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유럽 출장을 위해 공항에 등장한 대한민국 법무장관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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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의 손에 들린 책에 주목했다.
이 책은 그리스의 두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여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이전투구 때문에 결국 그리스 세계가 쇠망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듯한 한 장관의 모습에 차기 총선 출마를 확신하게 됐다”며 “책을 통해 여당 내부가 분열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중앙일보(링크)
이 날 왜 한 장관은 이 책을 들고 출국장 앞에 서 있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을까. 앞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한 정치권 인사는 ‘준비된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한 장관의 출마 지역구를 서울 한 지역구로 가정해놓고 시뮬레이션까지 돌려본다는 말이 제법 구체적으로 돌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사석에서 만나보면 수도권에서 한 장관이 제법 파괴력 있는 카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다. 조선일보(링크)
유수의 언론들이 가열차게 제 본분을 다하고 있는 와중, 뭔가 한 가지 빠진 게 있어 보인다.
블랙 수트와 멋진 색 조합을 이루는 이 빨간 책. 간지나게도 영문 제목이다. 일국의 법무장관이 원서 하나쯤은 유럽행 비행기에서 너끈하게 독파하는 지성인이라는 걸, 드높였어야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일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닌가.
어 근데 이 책?
아 원서가 아니구나.
설마하니, 일국의 장관이 어학 실력을 뽐내고 싶어 겉표지를 떼고 영문 제목만 적힌 책을 들고 다녔겠는가. 양장 커버의 고급 진 촉감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게 그의 독서 습관일 수도 있고, 속 커버의 빨간색이 맵시 좋은 슈트와 잘 어울릴 거라는 그의 패션 센스일 가능성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두고 보았을 때 장관이 직접 책을 들고 공항에 나타난 건 아무튼 뭔가 의도는 있었다는 거다.
1) 출국 일정이 언론에 사전 공지되었다.
2) 기내에서 검토할 서류 등은 수행 직원이 따로 들고 있었다.
그게 뭘까. 장관님은 어떤 분인지 그의 마음속이 너무 궁금하다. 함 드가보자.
글로벌 스탠다드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장관님의 어학 실력은 일찍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출처 - 인수위사진기자단
2022년 4월 13일,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당선자 윤석열은 새 정부의 첫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인선 배경에 대한 대통령 당선자의 일성.
"(한동훈 후보자는) 영어 실력이 유창하다."
응? 좌중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뜬금포 발언. 이어지는 당선자의 설명.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도 가지고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했습니다."
부연될수록 고개가 반대쪽으로 더 깊게 갸우뚱해지는 신임 법무장관의 인선 배경. 아무리 권력이 가장 막강한 인수위 시절이라도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브리핑이었다. 인수위는 이에 수습에 나선다.
“(윤 당선자가) 한동훈 검사장이랑 오래 근무를 하시면서 한동훈 검사장이 갖고 있는 업무역량, 판단력, 추진력, 이런 것들을 다 직접 보셨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서는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고 그게 영어도 잘한다는 표현으로 드러난 것”
수습하러 나와서도 여전히 봉창을 두드리자, 진행자가 핵심을 묻는다.
"(한 후보자가) 영어까지도 잘한다, 이런 의미인 거냐. 법무부 장관과 영어하고 무슨 상관인가?"
“보통 검사들이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지 않냐. 그런데 그 와중에도 본인의 자기 계발까지도 열심히 해서 영어까지도 잘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가 당선자의 발언을 수습하러 나와 '자기 계발을 잘하는 장관'이라는 이상한 설명을 남기고 떠났다. 이 인터뷰에서 3가지 사실을 확정할 수 있다.
1) 이게 최선이다.
2) 그리고 더 이상 수습이 안 된다.
3) 사람들 앞에 '자기 사람'을 내보이는 순간, 당선자는 후배의 영어 실력이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영어 실력은 실제 장관 업무에 중요한 실적으로 드러나고, 드러내는 중이다.
검사들 사이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이 왜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직장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는 법이다. 딴지 편집부도 누가 동호회에 가입해서 주말 아침마다 체육관에 농구하러 간다고 하면 난생처음 펭귄을 본 북극곰 같은 표정을 지으니까.
아무튼, 글로벌 시대 법무행정에 부합하는 어학 실력과, 자기 계발 능력이 출중한 자가 신임 법무 장관으로서 적합하다는 대통령의 판단,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인정할 수는 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국가의 법률과 사법을 관장하는 행정기관 장의 직을 수행하는 데에 충분한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개와 일국
자 그럼 이번엔 장관의 모국어 실력을 함 보자.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에 대한 한동훈 검사장의 발언.
"일개 장관이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을 하고 앉아있어. 국민의 알 권리가 나중에 알아도 될 권리야? 로또도 나중에 알고 먼저 아는 게 차이가 얼마나 큰 건데. 당연히 알 권리에 핵심은 언제 아느냐야. 국민은 나중에 알아도 된다는 뜻은, 우리만 먼저 알겠다는 뜻이라고."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장관을 '일개'라고 폄훼한 표현이었다. 당연히 여당과 법무부에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한 검사장의 의연한 대처.
겸허하고 숭고한 공직자 마인드.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본인이 '일개 장관'이 되어 버렸을 때의 태세 전환이다.
2022년 8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중.
최강욱 의원 : 대한민국 입법기관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나?
한동훈 장관 : 저도 지금 국무 위원으로서 일국의 장관인데 그렇게 막말을 하나?
보통의 언어 관습을 생각해 보자.
일개. '보잘것없는 한낱'.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낯춰서 칭할 때 쓴다. 자신의 낮은 처지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겸양을 발휘해 도리어 자신의 품위를 높이는 고도의 말하기 방식이다.
일국. 말 그대로 '한 나라'.
상대방의 입장과 권위에 대한 존경과 인정의 표현이다. 스스로를 '일국의 장관'이라 칭하는 것은, '내가 바로 딴지일보 전설의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다' 같은, 항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대단한 표현인 것이다.
장관님은 상대방을 '일개 장관'으로 내려치고 스스로를 '일국 장관'으로 올려치는 대담한 한국어 스피치를 구사한다. 영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일까. 언어의 '결정적 시기' 이후에 학습한 외국어가 모국어의 인식 체계를 뚫고 들어가 지배해 버리는, 무척 신비로운 케이스다.
그의 한국어는 분명 유려하다. 그런데 그의 유창함에는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존댓말과 반말을 아직 완벽히 숙지 못해 말실수를 하거나, 대화에 깔린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몰라 논점을 곧잘 이탈하는 어학당 우등생 외국인 학생 같은 모습을, 국회 대정부 질문에 임하는 장관의 스피치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미성숙자들의 세계
법무부장관은 주요 국무 위원이다. 행형 인권 옹호 출입국관리 등 법무 행정 사무를 관장하며 외청인 검찰의 인사에 관여하고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다.
그 자리에 앉은 자가 국회에서 하는 어떤 행동과 어떤 말은, 국민에게 자신이 가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선언과도 같다. 자신의 언행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자라면, 자연인으로서의 의견과 감정은 접어두기 마련이다. 이라크 파병을 고민하던 노무현의 부침이 그랬으며, 장관 인사청문회장에 앉은 유시민의 태도가 그러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거, 하다못해 스파이더맨도 아는 거다.
이 미성숙자들의 등장은 이번 정부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이 사진을 보자. 구두의 밑바닥이 옷깃에 닳을랑 말랑하는 거리에 사람이 앉아있다. 자신의 일을 돕는 동료다. 잘 생각해 보자. 아무리 후보와 참모 사이라고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구둣발을 내미는 경우가 있나?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례다. 여기에서 타인과 외부 세계에 대한 윤 후보의 민감도가 드러난다.
사람은 성장하며 눈치와 예의라는 것을 학습한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상대방의 허용치를 알아야 하며, 누울 자리를 잘 봐야 다리가 곱게 뻗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그게 사회화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들도 어린이집 친구들 사이에서 익히는 게 사회화고, 심지어 산책하는 멍멍이들도 인간과 다른 멍멍이에 대한 예의를 배운다.
대통령의 남다른 무례의 기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직장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고 있는 검사적 세계관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윤 검사에겐 세상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기준이 매우 특별한 거다. 거기에 무례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은 검찰청 밖에서나 통용되는 상식인 거다.
그에게 타인은 두 종류다. 벌할 자와 봐줄 자.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무례는 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당하는 것이고, 당한 무례는 반드시 응징해온 시스템 안에서 일생을 보냈다. 사람이 앉은 옆자리에 구둣발을 내미는 것은, 그에게 찌뿌둥할 때 펴는 기지개 같은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진이 문제가 되었을 때 윤 대통령은 많이 의아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지른 실수 대부분은, 이러한 검사적 세계관과 외부 세계와의 충돌 지점에서 일어났다.
자타 공인 그의 후계자인 법무부장관의 언어와 태도. 이 세계관을 대입하면 쉽게 설명된다. 오직 시험과 선발로만 진입할 수 있는 그 작은 카르텔이 권력과 정부를 장악한 지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공부'만' 잘하는 일진들의 세상
그리고 2진들
교실 뒤편을 장악한 일진들과 그 무리들. 거칠 것이 없다.
당신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주머니에 핸드폰이 사려졌다고 생각해 보자. 무슨 생각이 드는가?
"어? 어디다 빠뜨렸지?"
그럼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만졌던 시점부터 핸드폰이 사라졌음을 인지한 시점까지 동선을 떠올리고 그것부터 확인해 보기 마련이다. 보통의 인간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실수를 먼저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국 장관은 달랐다. 행사장에서 핸드폰이 보이지 않자, 분실 신고를 하고 즉각 강력계 형사를 투입했다. 제일 먼저 절도를 간주 한 것이다.
1) 핸드폰이 없어졌다.
2)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할 리가 없다.
3) 누군가 훔쳐 갔다. 감히.
일개 장관이 겨우 핸드폰 하나 분실한 것 가지고 공권력 투입을 지시했을 때, 예상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판과 지적은 관심이 1도 없는 거다. 왤까. 그래도 되니까 다. 그래도 되는 곳에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일진은 비판받지 않는다. 군림할 뿐.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강력 4팀 소속 형사들을 투입해 체육관을 수색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재향군인회 관계자 A씨가 휴대폰을 가져간 사실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A씨는 휴대폰을 습득한 후 인근 경찰서에 한 장관의 휴대폰을 분실물로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상황을 종결했다. 휴대폰을 돌려받은 한 장관은 A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을 누가 가져갔다면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적용할 수 있었기에 형사당직팀(강력4팀) 출동한 것”이라며 “습득자가 다른 경찰서에 분실물 접수한 것을 확인했고 불법영득의사가 없었기에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통상 휴대폰이 현장에서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당직팀이 출동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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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의 공권력 공백은 입 다물던 언론들은, 1) 장관 핸드폰 찾기에 경찰의 부끄러운 변명과 2) 습득자에게 무려 직접 감사 전화까지 하는 장관의 인간미 넘치는 동정을 열심히 전한다.
기억나지 않나? 군림하는 일진들보다 그들 비위를 맞추며 주변을 맴도는 놈들이 더 악질 이라는걸. 지금 대한민국은 폭력적, 유아적 멘탈리티가 지배하는 어느 학교 소각장 주변 불법 흡연구역과 같다.
덧
법무장관 핸드폰 분실 사건에 강력계 형사가 급파된 건 꼭 그들의 유아적 멘탈리티가 작동한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풀리지 않은 비밀번호가 풀려버리면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SOS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정권 보호를 위해 경찰이 꼭 헛일한 건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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