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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방은행 중에 대구은행만 가능한 이유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은행의 경영권, 영업 관행, 제도 개선에 대한 태스크포스(TF)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7월 5일 드디어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내용은 은행권 경쟁 촉진, 금리체계 개선, 손실 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확대, 보수체계 개선 등입니다. 그중 주목받는 것이 '은행업 상시진입 허용'입니다.

 

현재 한국 은행업은 각종 규제와 법률로 규제합니다. 당연히 새로운 사업자가 은행업을 하려고 할 때 언제나 가능하지 않지요. 정부가 일정 기간 공고를 내고 지원자를 받고 이후에도 정부의 각종 심사를 통과해야 사업이 가능한 터라 은행업은 자연스럽게 과점(寡占) 체제가 될 수밖에 없었죠. 신규 진입이 어려웠던 은행업을 상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은행업 상시진입 허용'의 골자입니다. 이에 따라 지방은행인 대구은행(DGB금융그룹 소속)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것이라 기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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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7월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브리핑했다(출처-<연합뉴스>).

 

현 대구은행 같은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간혹 지방은행을 마을금고나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지방은행도 엄연한 1금융권 은행입니다. 시중은행과 다른 점은 자본금과 같은 규모의 차이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영업 구역의 제한입니다. 과거에는 본점 소재 구역 외 특별시, 광역시만 영업이 가능했고 2015년 규제가 완화되긴 했지만 타지역에서 영업하려면 허가가 필요하거나 제한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산·경남은행(BNK금융그룹 계열사), 광주은행·전북은행(JB금융그룹 계열사), 제주은행(신한금융그룹 계열사) 등 여러 지방은행 중에 왜 하필 대구은행일까요? 국민의힘과 보수의 텃밭 대구에 본점을 둔 은행이라서? 지배구조와 자본금 등 은행법에 요구하는 기준을 대구은행만 갖췄기 때문입니다. 현재 은행법상 시중은행으로 영업하기 위해서는 자본금 1,000억 원 이상, 산업자본 4% 미만, 동일인 지분 10% 미만 등 요건이 있는데 주요 지방은행들의 자본금과 주주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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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은행과 제주은행만 시중은행 전환요건을 충족합니다. 제주은행은 제주도 외 영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지방은행들 사이에서도 규모가 영세하여 사실상 전환이 힘듭니다. 결국 지방은행들 중 대구은행만 전환요건을 충족했다고 봐도 되겠죠.

 

2. 과점을 깰 수 있을까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시중은행은 20개가 넘었습니다. 이후 정부의 주도, 묵인하에 은행들의 인수합병이 일어났고 살아남은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이룹니다.

 

이후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켰지만 사실상 인터넷 은행들은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한계점은 기업상품 취급이 불가능한 점입니다. 비대면거래 의무화 등으로 새로운 제도에 익숙하고 적응이 빠른 개인은 이용이 용이하나, 복잡한 서류와 절차가 있는 은행업무를 하는 기업은 이용이 불가합니다. 고령자의 이용도 불편하기에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도 시중은행에 비해 영세합니다. 지난해 대비 증가했다고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총자산은 카카오뱅크-39조, 토스뱅크-23조, 케이뱅크-16조로 1개 시중은행 자산규모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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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각 사>

 

그렇다면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 정부가 노리는 이른바 '메기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과점 체제를 깨고 은행들이 서로 경쟁하여 소비자에게 더 나은 금융서비스 제공이 가능할까요? 대구은행 측은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 전국으로 영업망을 넓히고, 사명도 대구은행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고 합니다('iM뱅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중신용자 대출을 늘리고 비대면 거래를 활성화해서 시중은행과 경쟁하겠다지만 이것만으로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은행 규모에서 차이가 엄청납니다. 3월 말 총자산 기준으로 국민-493조원, 신한-445조원, 하나-471조원, 우리-420조 원, 농협-383조원 규모지만 대구은행은 67조 정도로 최대 7배가량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3월 말 기준 대구은행 영업점은 대구·경북지역 180여 곳을 포함해 전국에 200여 개입니다. 5대 시중은행 영업점 총합은 약 4,000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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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특히나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로 시중은행 점포 수는 줄어가는데 대구 은행만 역으로 점포 수를 늘리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은행권 대출과 예금의 70% 정도를 5대 시중은행이 점유하는 터에 대구은행이 독점 체제를 깰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3. 과점 시장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안

 

단적으로 말해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시중은행을 늘린다는 것은 너무도 1차원적인 발상입니다. 시중은행 5개는 경쟁하기에 너무 적고, 6개는 경쟁하기에 적합하다는 걸까요? 시민 편리를 목적으로 은행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대출금리를 내리게 하고 싶다면 은행별 다양한 상품과 상품별 금리 등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도록 고시하고 운영하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또한 여러 차례 이야기가 나왔던 특화은행이나 금산분리 완화 등을 통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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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각 사>

 

오히려 7월 5일에 발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시중은행, 지방은행, 인터넷 전문은행 신규인가 추진'과 '저축은행 경쟁력 제고를 통한 예금, 대출 분야 경쟁 확대'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카카오뱅크·토스뱅크·케이뱅크에 이은 4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 후보로 제주은행이 지목됩니다. 제주은행은 시중은행의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규모 등 제반여건을 고려했을 때 아마 인터넷전문은행으로의 전환 쪽에 더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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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은행 본사

출처-<각 사>

 

'저축은행 경쟁력 제고를 통한 예금·대출 분야 경쟁 확대'는 저축은행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은행과의 경쟁 촉진과 사전적 구조조정을 위해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저축 은행의 영업규제 합리화를 말합니다. 저축은행들의 인수·합병을 활성화하여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지방은행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저축은행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성장시킬 만한 자본력이나 건전성이 미치지 못하고 있기에 실효성이 있는 제도인가 되묻게 됩니다. 가장 규모가 큰 SBI저축은행(16조)과 OK저축은행(13조)의 경우 합병하더라도 겨우 30조가량의 자산규모이며 상위 10개 저축은행이 합병해야 겨우 지방은행 1개 자산규모가 됩니다. 

 

오히려 저축은행의 인수·합병은 시중은행을 상대로 한 제도라 여깁니다. 현재 5대 시중은행의 지주회사들은 각각 저축은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저축은행들이 부실화된 저축은행을 인수·합병하여 저축은행 부실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 은행권에 책임 전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저축은행의 PF(Project Financing: 사회간접자본이나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대출 부실 우려와 최고 8%가 넘는 대출 연체율 등을 고려했을 때, 조만간 저축은행 부실화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지요.

 

4. 메기의 상위 포식자

 

이렇게 보면 조금은 의아했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라는 퍼즐이 맞춰지게 됩니다. 지방은행들에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기회를 열어줬다지만 실제로 BNK부산경남은행의 경우 롯데,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삼양사의 지분 보유로 인해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요건을 충족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을 고려하니 제외되고, 오직 대구은행만이 가능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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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B금융그룹 김태오 회장

출처-<한국금융신문>

 

이번 발표 이후 모든 언론은 일제히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습니다. 대구은행도 언론을 통해 시중은행 전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거리를 주고 있죠. 윤석열 정부가 외쳐왔던 금융개혁을 이뤄냈다는 명분을 챙기고 가장 크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이긴 하지만,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된다고 하여 은행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오히려 시중은행으로 전환 후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무리한 금리 경쟁을 하다가 기존 시중은행에 인수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듭니다.

 

어차피 대구은행만 충족할 수 있었던 시중은행 전환 요건을 고려했을 때 대구은행의 결정이 온전히 대구은행만의 의지인지, 정부와 밀약이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같은 결정으로 대구은행은 미꾸라지가 있는 수조에 들어간 메기가 아니라 고래들이 헤엄치는 바다에 빠져버린 메기로 전락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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