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비대칭
많은 경제학 교양서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 '정보 비대칭'이라는 것이 있다. 정보 비대칭이란, 시장 참여자들이 가진 정보의 양과 질이 서로 다를 때 그 불균등한 정보 구조를 말한다.
예컨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만년필을 사고파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만년필 매장에서 정품을 사서 잘 관리한 A는 만년필의 가치를 30만 원 정도로 생각하기에 30만 원 이하로는 팔지 않으려고 하고, 뒷골목 중고 시장에서 사서 험하게 쓰던 B는 10만 원만 줘도 팔려고 한다. 만년필을 사려는 사람은 실물을 볼 수도 없고 흐릿한 사진 몇 장을 근거로 판단해야 하므로 중고 시장의 평균 가격인 20만 원 정도에 사려고 한다. 그러면, 좋은 만년필을 가진 A는 손해 보며 팔기보다는 본인이 계속 쓰거나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좋은 가격에 팔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B의 저질 만년필이 20만 원 정도에 팔리게 된다.
이러한 거래가 반복되면, 결국 좋은 만년필은 중고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고, 중고 시장에는 저질 만년필들만 돌아다니게 된다. 즉,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면 시장에서 좋은 물건 대신에 나쁜 물건만 거래되는 '역선택'이 나타난다. 이것이 지속되면 그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의 신뢰를 잃고 결국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시장에서 경쟁하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수 어린이들의 순진한 믿음과 달리, 실제 어른의 사회에서는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역선택이 자주 나타난다. 이 문제는 주로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중개인 또는 기관에서 품질에 대한 보증이나 면허제도 등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물론, 판매자의 평판을 짐작할 수 있는 별점이나 댓글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고질병이 되어버린 재래 언론 시장
출처 - <채널A>
우리 사회에서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시장은, 신문이나 방송 같은 '재래 언론 시장'이다. 언론시장의 주요 상품인 뉴스의 신뢰도가 최하위권에 머무는 것은 이미 수십 년 된 이야기이고, 정치권을 포함한 모두가 수십 년째 언론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래 언론 시장에도 가끔 양질의 뉴스가 나오곤 했지만, 베껴 쓰고 받아쓰는 저질 기사에 비해 생산 단가가 높은 반면 얻을 수 있는 클릭 수가 적어서인지 이제 양질의 뉴스는 시장에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에 베껴 쓰고 받아쓰는 값싼 쓰레기 기사만 넘쳐나는 저품질 시장이 되어버렸다.
재래 언론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으로서, 뉴스의 품질에 관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방송통신 위원회가 재래 언론의 품질을 관리해 왔지만, 그동안 대부분은 보수언론 출신들이 위원장을 맡았고 역시나 품질은 수십 년째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언론소비자인 내 입장에서는 이 재래 언론 시장은 중개인마저 똑바로 작동하지 않는 이미 실패해 버린 시장이고, 수십 년 동안 이 사회는 많은 자원을 쏟아부으며 개선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앞으로 수십 년 동안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그런 시장이다.
출처 - 대통령실 제공
나는 지금 언론사 직원들이 종이에 적혀 있는 명목상의 권력 말고, 종이에 적혀 있지 않은 진짜 권력에는 단 한마디도 못 하는 등신이라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언론사 직원들이 재벌 귀족에 빌붙어서 부스러기나 감사히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는 하찮고 쓸모없는 인생이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공정한 중개인 역할을 해야 할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아들의 학폭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있는 자를 임명해서, 언론을 검찰의 입맛에 맞게 움직여, 총선에서 이기려는 전략을 세웠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읽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의도는 없다.
단지, 지금 한국의 재래 언론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로는 품질의 개선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한 시장이기 때문에,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다고 해도 예전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키겠다며 노력할 필요도 없는 '민간업체'일 뿐이라는 개인적 느낌을 얘기하는 것뿐이다.
정보 비대칭에 취약한 식품 시장
앞으로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은 식품 분야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출처 - <YTN>
2000년대 초반까지도 숯가루를 섞은 가짜 칡 냉면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에는 군화를 만드는 소가죽으로 설렁탕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식당에서 반찬을 재활용하거나 유통기한 지난 식자재를 사용한 사례도 여러 차례 적발되었다. 식품 관련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관리를 강화했고 이를 통해 식품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품질에 대한 정보 비대칭은 어느 정도 해소되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의 신선도뿐만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사장이나 직원의 태도까지 식당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후쿠시마와 미야기현의 수산물 수입이 금지되자, 그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수산물의 수입이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참고로, 나는 우리가 후쿠시마에서 흘러나올 방사성 물질이 섞인 수산물이나 소금을 먹고 다 죽을 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괴담을 유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그런 의도는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로 그런 현상이 있었고, 우리의 검역이 그것을 적절히 관리했는지, 혹시 그것들이 모두 '일본산'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국내산'으로 둔갑해 유통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주 가능성 낮은 의심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이 시장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이 발생하고 정부에 의해 적절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소비자는 가능한한 소비를 줄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 시장의 참여자가 줄어서 시장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정부의 태도를 보며, 현재 국민의힘 '행정부'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이 후보 시절에 "당장 먹고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없는 사람들이 '부정 식품을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인터뷰한 것이 생각났다.
출처 - <매일경제>
나는 국민의힘이 구성하고 있는 5년짜리 행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식품의 안전성에 해가 될 만한 특정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을 '5년짜리 국민의힘 행정부'가 방치한 결과로, 대한민국의 '상식적 소비자'가 우리의 먹거리가 전반적으로 위험한 물질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며 자녀들의 학교급식을 걱정하거나 외식을 포기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도 있는 그 '부정 식품'이 좀 덜 위험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만 있을 뿐이다.
다음 타겟은 건강보험?
시장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시장은 의도적으로 정보 비대칭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시장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보험, 그중에서도 '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포함된 불특정한 다수를 가입시켜서, 그들이 가진 건강상 위험의 개인적 편차를 상쇄하고 서로 돕도록 하는 것이 기본원리이다. 건강하지 않은 보험 가입자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적은 보험료를 내고 많은 혜택을 받길 원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나갈 일을 줄여야 이익이 나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하고 얌전한 보험 가입자를 골라서 가입시키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험 가입자의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이며, 보험사가 이 정보를 입수하면 그들은 돈 되는 가입자를 가려서 받거나 보험료를 높게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보험사가 건강하고 얌전한 가입자만 골라서 가입시키면, 보험은 앞서 언급한 공적부조 대신에 그냥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장에서는 개인의 의료정보가 비대칭적으로 남아있어야만 보험이 원래의 목적에 따라 작동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가입자를 골라 받을 수 없는 국가가 운영하는 전 국민 건강보험이 독점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윤석열이 '사회보장 서비스 시장화, 산업화 필요'라고 했을 때, 누군가는 '더 시장화할 게 있겠냐?'고 하던데... 난 이 지점에서 바로, 개인의료정보를 민간 보험사와 공유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출처 - <MBC>
물론 개인정보 보호법이니 뭐니 하는 현행법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이 사회에서 치트 키를 쓰며 상위 랭킹에 오른 자들에게 법이란, 그저 가벼운 권고 정도에 불과하지 않은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문만큼은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덧.
혹시라도 중국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고, 중국이 핵폐기물을 바닷물이랑 섞어서 서해에 버릴 테니 그런 줄 알라고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 대한민국 행정부와 재래 언론이 일반적 상식에 맞게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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