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 뉴스공장 백스테이지.

생방을 마친 출연자들은 남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비 오는 아침 바위섬 노래에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황쌤 : (문득)어 그런데 우리 다음 주에 뭐 하지?
근병 : 그러게요...
때마침 맞은편에서 스튜를 먹고 있던 막내 PD 님.
황쌤 : 피디님은 뭐 좋아해요? 다음 주는 막내 피디님이 좋아하는 거로 하자.
막내PD : 저 조개 좋아해요!!
황쌤 : 조개라... 요즘 뭐가 나오지?
근병 : 음... 전에 노량진 가니까 관자가 많이 나오긴 하던데.
황쌤 : 맞네! 키조개 알이 찰 때 네.
아이템 선정의 기쁨도 잠시. 금세 문제에 봉착한 금요미식회 팀. 관자는 원래부터 그냥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제안할 미식으로서의 포인트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황쌤 : 방법이 있다 김기자!
근병 : (두근)뭔가요 선생님?
황쌤 : 지금 햇양파가 무지 맛있을 때거든. 지금 나오는 조생종 양파는 그냥 생으로 먹어도 사과처럼 달고 맛있어. 관자랑 양파로 요리를 하면 궁합이 아주 좋을 거 같은데?
근병 : 우오오오오

다음날 주문으로 제주 한경면에서 지체 없이 올라온 햇양파.

해마다 이맘때 출하되는 조생종 양파는 우리가 흔히 자주 접하는 만생종 양파와 다르다.

조생종은 아린 맛이 적은 대신 단맛과 채즙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빨리 물러지기도. 1년 내내 보관하는 만생종과 달리 저장성이 굉장히 약해서 이 시기에만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대신에 그 단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한데,

아무 가열을 하지 않고 날것으로 먹어도 전혀 부담이 없을 만큼

달고 맛있다.

그렇다면 이제 관자를 구하러 가보자.

확연히 빨라진 노량진 새벽시장의 일출.

이날은 때마침 제철 물량이 터져서,

물차 가득 쏟아져 내리는 자연산 광어와

봄 꽃게군단의 습격으로

노량진이 들썩들썩이고 있었는데,

지금은 방구석 오마카세 할 때가 아니므로, 한눈팔지 않고 키조개로 직행해 보자.

껍질을 달그닥 달그닥 거리는 키조개들. 최상품이다.

이 녀석은 이매패강 홍합목 키조개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넓은 삼각형 모양의 껍데기가 마치 오줌 지리고 소금 얻으러 갈 때 쓰는 키와 닮았다고 해서 키조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자생하는 조개 중에 가장 큰 놈이다.

4~5월 봄철에 맛이 드는 키조개는 주로 관자를 먹는다. 관자는 사실 살이 아니라 껍데기를 여닫는 근육조직이다.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같은 다른 조개류를 먹을 때 껍데기 안쪽에 잘 떨어지지 않는 작은 원기둥, 그게 바로 그 녀석들의 관자다. 다른 조개들처럼 키조개의 살도 먹는 부분이 있지만, 관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튼실.
수요일 : 메뉴 개발

키조개 관자를 손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겉면의 수분을

잘 제거해 주는 것이다.

내장과 살에서 분리해 낸 관자는 다량의 수분과 점액질이 남게 되는데

그 상태로 가열된 기름과 만나게 되면,

수분이 강한 열에 기화되어 관자와 기름 사이에 막을 형성해 관자가 팬에 밀착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가열된 기름이 팝콘처럼 튀어서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유 + 버터기름에 온도를 높인 후 관자 투입.

관자가 팬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오일을 윗부분에 끼얹어 주자.

관자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가열을 최소화하는 것. 관자는 날 것 그 자체로도 이미 맛이 완성되어 있는 훌륭한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관자 겉면을 익히는 이유는 1) 보다 안전한 섭취를 위해서 2) 버터 오일의 풍미를 재료에 입히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3) 관자 안에 있는 이노신산의 분해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하기 위함이다.
이노신산이 뭔지 좀 더 확 와닿게 알아보려면,

오코노미야키를 떠올리면 된다. 그거 먹을 때 마요네즈 위에 꼬물대고 있는 가다랑어 포. 톱밥같이 생긴 것이 입에 넣고 씹으면 별것도 아닌 게 매우 좋은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은가. 그게 바로 감칠맛 성분, 이노신산이다. 동물조직에 있는 이노신산을 좀 더 피곤하게 표현하자면, IMP(inosine monophosphate)라고도 하는데,

출처 - 딴지 최첨단 핸드크래프트 일러스트팀
바로 고기 숙성의 결과로서 도출되는 성분이다. 동물의 숨이 떨어지면 체내의 ATP(동물이 애초에 몸 안에 지닌 에너지)가 IMP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기를 숙성하면 맛있어지는 것. 단백질을 가열하면, 이 분해가 인위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아무튼 그러니까. 구우면 더 맛있어지니까 더 맛있게 먹으려고 열을 가하는 거다.

그러면, 바짝 구우면 더 맛있어지는 것 아닌가?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관자는 가열할수록 식감이 질겨지는 도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관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탱글함과 감칠맛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해서, 겉면만 살짝 익히면서 가능한 가열시간을 적게 가져가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법을 취하는 것이다.

관자를 꺼낸 버터 오일에 채 썬 양파 투입.

생으로 먹어도 좋을 양파이므로,

이 친구도 아주 살짝만 볶아 보자.

볶은 양파를 밑에 깔고,

관자 안착.

제철 물오른 참나물을,

쫑쫑 썰어서,

부족한 향과 색감을 맞춰보자.

안 먹어 봐도 맛이 그려지는, 확실한 조합.

그래도 먹어 봐야지.

말해 뭐 하겠는가. 대존맛.

근데 어딘가 한 가지 아쉬움이 든다.
좋은 관자를 구해 살짝 구워 드시라.
이것 하나 만으로 과연 금요미식회에 걸맞은 정보가 될 수 있는가.

뭔가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다 쓰고 있지 못하는 느낌도 들고.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다른 길을 모색해 보자.

횟감이 되는 신선한 관자를 일단,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양파도


관자살과 같은 크기, 모양으로 다져보자.

소금 후추 간.

그리고 레몬즙.

오 쉬벌. 뭔가 지중해 삘이 남.

홀린 듯 참나물 투입.

올리브오일을 좀 더 추가해서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벼주면,

뭔가 에게해의 풍미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근사한 샐러드.

새로운 발견에 흥분한 근병은,

정신 차려보니 접시에 라이스페이퍼를 깔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오늘

엄청난 걸

만들어 낼지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ㅅㅂ

리빙포인트 : 라이스페이퍼는 기름에 약하다.


흥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아집의 대량 생산.

내용물의 응집력을 위해 치즈가루를 추가해 본다.

한 겹은 기름에 견디지 못하는 거 같으니,

근성 있게 라이스페이퍼를 두 겹으로 칭칭.

라이스페이퍼의 전분질이 팬에 들러붙는 것도 차단하기 위해 코팅 팬으로.

이래도 안 튀겨지고 버틸 것인가.

나의 승리.

맛있다. 맛있는데,

재료를 싸서 튀기는데 급급한 나머지, 속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이 두꺼운 껍질에 베인 기름 맛 뒤로 숨어버린다. 이럴 거면 그냥 냉동 해물과 채소로 해도 충분한 느낌.

가만 생각해 보니 문제는 라이스페이퍼의 내구성이 아니라, 속 재료를 미끄덩거리는 샐러드로 만들어 놓은 게 문제일수도.

그렇다면,

본래의 월남쌈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 튀겨보면 어떨까.

확실히 미끄덩거리는 게 없으니 쌈은 수월하게 싸진다.

과연 그 결과는?

한 장으로도 뭔가 되긴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느낌.

쌈 안에서 관자와 양파가 무의미하게 쪄지고,

어설프게 숨이 죽은 참나물은 오히려 식감을 방해한다.
목요일 : 리허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수요일 밤.

햐 저 맛있는 샐러드를 어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에 뒤척이다가 밝은 리허설 날 아침.

어떻게든 살려보자.

근병이 밤새 찾은 답은,

치즈가루를 추가한 브루스케타. 생관자와 생양파의 풍미를 포기 할 수 없었다.

두목님 시식.

총수님 : 음...

크흡...

총수님 : 맛있어. 맛있는데. 뭔가 좀 아쉽네.
근병 : 뭐가 부족한 걸까요?
총수님 : 그동안 해 온 걸 생각해 보자고. 김이든 오이든 버섯이든 흔하고 평범한 재료를 간단한 방법으로 그럴싸하고 멋지게 먹는 방법을 찾아왔잖아. 근데 관자는? 관자는 원래 맛있는 거란 말이지.

총수님 : 이거 맛있어! 맛있긴 한데. 원래도 맛있는 관자로 했다고 생각하면, 요리가 상상의 범주 안에 있는 느낌이야. 오!! 라는 느낌이 안 드네.

난감하지만 일리 있는 시식 평. 맞다. 지금의 요리에는 관자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이태리 전체요리에 연어 대신, 토마토 대신, 관자를 넣었구나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과물.

총수님 : 야 근데 이거 양파는 맛있다. 관자랑 잘 어울려!!
오 새로운 돌파구.
'생양파를 허 하노라.'
재차 확인.
근병 : 생으로 먹어도 입에 맞으세요?
총수님 : 엉 이건 생으로 먹어도 맛있네!! 익히지 말고 생으로 해봐!! 으하하하
오케이.

그렇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

관자 그 자체를 씹는 만족감과 생양파 알싸한 단맛의 조화에만 집중해 보는 것.

채 썬 양파 접시 직행.

관자 입주.

참나물 토핑.

관자를 굽고 팬에 남은 버터 오일를 끼얹고,

소금 후추 레몬즙

심플 이즈 베스트. 돌고돌고돌아 최종 요리 완성.
금요일 : 온에어

양파 좋은 거 잘 구했다고, 사과처럼 바로 한 알 때리시는 미식회장님.

센터반장님도 양파 합격점.

들어가기 전에 출연자 사전 시식.

대기자님 : 흐음...

역시 단순한 게 제일 어렵다.


마지막 디테일을 잡아주시는 회장님과 센터님.

전우용쌤 : 아우 관자가 부드럽고 좋네요.
최종_최종_최종_진짜최종 완성.

방송 시작.

황쌤 : 조생종 양파가 제일 맛있을 때입니다. 매운 기운이 확 떨어지고 단맛이 강하죠. 중국집에서 어느 날 춘장에 양파를 찍어 먹었는데 뭔가 달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아마 이맘때였을 겁니다.

공장장 :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어른들이 생양파를 먹으라고 준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 ㅎㅎ
대기자님 : 처음 먹은 양파가 달았던 아이는 양파를 생으로 먹는데 주저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죠.

그 때 그 아이, 관자 양파 시식.

공장장 : 어우 야아아아아아아 마시따!!!

공장장 : 으오오 양파 이거 진짜 달아요. 사각 사각한 맛이랑 관자랑 조합이 아주 끝장이네에~~
덧

모든 급식이 그렇듯

가장 맛있는 것은 맨 마지막 사람들이 먹는 법.

이렇게 이번 주도 무사히.
또 다른 시선
(계속)
사진/영상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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