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북한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북한산 백운대에 다녀왔다. 군 생활을 하던 자대가 북한산 자락에 있었기에, 내가 북한산에 또 갈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왜 그런 말 한 번쯤은 다들 하지 않나. 

 

"야 인마, 굴러다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싸는 거 아냐!"

 

제대하던 날, 분명히 그렇게 외치며 부대를 나서긴 했다.

 

그런데 웬걸. 북한산 국립공원에 가는 길, 그때의 기억은 아름다운 청춘의 한 조각으로 탈바꿈한 듯했다. 신병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먹을 욕을 한꺼번에 꾸역꾸역 먹으며 건넜던 필승교인지 승리교인지 하는 부대의 정문을 지나면서도,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에 겪은 세상의 풍파가 너무나 강렬해서였을까? 오히려 희미해진 20대 시절의 일화를

 

"크... 그때 내가 사십킬로짜리 군장을 메고 이 산길을 거침없이 올랐지."

  

그럴듯한 무용담으로 포장해 아내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32312312.JPG

노약자와 임산부에게는 위험한 사진...! 

허나 강한 남자인 나에겐... 

내가 엉!?! 왕년에 엉?!

저기를 아주 그냥 날다람쥐처럼 엉?!

 

한 사오 년 전쯤부터 북한산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망가진 몸뚱아리를 어떻게든 회복해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한참 천식으로 고생하던 때, 

 

'숨을 헉헉대지 않고 30분 만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공기 좋은 산길부터 걸어 보기로 했다. 그 덕분인지, 현대 의학 덕분인지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쉬엄쉬엄 걸을 수 있을 만큼(참고로 저의 몸상태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해 주세요>>50대 아저씨의 노화 견문록: 비염, 통풍, 천식, 고혈압-링크), 친구들 따라 산에도 가끔 갈 수 있을 만큼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아내에게 남자로 인정받을 때가 왔다...!  

 

집을 나서면서도 처음엔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백운대라니, 거기가 어디라고..?!'

 

백운대는 흰구름이 허리를 두른다는, 북한산의 최고봉 아닌가?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저 산기슭까지 등산로를 좀 오르다가 아내가 힘들어하면 못 이기는 체, 아쉬운 티를 흘리며 돌아내려 올 심산이었다. 

 

gsgsdgsd.JPG

참고로 백운대는 이런 모습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미쳤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그냥 죄송합니다.

 

현관문 앞에서 내 뒤를 따라나서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당신 팔다리가 거미... 아니, 가늘어진 것 같아요."

 

갑자기 치고 들어온 아내의 공격. 그리고 그녀는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법도 알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여전히 굵지만… 예전의 당신에 비하면 그렇다구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왕년에 한 허벅지 했던 나의 자긍심은 쟁기에 갈려 나간 밭고랑처럼 무참히 스크래치가 나고 말았다. 거기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IMG_1259.jpg

산길에서 만난

나를 비웃는 것만 같은 검은 고양이 자식.

한눈에 봐도 체력은 저쪽이 위라 사진을 찍곤 눈을 깔았다.

 

나도 왕년에는...!

 

모처럼 화창한 날을 맞아, 많은 사람이 북한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커플도 있었고, 대학생인 듯한 이십 대 무리도 보였다. 놀랍게도...!! 슬리퍼를 신고, 산을 오르는 어린 학생도 있었다. 학교나 독서실에서 신는 삼선 슬리퍼를 끌고 온 것을 보고 '쉬는 시간에 학교 땡땡이를 치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경쾌한 얼굴로 늦은 봄,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로에서 잠시 앉았다가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릴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조금만 앉아 쉴까? 나는 뭐 하나도 힘들지 않지만...(헤엑... 헤엑... 죽을 것 같아...!)"

 

비가 온 다음 날이라 날씨는 화창 했지만, 습도가 높아 땀 범벅이었다. 

 

"흐어, 그래요. 물 좀 마시고 가요. 탈수증 걸리겠어요!"

 

무더운 날씨에 숨도 차고, “이제 그만 내려갈래?” 물어보려고 했다. 

 

바로 그때, 건너편에서 한 아저씨가 다가오고 있었다. 타이밍과 행색을 보아하니 벌써 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인 것 같았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아내가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면 되나요?"

 

아내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면 될 거'라는 격려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아저씨, 우리를 보고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등산객1: "아이고, 아직 오 분의 일도 안 왔어요. 한참 더 가셔야 하는데, 벌써 쉬면 어떻게 해요. 점점 가팔라지는데...그짝 아저씨도 힘들어 보여서 우째?"

 

그 한마디가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힘들어 보여? 내가?!?! 이 내가?!?! 철의 남자, 풍.뎅.이.가?!?!'

 

오기가 생겨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아저씨가 사람보는 눈이 없구나... 강철부대가 와도 나, 왕털풍뎅이 한 명을 이길까 말까, 이거늘...'

 

특급 자극을 받은 난, 아내에게 돌아가자고 말할 수 없었다. 때마침 모래주머니를 찬 청년까지...(하필 그 타이밍에...) 내 옆을 빠르게 지나쳐 산길을 뛰어올랐다. 질 수 없다. 여기서 지면 인생에서 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헤엑... 헤엑...)우리도 슬슬 일어날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갈림길에서 봤던 표지판이 떠올랐다. 까짓거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평소에도 산책 한 번 하면 무려 3~4km쯤은 걸어 다녔던 철의 체력이 바로 나 아닌가. 1km도 아니고 2km도 아니고, 3km까지 걸을 수 있는 남자란 말이다...! 여태까지 못 해도 반 이상은 왔을 텐데, 그렇다면 1.4km 정도만 더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떡이며 이를 악물었다(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늦은 봄의 햇살은 한여름의 그것만큼 강렬했다. 목덜미에 열이 오르는 느낌에 모자를 꺼내 써야만 할 것 같았지만, 마농의 샘 마냥 끊임없이 샘솟는 땀으로 축축해진 머리에 도무지 모자까지 덮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햇살에 데워진 미지근한 공기에 촉촉한 흙냄새가 배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자꾸만 몸을 무겁게 했다. 산길은 점점 가팔라져서 이제는 네발로 기다시피, 수직 절벽을 올랐다(정확히 하면 뭐, 그런 기분이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허벅지가 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2.8km 중 얼마나 왔을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쉴 새 없이 계산했다. 

 

한 걸음이 80센치미터, 아니, 백번 양보해서 60센치라 치고 2.8km, 즉 2,800미터를 60센치 보폭으로 나누면 4,600걸음만 걸으면 되었다. 산길이라도, 이론상으로는 만 보의 반도 안 되는 걸음만 걸으면 백운대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홍길 대장의 마음으로 한발, 한발, 포기하지 않고 올라갔다. 그런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예상했던 걸음의 두 배는 족히 걸은 것 같은데, 정상은커녕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다는 표지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의 무게 

 

처음 북한산을 찾았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추리닝과 운동화 차림이었다. 대서문에 도착했을 때,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서문은 등산로의 아주 초입에 있다) 등산객 아저씨들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향했다.

 

등산객2: "요즘은 부모 따라 등산하는 애들이 없던데. 녀석들, 참 잘 걷네~! 어디까지 가려구?"

 

글타. 우리들은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물론 이중에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 "백운대까지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등산객2: "에헤이~ 거긴 애들 데리고 위험해서 안 돼~"

 

werwerwe.JPG

북한산 대서문의 모습. 

딱 봐도 강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게 생겼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때는 백운대가 인왕산 정상쯤 되는 줄로만 알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거라 자신 있게 말하다 어르신께 혼쭐났다.

 

등산객2: "북한산은 바위산이라 올라갈수록 미끄러워. 애들 데리고 갈라면 등산화 꼭 챙겨 신어!"

 

괜히 겁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산 경험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의 이야기는 일리가 있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혹시나 일반 운동화를 신고 북한산을 오르던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 그날은 그냥 북한산 둘레길을 도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절대 내가 힘들어서 포기한 게 아니다. 아빠의 책임감, 가족의 안전, 인류의 평화, 뭐 그런 것 땜에 돌아온 게다. 이런 게 가장의 무게다. 

 

집으로 돌아와, 그 길로 나는 등산화를 쇼핑리스트에 적었고, 난생처음으로 등산화를 장만했다. 새 등산화를 신고 조만간 백운대까지 올라가자고 아내와 굳게 약속했다.  

 

미지근한 생수와 눅눅한 캐러멜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등산화를 샀지만, 이번에도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등산화를 사고 나서 산을 찾은 것은 두어 달에 한 번. 그것도 겨울이면 쉬었으니, 산이라는 곳은 갈 때마다 힘들고 다녀오면 팔다리가 쑤시는, 그래서 마음먹기 쉽지 않은 숙제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모처럼 산에 갈 때면 무리하지 말자고 몸을 사리고, 중간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중도 하산하면 아쉬운 마음에 다음 번엔 꼭 정상까지 가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길 몇 번, 이번엔 느낌이 왔다. 왜 살면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될 것 같은 날. 그 어떤 험난한 여정도 모조리 이겨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날.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느낌이, 왔다. 

 

집을 나설 때 살살 산책이나 하겠거니 하는 생각에 준비를 부실하게 한 것이 후회될 뿐이었다. 챙긴 건 김밥 두 줄, 땀 닦을 수건, 캐러멜 몇 알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가방이 무거워질까 봐 물을 한 병만 챙겼다. 뜨거운 봄 햇살에 목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할 때 안일하게 준비했던 몇 시간 전의 나를 원망했다.

 

'이런 젠장, 넉넉히 챙겼어야지!'

 

당이 떨어졌지만, 주머니에 든 눅눅한 캐러멜만은 피하고 싶었다. 더워서 뭔가를 입에 넣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가방을 뒤져보니 마실 것이라곤 햇볕에 미지근해진, 절반 남은 물병뿐이었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했지만, 미지근한 물도 감지덕지다. 먼저 한 모금, 조심스레 쪼르륵 부어 입속에 머금었다. 

 

물 한 모금으로 간신히 입 안을 적셨다. 더 마시면 안될 것 같았다. 지금 이 물은 금보다 더 귀한 그야말로 천금만금의 물...! 아내에게 물병을 건넸다. 아내도 얼마 남지 않은 물의 소중함을 계산한 모양인지 한 모금만 마시고 나에게 다시 물병을 건넸다. 너무 적게 마셨으니 좀 더 하란 표정이다. 

 

나: "(감동...)난 실컷 마셨어. 자기, 더 마셔(크으... 힘들어 죽겠는데도 아내를 배려하는 나란 남자...! 이거쉬 상남...!)"

 

아내: 벌컥 벌컥... 

 

나: ...?!?!?!?

 

60b5da4b8e43175c047332bf10487818.jpg

당시 나의 마음 속.

 

갑자기 아내가 남은 물을 전부 마셔버렸다... 

 

아내의 돌발 행동에 잠깐 퓨즈가 나갔지만 이내, 애국가도 부르고, 금강경도 외우고, 코란도 읽고, 성경도 다시 읽는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래, 나는 상남자. 곧 정상을 정복할 상남자... 물이 없어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중에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아내는 내가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니, 짐이 될까 봐 억지로 물을 다 마셔버렸다고 한다...)  

 

정상에 선 남자 

 

IMG_1261.JPG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 본 서울 도심의 모습. 

자가 주택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정상을 향했다. 덥고 힘들 텐데 아내도 묵묵히 잘 따라와 주었다(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내가 나를 앞서 걸었다). 정상과 가까워지니 바위에는 등산객의 등반과 안전을 위한 사다리와 로프 등이 나타났다. 암벽 등반하는 심정으로 로프를 잡고 한발씩 올라갔다. 

 

백운대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날아가는 새의 등허리였다. 까마귀로 추정되는 까만 새가 구름 위를 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 발 한참 아래에서 보였다. 건너편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 봉우리에선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33893_65956_1002.jpg

독립운동가 정재용이 백운대에 새긴<3.1운동 암각문>

 

백운대의 꼭대기에는 독립운동가 정재용(1886~1976, 건국훈장 서훈) 선생이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새겼다는 <3.1운동 암각문>이, 그 위로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 태극기는 북한산에 게양된 유일한 태극기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대 내리지 않는 '영원히 펄럭이는 태극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긴 줄을 서 있었다.

 

백운대 등반에 성공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거나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그들의 작은 성공을 자축하고 있었다. 나도 아내와 바위에 앉아 땀을 닦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북한산에 발을 딛은 이래 처음 백운대 등반에 성공한 우리를 대견해하며… 

 

"생애 처음으로 북한산 정상 등반에 성공했네! 여보, 수고 많았어...!"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여 주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 인생에서 못할 것이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여유를 만끽하고 나니 저 멀리 도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시계가 좋았는지 잠실에 높이 솟은 롯데타워까지, 그리고 그 너머 하남까지도 볼 수 있었다. 커다랗고 복잡한 도시와 떨어져 구름과 더 가까운 그곳, 백운대 위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그사이에 티끌같이 작은 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도시에 두고 온 복잡한 문제도 대자연 속에서 그저 작은 티끌로 느껴질 뿐이었다. 자연에 압도되었기 때문일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숙연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감상에 푹 빠져있을 무렵, 아내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내: "올라오는 거야 어찌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게 걱정이네요... 근데."

 

나: "응?"

 

아내: "나 탱크 소년이 먹고 싶어요."

 

탱크보이4.jpg

우리 아내 변태, 아니, 쇼타콘 아니다.

탱크 보이를 우리말로 쵸콤 순화한 버전이니 오해말도록!

 

물이 간절하던 차에 그 말을 들으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상에 올라 목마른 것도 잊은 채 산바람을 냅다 마시고 있었다. 편의점 아이스크림 칸에서 차디찬 탱크 소년을 꺼내 꼭지를 따고 달콤한 얼음을 한입 가득 빨아 꿀꺽 삼키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캐러멜도 있고 김밥도 두 줄이나 있었지만, 탱크 소년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려가는 건 금방일 거야. 우리 얼른 내려가서 탱크 소년 사 먹자...!"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는 아내에게, 난 탱크 소년을 약속했다. 아내가 빙긋 웃었다. 

 

이것은 또다른 도전... 

 

IMG_1248.JPG

아... 이걸 보니 다시 후회가 밀려오...  

디아블로처럼 포탈 열어주면 안 되나...

 

입이 방정이다. 왜 내려가는 길이 올라가는 길보다 쉽다고 입방정을 떨었을까?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두 배는 길게 느껴졌다.

 

이때 나는 다리가 이미 풀려 있었다. 열 걸음에 한 번씩 발이 미끄러졌다. 돌부리며 나무뿌리가 자꾸만 걸리는 바람에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지만, 과연 사나이는 사나이, 동물적인 균형감각으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맨 마지막, 발목에 힘이 빠져서 아내 옆에 주저앉기 전까지는. 

 

내가 휘청거릴 때마다 놀라기를 거듭했던 아내는 그렇게 내가 쓰러진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듯 내 이름 석 자를 외쳤다. 

 

"풍. 뎅. 이!"

 

지금까지의 대화에서도 눈치챘겠지만 아내는 평생, 한 번도 반말은커녕, 나에게 큰소리 한 번 친 적이 없다. 헌데 그런 아내가, 마치 말썽꾸러기 학생에게 폭발하는 담임 선생님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호통을 친 것이다. 그렇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극한 상황이 아내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야수를 깨운 것이다. 두려웠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다리가 풀린 채로 야수를 잠재울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 ... 우리, 얼른 내려가서 탱크 소년 두 개 먹읍시다."

 

삶은 끊임없는 기브 앤 테이크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야수는 보드라운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발톱을 거두었다(기억하자. 탱크 소년 두 개는 언제나 한 개보다 좋다).

 

그렇게 탱크 소년 두개로 기분이 좋아진 아내와 나는 꽤 많은 쉰 소리를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다음부터는 주차장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주차해야겠다거나, 집에 도착하면 꼭 앉아서 샤워하겠다는 둥. 주로 다리 아프고 목마르고 힘들다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은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또 힘이 되어 주었다.

 

인생은 탱크 소년만큼 아름답다 

 

IMG_1277.JPG

소년이여, 야망... 아니, 차가워져라!!

 

하산 길이 얼마나 멀고 힘들었던지, 우리는 대략 10~20분마다 앉았다 쉬기를 반복하며 탱크 소년을 떠올렸다. 수많은 등산객이 우리를 앞질러 갔고, 벌써 해가 넘어가는 산길엔 우리 부부만 남았다.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려 하니 아직 파란 하늘 위에 성미 급한 달님이 허연 얼굴을 내밀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이른 달이었다. 그즈음 우리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초저녁이 되어 불 켜진 편의점으로 달려가(마음은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리를 질질 끌었다...) 탱크 소년을 여섯 개나 사서 나왔다. 각각 세 개인 셈이다(기억하자. 탱크 소년 세 개는 언제나 두 개보다 좋다). 

 

등산로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 깊숙이 주차된 차에 올라탄 우리는 탱크 소년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내: "오..."

 

나: "피로가 싹 가시는데?"

 

그 순간 우리에게 천국이 왔다. 넘쳐나는 나쁜 뉴스, 더 받을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은 각박한 요즘 세상, 여러분도 북한산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떠실지.

 

운이 좋다면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거리 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를 일이다.

 

뭐, 나는 그랬다.

 

 

 

자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