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차
1. 이자겸 비긴즈 : 동생이 왕비가 됐는데... 바람을 폈다네?(feat.이자겸) - 링크
2. 훈요십조 코드 : 조선과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 링크
3. 고려판 왕좌의 게임 : 고려판 수양대군과 단종이 있었다 - 링크
4. 여진족 맞춤형 특수부대의 탄생과 척준경의 등장 - 링크
5. 피의 연회 : 칼 든 무사 한 명 따위... 가 척준경이라면? - 링크
7. 이자겸이 돌아왔다 : 할아버지가 강요한 친이모와의 결혼(feat.이자겸) - 링크
8. 이자겸 난의 전말 : 왕궁을 불태운 척준경 - 링크
9. 왕의 반란 : 이자겸의 시대가 끝나다(feat.척준경) - 링크
10. 척준경 지고 묘청 떠오르다(feat.김부식)
11. 묘청의 난
<지난 편 역사, 한 줄 요약>
1. 이자겸의 난 이후, 인종은 이자겸의 집에 갇혀 살며 수많은 암살 위기를 넘기게 된다.
2. 인종은 이자겸에게 양위 승부수를 두며 환궁에 성공한다.
3. 이 시기,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에 미묘한 틈이 생긴다. 인종은 이 틈을 공략한다.
4. 인종은 척준경을 이용하여 다시 이자겸을 친다.
5. 이자겸은 끝내 무너져 귀양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해 귀양지에서 사망한다.
6. 이제 고려의 역사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며,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0. 척준경 지고, 묘청 떠오르다
우매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인간의 망각 때문이고, 절망적인 현재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진보하는 것 또한 망각 때문이다. 척준경은 이자겸을 제거하고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허나, 그는 이자겸이 어떻게 되었는지 금세 망각했다. 이자겸의 끝이 어땠는지를 보고서도 그의 악행을 답습한 것이다.
이제 내가 최고 권력자란 말이다.
알겠느냐!
인종은 척준경의 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 척준경을 제거하기 위해 좌정언 정지상을 불러들인다.
“또다시 무력으로 신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짐이 너를 부른 것은 다른 방도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정지상은 우리에게 ‘송인’이란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송인’은 정지상이 십 대 시절 지은 시임에도, 당대 큰 화제를 일으켰다. 송인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인정받아 시험에 자주 출제된다. 중국 사신들이 고려의 시는 무시해도 정지상은 인정했다고 하니 그의 문학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송인
그는 노장사상에 심취했으며, 역학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뿐 아니었다. 그는 이런 지성과 더불어 현실 정치에서도 능력을 나타냈다. 인종의 조력자로서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5월 지사는 일시지공이요. 2월 지사는 만세지죄이다.”
정지상이 척준경의 탄핵을 위해 내건 강령이다. 5월에 이자겸을 제거한 것은 일시적인 공이지만, 직전 연도 2월 궁궐에 불을 지른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라는 말이다. 정지상은 집요했고, 다급해진 척준경은 급히 인종을 찾았다. 그러나 척준경을 바라보는 인종의 눈빛은 메말라 있었다. 단지 방관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종의 눈빛을 느낀 척준경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달았다.
“폐하,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목숨 내걸고 광야를 달리던 젊은 시절이 머리가 더 맑았던 것 같습니다. 신은 이제 늙고 병들어 사리 분별이 어려우니 이만 물러갈까 하옵니다.”
“짐이 공을 미워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오. 왕의 자리란 것이 참으로 쉽지 않소. 잠시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테니, 부디 남은 생은 좀 조용하고 별 탈 없이 보내길 바라오.”
훗... 인생무상...
화무십일홍이구만...
그렇게 척준경은 순순히 전라남도 신안의 엄타도로 유배를 갔다. 그리고 몇 년 후, 인종은 척준경을 사면했다. 유배에서 풀려난 척준경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며 천수를 누리다 1144년 사망했다.
인종의 다음 과녁은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개경 문벌귀족이었다. 수도 개경을 기점으로 뿌리 깊은 권력 기반을 가진 이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었기에 더욱 어려운 상대였다. 인종은 평범한 개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개경 문벌을 뿌리 뽑을 방법은 단 하나, 서경으로의 천도뿐이었다.
고려에서 개경과 서경의 위치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개경 문벌들이 서경 천도를 순순히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인종에겐 개경 문벌 세력에 맞서 자신을 도와줄 인물이 필요했다. 정지상이 뛰어난 인재이긴 했으나, 적절한 인물은 아니었다.
정지상은 서경 출신 정치인이었기에 정지상이 나선다면 개경파의 반발이 더 극렬해질 것이 뻔했다. 정지상은 주도자가 아닌 서포터가 되어야 했다. 정지상 외에 서경 천도를 주창할 사상가와 사상(논리)이 필요했다. 그 사상이 옳은지 그른지 사상가가 바른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천도를 추진할 수만 있으면 됐다. 이런 인종의 고민을 해결해 준 사람은 정지상이었다.
출처-<SBS>
“폐하! 적당한 인물을 찾았습니다. 묘청이라는 승려인데 풍수지리에 통달한 자입니다.”
고려사를 보면, 승려 묘청은 고려 역사에 재림이라도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느닷없이 나타났다. 묘청의 주장은 인종의 뜻과 정확히 일치했고, 인종은 묘청을 왕사(왕의 스승)으로 임명하여 자신의 고문으로 적극 등용했다.
묘청은 지덕이 쇠한 곳에서 왕성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지덕쇠왕설’을 내걸고 서경 천도를 주장했다. 풍수도참설(풍수지리설)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체를 관통한 매우 중요한 사상이다.
“궁이 불타고 외척들이 날뛰는 개경은 지덕이 이미 쇠하였습니다. 그러나 서경의 지세는 음양가들이 말하는 대하세에 해당합니다. 한 마디로 천하명당이다. 이 말입니다. 서경은 넓고 평탄한 땅에 대동강과 보통강이 감싸고 흐르니 수덕이 순조로운 지형입니다. 이런 서경에다 궁궐을 짓게 되면 금나라도 항복할 것이니 내우외환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태조 폐하께서 훈요십조에 이르기를 후대 왕은 일 년 중 백일이상 서경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데 서경 천도를 반대하는 이들은 불충의 간신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27년, 인종은 묘청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서경에 백일 넘게 머무르며 대규모 제를 올렸다. 백성과 나라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서경 천도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왕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묘청의 주장을 중심으로 서경 천도론을 적극 서포트한 인물은 정지상, 백수한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지지기반은 서경이었다. 이 점을 봤을 때, 이들이 서경 천도를 주장한 것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생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이 개경 문벌과 다른 점은 가문의 후광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관리가 된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김부식, 문광민 등 개경 문벌이 유교 기반 귀족세력이며, 금나라에 사대주의적 태도를 취했던 것과 다르게, 이들은 불교를 기반으로 했으며 금나라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개경 문벌귀족이 사대주의적이었던 건 이미 나라의 권력을 가진 상태에서, 굳이 강대국인 금나라에 맞서 국내적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만한 변동 사항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서경 천도를 반대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하지만 인종은 개경파에 몰려 있는 기득권을 끊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현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 방법이 서경 천도다. 이런 배경하에 권력을 지키려는 자(개경파)와 되찾으려는 자(인종)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내 반드시 천도를 실행하겠다
한발 앞선 것은 인종의 지지를 등에 업은 서경 천도 파였다.
1128년 묘청이 천하 명당이라고 지목한 서경의 임원역에 대화궁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묘청은 개경을 떠나 서경에 머무르며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동시에, 천도의 타당성을 높이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방 먹은 개경파의 반발도 굉장했다.
“폐하, 묘청은 승려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요망한 자이옵니다. 어찌 그런 자의 말만 듣고 왕조의 도읍을 옮기려고 하신단 말이옵니까? 태조 폐하께서 세운 이 나라는 폐하 한 분의 나라가 아니옵니다.”
“어허! 공은 짐에게 간언을 하는 것이냐? 겁박을 하는 것이냐? 짐도 도읍의 천도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고, 오직 백성과 나라의 부흥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태조 폐하의 훈요십조를 받들어 서경에 머물며 그 추이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서경 천도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 이루어질 듯한 분위기 속에서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1132년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폐하! 신 김부식,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서경의 대화궁 주변에 벼락이 수십 차례 떨어졌다고 하옵니다. 이로 인해 불이 났고, 궁의 일부가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필시 상스럽지 못한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인종의 속마음) 이 자들이 서경 천도를 반대하기 위해 발악을 하는구나. 내가 몸이 좀 고되더라도 서경에 자주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1132년 인종은 여론을 무마하고, 서경 천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다시 서경으로 향했다. 헌데, 서경 진입을 얼마 앞두고 느닷없이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폐하!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고 하옵니다.”
그 순간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며 거대한 돌풍으로 변해 왕의 행렬 쪽으로 몰아쳤다. 놀란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몸이 가벼운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기 시작했다. 말도 바람에 날아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왕의 행렬은 돌풍에 엉망이 되었다. 바람이 잦아들자, 이곳저곳에서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널브러진 신하들도 하나둘 정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폐하...! 폐... 하, 폐하가 사라지셨다!”
왕이 실종된 것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신하들은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폐하~ 어디 계시옵니까! 폐하~~~~!”
한참을 찾았을까. 겨우 인종을 발견했다. 다행히 인종은 무사했다. 그러나 서경 천도에는 먹구름은 잔뜩 끼게 되었다. 인종의 서경 방문을 위해 대대적인 준비를 했던 묘청은 당황했고,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파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권력의 추는 다시 반대로 기울기 시작했다.
<계속>
<오늘의 역사, 한 줄 요약>
1. 이자겸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척준경은 이자겸의 악행을 답습했다.
2. 인종은 정지상을 이용해서 척준경을 유배 보내며 그를 권력에서 제거했다.
3. 왕권 강화를 위한 인종의 다음 타켓은 개경 문벌귀족이었다. 인종은 묘청을 내세워 수도를 서경으로 천도하려 했다.
4. 서경 천도파와 개경파의 권력 싸움이 시작됐다.
5. 천도파가 선수를 쳤으나, 서경 행차 중 인종이 눈보라에 휩쓸리며 다시 개경파로 힘이 기울었다.
슈퍼팩토리공장장이 이제와서(?!?!) 유튜브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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