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하우아유? 파인쌩큐 앤드유?를 가르치지 않는 영어 수업

 

국제학교 영어 수업에서는 하우아유? 파앤쌩큐 앤드유?를 가르치지 않는다. 영어로 진행되는 '문학 수업' 시간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두 자녀는 초등학교 시절을 프랑스에서, 중학교 시절은 한국의 프랑스 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 인도에 있는 미국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세 곳의 국제학교에서 받은 영어 수업이 우리나라의 '국어' 수업과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자.

 

일단,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이 파리에서 재학했던 학교는 이른바 이중언어 학교(Ecole Bilangue)로서 수업의 반반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진행하는 학교였다. 아이들의 영어 수업은 당연히 영어 원어민 교사가 담당했었고, 1년 동안 소설·시·희곡을 골고루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소설 수업 시간에는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미리 읽어오라고 숙제를 낸 후 수업 시간에는 그 내용에 대해서 선생님과 끊임없이 묻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소설을 읽어오라는 숙제를 제대로 해가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단 한마디도 끼어들 수가 없지만, 소설을 제대로 읽고 미리미리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 간 학생이라면 정말 알차게 토론식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부익부 빈익빈' 시스템이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둘째가 영어 수업 시간에 읽고 있는 소설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 내가 옆에서 틈틈이 소리 내어 읽어주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Blubber>, 내용은 놀랍게도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초등학생용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된 생생한 학내 폭력 행위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끼리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작당해서 뚱뚱한 학생 하나를 철저하게 왕따시키는 장면, 왕따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 학생이 느끼는 미묘하고 섬뜩한 심리적 변화, 심지어 왕따 피해 여학생을 화장실로 몰아넣고 강제로 옷을 벗기는 충격적인 행위에 대한 자세한 묘사까지, 있는 그대로 현실을 미사여구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서양식 교육 방법을 나는 그때 처음 마주친 것이다.

 

image2.jpeg

주디 블룸의 1976년작 '블러버'

출처-<핀터레스트>

 

2. "당신이 그러고도 선생이야? 당신이 그러고도 교육자야?"

 

'동심천사주의'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천사와 같으니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과 예쁜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읽혀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일까.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예쁜 꽃과 곤충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가슴 따뜻한 전래동화가 한가득 차고도 넘친다. 아빠나 엄마가 초등학생 자녀의 교과서를 펼쳐 읽기 시작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모두 샤랄랄라~ 힐링 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제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이렇게 샤랄랄라~ 힐링이 되는 책이 아니라, 왕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다룬 책을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읽기 교재로 채택해서 수업을 진행했다면 학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글쎄, 아마도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 때문에 학교 전화통에 불이 날 것이다.

 

"도대체 우리 애가 어떤 아이인데… 예쁜 것, 좋은 것만 보여줘도 부족할 마당에 그런 끔찍한 소설을 읽으라고 시킨다고요?. 그러고도 당신이 선생이야? 당신이 교육자야? 이런 XX 같은 XX아.. 교육청에 민원 넣어야 정신 차리겠어?"

 

하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그런 항의는 한 건도 없었다. 귀한 자기 자식에게 끔찍한 소설 읽게 시킨다고 항의 전화했다는 사람도 못 만나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1970년대에 발표되어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초등학생용 소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 아이들 학부모 중에서 상당수는 이미 학교에서 이 책을 읽어봤거나 적어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사회 현실을 가르치는 교육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image3.jpeg

맥베스에서 몇 명이 어떻게 죽는지를 설명한 그림

출처-<www.goodticklebrain.com>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첫째는 영어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배웠다. 셰익스피어가 쓴 그 많고 많은 희곡 중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작품이 바로 <맥베스>이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연극 공연 시간 동안 10여 명 넘는 사람들이 칼에 찔려 죽고(덩컨 왕), 배꼽부터 턱 끝까지 칼로 두 동강 나서 죽는 것(맥돈월드)도 모자라, 암살자에게 수십 군데가 찔려 살해된 등장인물 중 하나(뱅쿠오)는 떠억하니 유혈이 낭자한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주인공인 맥베스는 연극의 맨 마지막에 목이 뎅겅 잘려서 창끝에 꽂혀서 등장한다. 이번에도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먼저 읽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영어 원어민 아이들도 이해 못 하는 17세기 영어로 쓰인 작품을 한국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17세기 영어를 현대 영어로 번역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함께 한 줄 한 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의 가장 큰 관심은 하나였다.

 

"(호기심이 가득한 반짝이는 눈으로 필자를 바라보며) 아빠. 다음 사람은 언제 죽어?"

 

3. 인도에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요

 

인생의 희로애락과 사회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은 인도에 있는 미국 학교의 고등학교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둘째 아이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 와중인 2020년 9학년(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영어 수업 시간에 <생쥐와 인간>을 읽었다. 영문학과를 나오신 한국 학부모 중 한 분이 "어머. 이거 내가 대학교 때 전공 수업 시간에 읽었던 책인데"라며 놀라워하셨다. 책 분량은 짧았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았다. 한 건도 아닌 두 건이나 되는 살인에 대한 생생하고 사실적 묘사, 대공황 시대 미국 남부 지역의 처절할 정도로 가난한 삶, 가감 없이 적힌 흑인에 대한 노골적 차별, 지능이 모자라는 남자 주인공을 성적 노리개로 삼고자 대놓고 유혹하는 유부녀까지... 책의 결말에서 남자 주인공이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을 살해하는 장면이 어찌나 슬프고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던지 둘째 아이는 울음이 터져 나와서 줌(Zoom) 화면을 잠시 꺼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나만 운 거 아니야. 나 말고도 울먹거리는 애들 몇 명 더 있었어."

 

요새 우리나라 학교의 문학 수업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국어와 문학 그리고 한문 시간까지 통틀어서 나를 울린 건 고사하고 감동시킨 작품이 단 한 작품이라도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 다시 그 작품을 읽어본들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가보기는커녕 이름도 모르는 남의 나라 산에서 물줄기가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으로 떨어지거나 말거나(이백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얄리얄리 얄량셩을 외치던 그 누군가가 청산에서 살거나 말거나(<청산별곡(靑山別曲)>), 규방의 친구들이 설령 일곱에서 여섯이 아니라 다섯으로 줄었다 해도(<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솔직히 내가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image4.jpeg

책 <생쥐와 인간>

 

하지만 국제학교의 영어 수업 시간에는 목숨을 버릴 정도로 절절한 사랑(<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인 남편(<오셀로>), 왕위를 찬탈했다가 몰락하는 폭군(<맥베스>)의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한다. 때론 인종차별에 의연하게 저항하는 애티커스 변호사(<앵무새 죽이기>), 처절한 가난과 싸운 조드 가문 사람들(<분노의 포도>), 강제수용소에 갇힌 죄수(<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짜잔'하고 수업 시간에 등장해서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어이.. 학생.. 만약에 자네가 나의 상황이면 자네는 어떻게 할 거야?"

 

학생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여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때로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때로는 주인공에 맞서는 입장에서 머리 터지게 고민해야 한다. 살인을 살인으로 복수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햄릿>), 주인공인 에스페로를 향한 칼리반의 섬뜩한 분노가 과연 비난받을 만한 것인지(<템페스트>), 샤일록은 과연 정당한 재판을 받은 것인지(<베니스의 상인>), 소라고둥은 야만의 사회에서 결국 무력한 것은 아닌지(<파리대왕>), 데이지의 우유부단한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위대한 갯츠비>) 등등… 이쯤 되면 줄거리랑 작가 이름 외우고 사지선다형 문제만 달달 풀던 한국 학생들은 패닉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

 

4. 너의 생각을 말해 봐

 

학년이 올라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11학년 때 첫째 아이는 <맥베스>를 다시 배웠다. 프랑스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줄거리를 다 까먹었다며 투덜거리더니 수업 시간에 영화로 재해석한 <맥베스>를 보면서는 다시 흥미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맥베스>를 현대의 콘텍스트에 맞게 재해석한 7분짜리 연설문을 작성해서 동료 학생 앞에서 발표하는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전제 군주제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이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 현대 시대에도 유사한 독재자는 없었는지, 군부 독재로 인해 미얀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러한 독재체제를 예방하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이런 걸 혼자서 조사해서 영어로 연설문을 조리 있게 써야 한다.

 

고생하는 첫째 아이가 안쓰러워 이러저러한 아이디어로 조금씩 도와줬다. 결국 며칠 동안 낑낑대며 고생하던 녀석은 삼권분립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는, 어찌 보면 뻔하지만 나름 스스로 고심해서 도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설문을 쓰고, 다듬고, 다시 지우고, 고쳐쓰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실제 연설할 때 막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자기가 쓴 7분짜리 영어 연설문을 통째로 외워야 하는 것은 마지막 화룡점정!

 

이쯤 되면 이건 영어 수업이 아니다. 거의 정치철학 수업이다.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묻고 답하는 철학 담론의 수준이 된다.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니 우리 세대가 했던 것은 그저 열심히 암기하는 것이었다. '나랏말쌈이 듕귁에 달아…'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당시 국어 선생님들에게 어찌나 지청구를 받으며 달달 외웠던지 지금도 기억나는 그 많은 구절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수업에서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답했었나?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토론했었나?

 

이 글을 쓰는 내내 '내가 너무 서양숭배나 사대주의 사상에 빠진 건 아닌가? 우리의 국어 시간에도 무엇인가 인생과 사회에 대해 배운 게 있지 않았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수업은 몰라도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수많은 '기능적 지식'을 묻고 답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답하지는 않았다. 그랬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관해 묻지 않았으며,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지 않았으며, 우리의 미래가 어때야만 하는지를 그려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저 객관식 문제로 주어진 보기 중에서 맞는 답을 찾기에 급급했었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교 수업 시간에 커다란 벽을 마주한다. 그 벽은 학생들에게 묻는다. 때로는 셰익스피어의 우렁찬 목소리로, 때로는 하퍼 리(Harper Lee)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때로는 캐롤 앤 더피(Carol Ann Duffy)의 서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너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해 봐."

 

<계속>

 


 

추신

 

저와 제 자녀들이 경험한 프랑스 학교와 미국 학교의 교육방식, 교육 철학, 그리고 그 안에서 허둥지둥 똥볼을 차며 고생했던 토종 한국 학부모의 생생한 고생담+실수담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2014년부터 3년 동안은 테러 사건이 빈번하게 터지던 프랑스 파리에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로 수십만 명이 확진되던 인도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는... 문자 그대로 타이밍 하나는 완벽하게 '꽝'인 해외주재원의 진솔한 삶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k432835625_1.jpg

[나라를 옮겨다니며 일합니다]

<알라딘 구매 링크>

<예스24 구매 링크>

<교보문고 구매 링크>

 

머리말(Prologue)
2020년 1월. 인도의 '이응'자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한국을 떠나자고 조르는 첫째 딸의 고집에 아무 준비도 없이 가족과 함께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네요. 상상을 초월하는 무더위와 미세먼지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정전, 길거리를 활보하는 소와 개와 원숭이, 게다가 끔찍한 코로나 사태까지!!! 
 

되돌아보니 직장 생활 20여 년 동안 각종 위기 상황의 한복판을 귀신같이 찾아가는 '신박한' 능력을 발휘해 왔는데,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 능력이 발휘되었나 봅니다. 한국에서는 IMF 사태(1998년)와 리먼 브러더스 사태(2008년)의 칼끝을 간신히 피하고, 2014년부터 3년 동안은 무려 3번의 끔찍한 테러 사태가 연달아 벌어진 프랑스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는데... 그런데, 인도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코로나 사태 때문입니다.

 

이 책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꿀 빠는'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던 제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인도에 아내와 사춘기 두 딸과 함께 부임하며 겪은 일을 담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작된 무시무시한 코로나 사태...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가족들 건강도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겪은 경험과 인도에서의 경험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비교해 가면서 차분하게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제 자신에게 묻고 대답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한 달짜리 인도 배낭여행만 하고 나서도 이 세상 모든 철학을 깨우친 듯한 명문장을 휘리릭 써내시던데... 회사에 들어가 20년 넘게 워드보다 엑셀을 더 많이 들여다본 저에게는 그런 글솜씨는 없습니다. 하지만, '글쟁이' 아빠가 아닌 '생활인' 아빠의 입장에서 '여행지로서의 인도'가 아닌 '생활의 터전으로서의 인도'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담백하게 기록했습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저희 가족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첫 페이지를 한번 넘겨보세요. 3개의 나라를 넘나드는 저희 가족의 생생한 고생담을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