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 반대 집회 현장
출처 - <NBC>
영국은 놀랍게도(?!) 유럽에서 사회 운영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바로 그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는 나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특히 최근의 브렉시트나 코로나 사례 뉴스를 중점적으로 접한 분들에게 영국의 행정 시스템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진다. 나름(!?) 잘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그날, 영국은 당장 고립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은 서로 적이 되었다가, 다시 동맹 맺기를 천 년 이상 반복한 역사가 있다. 세계대전으로 서로 적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 철강공동체(ECSC)로 다시 하나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년이다.
수백 년간 싸워온 이들의 역사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게다가 세계 경제를 이끌며 나름 ‘선진국’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아옹다옹 살아간다.
영국이 엄청 대단한 나라라고 말하려는 것이냐?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영국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검색해 찾아본 게 시작이다. 영국 사정을 다룬 한국 기사를 보면 나로선 크게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다.
우리가 쟤네보다 낫다니까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 세율이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보다 높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발언 내용)
출처 - <연합뉴스>
상대를 깎아내려 자존감을 채우는 행위는 삼류나 하는 짓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엔 삼류 언론이 많은 듯하다. 다른 사람이 잘못된 소식을 보도하면서 “이정도면 우리는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뉘앙스의 기사가 즐비하다.
언론사에서 파견한 해외 특파원이 전하는 소식을 우리는 ‘현지’ 소식이라 생각하고 수용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대부분 해외 특파원은 거주 기간이 길어야 3년이다. 짧게는 1년 만에 물갈이되는 상황도 종종 있다. 그렇게 갈리다 보면 기자 개인의 정보력은 떨어지고, 현지 언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지표나 통계를 거르지 않고 받아 사고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숫자로만 파악이 가능한가?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어 부대끼고, 피부로 얻는 생생한 정보는 차원이 다르다. 바닥에서 얻은 정보는 데이터의 보충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실'보다 '진실'에 가깝고 상황에 대한 인식을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 세계 흐름에 발맞춰, 영국도 어려운 시국을 겪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능력이 없으면 42일 만에 총리도 퇴출시키는 나라니 말이다. 물론,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그때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영국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같은 의미로, 한국 내에서는 정치로 다들 머리가 아프시겠지만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촛불을 드는 한국은 국외에선 매우 멋진 자정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아무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영국을 보도하는 기사들. 지금껏 이래저래 떠돌던 소문들에 대해 팩트를 검증해 보자.
#1. 영국 집값이 폭등해 곧 망하게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 망한다. 걱정하지 마시라.
코로나 시국에 영국은 강도 높은 락다운을 시행했다. 답답한 나머지 총리라는 작자는 쌓인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국민들에겐 모이지 말고, 가족을 찾아가지도 말라 해놓고, 정작 본인은 직원들과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즐겼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보수당 인물들이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기고, 여러차례 모임을 가졌던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름하여 “파티 게이트”
영국 국민들은 속이 타들어 갔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곳간에서 돈을 왕창 풀었기 때문이다. 무려 한국 돈으로 500조에 가까운 돈을 나눠 주었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니 삶의 만족도가 낮지 않았다.
회사에 나가지 않아 좋았고, 얼굴을 대면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화상으로 회의하고, 그마저도 싫으면 화면을 꺼도 되는 새 시대가 열렸다. 목소리와 이메일로만 소통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모여 일하던 공간도 쓸모없어졌다. 기존에 사용하던 사무실을 빼고 재택으로 돌린 기업들이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그리됐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빌딩이 텅 비고 분양하던 새 건물들은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하니 크게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다.
브렉시트 했겠다, 락다운으로 국경 걸어 잠궜겠다... 수요는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나니 집값 하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국민을 위해 정부가 곳간에서 돈을 풀면서 시장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남고 돈은 생기니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취미를 가진다. 바로 “집 꾸미기”다.
락다운이지만 이케아(IKEA)와 같은 홈 퍼니싱 업체는 호황을 누렸다. 다른 인테리어 회사 뿐만 아니라, 식료품 전문 회사인 테스코나 세인즈버리 역시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특히 월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내 집 마련이다.
2021년, 영국 정부는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를 위한 모기지 보증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영국 금융기관 스킵톤에서는 LTV 100%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기본 조건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이며 무주택자여야 한다.
출처 - <가디언즈>
어디 이동하지 않으니 비싼 교통비를 절약하고, 락다운이 걸리고 다들 어려운 상황이니 집 주인들이 월세를 깎아 줬다. 영국에선 2-3천만 원 정도만 있어도 2-3억 정도 되는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은행은 돈도 잘 빌려주고(물론, 매달 이자를 내야 하니 직업은 있어야 한다), 처음 집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많다.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고 유동 인구가 많고 수요가 있는 편이라, 대체로 집값이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일부 대도시만 벗어나도 상황은 확연히 달라진다. 외곽지역으로 빠지면 푸르른 자연을 맛볼 수 있다. 국토 전체의 62%가 산지인 한국과 달리 영국은 1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거주지 주변 자연환경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영국인은 한국과 달리 주거 형태로 주택을 선호하는바, 시골에 듬성듬성 위치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아파트는 과거 임시 거주자인 이민자를 위해 급조한 주거 형태였고, 이러한 선입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즉, 아파트는 잠시 왔다 떠나는 이를 위한 공간인 것이다. 한곳에 정착하면 짧게는 10~20년, 길게는 평생을 한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 영국에서 아파트는 적합한 거주지가 아니다.
어쨌든,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집값은 합리적이다. 방 3~4개 정도 되는 주택을, 웬만한 월급쟁이라면 1~2년 보증금 모아 집을 살 수 있다. 매달 은행 빚, 모기지(Mortgage)를 갚아야 하니 모기지가 아니라 “모가지(목아지)”가 따로 없다고,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래도 괜찮다. 20년 후엔 내 집이 생기니까. 그렇게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수요가 점점 올라간다.
브렉시트로 인해 위험부담이 높아져 투자자들의 직접투자가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당연히 집값도 내려가고, 은행도, 기업들도 줄줄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 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이들에게 취득세를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난 뒤 상황은 급격히 전환된다. 수요가 늘고, 단기적으로 시장에 풀린 돈이 500조 원, 집값은 폭등했다. 2020년부터 약 2년간 최대 30%나 올랐다는 통계가 있으니 말 다 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평균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보자. 부자들만 산다는 첼시, 나이츠브릿지, 켄싱턴 등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몇몇 집들은 300% 이상 오르기도 했다. 20억 하던 게 60억이 되고, 100억 하던 게 150억이 됐다.
반면, 지방에서 기본 방 3개에 화장실 1~2개 딸린 집들이 삼십만 파운드(물론 지역마다 집값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정도 한다. 하지만, 10%는커녕 되려 수요가 없어 집값이 내려간 지역도 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수요가 급증해 집값 상승을 우려한 정부는, 처음 집을 사겠다는 이들에 대한 “취득세 면제 조건”을 다시 조율했다.
대륙과의 자유무역이 사라진 후 공급관리망에 문제가 생겨 추가로 지출된 비용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탓에 금리를 올렸다. 은행 대출 갚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소문으로 현재는 집을 사겠다는 이들의 수요가 소강상태다. 물론 한 번 오른 집값이 쉽게 내리지 않는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기다리는 중이다. 금리가 내리고, 은행 대출이 쉬워지는 때를. 그러다 보니 수요가 급격하게 줄었다. 집값은 서서히 내려가는 중이다. 결론은 뭐냐. 그렇게 ‘헬(hell)’스럽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집값이 올라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고,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2. 아시아 계통 이민자가 많아져 사회문제(집값 상승, 일자리난 등)가 발생한다
2020년 10월, 홍콩 반정부 시위대가 BNO 여권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모습
출처 -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정확히는 홍콩계 이민자들이 급증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이민이 늘어나진 않았다. 이유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홍콩사태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영국의 홍콩 반환 후, 향후 50년간 영국이 고수했던 운영 방식을 그대로 두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강압적으로 자유를 억제했고, 항거 투쟁에 나선 수많은 홍콩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영국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영국령일 때 홍콩에서 태어난 이(1997년 이전 출생자)에게는 아무런 조건 없이 영국 여권을 발행해 주기로 했다. 영국으로의 이주가 용이하도록 한 것이다. 영국 여권 발급 제도는 원래 있었다가 중국 반환 이후 점차 줄여 중단했었다. 홍콩 사태 이후 이를 부활시킨 것.
결과적으로 홍콩 시민들이 대거 영국으로 입국하기에 이르렀다. 굳이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하더라도 주변에 새롭게 이주한 홍콩 가정이 10가정이 넘는다. 인구 15만의 잉글랜드의 조그만 지역에서도 이처럼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오죽하겠나?
암튼, 그렇게 늘어난 아시아 계통(대다수가 홍콩 출신) 이민자는 지금도 증가추세다. 이는 홍콩사태에 있어서, 인도적 차원의 합법적 이민 사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홍콩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파생되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긴 하다. 대표적인 사안이 주거 문제. 급작스럽게 이민을 선택한 이민자들이 집을 구매하기보단 월세 형태의 주거를 선택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올라 월세가 올랐다. 그래서 기존 세입자들이 고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원래부터 집값, 월세가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네였다. 이런저런 면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어려워진 것은 맞지만 망한 수준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같은 전세 사기, 전세난 따위는 없다. 누가 누굴 걱정하거나 우습게 볼 처지가 아니다.
영국 정부는 근무 중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다. 코로나 시국에 정부는 마구잡이로 시장에 돈을 풀었으며, 지난해 겨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난에 시달리자, 수직 상승하는 난방비의 여파를 막기 위해 정부는 다시 보조금을 풀었다.
인플레이션이 왔다. 오르는 물가 대비 급여가 오르지 않아 다양한 직종의 직군에서 파업을 감행했다. 하지만 정부가 손을 놓은 상태는 아니다. 단계적으로 급여를 올리고 있고, 집값을 내리기 위해 정책을 마련 중이다(곧 첫 주택 마련자를 위한 제도도 공개된다고 한다).
이민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 때문에 많은 업종에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지만, 새롭게 유입된 이들로 완충 효과를 봤다고 평가된다. 다시 말하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수출과 무역 수지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 27일, 용산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출처 - <연합뉴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자. 집값은 연일 하락세를 이어 역전세를 막을 길이 없다. “돈이면 된다.”, “한 방으로 인생 역전”이라는 그릇된 결과주의적 세계관은 과정을 무시하게 했다. 허점을 이용해 전세 사기가 들끓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뿐인가?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그중 높은 물가로 정말 살기 힘들어졌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 사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문제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더 답이 없는 실정이다.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를 달성하는 와중에 언론에서는 수출이 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른 나라는 이렇게 어려운데 그나마 우리는 이 정도 버티고 있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국에 관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국은,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피부에 와 닿는다. 일 못하는 총리는 금방 잘리고, 뇌물, 배임 혐의가 있는 전 스코틀랜드 총리도 구속된다. 어쩌면, 주가 조작과 학력 과대 포장 현장을 방치하는, 혹은 못 본 체하는 한국 사회에서, 법무부 장관의 궤변을 들어야 하는 우리보다는 영국이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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