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매우 심하니 외출을 삼가라는 기상 뉴스캐스터의 간곡한 당부가 있어 밖에도 못 나가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터폰의 벨이 울렸다.
"택배 올 것이 없는데?"
인터폰 화면엔 웬 점잖게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왕국 회관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신 분이었다. 옷을 입고 아파트 현관으로 내려가서 그 사람을 만났다. "딴지일보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김어준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민족 정론지는 물론이고 그런 인물도 모르면서 이러고 다니면 되겠느냐? 전도하더라도 좀 전략적 판단을 하시라.”
점잖게 타일렀다. 다음에 한 번 더 찾아 오면 사생활 방해로 신고하겠다는 친절한 주의 사항도 함께 했다.
호주에 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밤에 택시 운전을 하고 낮에 잠을 자고 있을 때, 여호와의 증인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고 “깨어라!”라는 책자를 줬다. 환장할 일이다.
‘깨어 있음’이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다. 어떻게 해야 깨어있는 것일까? 깨어나라고 주입하는 종교의 교리들은 사실은 사람을 잠들게 만들기에 딱 좋다. 어떤 종교이든 교리에 사로잡혀 있는 한 절대로 깨어날 수 없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기억
깨어 있음의 시작은 자기를 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 감정을 가졌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즉, 내가 나의 관찰자, 주시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건 선천적이나 자연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훈련으로만 될 수 있다. 그런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 수 있겠으나 일단 해 보면 안다. 방법은 명상, 기도, 손 들고 벌서는 것 등등 다양하다.
모르는 사람이 내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건 잡상인식 방문이다. 여호와의 증인 방문은 형식상 잡상인식(?)이지만 내용은 아주 고상하다. 그래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대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번번이 낮잠을 자는 중이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식사 중이거나, 손님이 있거나, 전화 통화 중이거나, 무엇인가 하고 있을 때 현관문을 두드린다. 그러므로 사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분들과 한 번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본 일이 없다. 아마 그것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거나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심하게 지내지 않는 내 탓도 있을 것이다.
억지로 시간을 낸다면야 그분들과 대화할 시간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분들의 신앙을 무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대화를 시작했다가 쓸데없는 논쟁으로 발전하여 실망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먹고 살기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집집마다 문 두드리며 전도 하느라 수고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보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전도하는 몰몬교 선교사들의 태도에 진정으로 존경심을 표하고 싶어진다.

출처 - 링크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여호와 증인들 가운데는 존경할 만한 삶을 사는 분들이 있다. 호주에서 나와 함께 복지단체에서 일을 하던 여호와 증인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기특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을 해결해 보겠다는 갸륵한 뜻으로 희랍어를 독학, 기독교인이나 목사들을 만나며 신약성경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한 번은 그 아들이 나에게, 여호와 증인을 이단으로 생각하는지 희랍어 성경을 들고 와 물었다. 나는 희랍어가 아니라 예수가 직접 말한 아람어로 성경을 읽는다 해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우선 ‘성경을 읽기’ 전에 ‘성경에 관한 책’을 먼저 읽어서 성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점잖게 물리쳤다. 자신만만한 자기의 공세를 비켜 나가는 나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안식일 교회와 여호와 증인은 같은 시기에 출시된 Made in USA 제품이지만 주가가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입(주둥이)으로만 하는 여호와 증인에 비하면 각종 실천을 하는 안식일 교회가 훨씬 주가가 높아서 교세와 사회적 영향력에선 비교가 불가능하다.
교리는 쌈박질로 발전한다
인간은 어떤 것을 강하게 믿을수록 극단적이 된다. 마치 히틀러를 믿었던 독일인처럼, 성리학에 매몰되었던 조선인들처럼 말이다. 어떤 종교에서 교리가 정해지는 과정은, 선생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받아쓰기 하듯 순수하게 정해지는 경우보다 전투와 전투 속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가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가장 좋은 예라면 기독교 역사 안에서 유구하고도 장대하게 치러진 교리 논쟁일 것이다. 대표적인 종교회의였던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는 요즘 말로 하면 예수와 하나님의 촌수를 가리는 문제였다. 여기서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일은 이 회의가 단순히 종교회의가 아니라 지배체제에 관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격렬하게 발생하고 있던 교리적인 문제를, 종교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 황제의 명으로 교리의 차이점을 해소하기 위한 공의회를 개최, 제국이 종교의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였다. 몇 달 동안 끝도 없이 진행되는 회의 기간 동안 참석자의 왕복 여비 일체를 황제가 부담했을 정도다.

출처 - 니케야 종교회의
한 번 상상해 보시라! 지중해 전역의 구석구석에 흩어져 살고 있는 늙은 영감님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와서 말 타고 배 타고 가마 타고 시도 때도 없이 와서 회의하는 모습을! 시계도 없던 시대에 시간이나 제대로 지켜졌겠나? 이렇게 시작된 로마 제국과 기독교의 결합은 이후 사태가 역전, 기독교에 의하여 로마가 먹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드디어 게르만족에 의해서 로마는 멸망했다. 이렇게 시작된 중세기! 중세기의 코드는 단연코 ‘천국과 신’이었다.
꾸준히 발전해 왔던 인류의 지성과 문화는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기차가 뒤로 달리듯이 퇴보해야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무식’이었다. 게르만족은 헬레니즘 문명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무식한 야만족이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식한 게르만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즉, 철저하고도 융통성 없는 유일신 체제의 계엄령 사태로 돌입한 게다. 요즘 말로 '무식한 사람이 소신까지 갖추는' 가장 두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
이렇게 고비 고비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기독교 교리는 2000년 동안 짜온 촘촘한 그물과 같다. 얼마나 정교한지 한 번 그 그물에 걸리면 여간해서는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들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종교가 있다
나처럼 싸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한 곳에 붙박이로 사는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행동반경이 넓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세계가 넓은 것도 아니고 심심산골에 틀어박혀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세계관이 반드시 좁다는 법도 없다. 세계란 어떤 사람에게는 우주 전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겨우 자기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세계에 국한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세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건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얼마나 형이상학적으로 부지런히 사고를 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나와바리는 넓을수록 좋다.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그러나 한 가지 교리나 논리체계에 빠지게 되면 넓을 것 같으면서도 가장 좁은 세계관 속에 갇히고 만다. 그런 면에서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종교는 유니테리언과 퀘이커이다. 그들은 "No creed", 즉, 아무것도 신조로서 믿지 않는다.
유니테리언을 알려면 미국 남북 전쟁을 봐야 한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일반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일어난 전쟁으로 이해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복잡한 배경이 있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북부에서는 몇 가지의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을 대표하는 건 1800년에서 1840년 정도까지 미국의 뉴잉글랜드와 뉴욕주 북부를 휩쓸었던 '두 번째 큰 각성 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이었다. 남북전쟁은 이런 사상적, 종교적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준비되었다. 이 운동은 청교도주의인 칼뱅주의를 버리고 유니테리언 종파가 득세하게 만들었으며 유니테리언이라는 종파를 넘어서 에머슨이라는 인물이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했다.

출처 - the second great awakening
그러한 변화의 기본은 기성 사회 혹은 굳어진 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칼뱅주의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말하면서 전통을 지키자는 보수주의라면, 유니테리언은 인간을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보고 긍정했으며 이성의 힘을 믿었다. 그들은 예수를 높게 평가하지만, 예수를 신격화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했다. 신 앞의 평등을 강조해서 여성과 노예의 인권을 강조한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은 남북전쟁 전에 이러한 유니테리언들의 대학이 되었다.
한국에는 유니테리언이 없기 때문에 나는 외국을 여행할 때 그 지역의 유니테리언 교회를 꼭 방문한다. 유니테리언 교회는 신조나 교리가 없어서 교회마다 색깔이 완전히 달라 흥미롭다. 예를 들면 내가 방문했던 마이애미 교회는 예수, 석가, 마호멧, 힌두교의 신 걸개그림을 크게 걸어 놓았다. 하와이 교회는 고급 예술가들의 살롱 같은 분위기였다. 캐나다의 몬트리올 교회는 활발한 YMCA 같았으며, 시드니 교회는 휴머니스트 클럽 같았다. 하와이 호놀룰루 유니테리언 교회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바마를 키운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가 다녀서 어린 시절 오바마도 다니던 교회였다고 한다.

출처 - 링크
믿음의 분리수거
기독교는 예수라는 원자재를, 당시로는 하버드 출신 바울로 시작되어 수 세기 동안 침이 아니라 피가 튀기는 이단 논쟁을 거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예수의 사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게 퍼졌던 까닭은, 로마 황제가 피라미드의 정점인 세상을 뒤집어서 가장 낮은 사람이 높아지는 역삼각형 구조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잘 되는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악취가 진동하던 중세 가톨릭으로부터 불신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 '개독'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K-기독교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모델 하우스도 없이 죽어서 입주한다는 천국 단지 아파트를 분양한다고 청약 신청을 받고 있다. 덤으로 착한 일(그들에게는 착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교회 일)을 해놓으면 천국에서 좀 더 넓은 평수에 입주할 수 있다면서.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 교리는 철학 중에 가장 어려운 개똥철학 계통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우주의 탄생과 역사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하여 철학이 있지만 그 철학이라는 것이 현존하는 객관적 지식체계와 상충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해서 개똥철학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데 항상 진지할 수만은 없는 일일 테니깐.
그러나 분리수거가 필요한 산업폐기물처럼 분리수거 해야 할 종교 폐기물도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인간으로 보내서 한 번 쓰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재활용(재림) 하신다고 믿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한 자원 재활용이 절대적인 시대에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진리는 시간 속에서 오염되어 종래에는 종교라는 하수도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진리가 문제이어서가 아니라 그 진리를 소비하는 인간들 탓이다.
아무쪼록 각종 제도 종교에 실망하여 비분강개하고 탓하는 어리석음에서 구원 받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전하고 싶은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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