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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우원이라는 청년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뉴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즘 다른 뉴스 보기도 피곤한데 그 친구의 말이 진심이냐 아니냐의 논란까지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최고 권력자의 손자로, 제 피는 파란색인 줄 알고 자라왔을 그가 ‘갑자기 왜?’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저 세상 어려운 줄 모르는 젊은 친구가 벌이는 치기 어린 해프닝이겠거니. 그게 아니라면 그 많은 재산을 둘러싼 알력과 내밀한 다툼이 세대를 넘겨 격해지다가 담장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저 집안도 이제 기우는구나.’

 

누군가 남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 3대도 못 갈 것을, 그의 할아버지는 뭐 그리 대단한 것을 이루겠다고 그렇게 포악을 떨었을까?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 무시무시한 철권을 휘둘러 긁어모은 돈과 권력으로 길러낸 가족들의 행태를 보면... 좀 더 나은 일에 힘을 쓸 생각을, 그는 왜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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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문득 흘러가는 뉴스에 광주로 간 전우원 씨가 스친다. 그가 커가면서 진실을 마주하고 느꼈을 혼란과 자괴감과 외로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도 혼란스러웠다. 나는 무슨 잣대로 그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에겐 그를 단정 짓고 평가할 자격은 있을까. 여기까지 내려오기 전에 어른들이 바로 잡을 방법은 없었을까. 씁쓸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되고 아주 가느다랬던 인연이 떠올랐다.

 

어느 학연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우리 어머니도 매우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자식 잘되는 것을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목표로 설정한 분이었다.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머릿속에 든 먹물은 남는다’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어머니는 먹는 것 입는 것은 얼마든지 줄일 각오가 된 사람이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뜨거운  교육열 덕에 우리 형제들은 ‘무려’ 사립학교를 줄줄이 다닐 수 있었다. 그게 나의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형편에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아니, 철없던 나는 되려 우리 집이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생일 초대를 받아 처음 가본 으리으리한 친구네 집에 주눅이 들기까지, 동네 문방구에서는 구경도 못 할 일제 장난감들을 보며 근원을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네 아버지는 커다란 회사의 사장님이었고, 누구네 아버지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미국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한다고 했다. 또 누구네 아버지는 어느 대학의 교수라고 했고, 또 누구네 아버지는 TV에 나오는 유명한 탤런트라고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그냥 회사원인 우리 집은 거기서 비벼볼 견적이 나오는 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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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나의 모교가 더욱 크게 발전하여 이제는 웬만한 그룹의 3세, 4세 손자녀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초등학교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제 나는 재벌가 자제들과 학연으로 얽힌 동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댈 거가 아니다. 내 학연의 정점은 역시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내 짝의 아버지는 대통령

 

국민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그날따라 교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처음 보는 양복 아저씨 두 명은 나가지 않고 교실 뒤에 서 있었다. 뒤에 서 있었고, 유관순 누나의 사진이 걸려있던 교단 옆 <민족의 얼> 게시판에는 새 대통령 사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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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새 지도자, 전두환 대통령 각하.'

 

그 대통령의 사진은 뭐랄까, 터져 나오는 웃음을 혀를 깨물고 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같이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걸릴까 봐 웃음을 억지로 참던 옆자리 짝꿍의 그것과 너무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우리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선진 조국을 만드는 역군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교실 뒤에 서 있던 양복 아저씨들 때문이었는지 선생님은 평소와는 달리 무척 긴장하신 듯 보였지만, 그날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그것이 내 짝궁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날의 기억이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와 그 친구는 짝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옆에 앉아 시시껄렁한 낙서와 장난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지만, 그 때문에 혼났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교실 안을 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그 양복 아저씨들이 그 아이와 함께 매일 학교에 왔다는 것이었고, 교실 건너편에 아예 그 아저씨들을 위한 방이 생겼다는 정도였다. 아,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담임 선생님은 그 해를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를 그만두셨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선생님은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 국문과 교수님으로 영전하셨다고 했다.

 

초대받지 못한 자

 

그해 겨울, 방학식. 첫눈이 왔다. 학교 운동장을 하얗게 덮을 만큼 큰 눈이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눈을 뭉쳤다. 이내 곧 여기저기서 눈덩이가 날아들면서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편이 갈라졌다. 구석마다 진지가 만들어졌고 진지마다 눈덩이가 수북이 쌓였다. 바로 그날, 내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크고 신나는 눈싸움이 벌어졌다. 

 

장난처럼 주고받던 눈덩이가 단단해지고 눈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 맞으면 화가 날 만큼 아파서, 울며 집에 가는 아이도 있었고, 화를 내는 아이도 있었다. 기어이 되갚아줘야 한다며 눈 속에 돌멩이를 넣어 뭉치는 아이도 있었다. 어느새 나와 그 아이도 씩씩거리며 눈덩이를 들고 서로를 쫓고 있었다. 운동장의 눈바닥은 벌써 곤죽이 되었지만, 어스름한 땅거미가 질 때까지 그 아이와 나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집요하게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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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고작 눈싸움이지만 당시의 우리에겐 이런 느낌이었다. 

출처 - 영화 "주먹이 운다" 중 한 장면

 

그 눈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는 어떻게 갔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아이나 나나 옷이 흠뻑 젖어 점퍼를 벗고 돌아갔다. 물이 뚝뚝 흐르는 점퍼를 들고 나타난 내 모습에 놀라던 어머니의 얼굴만 선명하다. 아버지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그 아이와 나의 눈싸움에 감정이입 하는 듯했다. 괜스레 나를 대견해하는 눈치였다. 그날의 눈싸움 이야기를 마치 당신의 무용담인 양, 약간의 과장을 섞어 당신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 겨울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부터는 조금 다른 변화가 있었다. 토요일마다 그 아이네 집, 그러니까 청와대에 초대받아 다녀왔다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녀온 아이들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잔디밭에서 야구를 했다거나, 거기서 진짜 말을 타봤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랑했다.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청와대에 초대하는 모양이었다.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녀오는 동안, 나처럼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다. 나름 그것도 특혜 비슷한 것이 되어버려서,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도 있었고 그래서 청와대에 다녀온 아이도 있었다. 친구들은 너는 짝이니, 부탁하면 데려갈 거라고, 같이 가서 부탁하자고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쪽팔리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 아이에게 초대받지 못한 거지만, 그것은 그날 눈싸움에서 내가 이겼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승자인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그 아이

 

머리가 커지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에 눈을 떴다. 피가 뜨거워졌다. 정의롭지 못한 역사에 화가 났다. 6월 혁명을 응원했다. 6.29 선언에 가슴 벅찼다. 비록 어렵게 쟁취한 선거에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래도 정치자금과 사재의 국가 헌납을 선언하고 내던지듯 백담사로 떠나는 전두환을 보며,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자를 응징하는 것 같아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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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서울지역 고등학생 간부 수련회였다. 서울의 고등학교마다 각각 뽑힌 몇 명의 대표들이 모여 며칠 동안 합숙하면서 이런저런 수업도 듣고 그룹 활동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수련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그 아이와 마주쳤다. 

 

그때 그 아이는 국민학교 시절 나의 짝이자, 아이들을 몰고 다니던 그 자신 만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말도 없었고, 얼굴엔 표정도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재잘대던 다른 아이들과 대비되어 더욱 침울하고 우울해 보였다. 샤워실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늘어뜨리고 멍하니 물을 맞고 있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청와대에서 운동을 많이 했는지 어깨가 떡 벌어지고 머리는 바짝 세웠는데,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고 있으니 더 안쓰러워 보였다.

 

상처받고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모습.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 쓰러지고 망해버린 폐허에 혼자 남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부잣집 막내아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도망치듯 산사로 떠나버린 제 부모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뉴스에서 보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에,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아이의 측은한 모습이 겹치면서 여러 갈래의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생각나니?”

 

그 아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이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아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힘내라.”

 

그 한마디만 건네고 자리를 피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그 후로는 그 아이를 만난 적 없다. 하긴, 전혀 다른 삶을 사는데 그를 만난다면 오히려 그게 기적일 거다.

 

‘돈이 계속 쌓이는 방’이 있었다는 전우원 군의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 겨우 ‘힘내’라는 말을 찾았던 내가 생각이 나서였다. 쥐가 고양이 불쌍타 한다고, 누가 누구에게 힘내라는 소리를 했던 것일까. 모든 것을 국가에 헌납한다며 산사에 가던 그날도 재산을 이리저리 빼돌리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아이와 나의 아주 가느다란 인연은 요만큼이다. 이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려서는 가난이 부끄러운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염치없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조금 더 깊어 그에게 뭔가를 신세 지는 일이 있었더라면, 혹여 그 때 나도 청와대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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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국민학교 시절 나의 짝은 전우원이라는 조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다음번엔 조카와 함께 나설 수는 없을까.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