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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자자를 모은 주가조작 세력

 

얼마 전 가수 임창정 씨가 주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5월 11일 구속된 라덕연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임창정도 모두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두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특히나 라덕연의 경우 본인이 먼저 언론사들에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지속적으로 피해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일각에선 이런 피해자 코스프레를 나중에 감형을 받기 위한 행동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피해자라고만 하는데 가해자(加害者)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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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임창정, H투자자문 라덕연 대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

출처-<연합뉴스>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면 4월 24일을 시작으로 주식시장에서 삼천리·세방·다우데이타·서울가스·선광·대성홀딩스·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의 주가가 최대 65%까지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투자자가 손해를 보았고, 이 주가 하락 사태에 주가조작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과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 주가조작 세력에 임창정 씨가 개입이 되어있다는 논란 때문에 사건이 좀 더 커진 느낌이 있는데, 어쨌든 언급한 대로 임창정 씨는 본인도 수십억을 손해 본 피해자라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투자자 파티에 참석했거나 행사 등에서 사회를 보는 모습 등이 밝혀지며 여론의 공감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모자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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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사업을 하는

대성그룹 지주사 대성홀딩스 3년간 주가 움직임.

3년간 오르다가 4월에 뚝 떨어졌다(23.05.16 기준)

출처-<네이버 주식>

 

어쨌든 이 주가조작 세력들은 특정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면서 주가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서 세력들 외에 일반 투자자나 기관 등에서도 투자가 들어올 것이고, 가격이 오른 주식을 매도하고 나오는 것이 세력들의 그림이었을 겁니다.

 

이 사건에서 재밌는 건 대부분 주가조작 세력은 길어도 1년 이내로, 짧게는 한두 달 사이에 주가를 조작하고 빠지는 이른바 '단타'를 치고 나오는데, 이 세력들은 무려 3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천천히 조작을 진행했던 점입니다. 위에 언급한 8개의 종목은 최근 1년 사이 최대 358%나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천천히 꾸준히 오르면서 최대 15배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증권가에서는 이미 세력의 개입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력의 개입으로 의심받은 이유는 별다른 호재도 없는데 주가가 오르고, 반대로 악재가 있어도 주가가 올랐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직후, 금리 인상 시기 직후에 대부분 주식이 하락했는데 연루된 종목들은 오히려 올랐습니다. 또한 업종마다 현황이 있어서 동종 업계 주식들의 경우,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데 반해 역시나 해당 종목들은 동종 업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홀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 되다 보니 주식 좀 아는 분들 사이에서도 세력이 개입되었다고 느끼셨던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공유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세력인 걸 알면서도 단타로 치고 빠지려고 들어가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어쨌든 이렇게 주가조작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에 세력들은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임창정 씨를 비롯해 언급되고 있는 연예인들, 의사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기업체 회장님 등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강남의 모 스크린 골프장에서 레슨을 해주던 전 프로골프선수가 이들과 접촉해서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고 합니다.

 

'주가조작' 모집책으로 수사확대…김익래·임창정 주시 _ 연합뉴스TV (YonhapnewsTV) 0-50 screenshot.png

출처-<연합뉴스TV>

 

이렇게 투자자를 모은 뒤에는 "연예인 누구도 하고 있다, 변호사도 의사도 투자하고 있다" 등의 말로 다른 투자자들을 추가로 계속 섭외했고, 이 과정에서 초기 투자자들은 다음에 들어오는 투자자들의 투자로 인해 수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수익금을 정산하면서 재투자를 유도, 계속해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신규투자자를 유치하면 소개비나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전형적인 다단계수법으로 영업하고 주가를 조작한 것입니다.

 

2. 투자종목을 고른 기준

 

모인 자금으로 투자할 종목을 고르는 것은 라덕연이 담당하며 투자종목을 고르는 데 몇 가지 기준을 두었다고 합니다. 우선 업체의 대표가 고령일 것, 시가총액이 작고 유통 가능 주식이 적을 것이었다고 합니다. 업체 대표의 연령을 고려한 것은 이후 있을 상속에 대비해 주가를 최대한 낮게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인데요. 주식을 상속할 경우 시가를 기준으로 상속세가 산정되기 때문에 주가가 낮을 때 상속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시가총액이 큰 삼성의 주식을 조작하는 것보다 총액 자체가 낮은 주식을 조작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좀 더 쉬울 것입니다. 유통 가능 주식이 적다는 것은 사주의 주식 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영권의 문제 때문에 보유주식을 잘 팔지 않을 터이지요.

 

이렇게 투자금과 종목을 정했으면 주가를 올려야 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가총액도 낮고 유통주식도 많지 않다 보니 정상적인 거래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수법이 바로 자전거래, 통정매매라고 하는데, 두 사람 이상이 미리 주식 가격과 물량을 정해두고 서로 매매를 반복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세력들은 이 부분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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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하한가를 기록한 종목 주가

출처-<네이버증권>

 

임창정 씨 인터뷰 중 "세력들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고 신분증을 줬을 뿐이다"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세력들은 투자자들에게 휴대전화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받아서 위와 같은 자전거래를 할 때 주소지 근처에서 거래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이는 추후 금융감독원이 거래를 감사할 때 IP주소와 접속주소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대비한 것이죠.

 

3. 주가조작 세력의 디테일한 목표

 

그렇다면 이렇게 3년간이나 공들인 주가조작의 끝은 어디였을까요? 어디까지 올랐을 때 팔려고 한 걸까요? 주식시장에는 수많은 종목이 있습니다. 상장기업 중 유명한 삼성·현대·엘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주당 가격 몇백 몇천 원의 동전주도 있고요. 이런 종목들은 모두 한 번에 확인하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는 주가지수라는 개념을 두고 있습니다. 흔히 코스피·코스닥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주가지수인데 일정 규모를 기준으로 종목들을 나누어 두었습니다.

 

세력들이 최종목표로서 자기들이 조작하고 있는 종목을 코스피200(코스피 시장 내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이나 코스닥150(코스닥 시장 내 상위 150개 기업) 등 특정 주가지수에 편입시키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정 주가지수에 편입하게 되면 그 효과로 주가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하실 때 특정 지수에 연동되는 펀드들이 있습니다. 이 펀드에 가입하면 특정 지수의 주식을 자동으로 구매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조작 세력이 작업한 종목이 코스피200에 편입되면, 코스피200에 연동되는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 때문에 자동으로 작업한 종목에도 투자금이 들어오고, 주가가 상승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수에 편입되게 되면 거액 투자자, 기관 등 수많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됩니다. 세력들은 이때 주식을 팔고 빠지려고 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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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시다시피 종목들이 지수에 편입하기도 전에 주가가 폭락하면서 모두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려고 했지만 매도가 불가능했고, 하한가에도 매도가 되지 않자,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하한가를 찍는 등 3~4일 만에 3년간 올렸던 주가가 내려앉았죠. 이 부분만 놓고 본다면 정작 자기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익을 본 것이기 때문에, 세력들이 말하는 "나도 피해자다"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4. 피해자는 있다. 그럼 가해자는?

 

그렇다면 세력들이 말하는 "나도 잃었다, 피해자다"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한편에 "나는 먹었다, 가해자다"라는 말도 성립해야 하지 않을까요? 위 일련의 과정에서 '먹은' 곳은 어디일까요?

 

주가조작 종목 중 다우데이타의 김익래 회장의 경우 4월 20일 보유주식 140만 주 지분율 3.65%를 매도했습니다. 매도로 인한 차익은 605억 원가량으로 주가 하락이 시작된 4월 24일이 되기 불과 며칠 전의 일입니다. 서울가스 김영민 회장도 4월 17일 10만 주, 지분율 2%를 매도하여 456억 원을 벌었고 김영민 회장의 동생 김영훈 회장도 대성홀딩스의 주식을 매도하여 538억 원의 차익을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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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뉴스 갈무리>

 

모두 지분 매각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주가조작에 연루된 종목들은 사주가 보유한 주식이 많고,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이 적기 때문에 대주주가 주가조작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라덕연은 회장님들의 지령을 받은 바지 사장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2012년 당시 400원 정도 하던 미래산업의 주식이 정치테마주 바람을 타고 2,000원 가까이 상승했고, 이때 최대 주주인 정문술과 경영진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여 주가가 150원 정도로 하락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대주주의 주식 매각을 통한 차익 실현은 국내에서 흔한 일입니다. 오히려 양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대로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다면 처벌 대상일 수 있습니다. 정황상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다기보다 오히려 지수에 편입되기 전에 매도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판단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가조작 과정이 길다 보니 그사이 많은 기관도 투자했는데 그중에는 프랑스계 증권사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4월 24일 SG증권에서 보유하고 있던 종목들을 일제히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주가가 하락한 8개 종목 모두 프랑스계 증권사인 SG증권에서 매도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졌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SG증권이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국계 증권사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정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작전세력이 개입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 터입니다. SG증권은 매도하기 전 3년간 아주 천천히 변화하던 시장에서 대량의 주식이 일괄 매도되는 상황을 보았고, 유통주식 수가 적은 종목 특성상 대주주의 매도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 이후 보유 물량을 매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5. 누가 가해자(加害者)인가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라덕연과 임창정 등 주가조작에 가담한 세력들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모두 손해를 보았는지, 손해를 보았다면 얼마나 보았는지가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점입니다. 물론 임창정 씨가 인터뷰에서 "30억 손해를 봤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본 사건에서 타인의 핸드폰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투자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 차명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일 것입니다. 즉 임창정 씨 본인의 투자금은 30억의 손실이 발생했을지 모르지만 관련인 또는 차명거래를 이용해서 주가가 하락하기 전에 훨씬 더 많은 이익이 있었을지 혹은 더 큰 손해가 있었을지는 더 조사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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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TBC>

 
또한 이 주가조작 사건이 다단계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오랜기간 동안 서서히 주가를 올렸기 때문에 작전이 초반에 투자를 시작한 사람과 후반이 되어서야 투자를 시작한 사람간에도 차이가 심할 터입니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주식 평균 매입단가를 알 수는 없지만 삼천리 같은 경우 주가가 하락했음에도 10만원 정도의 가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5만원대에 주식을 매입했었다고 가정하면 현재 매도해도 100%가까운 수익이 발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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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 삼천리

3년간 주가 움직임(23.05.16 기준)

출처-<네이버증권 갈무리>

 

결과적으로 일부 기관과 대주주들의 매도로 주가가 빠르게 무너졌습니다만 이는 애초에 주가조작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흔한 리스크 중 하나입니다. 주가가 하락했어도 초창기 세력에 가담했던 일부와 증권사, 대주주는 큰 이득을 챙겼지요.

 

내용들을 조합해서 상상해 보면 지금 손해를 보고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이득을 본 사람들, 그리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주주 중 일부(특히 삼천리의 경우 지분 매도를 하지 않았는데,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서 매도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가 모두 지금의 사태에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이익금 정산 등에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자 합의되지 않은 매도가 발생하면서 균열이 갔고, 관련 정보를 언론 등에 넘기면서 4월 24일을 기점으로 하락사태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지금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녹취록들은 겉으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주가조작이라는 사태를 인지하고 이에 가담하면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했던, 결국 서로가 모두 불신하고 있었던 것을 방증합니다. 결국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익을 보지 못하고 손해를 봤으니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가해자 없는 주가조작 사태는 주가조작임을 알면서도 투자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사기에 가담했던 모두가 가해자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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