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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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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음사>

 

 

인도차이나의 젖줄, 메콩강

 

메콩강, 하늘과 맞닿은 곳, 아시아의 지붕인 티벳 고원에서 발원했다. 티벳 고원의 만년설이 녹아 생긴 생명수가 4,350km를 흐르며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베트남에 비옥한 삼각주를 만들어 주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그 대장정을 마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메콩강의 자식이다. 그들은 메콩강이 적셔준 땅에서 자란 곡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태평양을 향해 간다. 어떤 것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이 강 속에 깃든 심오하고 현기증 나는 물살에 실려 갈 뿐이다. 모든 것은 강이 지닌 힘의 표면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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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인’

 

이 메콩강 위에서 열다섯 살 프랑스 소녀와 그보다 열두 살 많은 중국인 남자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비정상적인 가족과 가난, 그리고 누군가의 폭압이 만들어 낸 고통과 증오 속에 있던 소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메콩강 위에서 ‘그’를 만나다

 

1929년, 나는 열다섯 살 반의 프랑스 소녀였다. 그때 나는 프랑스령 베트남에 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사덱’에서 ‘사이공’의 국립 기숙사로 가기 위해 메콩강을 건너는 배를 타야 했다. 가난과 신경증에 시달리는 홀어머니와 죽이고 싶은 오빠. 이 모든 것에 나의 삶이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열다섯 살 때, 메콩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고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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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내 모습은 어린 창녀와도 같았다. 나는 생사(生絲)로 만든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낡았고 속이 훤히 내비치다시피 했다. 소매는 없었고 가슴과 등이 심하게 파인 옷이었다. 그 옷은 예전에 어머니가 입던 옷으로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벨트, 아마도 오빠들의 허리띠 중 하나였을 가죽 벨트로 허리를 졸라매고 있었다.

 

반액 세일 때 어머니가 사 준 하이힐도 신고 있었다. 사람들이 곧잘 아름답다고 칭찬해 준 숱이 많고 부드러운 구릿빛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아 내렸고 버찌 빛깔의 입술연지를 진하게 발랐다. 이보다 더 대담한 것은 그날 내가 남성용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모자는 장밋빛이 도는 일종의 펠트 모자로 커다란 검은 리본까지 달려 있었다. 나는 볼품없이 야윈 내 얼굴이 그 모자 때문에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모자를 사랑했다.

 

펠트 모자를 쓴 소녀가 강물의 레몬 빛을 온몸으로 받은 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나룻배의 갑판 위에 홀로 서 있다. 남성용 모자가 그 장면을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것이 유일한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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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가 탄 배에는 검은 자동차 한 대가 실려 있었고, 그 안에는 퍽 우아한 남자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이공의 금융가들이 즐겨 입는 유럽 스타일 옷을 입었으나 백인이 아니었다. 식민지의 백인 여자는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그 우아한 젊은 부자가 고급 자동차에서 내려 영국제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 걸어올 때, 나는 직감했다. 나는 더 이상 원주민용 버스로 여행하지 않게 될 것이며 앞으로는 고급 자동차가 나를 학교와 기숙사에 데려다 줄 것임을. 그리고 시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장소에서 저녁을 먹게 될 것임을. 나는 그의 고급 자동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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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검은 승용차 안으로 들어간다. 차 문이 다시 닫힌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나른함이, 일종의 피로가 갑자기 온몸에 퍼진다. 강 위의 불빛이 흐려지면서 보일 듯 말 듯하다. 가볍게 귀가 먹먹해지고, 사방에 안개가 퍼진다.

  

 

사막 같은 어머니의 삶과 죽이고 싶은 큰오빠

 

어머니는 지푸라기에 매달린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의 대상은 내가 아닌 큰오빠였다. 작은오빠는 사이공의 말단 회계사가 되어야 했으며, 작가를 꿈꾸던 나는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수학 교사를 목표로 공부해야 했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서였으며, 오직 큰오빠를 향한 어머니의 지독한 편애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 손댄 사업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삶에 대한 암담한 절망, 어머니는 날마다 그 절망에 시달리며 지냈다. 그 절망 속에서 나는 큰오빠를 죽이고 싶어 했다. 어머니의 주위는 온통 사막이었고, 그 사막은 곧 큰오빠였다. 큰오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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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편을 피우러 가기 위해 심부름꾼들의 돈을 훔친다. 그는 어머니의 돈도 훔친다. 장롱을 뒤져서 훔친 돈으로 도박을 한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앙트르되메르 지방에 집을 한 채 샀다. 그 집은 우리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는 계속 도박을 한다. 어머니는 빚을 갚기 위해서 그 집을 판다.

 

그 무렵, 나는 큰오빠의 죽음을 기도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다. 죽음의 공모자는 어머니였다. 돈이 바닥나면 모든 게 끝장일 때, 어머니는 딸이 나이 어린 창녀 같은 옷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허락했다. 아마도 어머니는 딸이 돈을 벌어온다면, 어떤 일을 해도 막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면전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큰아들을 제거해 버리고 싶었다. 그것을 통해 어머니를 벌하고 싶었다. 고통, 증오, 죽음, 가난...... 이것들이 나를 지배할 때 고급 자동차를 탄 중국인 부자가 나에게 나타났다. 

 

 

그와 첫 경험을 하다

 

그날은 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는 날마다 자동차를 타고 와서 나를 학교에 데려가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기숙사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어느 목요일 오후 그가 기숙사로 찾아와 나를 ‘콜랑’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로 데려갔다. 나는 가벼운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나의 옷을 벗기지도 않고 미친 사람처럼 나를 사랑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그에게 이 집으로 데려온 다른 여자들을 다루듯 나를 대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의 원피스를 벗겼다. 하얀 면으로 된 작은 속치마마저 벗겼다. 그는 그렇게 알몸이 된 나를 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내 옆에 누운 그는 다른 쪽으로 돌아눕더니 곧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내 쪽으로 돌려 눕혔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살갗은 놀랄 만큼 부드러웠고 말랐고 털도 없었으며 근육도 없었다. 마치 병자 같았다. 나는 그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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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성기의 부드러움을, 살갗의 부드러움을 손끝에 느낀다. 그 금빛을, 그 미지의 새로움을 그녀는 어루만진다. 그는 신음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가증스러운 사랑에 빠져 있다.

 

그가 울면서 그것을 했다. 아마 나룻배 위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때부터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출혈을 한 사실을 몰랐다. 그가 발견하고 나에게 아팠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지금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집의 가난에 대해 말했다. 그는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또다시 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에게 그걸 해 주세요. 그는 그대로 했다. 피가 들끓는 속에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정말로 거의 죽을 지경으로까지 끌고 갔다.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그가 내 어린 젖가슴을 물고,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강렬한 쾌락에 두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고통이었던 그것은 점차 사그라들면서 쾌락으로 바뀌었다. 나는 천천히 고통에서 빠져나와 향락의 바다로 들어갔다. 

 

형체가 없는 바다, 비길 데조차 없는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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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나에게 건네었다.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를 통해 저녁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다시 리본이 달린 남성용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고 입술에는 짙은 루주를 발랐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대로 중국식 오케스트라가 있는 어떤 거대한 식당으로 갔다.  

 

 

‘그’와 내 가족의 식사

 

그의 아버지는 300채의 집을 갖고 있는 부자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파리로 보냈으나, 그는 공부를 하지 않고 떠돌았다. 그것을 안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열두 살이 어린 나를 두려워했고, 자신의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우리의 관계가 계속된 1년 반 동안 내내 나는 고통을 느꼈다. 내가 그를 나의 가족에게 인사시키겠다고 말하자 그는 도망치고 싶어 했다. 나는 웃었다.

 

나는 그가 자기 아버지와 맞서서 나를 사랑하거나,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거나, 나를 데리고 도망칠 용기가 없음을 깨닫는다. 두려움을 넘어 사랑할 힘이 없기 때문에 그는 곧잘 운다. 그의 영웅심, 그것은 바로 나이고, 그의 노예 근성,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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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랑의 큰 중국 식당이 제공하는 훌륭한 식사와 함께 그와 우리 가족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값비싼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를 보지도 않았다. 오직 어머니만이 몇 마디 말을 했으나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엄청난 가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음식값을 치렀고 우리 가족 모두가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아무도 고맙다고 말할 줄을 모른다. 그들은 그를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 불편한 식사 자리를 벗어나 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했지만 큰오빠가 ‘수르스’에 가서 그의 돈으로 술 마시고 춤추고 싶어 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항상 큰오빠의 말을 따라야 했다. 나는 그에게 큰오빠의 말을 전달했다.

 

우리는 모두 마르텔 페리에 술을 주문한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재빨리 잔을 비우고 두 번째 잔을 시킨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금방 취한다. 그들은 여전히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심하게 욕설을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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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르스에서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거의 눈물을 글썽일 듯한 불쌍한 표정으로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그에게 우리 가족은 늘 이렇다고 말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돌로 된 가족이다. 어떤 접근도 불가능한 두꺼운 퇴적물 속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단지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

 

콜랑의 만남 이후 어머니의 발작적인 광기가 더 심해졌다. 그것은 내 연인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나에게 나타난 연인은 내 어머니의 인생에 일어난 급작스러운 공포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영영 결혼도 못 하고, 영원히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고, 타락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이따금 나를 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나를 때리며 옷을 벗겼다. 내 속옷과 내 몸의 냄새를 맡으며 중국 남자의 향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한 번은 내 딸은 창녀라고 소리치며 내가 가문을 더럽힌 개보다도 못한 것이 되었다고 울기도 했다. 내가 갇혀 있는 방 벽 뒤에는 큰오빠가 있었다. 큰오빠는 어머니에게 나를 때리길 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나를 때려서라도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머니의 광기는 내가 당신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독신자 아파트로 돌아온다. 우리는 연인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의 광기와 큰오빠의 군림 앞에서 나는 점점 더 그에게 빠져들고 그에게 집착했다. 때때로 나는 아예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그와 잤다. 가끔 학교도 결석했다. 함께 잘 때면 그는 나를 목욕시켰다. 씻기고 닦아주고 나를 껴안았다. 내 몸에 파우더를 뿌려 주고 옷을 입힌 후 또다시 나를 껴안았다. 나처럼 나에 대한 그의 집착도 점점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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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인생의 애첩이다. 그는 내가 다른 남자와 만날지 모른다는 끔찍한 불안 속에서 지낸다.

 

그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내가 백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겁이 많았고 나약했다. 나는 그런 그를 안심시키고 달래야 했다. 우리의 관계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게 되었고,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은 갈수록 의혹과 경멸에 찬 것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더 대담해져 학교 앞에서도 서로에게 키스를 했다. 키스 후 그가 울 때도 있었다. 그의 울음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그의 아버지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오래 살수록 나와 이루어지려 하는 그의 희망은 사라져 갈 테니. 

 

 

메콩강 위의 이별

 

그는 아버지에게 빌었다. 그러니 저의 이런 열정을, 이런 광기를, 백인 소녀에 대한 이런 미칠 듯한 사랑을 가질 기회를 단 한 번만 허락해 주세요. 그는 아버지에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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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가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빌고 요구했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자신에게 찾아온 이 새롭고 강렬한 사랑을 지키고 싶다고. 자신의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사랑이라고.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단호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차라리 네가 죽는 걸 보는 편이 낫다고 차갑게 말했다.

 

나 역시 그를 떠나야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며 어머니는 조롱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영원히 식민지 땅에서 살 순 없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이곳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곧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이제 그와의 이별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그에게 몰두했다.

 

우리는 항아리에 담긴 차가운 물로 함께 목욕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사랑은 아직도 죽고 싶을 만큼 열렬했고, 그것은 이젠 위로할 길 없는 희열이었다.

 

그와의 만남이 메콩강 위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별도 메콩강 위에서 이루어졌다. 나를 태울 배를 예인선이 끌고 왔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 배는 아주 길고 힘찬 기적 소리를 세 번 울렸다. 이제 저 배는 나를 태우고 중국해, 홍해, 인도양, 수에즈 운하를 지나갈 것이다. 배는 끔찍한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서서히, 강에서 미끄러져 가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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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급진 검은 자동차가 보였다. 그 자동차는 해운 회사의 주차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었다.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나는 뱃머리 난간에 팔을 괴고 기대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자동차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항구가 시야에서 사라졌으며 곧이어 육지도 사라졌다.

 

그녀가 운 것도 첫 번째 작별의 고동을 울렸을 때였다. 배의 트랩이 올려지고 예인선이 배를 끌어당겨서, 배가 육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그때였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울었다.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이었고, 또 이런 종류의 연인들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작은오빠의 눈에 띄지 않게 그녀는 괴로워했다.

 

 

이별 그 후....

 

전쟁이 터졌고 베트남은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1942년 그곳에서 작은오빠가 죽었다. 어머니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큰오빠는 건달로 살았다. 갱도 되지 못한, 질 낮고 볼품없는 건달이 되었다. 언젠가 내 집으로 도망쳐 왔고 내 모든 돈을 훔쳐 다시 내 집을 나갔다. 어느 날이었다. 전쟁은 끝났고 나는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을 거치며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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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그임을 직감했다.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중국 억양이 나에게 그와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나를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법

 

소설 속 ‘나’의 인생을 접하고 나서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고통’이었습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힘든 것이로구나, 만만한 것이 아니로구나’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작품 속 ‘나’뿐만이 아니고 그녀의 어머니와 ‘그’ 등 모두가 고통스러운 인생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었고 그 괴로움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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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누구에게도 인생은 힘든 것이겠지요. 이 소설의 작가 뒤라스의 인생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가족 중 가장 사랑했던 작은오빠가 중일전쟁 중에 사망하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첫 남편인 ‘로베르 앙텔므’가 게쉬타포에 체포되어 유태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68혁명에 참여한 진보적 인사였지만 알콜 중독에 시달렸고, 그녀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은 40년 연하의 애인이었습니다. 

 

“태어난 이유도 없고 사는 이유도 없고 죽는 이유도 없는 우리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쇼펜하우어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생이 즐거움보다는 고통의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몸과 마음 모두 말입니다. 어느 순간 신체적 질병이 찾아올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고 불편했던 수많은 시간을 떠올려 보면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고통의 바다인데 우리는 희망이라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그 바다를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 어리석은 뱃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해(苦海)’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겠지요.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 판다로스, ‘아폴로 기념 경기 우승자에게 바치는 축가3’-

 

인생이 고해라면, 그것이 당연하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야겠지요. 그리고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입니다. 고통 없는 인생이란 이루지 못할 갈망에 애쓰기보다는 그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입니다.

 

마흔여덟 번째 인생으로 소설 ‘연인’ 속 ‘나’의 사랑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운명처럼 만나 광기 어린 사랑을 한 ‘나’와 ‘그’. 두 사람의 1년 반에 걸친 사랑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아마도 그 둘은 이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전화를 통해 전한 마지막 말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나누었던 운명적인 사랑을 말입니다. 이 사랑이 그들이 찾은 최선의 가능한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말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이 고통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주 강렬하게, 너무 강렬해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나를 사랑하듯, 그는 그렇게 이 고통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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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옹’에서 어린 소녀 ‘마틸다’가 ‘레옹’에게 묻습니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레옹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언제나 힘들지”

 

그리고 레옹은 한 손에는 화분을, 다른 한 손에는 마틸다의 작은 손을 잡고 가혹한 세상 속으로 걸어갑니다.

 

고통을 인생의 친구로 여기며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그’의 사랑처럼, 마틸다의 손을 잡은 레옹처럼 고통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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