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조합원이 되고 맞이하는 세 번째 노동절이었다. 안산과 수원 집회 대신 모두 서울로 결집하라는 지도부의 방침이 전달되었다. 딸아이가 밤새 안고 있던 젖병을 씻어서 소독기에 넣고, 마나님과 장모님의 아침 식사까지 준비한 뒤 서울로 출발했다.
집결 장소에 도착해서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첫 번째 건설 현장에서 만났던 동료들이 보였다. 올해 들어 현장 일자리 상황이 워낙 엉망인 터라(왜 그런지는 SamuelSeong님의 다음 기사를 참고하자 - 윤석열 정권, 현장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윤석열, 김진태, 원희룡이 바꾼 건축 현장(링크)) 집회를 마치고 지인들과 서로 위로하며 술 한잔을 걸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춘천지법 강릉지원 조합원 한 분이 몸에 불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이름은 양회동 열사.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함께 집회에 참석한 같은 팀 형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에 분신한 동지, 내가 아는 분인 것 같아."

지난 5월 31일, 양회동 열사의 분향소를 철거하는 경찰
출처 -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 건설노조는 조합원 가족들의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아, 형제, 부자, 남매가 같이 일하곤 한다. 조합원 구력이 되는 분들의 인적 네트워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강원지부 조합원이 지인이라는 사실은 딱히 신기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집회 당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깡패 조폭 집단"과 "공갈 협박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사회에서 일반적인 것이 하나 있다. 그들 사이는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건설사 현장 소장과 노조 지부장이 같은 학교 선후배거나 한두 다리 건너 친구인 지역 커뮤니티에서, 그다지 서로 무리한 일은 벌이지 않는다.
위와 같은 지역 사회 특징에도 불구하고, 양회동 열사는 건설사들로부터 조합원 채용 요구, 전임비 등의 이유로 '공갈 협박'의 죄목을 얻게 되었다. 이 상황이 그에게 어떤 고통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됐을 즈음, 난 양회동 열사의 유서를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양회동 열사의 유서 일부
출처 - <오마이뉴스>
수십 년 전, 경찰과 검찰은 민주화 운동가를 잡아넣을 때도 '잡범' 취급했다. 국회의원직에 출마한 일부 586세대의 범죄 기록이 "도로교통법 위반" 등인 이유가 바로 이들을 잡범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 노동 전국 건설노조 조합원임을 자랑으로 여겼던 양회동 열사. 어느 날 노조 조합원을 "조폭 집단 조직원"으로, 양회동 열사 당신을 "공갈 협박범"으로 낙인찍은 정부의 폭력성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과 검찰의 횡포는 작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이후 더욱 심해졌다. 부울경 건설지부 간부의 구속영장 사유엔 "커져 버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울경건설지부의 위세를 잠재우고 견제하기 위해"라는 문장이 기재되었다. 지난 5월,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의 압수수색 영장엔 "단체 협약 시 피해자들에게 협박 또는 해악 등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을 시 위와 같이 행동을 통해 이후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에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되고"라는 문구가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건설회사들이 양회동 지부장에게 써 준 탄원서를 두고 "노조의 강요"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정부와 언론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생계를 위해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아래는 경찰이 피해자로 지목했던 건설 업체들이 제출한 '처벌 불원서' 내용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소속 조합원을 고용했는데 이는 건설 현장 관행상 일일이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팀' 또는 '반'으로 고용해 온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 현장에서 별다른 마찰 없이 교섭을 통해 인력 수급에 대해 논의했고, 현장 공사를 원만하게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인력 투입 협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집회를 한 사실은 있으나 그로 인해 겁을 먹거나 업무에 방해된 사실은 없다."

출처 - <한겨레(링크)>
정부와 언론의 노조 '악마화'
![[속보] 윤 _민노총 집회, 국민 용납 어려워…불법행위 방치 않겠다_ _ SBS 0-50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732/728/773/ab284d40e533686501aa7f607d93a9c0.png)
출처 - <SBS>
윤석열 정부에서 연초 내내 주장했던 것이 있다.
"회계 보고도 하지 않으면서 '양대 노총'이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명박 집권 이후로 해당 지원금을 받은 적이 없다. 정부 프로그램에 개별 단위가 참여한 적은 있지만, 그 경우 영수증 처리가 까다롭기 때문에 회계사가 붙어서 업무를 봐야 한다. 위 내용을 YTN 등 기성 언론들은 여과 없이 받아 썼다.

출처 - <서울신문>
또한 조폭 경력이 있는 조합원의 이야기는 민주노총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회계 부정으로 한국 노총에서도 쫓겨난 집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경찰은 관계없는 노조를 끼워 넣어, 처음부터 끝까지 ‘양대 노총’이라는 단어로 일관했다.

출처 - <조선일보>
양회동 열사의 유서를 '대필'이라고 기사를 뿌린 월간 조선은 이 막장 드라마의 조연일 뿐이었다. 조선일보는 조합원의 자살 방조를 주장했다. 조합원들이 양희동 지부장의 자살을 이용하고자 했다며 노조 악마화를 시도한 것이다.
![_분신 방조_ 기사에 원희룡 '맞장구'.._인간의 선을 넘은 보도_ 분노 [뉴스.zip_MBC뉴스] 0-28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732/728/773/0bdb82d749726ff40dd4f51903965cd1.png)
출처 - <MBC>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받아 돌림 했다. 그는 이전에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금지하는 작업을 작업자가 거부하면 '태업'으로 타워 기사들의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그것을 "법치 확립"이라고 표현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_분신 방조_ 기사에 원희룡 '맞장구'.._인간의 선을 넘은 보도_ 분노 [뉴스.zip_MBC뉴스] 4-27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732/728/773/ff9b3c45730270657bcbc0702fddd7cd.png)
출처 - <MBC>
조합원들은 이런 오욕을 감내하며 현장에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조합원 중 2만 5천 명이 지난 5월16일, 서울 시내에 모여 1박 2일간 집회를 한 것이다. 이틀 치 일당을 포기한(이건 우리같은 이들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조합원들이 그곳에 모였다.
하지만 집회 이후, 언론의 보도는 대부분 이랬다.

출처 - <채널A>
부족해도 노조는 필요하다

출처 - <YTN>
우리 조합원들은 대체로 연령대가 높다. 성질 급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에 서툰 사람이 많다. 교육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다. 사회 밑바닥부터 구르다가 이 업계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보니, 대화와 설득에서 논리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목줄을 쥐고 있는 조합 상근자에게 시시덕대다가 철퇴 맞는 사람, 팀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작업 속도를 높여 회사로부터 돈 받아먹는 팀장, 자신이 사인하고 있는 서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펜을 드는 반장, 위험성 평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작업을 당당하게 지시하는 반장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건설 현장에는 공적 신뢰나 사회적 연대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노동자라고 모두 한마음 한뜻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본인의 기술 숙련도를 프라이드로 생각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였다.
노조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 건설노조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물론 어디나 그렇듯 몇몇 구성원들이 난데없이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마음에 빚이 있다. 조합원 수가 100명이 채 되지 않던 시절, 노조를 만들겠다고 뛰어다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대학 후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다정하게 잘 챙겨주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쓰이던 친구였다. 후배가 어떤 일을 하고자 했는지 알고 나서, 나 또한 그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쪽의 지리멸렬함을 경계했던 어느 선배가 현 정부에서 한 자리 맡아 근로조건 개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얻어 터지더라도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분명하다.

출처 - <MBC>
양회동 열사의 분신 이후, 난 집회에 나갈 때 흰 상의를 챙겨 입는다. 혹시나 맞아서 색이 번지면 상처가 난 걸 확인할 수 있으니 흰 상의를 골라 입었고, 그 외에는 별로 걱정되는 게 없었다. 최근에 캡사이신을 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땐, 덜컥 겁이 나긴 했다. 그걸 맞으면 며칠 동안 갓 백일 지난 예쁜 딸아이를 끌어안을 수 없으니까.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세희 선생님의 말씀을 오늘도, 마음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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