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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원>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향년 86세)가 사망했다.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배출한 최장수 총리로, 재임 기간 미디어 재벌, 최고 권력가로서 끝없는 욕망을 내비쳤다. 정계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온갖 비리와 추문에 휘말리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2020년 코로나 창궐 당시 코로나에 걸려 건강 문제를 앓다가, 올 4월에는 그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 백혈병 진단을 받고 두 달 만에 사망했다.

 

한 뇌 과학자는 “사람이 권력과 돈을 갖게 되면 뇌의 상태가 변하게 된다”고 말한다. 권력은 타인의 입장보다는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사람을 공격적으로 변하게 한다. 공감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현시대 권력자들이 자기 배만 불리는 것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쨌든, 말 많고 탈 많았던 전직 총리가 생을 마감했다. 국내외 수많은 지식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뚜기처럼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언론 장악. 상대 정파에 불리한 보도를 일삼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은 탄압했다. 또한 여당의 주장을 마지막에 넣어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주장이 옳고 승기를 잡은 듯한 분위기를 끌어냈다. 

 

그 모습에서 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그의 이름은… 

 

이명박과 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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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명박 페이스북>

 

닮았다.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를 통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미디어를 등에 업고 경제 성장을 끌어낼 인물로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인지도를 쌓고 정치에 뛰어든다. 포퓰리즘과 우경화 정책을 바탕으로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장기 권력 유지를 위해 미디어 통제를 시도했다. 숱한 비리 의혹 속에서 결국 횡령과 뇌물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이명박과 베를루스코니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똑같이 겪었다. 다시 말해, 부패 정치인들이 한다는 대표적인 일들을 대부분 해낸 셈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건, 여전히 그들을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 이유가 뭘까?

 

국가의 언론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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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독재를 하거나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정치 지도자 중 다수는 미디어를 장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시민의 죽음 앞에서 단 한 글자도 보도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어느 기자의 고백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의 눈과 귀를 막아야 했다.

 

과거 냉전 시대엔 더더욱 그랬다. 양극화의 끝을 달리던 시기, 각 진영에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관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산당이 싫어요”로 대표되는 메카시즘의 시작부터, 언론 도청과 감시 등 국가에서 행한 언론 통제의 여운은 여전히 잔존해 있다.

 

냉전이 끝났다. 시대가 변하고, 더 이상 힘으로 찍어 누르는 식의 언론장악은 어려워졌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언론장악이 필요했다. 돈으로 공구리를 치고 법으로 콘크리트를 만든다. 법 전공자답게 베를루스코니 역시 물리적 탄압 대신 돈으로 미디어를 장악하고 법제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텔레비전 네트워크, 신문사, 출판사, 광고 대행사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민을 속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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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미국 최상류층 일부가 오랜 기간 미성년자 성 추문 꼬리표를 달고 다닌 것처럼 베를루스코니도 그랬다. 천하의 죽일 놈이 따로 없지만, 수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미담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특히, 국가 주도적 경제 성장을 탈피하고 미국식 자유주의 성장을 도모함으로써 시장이 열리고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다는 그의 ‘업적’도 남아있다. 이 모든 건, 베를루스코니 형제가 소유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우파 신문 <il Giornale>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해당 언론사는 여전히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정부와 미디어의 윈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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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컷뉴스>

 

우리에겐 미디어법이 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의 미디어(특히 지상파) 방송을 규제했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되면서 방송통신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종국엔 지상파 방송의 10%, 종합편성채널은30%까지 지분 소유가 가능해졌다. 지금의 TV조선이나 채널A와 같은 언론의 방송산업 진출이 가능케 된 계기다. 

 

유시민을 잡기 위해 애먼 사람 데려다가 허위 진술을 종용한 기자와 검사 커넥션을 기억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검사도 미디어도 권력인 마당에 서로 윈-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원 외교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축내면서 망해가는 외국 기업을 사들인 이명박 정부. 이렇게 저렇게 돈을 빼돌린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슈는 이슈를 덮고 지금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수 십년 간 미디어를 통해 줄기차게 ‘선전’한 ‘경제 살린 지도자’ 타이틀은 여전히 건재한다. 마치 새우깡 CM송(손이 가요 손이 가)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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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던 선전의 결과물

 

후계자 양성은 계속된다

 

유죄 판결을 받고 5년간 공직에 발 들일 수 없게 된 베를루스코니는, 상원의원직에서 박탈당한 10년 뒤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 양성에 박차를 가한다. 이전에도 본지를 통해 다룬 적 있지만, 극우 성향이 짙은 멜라니 현 이탈리아 총리가 바로 베를루스코니의 후계자이다. 도대체 어떤 사고를 가졌길래 저런 언행을 일삼을 수 있을까 싶었던 멜라니가 총리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베를루스코니가 가진 미디어의 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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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L MANIFESTO>

 

이탈리아 언론, 마니페스토(il manifesto)가 “왕의 사망, 멜로니 여왕의 세습 예약"이라는 기사 타이틀을 냈다. 지난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의 지지에 힘입어 최초의 여성 총리에 당선된 멜로니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 배경에는 이러한 전후 사정이 있었다.

 

언론은 지금 멜로니를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치켜세우는 중이다. 온갖 비리 혐의에 횡령, 배임에 이어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추악한 짓은 다 한 베를루스코니도 국장을 치를 수 있으니 오죽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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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국감장에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발언

출처 - <KBS>

 

하지만, 이런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쿨’했다고 표현하는 현직 대통령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국민들을 위한다더니 시민들이 가장 분주한 출/퇴근을 통제하고,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용산 청사로 이동한다고 혈세 수천억을 까먹었다. “주택난이다.”, “부동산 문제다.” 하면서, 국민 세금 귀한 줄 모르고 막 갖다 썼다.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허울뿐이라는 방증이다. 

 

베를루스코니와 멜로니의 관계는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전 권력자를 칭송하며, 그가 남긴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는 관계, 바로 한국에선 이명박과 윤석열의 관계가 그렇다. 강력한 본드를 구성해 언론과의 유착을 꾀하고, 그를 둘러싼 의혹은 어디 가고 미담만 떠도는 그런 사회를 언론이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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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원>

 

비슷한 관계가 또 하나 있다. 이명박과 이동관이다. 평생 충성을 바친 대가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우리 같은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나, 그렇게 사람을 잘 쳐 낸다는 이명박이 끝까지 데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무언가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윤석열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될 상황을 맞이했다. 이동관을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히고, 10년 뒤 이명박이 베를루스코니가 한 것처럼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명박보다 베를루스코니가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하다. 뇌물을 받아 횡령과 배임으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받았지만, 감옥은 면했다. 고령임을 핑계 삼아 심신이 미약해서 옥살이할 수 없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이명박의 연기력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수의만 입으면, 절름발이로 변하는 카이저 소제급 연기는 일품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사실, 재임 기간 거짓말할 때마다 헛기침을 연발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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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지지자들과 청계천을 둘러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처 - <공동 취재단>

 

그의 죽음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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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대학 총장, 몬타나리

출처 - <LA NAZIONE>

 

다시 이탈리아 현지 반응을 살펴보자.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시선은 반으로 나뉜다. 레거시 미디어로 통칭하는 이탈리아의 거대 미디어가 베를루스코니의 손아귀 안에 있다. 영향력이 이전처럼 크지는 않지만, 아직 살아 있는 언론사도 존재한다. 이탈리아도 한국처럼 지역 구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중부 지방의 에밀리아 로마냐(볼로냐 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득표가 많은 지역이다. 물론 무솔리니의 고향인 프레다피오가 있는 포를리는 제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모든 지역이 손아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기소될 것을 각오하고 국장 국기 게양을 거부한 시에나 외국인 대학 교장이 있는가 하면, 로마 두오모 광장에선 범죄자를 국장으로 안치할 수 없다며 그의 국장을 반대하는 시위도 잇따른다.

 

툭 까놓고 말해서, 베를루스코니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자랐고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밀라노에서 태어나, 청소기 판매업으로 성공을 거뒀고, 건설회사를 차려 재벌이 되어 미디어를 사들였고, 이후 정치에 입문해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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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코니와 푸틴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뉴스원>

 

돈과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손에 넣기 위해 반평생을 쏟아부었으며,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산 노인. 21세기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 주모자 푸틴의 절친이자, 그것이 연기든 실제든 해외 국가 원수 앞에서 수준 낮은 망언을 일삼으며 국가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 이 외에 그를 표현할 다른 수식어가 있을까. 업적이 있다고 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이고도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밑장빼기 슬로건으로 공과를 논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다만, 그의 일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가 취해야 하는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과정은 필요하다. 베를루스코니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부정’을 발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상에 젖듯, 익숙해진 악행에서 기시감이 들 테니까.

 

또 다른 거대 권력, ‘미디어’와 싸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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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무현 재단 유튜브(링크)>

 

베를루스코니도, 이명박, 전두환도 아니다. 내가 기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은 미디어와 정면 승부를 벌였다. 왜 자신이 미디어와 싸워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권력은 미디어에 있습니다. 내가 왜 5년 동안 미디어와 싸웠느냐, 권력이 미디어에 있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한테 이해하기 위해서 싸운 것입니다. 미디어에 관한 제도를 고칠 수 있어서 싸운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얼마만 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가를 국민들한테 보여주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본질을 국민들이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탈리아보다는 우리가 상황이 낫다는 것이다. 국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견고한 역사적 받침이 있기에, 어떤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의 진보이고, 누가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꽤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디어가 권력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용해, 이를 장악하고 독점하려는 정치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친다.

 

베를루스코니의 죽음으로 이탈리아의 언론 지형을 공부하며, 한국 역시 이탈리아가 갖고 있는 문제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신이 바짝 차려 진다. 

 

덧. 영국에 있으면서, 것도 영국 브리핑이란 타이틀로, 왜 이탈리아 뉴스를 전하느냐 묻지 마시라. 영국은 이탈리아가 어떻게 되건 별 관심이 없다. 유럽연합도 탈퇴한 마당에 이탈리아가 어떻게 되건 뭔 상관있겠는가. 놀랍게도 영국인들에게 이탈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피서지 정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