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윤통의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태초에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윤통 역시 전지전능한 검사였던 가다가 있어서 그런지, 말 한마디로 천지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배경 스토리가 복잡하고, 등장인물은 많으며, 사건도 여러 가지인 바, 이 사안, 매우 복잡하고 흥미롭다. 뭐랄까. 아스팔트 한 가운데서 크고 아름다운 똥을 발견한 기분이다.
이런 탐구 대상을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니 찬찬히 살펴보려 한다. 똥이 큰 만큼 정치, 교육, 언론, 심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겠으나, 시대정신에 따라 무속적 관점에 입각, 핵심 인물들에 빙의해 사건을 조명하고자 한다.
1.이주호는 억울하다
이주호는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다. 이를 부득부득 갈고 가슴을 내리치며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주인형을 만들어서 바늘을 87개쯤 찔렀을지도 모른다.
그는 억울하다. 아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 파국이 시작된 6월 15일로 가보자. 이주호는 교육부장관으로서 업무보고를 위해 용와대에 갔다. 이날 예정된 업무보고 안건은 3가지. 대학 개혁, 돌봄, 한국어 교육이었다.
업무보고 후 그는 교육부 입시 담당 국장이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경질했다는 보고를 했다. 보고를 들은 윤통, 고개나 끄덕끄덕하면 되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준비되지 않은 프리스타일을 시작한다. 여기서 나온 것이
“출제에서 배제하라"
는 문제의 발언.
경질설까지 오르내리는 이주호에게 죄가 있다면, 윤통이 뜬금포로 던진 이야기를 덜컥 받은 것, 윤통이 수능에 관심 많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 까고 이를 브리핑에서 언급한 것. 그뿐이다.
이주호도 그렇겠지만, 나도 의문이다. 윤통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수능 프리스타일을 왜 시작한 것일까. 무슨 말이든 끝에 꼭 한 마디씩 붙여야 하는 큰아버지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물론 그런 하찮은 이유일 리 없다.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2가지 접근이 있는데, 하나는 합리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비합리적 접근이다.
비합리적 접근은 모두가 알다시피 영험한 기운을 가진 어떤 분의 뜻에 따르는 것으로, 하필 그날 음양과 오행의 기운이 수능과 딱 맞는 길일이었다거나, 갑골을 뒤집었더니 그날 수능 지시를 해야 한다는 무늬가 있었다거나 라는 것인데, 우매한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안드로메다의 영역이니 일단 접어놓고.
안드로메다 영역의 예시...
합리적 접근은, 윤통께서 최근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인 26조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봤고, 그 근거로 꼽힌 ‘물가 상승+코로나로 인한 돌봄 공백+코로나로 인한 학력 저하’ 등은 쿨하게 넘어가고, ‘킬러문항으로 인해 사교육비가 올랐다!’ 라고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이주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주호로서는 자기가 준비한 말도 아니고, 대통령이 강력하게 지시하길래 그렇다더라, 라고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한 것뿐인데 이 사단이 벌어졌으니 억울한 것이다. 만 5세 입학 후폭풍으로 장관이 날아간 장면이 뇌리를 스쳐지나갈 쯤이면 등에 땀 한 줄기가 흘러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주호. 걱정 말라. 이번 이슈로 장관이 날아갈 일은 없다. 이전 교육부장관을 시원하게 날린 뒤에 후임을 구하기 얼마나 어려웠었는지 우리 모두가 보았지 않았나.
관련 국장과 평가원장까지 날린 마당에 장관까지 날릴 수는 없다. 5개월 남은 수능 때까지 후임 장관을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혹여나 장관이 공석인데 출제 오류라도 터지면 내년 총선은 잣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 지금처럼 납작 엎드리면 태풍이 지나갈 것이라는 꿀팁을 전하며, 다음으로 넘어가자.
2. 평가원은 대구리가 아프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다더라, 교육부 장관이 그렇다던데, 대통령실은 아니라고 하더라, 킬러문항이 어쩌고저쩌고.. 첫 출발부터 혼란스러웠던 탓에 여러 이슈가 막 엉망진창으로 엉켜 있다.
어쨌거나 그 실을 풀어야 하는 주무부처인 교육과정평가원은 대구리가 깨질 것 같다. 잘 키우고 있던 호밀밭에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라는 금쪽이들이 나타나 헤헤헤 웃으며 밭을 마구 짓밟아 버리고 있으니.
지금 대통령실에 가장 필요하신 분...
우선 킬러문항. 평가원에게 킬러문항은 마검과 같다. 나쁜 건 아는데 거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SKY 합격생 중 60%가 재수생인 세상이다. 최근 쏠림이 더 심해졌다는 의대는 합격자 80%가 재수생이다. 몇 년씩 수능만 파는 학생들이 최고레벨에 그득하다는 것인데, 평가원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그 괴물들 중 더 잘하는 놈과 못하는 놈들 구별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사진출처-YTN 뉴스중
그러니 킬러문항이 과도한 것도 알고, 사교육이 킬러문항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매년 몇 문제씩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
(여담이지만, 그런 이유로 대다수의 수험생에게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킬러문항이니 하는 건 별 의미 없다. 대부분은 킬러문항 없이도 변별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의대와 SKY에 가려는 극소수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온 나라와 언론이 달라붙어서 큰일이 생긴 것처럼 떠들썩한 것도 그리 건강한 모습이라 보긴 어렵지 않나 싶다.)
즉, 과도하게 변별을 해야 하는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킬러문항은 해결될 수 없다. 킬러문항이 없으면 준킬러문항, 준준킬러문항이 생기거나 대학에서 본고사 형식으로 변별을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평가원은 몇 년간 이 문제를 뭉개오고 있었다. 평가원은 매년 3월, 수능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킬러문항이나 초고난이도 문항을 내지 않겠다고 발표해 왔고, 실제로는 냈다. 어쨌든 변별이 되어야 하니까. 이 답답한 상황을 언행불일치로 돌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출처 –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 발표
거기에 하나 더. 평가원은 큰 틀에서 수능의 힘을 빼고 싶어 한다. 곧 고교학점제도 시행될 것이고, 교육의 흐름으로 봐도 수능은 구식이고,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 어느 것에도 맞지 않는다. 계속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것도 이런 흐름이고, 자잘한 변화야 생기겠지만 큰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쉬운 수능'이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다. 평가원은 이미 3월에 쉬운 수능을 예고한 바 있다.
출처 –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 발표
빙빙 돌려 말해놨지만, 코로나로 학력이 확실히 떨어졌기 때문에 ebs 문제와 유사하게 내서 난이도를 낮추겠다, 즉 쉬운 수능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물론 콕 찝어서 킬러문항을 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건 작년, 재작년에도 언제나 했던 말이고 킬러문항은 언제나 나왔다. 앞서 말했듯 어쨌든 아이들 줄을 세워야 하는 시험이니까.
입시 제도를 바꿔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면 진작에 해결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이 노동시장 이원화, 과도한 경쟁, 의대 몰빵 등 구조적 문제인데 그건 건드리지 않거나, 더 심화시키는 윤통이 킬러 문항 빼고, 쉬운 수능은 아니다라고 말해버렸고, 이 사단이 났다.
뭉개기를 시전하며 버텨오던 평가원은 대구리가 아프다. 마이 아프다.
3. 윤통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대구리가 아픈 건 윤통도 마찬가지다. 아니, 평가원도 하던 말이고, 언론에서도 맨날 킬러문항 가지고 때려놓고 이제와서 왜 나만 갈굴까. 입시 비리를 수사했으니 난 입시 전문가인데 왜 내가 “뭣도 모르고” 떠들었다고 하는 걸까. 좌파의 농간일까 북한 해커의 소행일까 싶을 것이다.
그런 윤통을 위해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어쩌다 똥이 이처럼 크고 아름답게 되었는지 아뢰어보고자 한다.
1) 엉망진창 메시지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언뜻 보기에는 문제없는 말로 보이지만, ‘학교 수업’이 문제다. 학교별로 다른 교과서를 사용하고,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있다. 수업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느 학교의 어떤 수업인지, 어떤 교과서인지, 외고나 과학고 수업은 포함이 되는지 안 되는지 등 복잡한 문제가 주렁주렁 따라 나온다.
저 워딩에서 이미 학생+학부모들은 “뭣도 모르고”가 절로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2) 약빤 대통령실
이주호 장관의 브리핑 4시간 뒤,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서려 했으나 더 큰 불을 질렀다. 일단 ‘학교 수업’을 ‘공교육 교과과정’이라고 수정한 것까지는 준수했다. 문제는 그 뒤 발언.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이런 말을 해명이라며 그대로 내보냈다는 건 대통령실이 윤통을 엿맥이는 것이다. 이건 수능에 대한 윤통의 이해가 바닥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킬러문항이 아니라 대통령실에 있는 킬러부터 잡자. 이건 심각한 문제다.
수험생들은 의아하고 빡친다. ‘비문학 국어문제’는 문학이 아닌 설명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인데, 수학, 과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영역의 지문이 나온다. 위의 말은 그 지문 내용을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으니 수능에 내면 안 된다는 것인데, 한 글자도 안 맞는 말이다.
국어 영역은 지문의 내용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독해력을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험생이 배우지 않은 내용이 출제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융합형도 마찬가지. 교육과정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교과 간 통합과 융합인데, 정작 수능에서는 그런 문제를 내지 말라고 하니, 어느 바보가 학교에서 융합수업을 들을까.
3) 넌 이제 더이상 검사가 아니에요
국민 대다수를 조져버린 진정한 킬러문항(출처-링크)
하늘에 번개의 신 제우스가, 바다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있다면, 한국에는 검사의 신 윤통이 있다. 하늘이 검사를 하기 위해 내려준 사람. 9번의 두드림으로 단단한 강철 검사가 된 그. 석열이형이라며 친근한 이미지로 변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조지는 게 제일 편했던 그 윤석열이다.
검찰 공화국. 이 식상한 비유가 이제는 식상하지 않게 되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경찰에도 교육부에도 국정원에도 심지어는 국민연금에도 검찰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검사라고는 황시목(비밀의 숲 정주행해라!! 조승우 잘생겼다!!)밖에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대한민국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데, 우리 윤통께서는 이번 문제 역시 마, 검사 서타일로 해결하려 하신다.
교욱부 국장은 날아갔고, 교육과정평가원은 감사를 하겠다고 했다. 평가원장은 사임했다. 일타강사를 조지고 있다. 교육부와 사교육 업계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매우 신박한 시나리오도 가지고 왔다. 일회성이 아니라 카르텔이 나올 때까지 두고두고 계속 조지겠다는 말이다.
올해 평가원 직원들은 잣된 것이고, 평가원에 자문했던 교수, 교사 모두 긴장을 단디 해야 할 것이다(쓰임이 다하면 이주호도 이 카르텔에 엮여서 날아갈 수 있다. 궁금하신 분은 ‘이주호-에듀테크’로 검색해보심 된다).
과연 누가 할까 싶은 올해 수능 출제위원들께는 미리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위기가 곧 기회!”를 외치며 불 속으로 뛰어드실 분이 있다면, 자택 압수수색을 대비해 캠핑카 이사를 권해드린다.
4.아, 어쩌란 말이냐
이미 크고 아름다운 똥이 등장했는데, 그럼 뭐 어쩌란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어려울 것 없다. 첫째, 윤통께서 프리스타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둘째, 아무것도 하지 말며, 셋째, 정 뭘 해야겠거든 팔뚝에 온고지신을 새기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실천하면 된다. 지혜는 언제나 과거에 있다.
윤통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교육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가교육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정권에 따라 교육정책이 계속 바뀌니 혼란이 가중되고 미봉책이 난발된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권에 영향받지 않고 긴 안목으로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위원회다.
이번 정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축소시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을 못 들은 바 아니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뭘 따지랴.
자, 토대는 준비됐다. 윤통께서 야수의 심정으로 결단만 내리면 된다. 대구리 아픈 교육 문제일랑 이제 손에서 놔 버리자.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쩌리들에게 줘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버리자!
영영! 포에버!
선미 누나의 농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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