴 역사 중 흥미로운 주제를 집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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