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길에서 5천만 원을 주웠다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길다가 우연히 주운 가방에 5만 원 현금다발이 꽉 채워져 있고, 주변엔 CCTV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그 돈을 가져와서 영화처럼 욕조에 담은 후 들어가 보고 방에서 뿌려도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돈을 사용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되지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자금의 출처가 확실치 않으면 '금융시스템'을 거쳐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잠시 생각해 보면 차나 집을 사는 행위 등 거의 모든 경제 행위가 금융 시스템을 거치는 시대입니다).
돈 가방을 주워서 은행에 입금하고자 하는 게 어째서 문제가 되는 걸까요? 바로 금융회사가 가진 고객 확인 의무 때문입니다. 고객확인제도의 핵심은 기존 금융실명제에서 수집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외에 '주소·연락처·실소유자(법인)·거래목적·거래자금원' 입니다.
법인의 경우 여기서 중요한 게 '실소유자' 정보입니다. 페이퍼컴퍼니(법인) 등을 설립해 자금세탁(또는 돈세탁. Money laundering)을 한 후 법인을 소멸시키면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법인은 그 법인 지분의 25% 이상을 소유하거나, 최다출자자나 사실적 지배자 혹은 법인의 대표자를 실제 소유자로 간주합니다.
마약 거래하여 번 돈을 자금세탁하는 모습이 나오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베드>
그렇다면 고객 확인은 언제 행할까요? 기본적으로 계좌를 신규 개설할 때 행합니다. 일반적인 예금계좌 외에 펀드나 대출 심지어 대여금고까지 금융거래를 시작하는 모든 행위 때 행합니다. 한 번쯤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계좌개설 등을 하실 때 다양한 정보들 외에 '거래자금의 원천'도 선택하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대부분 급여소득·사업소득·연금소득 등 일반적인 내용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겠지만 이 부분이 바로 고객 확인 의무의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계좌 개설 외에 '일회성 금융거래' 시에도 행합니다. 예를 들어 수표발행·환전·선불카드 매매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자금세탁 위험을 나누는 기준들
고객별·국가별·상품별로 위험 요소를 평가하고 그에 맞게 관리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근본적인 이유지요. 단적으로 말해 매달 정기적으로 일정한 금액이 입금되는 급여소득자와 불규칙적이고 소액에서부터 거액까지 편차가 큰 금액이 입금되고, 현금 사용까지 있는 사업소득자를 비교해 보면 사업소득자의 자금 세탁위험이 훨씬 큽니다. 이럴 경우 급여소득자는 저위험, 사업소득자는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하여 고위험 고객은 저위험 고객보다 더 자주, 더 자세히 고객 확인을 받습니다.
고위험고객에는 고액 자산가와 정치적 주요 인물도 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내용에 비춰보면 고액 자산가는 당연히 자금 세탁위험이 일반적인 고객들에 비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주요 인물 즉, 지금 바로 생각나는 그분들… 그리고 고위직 공직자들은 부정 청탁·비자금·불법 정치자금 등 자금 세탁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이… 저 같은 자금세탁 전문가를 채용해야 할 분들이겠지요.
재벌가 돈세탁이 소재로 나오는 영화 <상류사회>
국적으로 보자면 한국인 고객보다 외국인 고객이 더 위험이 큽니다. 이들은 국내법에 적용받지 않는 부분이 있지요. 세금 문제, 출입국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가 어렵습니다. 또 대면 거래에 비해 본인확인 절차 등이 간소화된 비대면거래가 더 많은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요즘 문제가 되는 가상자산거래소·환전업자 등 환거래은행도 고위험 관리 대상입니다(환거래은행은 쉽게 말씀드리면 한국의 은행[영업점]을 이용하는 외국 은행[고객]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금융회사의 고객 확인 의무와 함께 중요한 것이 '고액 현금거래 또는 의심 거래 보고'입니다. 고액 현금거래 보고는 1천만 원 이상 거래에 대해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되는 것입니다. 동일인이 1일 동안 발생한 입금거래(출금 거래) 합이 1천만 원 이상이면 보고 대상입니다. 기준금액 1천만 원은 적당하다고 느끼시나요? 최초 도입 시 기준금액은 5천만 원이었지만 이후 3천, 2천으로 줄어서 2019년부터 1천만 원으로 조정되었습니다(범위를 넓혀 규제를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스머핑기법(smurfing, 많은 양의 돈을 여러 개의 작은 거래로 분리하여 규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200만 원씩 5일에 걸쳐 입금하면 괜찮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일회성 금융거래는 '연결거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일인 명의의 거래는 7일 동안 거래금액을 합산하여 계산하지요.
다만 100만 원 이하 거래는 1일 거래 합산에 포함하지 않기에… 혹시라도 자금세탁을 하실 분들이 계신다면 99만 원씩 5일 정도만 거래하시고 며칠을 쉬시면서 다시 거래하시는 지루한 행위를 반복하실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지루하고 늦더라도 방금 말씀드린 방법으로 꾸준하게 거래하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를 보완하고자 의심 거래 보고라는 게 있습니다. 의심 거래 보고는 거래금액 같은 기준이 없습니다. 금융거래와 관련하여 불법 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자금 세탁행위나 테러 자금 조달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지체 없이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제도입니다.
돈세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
출처-<위키피디아>
실제로 현금거래가 많은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은 매일매일 수십에서 수백만 원씩 거래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은행의 입장에서 이 같은 거래를 목격하면 상당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의심 거래 판단기준에 '금액을 분할하여 금융거래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의심'이라는 단어가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데 추측과 확신 그 사이 어딘가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안전한 거래라는 확신이 안 생긴다면 보고책임자의 판단하에 의심 거래 보고를 합니다.
3. 자금세탁에 따른 은행 내부의 곤란
자금세탁을 계획하는 사람이 은행별로 방문하면서 이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업무 기준이 어떠한지, 보고책임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거래하는 척 창구에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보고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거나, 어떤 경우에 의심 거래로 보고하냐는 둥…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로도 의심스럽지 않나요? 네.. 거래가 발생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신분만 확인되면 이런 정황들로 의심 거래 보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령 친한 친구가 은행에 근무하고 있어서 그 친구를 통해 의심 거래 보고나 고액 현금거래 보고 같은 거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장 친구 정도라면 모를까… 만약 위와 같은 불법 거래를 보고 없이 했다는 게 알려지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까지 처분을 받습니다. 당연히 연루된 직원은 해임 권고까지 받을 수 있지요.
일반적인 업체들도 영업정지를 당하면 타격이 매우 큽니다. 심하면 폐업 후 새롭게 법인을 설립하기도 하는데 만약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다면? 폐업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평판'이라는 어마어마한 무형의 자산을 잃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뱅크런이 발생해 은행의 재정에 심각하고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되지요. 여기서 다루진 않았지만 '경제 제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국제 돈세탁 조직의 범행 통로가 된 적이 있는 기업은행. 2020년 4월 미국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기소를 유예받은 대신 1,0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내는 처지가 됐다. 이 일로 국책은행으로서의 국제 신인도는 추락했다(출처-<뉴스타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약 관련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불법 자금에 자금세탁을 위한 어떤 새로운 방법이 사용될지 알 수 없습니다. 자금세탁 방법은 계속 발전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제도들도 생기고 있지만 언제나 제도는 뒤늦게 생깁니다.
추후에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그리고 발생한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제재(Sanctions)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