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전쟁하는 나라에 주걱을 선물한다고요?
23년 3월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달한 선물이 화제가 되었다. 필승이라는 한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인 커다란 주걱(必勝しゃもじ)이었다. 이 주걱은 원래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인 히로시마 지역의 특산물로서 주걱을 선물 받는 사람에게 '합격', '건강', '장수', 또는 '행복' 등을 기원하면서 건네는 선물이다.
그런데 이 물건의 기원이 제법 재미있다. 1904년 당시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전쟁에 참전하는 병사들에게 '필승'이라는 단어가 적힌 주걱을 선물하는 전통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밥을 먹는다'(飯を取る, 메시토루)라는 단어가 '적을 포획하다'(召し捕る, 메시토루)라는 단어와 음이 똑같았기 때문에 주걱으로 밥을 술술 퍼먹듯이 적을 줄줄이 잡으라는 의미로 건네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필승주걱은 이렇게 생겼다
출처-<닛칸스포츠 갈무리>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아주 안성맞춤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 특산물인 데다가, 다른 나라도 아닌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증정하기에는 최고의 선물이었으니 말이다. 멋있게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주걱을 안겨주고 일본은 물론 주요 외신에도 소식이 보도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주로 야당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를 이해 못 하는 외국인에게는 당혹스러운 선물이다. 일본 야구팀에게나 선물하면 좋을 일본 주걱을 서양 사람, 그것도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은 서투르고 촌스러운 행동이다'라는 것이 비난의 주요 요지이다. 하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젤렌스키 대통령 입장에서도 '필승'이라고 적힌 사무라이 갑옷이나 투구를 선물 받았다면 몰라도 '필승'이라고 적힌 밥주걱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선물이란 말인가?

기시다 총리의 '주걱 사랑'은 유명하다. 2015년 당시 외무상이었던 그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당시 우리나라 윤병세 장관에게도 주걱을 선물했다(출처 : 연합뉴스)
불과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엄청난 지진으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에 일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1,000마리의 학을 예쁘게 접어서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학이 전달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먹고 마실 물과 음식도 없는 나라에 종이학이라니... 무슨 개소리냐?'라는 반응이 일본 현지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 입장에서 좋은 것을 주고 싶다'라는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헛스윙 사례라고 하겠다.
2.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선물
해외주재원으로 오래 생활하다 보면 한국에서 오는 출장단들을 현지인들에게 소개해 주거나 그 만남의 장소에 배석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본사에서 온 출장단이 대부분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관계사나 고객사에서 물어물어 인도에 거주하는 주재원을 찾아서는 "인도의 어느 어느 정부 부처와 면담을 주선해 달라... 면담에 배석해 달라"라는 요청받기도 한다. 이런저런 사업 관련 이야기가 오고 가고 난 후 헤어지기 전에 기념품을 전달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기시다 총리가 선물한 '필승 주걱'만큼은 아니어도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받기 황당한 선물을 한국 출장자들이 굳이 전달하려고 하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도에 출장 오면서 훈민정음이 새겨진 예쁜 숟가락과 젓가락 세트를 들고 온 출장자가 있었다. 부부가 같이 쓰라고 두 개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예쁘게 담겨 있는 선물이었다. 그 선물을 들고 온 출장자의 입장에서는 부부가 쓸 수 있는 숟가락 젓가락 세트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더불어 인도처럼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나라에 출장을 간다고 했으니 '옳다구나'라며 냉큼 집어 왔을 수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져온 그림이다. 필자의 글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출처 : 샵오브코리아).
그러나 이 사람이 놓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아직도 인도 국민 대부분이 손을 깨끗이 씻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의 전통문화를 아끼는 사람일수록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자신들의 식습관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일부 카스트 계급이 높은 사람 중에서는 육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포크, 나이프는 물론이고 스푼이나 젓가락 같은 것들을 매우 천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불가촉천민처럼 카스트 계급이 낮은 사람일수록 육식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너그럽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속 좁은 꽁생원이라면 "손으로 음식을 먹는 우리 인도의 문화를 어떻게 보고 이런 선물을 주는 거지? 우리 문화를 무시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좀 사라진 듯한데, 한때는 하회탈을 모티브로 한 열쇠고리나 책갈피꽂이 심지어 하회탈 자체를 선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주술적 또는 미신적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는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처치 곤란한 선물이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는 문화마다 국가마다 너무나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탈(mask)이 해학과 웃음을 주는 의미로 사용되는 나라도 많지만 그렇지 않고 저주와 악귀를 상징하는 나라도 많다. 하회탈이 가진 해학과 풍자의 정신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인이 하회탈을 선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나 놀랍고 무서울까? 기시다 총리의 필승 주걱은 '이게 뭥미?' 정도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겠지만 하회탈은 자칫 잘못하면 '으악.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안타깝지만 피해야 할 선물 중 하나다. ㅠㅠ

출처-<인터파크 쇼핑>
위에서 설명한 사례들은 선물을 받는 입장보다는 선물을 주는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때로는 국뽕에 한껏 취해서, 때로는 '한국의 미'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화르르 불타올라서, 아니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여!!"라는 믿음 때문에 심하게 한국적인 것을 준비한 그런 사례 말이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나는 그 순간 받은 사람의 물건이 되어버리는 것이 선물의 특징 아니겠는가? 받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듯하다.
3. 그렇다면 어떤 선물을 추천할 만할까?
때로는 선물을 받는 남편(또는 아빠나 아들)보다는 그의 부인(또는 엄마나 딸)을 염두에 두고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너무 비싸지 않은 한국산 기초 화장품이나 마스크팩 등은 인도는 물론 여러 나라의 여성들에게서 환영받는다. K-뷰티의 힘이다.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 피부가 너무 깨끗하고 좋다'는 것이다. '이거 사용하면 네 피부도 더 예뻐질 거야'라는 덕담 한마디 보태서 한국 화장품을 선물해 준다면 분위기도 확 좋아질 것이다.
선물 받는 나라의 특성을 활용해 볼 수도 있다. 인도처럼 차(tea)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에 출장 오면서 한국의 녹차를 선물로 가져오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오히려 다양한 차를 마시는 데에 거부감이 없는 인도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산 고급 녹차를 예쁘게 포장한 선물 세트에 호감을 표한다. 선물 받는 사람의 건강까지 챙겨주고 싶다면 자그마한 홍삼(요새는 개별 포장되어 먹기 편한 상품도 많다)도 인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워낙에 다양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다 보니 홍삼을 조금 덜어 넣고 꿀을 넣어서 따뜻하게 마시면 좋다고 설명해 주면 된다.
달달한 음식(sweets)에 있어서도 인도가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굴랍자문(gulab jamun)이라는 유명한 인도식 디저트가 있는데 우유를 좀 굳힌 후에 동그랗게 말아서 설탕물에 푹 절여 놓은 음식이다.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먹는 동안 이빨도 같이 녹아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단 것을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이기에 우리나라의 약과나 유과 등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외국인이 떡은 좋아하지 않는다. 떡의 끈적거리는 질감이 그들에게는 비호감이기 때문이다. 기왕에 먹는 것 이야기가 나왔으니, 가격이 좀 저렴하지만 가성비 좋은 선물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개별포장된 한국산 김 역시 제법 인기가 좋다. 인도 인구의 약 30% 정도는 채식주의자인데, 이들에도 부담 없이 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30일 기준 인도 넷플릭스 순위권(Top 10)에 올라온 '여신강림'과 '지금 우리 학교는'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선물 받는 사람의 자녀가 K-콘텐츠나 K-pop의 팬이라면 몇만 원 안 되는 작은 '굿즈'도 좋은 선물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인도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 찾는 게 한강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었지만 2023년 4월 30일 기준 인도 넷플릭스 Top 10 목록에 한국 콘텐츠가 2개나 올라와 있다. 문가영·차은우 주연의 '여신강림'(True Beauty)과 조이현과 로몬 주연의 '지금 우리 학교는(All of us are dead)이다. 인도에서 제작된 인도스러운 영화만 좋아하던 이곳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허물어지면서 K-뷰티와 K-콘텐츠가 차츰 인도인들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다.
너무 비싸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너무 싼 걸 건네줄 수도 없고, 너무 한국적인 걸 선물하자니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국적 불명의 선물을 줄 수도 없고... 비즈니스 선물을 이래저래 고르기가 어렵다. 하지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나 자신을 인도인으로 빙의해서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쉽게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인도인의 입장에서 받아도 기분 좋을 그런 선물'을 말이다.
<계속>
추신
필자와 필자의 자녀들이 경험한 프랑스 학교와 미국 학교의 교육방식, 교육 철학, 그리고 그 안에서 허둥지둥 똥볼을 차며 고생했던 토종 한국 학부모의 생생한 고생담+실수담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2014년부터 3년 동안은 테러 사건이 빈번하게 터지던 프랑스 파리에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로 수십만 명이 확진되던 인도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는... 문자 그대로 타이밍 하나는 완벽하게 '꽝'인 해외주재원의 진솔한 삶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나라를 옮겨다니며 일합니다]
되돌아보니 금융계 직장 생활 20여 년 동안 각종 위기 상황의 한복판을 귀신같이 찾아가는 '신박한' 능력을 발휘해 왔는데,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 능력이 발휘되었나 봅니다. 한국에서는 IMF 사태(1998년)와 리먼 브러더스 사태(2008년)의 칼끝을 간신히 피하고, 2014년부터 3년 동안은 무려 3번의 끔찍한 테러 사태가 연달아 벌어진 프랑스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는데... 그런데, 인도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코로나 사태 때문입니다.
이 책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꿀 빠는'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던 제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인도에 아내와 사춘기 두 딸과 함께 부임하며 겪은 일을 담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작된 무시무시한 코로나 사태...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가족들 건강도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겪은 경험과 인도에서의 경험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비교해 가면서 차분하게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제 자신에게 묻고 대답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한 달짜리 인도 배낭여행만 하고 나서도 이 세상 모든 철학을 깨우친 듯한 명문장을 휘리릭 써내시던데... 회사에 들어가 20년 넘게 워드보다 엑셀을 더 많이 들여다본 저에게는 그런 글솜씨는 없습니다. 하지만, '글쟁이' 아빠가 아닌 '생활인' 아빠의 입장에서 '여행지로서의 인도'가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서의 인도'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담백하게 기록했습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저희 가족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첫 페이지를 한번 넘겨보세요. 3개의 나라를 넘나드는 저희 가족의 생생한 고생담을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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