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여름날. 근병은 꿈을 꾸었다.
까칠한 미식가의 차를 타고,
역사 속 항소이유서 저자가 말아주는 소맥을 마시다가,
7 짜 참돔을 잡는 꿈을.
죽돌 :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근병 : 아닙니다.
죽돌 : 슬픈 꿈을 꾸었느냐?
근병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죽돌 :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근병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근병 :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죽돌은 근병의 어깨에 지긋이 손을 얹으며 말했다.
죽돌 :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조행기 기사 써.
근병 : 넹.
바닷바람
생방송을 마친 어느 금요일 아침,
다음 주 아이템 회의 중이던 팀 금요미식회.
황쌤 : 요즘 노량진에 뭐가 많이 나와 있지?
근병 : 소라, 갑오징어 이런 게 물이 좋더라구요.
황쌤 : 맞아 그럴 때가 되었네. 그나저나 김 기자는 낚시는 좀 하나?
근병 : 잘하지는 못하구요. 따라다니면서 회 떠먹고 노는 거 좋아합니다.
황쌤 : 맞아 ㅎㅎ 낚시가 그런 재미지. 가만, 그러고 보니...
근병 : ???
황쌤 : 마침 우리 낚시회에서 참돔 출조 날짜 잡고 있는데, 김 기자도 같이 갈까?
근병 : 아유 너무 좋죠 쌤. 칼이랑 도마 들고 따라가겠습니다 ㅎㅎ
황쌤 : 좋아 좋아. 날짜 잡아보자구.
키야 이게 얼마 만에 쐬는 바닷바람인가.
성공한 덕후
소풍날 받아 놓은 초딩 마냥 가슴 콩닥콩닥하며 기다려 온 그날.
황송하게도 황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충청남도 보령으로 향한다.
날씨 죽임.
이윽고 진입한 오천항.
수요미식가의 알쓸신잡을 조수석 1열에서 감상하며
목적지인 민박집 도착.
민박집에 딸린 낚시방에서 접선한 선발대.
선발대 멤버는 무려,
낚시왕 유시민 작가님,
대한민국 1타 낚시 방송 연출가, 강 감독님. ㄷㄷㄷ
이건 뭐랄까... 동네 농구하러 갔는데 김승현이랑 서장훈이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든가, 당구장에 들어서니 쿠드롱이랑 브롬달이 초크칠하고 있었다는 도시 전설과 맞먹는 그런 라인업. 낚시 쪼렙인 근병의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으로 쪼개진다.
내가 이분들이랑
1박2일 낚싯배에 타다니.
엄마 나 출세한 듯.
유시민 낚시 아카데미 개강
낚싯배 선장님의 채비 운용 및 포인트 브리핑이 끝나고,
민박...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급진 호텔급 숙소 입소.
이어지는 황쌤의 썬블럭 나눔 행사와
유시민 직강, <바늘 매듭,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분의 열띤 낚시 토론을 듣고 있으니,
뭔가 티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증강현실인가... 아무리 봐도 현실감이 안 느껴짐.
보령 풀코스
"자 이제 저녁 드시러 가시게요~"
선장님의 식사벨로 겨우 일단락된 낚시 알쓸신잡.
고요하고 평화로운 보령 바다. 여수 못지않은 미항인듯.
바삭바삭 내리쬐는 오후 볕을 즐기며 천천히 식사 장소로 이동.
오 치맥인가.
는 훼이크.
선장님과 마을 청년회 분들께서 준비해 주신 저녁은,
보령 해산물 총출동 한상차림.
방금 배에서 갓 잡아 올린 참돔회.
국내 최초 노량진 출입 기자로 회 좀 씹어 본 근병이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대물 참돔의 쫀쫀한 육질과 활어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기름 맛이 가히 압도적.
7짜 대그빡의 위용. 통째로 구운 참돔 머릿속에서 나온 뽈살과 턱살의 씹힘이 이전에 먹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바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적의 컨디션이 그대로 느껴지는 탱탱한 저항감.
유 작가님 특제 소맥으로 목을 축이고,
메인 요리인 키조개 관자 두루치기로 향하던 찰나,
눈을 잡아끄는 밑반찬.
호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본 녀석인데.
근육병아리의 어쩌다 뉴스공장 : 썸타는 관자와 양파 편(링크)
키조개의 부속살들로
간장조림을 하신 듯. 짭짤하고 꼬독꼬독한게 식감 미침. 이거 한 접시만 있으면 맥주 댓 병은 순식간.
잠수로 직접 잡아 얼려두셨다는 해삼 내장.
일식집에서 쬐끔씩 맛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호쾌한 덩어리로 왕창 먹어보는 건 또 처음.
짭짤하고 알싸한 내장맛이 참돔회를 휘감고 입안에 터프하게 쳐들어온다. 좀 씹다 보면 어느덧 해삼 내장은 빠져나가고 고소하게 남은 참돔회의 여운. 치고 빠지는 완벽한 소스의 역할을 해냄. 사진을 보며 먹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 울고 싶어지는 맛이다.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보령 오마카세.
살짝 데친 해삼.
해삼을 숙회로 먹으니, 맛이 전혀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간다.
겉면이 살짝 익으면서 해삼의 향과 식감이 확연히 도드라지고, 안쪽은 본연의 쫄깃한 식감을 그대로 간직.
돌아 돌아 드디어 도착한 보령 명물 관자 두루치기.
역시 재료를 수도 없이 다뤄본 현지인들의 기술은 다르다. 이렇게 얇게 썰어 볶아도 관자가 질기지 않고 탱탱 쫄깃.
두루치기 양념도 관자의 맛을 넘어서지 않고 주재료를 받쳐주는 선에서 딱 멈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자리를 옮겨서도 멈출 줄 모르는 전국구 피셔맨들의 낚시 알쓸신잡.
대화가 깊어지는 사이 알맞게 녹은 해삼 내장.
열심히 듣기만 하던 낚린이는 조용히 내장을 밥 위에 긁어모아
비벼본다.
[속보] 근육병아리, 조행기 쓰다 침 흘리며 오열 중.
먹어봤던 맛이 더 무서움.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맛.
마무리는 개조개 미역국.
에이급 미역에서 우러나온 국물은 꼬소하고,
조갯살은 쫠깃쫠깃.
역대급 호사로운 저녁 식사 마무리.
오천항 인근 동네 카페로 자리를 옮긴 일행.
끊이지 않는, 마을 분들의 환대.
카페 사장님을 시작으로,
황교익&유시민 오천항 그랜드 사인회 개최.
유시민 에디션 구명조끼을 득템한 어느 조사님.
힘내서 사인해 주시라고 카페 사장님이 내어주신 보리수 열매. 맛있게 시고 달다.
새벽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콧속에 상큼한 시골 공기를 쑤셔 넣으며 숙소로 이동.
새벽 3시 기상, 4시 출항 일정의 빠듯한 스케줄. 모두 서둘러 잠자리에 들자고 했지만...
낚시에 진심인 슨배님들에겐 그런 거 없었다.
<보령 앞바다 물때에 적합한 흘림낚시 채비 운용>을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으나
뜬눈으로 누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마침내 울리는 기상 알람.
미식 유튜브계 골목상권 파괴자, 채널<황교익 Epi -Life>도 스탠바이.
설레는 분위기가 넘실대는 낚시방.
알고 보니 다른 슨배님들도 설레어서 뜬눈으로 누워계셨다고.
승선 명부 작성 중인 참돔 크루들.
쪼렙도 이 순간만큼은 뭔가 잡을 거 같고 막 설렌다.
오늘 낚시 장르는 참돔 흘림낚시. 저렇게 큰 찌를 바다에 흘려보내 참돔을 유혹한다.
근육병아리의 방구석 오마카세 : 자급자족 특집 - 참돔 사냥 편(링크)
지난 가을에 취재했던 타이라바 낚시는, 참돔이 좋아하는 꼴뚜기나 주꾸미 모양의 봉돌 밑 고무다리에
출처 - 딴지 최첨단 핸드크래프트 일러스트팀
바늘을 숨겨 참돔을 유혹하는 게임이라면,
오늘 해볼 흘림 낚시는, 찌의 부력을 이용해 줄을 수면에 띄워,
출처 - 딴지 최첨단 핸드크래프트 일러스트팀
수심과 조류의 환경에 맞춰서 참돔이 노는 층에
생미끼를 낀 바늘을 내려 참돔을 유혹하는 방식이다. 가짜 미끼로 유혹하는 타이라바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낚시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무튼 낚시 쪼랩은, 선배님들만 믿고
배에 오른다.
고잉 챌린저호.
이웃배 조사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배정받은 배 후미에 짐을 푸는 유시민 낚시 아카데미 회원들.
전문가들의 사전 포지셔닝. 선상 낚시 경험이 많은 유 작가님과 강 감독님이 중간에 서기로.
유튜버에게 중요한 건
화각.
잠 깨라고 선장님이 주신 칡즙.
단숨에 드링킹.
오천항 낚싯배 짬킹, 챌린저호 선장님의 냉장고 포인트(언제든지 꺼내먹을 수 있는 냉장고처럼, 대상 어종이 잘 잡히는 비밀스러운 지점을 의미하는 낚시 은어)로 배가 움직인다.
낚시 아카데미 새벽 재개강.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포인트.
채비를 흘리기 좋은 조류에 배가 올라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배가 알맞게 설 때까지,
막간 조식 타임.
드디어 배가 섰다.
어복만복래
비장하게 흘러나오는 선장님의 선내 방송.
"슬슬 흘려보세요."
예상보다 센 조류에 채비를 흘리느라 애먹는 조사님들,
오전 6시 반, 고요하던 뱃전에 드디어
첫 입질이 들어온다.
주인공은 바로 낚시왕 시티즌 유.
베테랑 다운 리드미컬한 릴링.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얼굴.
첫 수를 시작으로 쏟아지는 입질.
갑자기 겁나 묵직한 게 우드득 물고 내빼는 통에
멘탈 가출.
닉값 못하는 중.
결국 줄 터지기 전에 사무장님이 꺼내주심.
이번엔 배 후미에서 엄청난 바이트.
심상치 않은 휨새에 낚싯줄을 걷고 관전 모드에 들어간 갤러리.
8 짜여 8 짜.
심리적 8 짜로 이날 장원하신 황쌤.
근병 : 쌤 손맛 어떠셨어요?
황쌤 : 죽였지ㅎㅎㅎ
10시 넘어 뚝 끊긴 입질.
수박을 씹으며 출조를 마무리한다.
이세돌 알파고 대국 복기보다 뜨거운 낚시 복기.
심리적 8 짜 1수
7 짜 3수
6 짜 1수
준수한 조과를 올리며 복귀.
정산의 시간.
유 작가님 : 잡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엄청 크네~
유시민 낚시 아카데미 대성공.
보오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근병이 가진 재주라곤 생선 손질밖에 없기에 열심히 장비를 챙겨왔지만,
엄청난 대물 마릿수에, 낚시회 전원이 달라붙어 비늘치고 손질하느라 손질 장면은 누구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고 한다...
밤샘 낚시에 점심도 거르고 대물 손질하느라 지친 낚시 팀. 선장님 픽 보령 칼국수 맛집 방문.
미식가 특제 보리밥.
오천항 명물 비빔국수와
갑오징어 칼국수.
떨어졌던 당이 단숨에 차오른다.
비싼 키조개 관자를 대파마냥 습관적으로 막 넣는 보령의 위엄.
황쌤과 오손도손 금요미식회 아이템 회의를 하며 상경.
근병 : 쌤 갑오징어 홈메이드 반건조는 어떻게 방법이 섰는데, 소스는 도저히 진전이 없네요.
황쌤 : 갑오징어 소스라... 멕시코 쪽으로 가보는 게 어때? 아보카도를 으깨서 레몬즙 넣고 말이지. 그림이 그려지는데?
근병 : 아하 갑오징어 살맛이 좀 묵직한 감이 있으니까! 저번에 했던 조생종 양파도 좀 다져서 넣어볼까요?
황쌤 : 그거 잘 어울리겠네.
황쌤 : 김 기자 낚시는 어땠어?
근병 : 루어만 해보다가 찌낚시 첨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구요 ㅎㅎ
황쌤 : 담에 타이라바도 한번 가자구 ㅎㅎ
근병 : 넵. 칼 빡세게 갈아 오겠습니다 ㅎㅎ
또 다른 조행기
덧
서울 복귀 바로 다음날부터 방송 준비로 분주하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꺼내 보는 참돔.
김치냉장고 안쪽에 잘 박아 두긴 했지만, 3일이나 지나 큰 기대는 없었는데.
회를 썰 때 만져보니 탄력이 아직 잘 유지되어 있다.
참돔은 특히 다른 생선보다 살성이 약하고 잘 풀어져, 오래 숙성하기에 알맞지 않은 어종인데. 그건 1~2kg 잔챙이들의 이야기인가 보다.
몸에 피어오른 기름막 하며, 단맛이 한껏 올라온 속살.
75cm 대물은 3일 숙성을 너끈히 받아내고도 남음이 있다.
숙성지도 안 갈아주고 방치했는데도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탄력.
대물에 예의를 다하는 특별 수제 쌈장을 곁들여,
한 쌈.
크허... 꿈인가 생신가.
낚시에 이어 끊이지 않는 미식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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