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승리 후, 이스탄불 키시클리 지역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에르도안
출처-<로이터>
지난 5월 28일, 튀르키예 대선 결선에서 에르도안이 승리하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말했다.
『친애하는 친구, 당신의 승리는 튀르키예 정상으로 헌신적으로 일한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고, 독립적 외교정책을 추진한 것을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독립적 외교정책을 추진한 것을 국민들이 지지’
대통령 당선에서 ‘독립적 외교정책’이 갑자기 튀어나온 이유는 이렇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 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 제재에 들어갔을 때 튀르키예는 당당하게 이걸 거부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전쟁 동안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했고, 러시아와의 무역량은 더욱 증가했다. 서방에서 러시아를 제재하는데, 튀르키예는 이 틈을 타 꾸준히 수출을 늘리고 있다는 말이다.
러시아에 튀르키예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푸틴이 에르도안 당선을 기뻐한다면, 서방은 이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선거운동 기간, 미국과 서방 세계가 자신의 선거를 방해한다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3월29일, 당시 야당 단일 대선 후보 클르츠다로을루와 미국 대사 제프리가 공화인민당(CHP) 사무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출처-<링크>
실제로 대선 기간에 미국 대사가 야권 후보를 만났다. 이렇게 예민한 시국에 미국이 생각 없이 에르도안의 상대 후보를 만났을 리 없다. 마치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최적의 타이밍으로 본 듯했다. 2022년 튀르키예 인플레이션이 60%에 달한다는 말이 나왔고, 지진 사망자는 5만여 명에 육박했다. 거기다 튀르키예 야당 연합으로 내놓은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의 지지율이 45%를 넘어섰으니, 에르도안으로서는 위기감을 느꼈을 만하다.
콕 찍어 말하면, 에르도안과 바이든 대통령은 사이가 좋지 않다. 바이든은 에르도안을 대놓고 ‘독재자’ 취급했고, 백악관에도 초청하지 않았다.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 시절에 튀르키예에 대해서
“튀르키예는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튀르키예의 권력자로 앉아 있는 에르도안을 엿 먹이는 발언이었다. 바이든의 발언 이전부터, 에르도안은 이미 미국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2016년에 있었던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 때문이다.
2016년 7월15일, 튀르키예군 일부 세력이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시도하였으나 하루 만에 진압되었다.
출처-<NTV>
튀르키예 정부가 쿠데타 배후자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 그는 쿠데타 연루 사실을 부인하고, 현재 미국 망명 중이다.
출처-<AFP>
에르도안은 쿠데타 배후에 펫훌라흐 귈렌(Muhammed Fethullah Gülen)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미국에 머무는 귈렌을 튀르키예로 보내라는 요구를 미국에 했는데… 미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섰다.
“귈렌이 쿠데타와 관련됐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확실하게 선을 그은 미국과 에르도안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여기에 러시아제 S-400을 구입해 미국이 뒷목을 잡게 하고, 튀르키예에 있던 미국인 목사(브런슨 목사)를 구금해 미국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에르도안은 나토와 서방세계의 ‘눈엣가시’가 됐다.
달라진 튀르키예
조 바이든과 에르도안
출처-<Yetkin>
튀르키예 대선이 끝나고 미국과 서방세계(EU, NATO)는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바이든의 반응을 보면, 지금 서방세계가 에르도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재선을 축하한다. NATO 동맹국으로서 양자 관계 현안과 공통의 세계적 도전들에 관해 계속 공조하기를 기대한다.』
주목할 구절이 있다.
‘NATO 동맹국으로서...’
‘세계적 도전들에 관해 계속 공조하기를...’
세계적 도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그렇다면, 앞에 붙은 ‘NATO 동맹국으로서...’의 의미는?
“넌 NATO인데 왜 레드팀에 붙어 있니? 블루 팀으로 넘어와서 같이 협력해야지!”
라는 말이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방 국가들은 에르도안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다(겉으로만 보면 말이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편이었고, 에르도안은 푸틴과 쿵짝이 잘 맞는 관계로 보였다. 러시아에서 건넨 쿠데타 정보 덕분에 에르도안이 살아남았으니, 에르도안 입장에서도 푸틴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상황이 하나둘 뒤바뀌기 시작했다.
외교 카드는 이렇게 쓰는 겁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출처-<AFP>
『아무도 유럽에서 튀르키예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튀르키예도 장밋빛 안경을 써서는 안 된다.』
- 7월 11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발언 중 발췌
위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바로 전날 에르도안이 스웨덴의 NATO 가입에 긍정적인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에르도안은,
“스웨덴 NATO 가입,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까짓거 찬성해 주지 뭐!”
라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그동안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를 해 왔는데 ‘흐린 눈’을 하고 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참고로, 핀란드와 스웨덴은 지난해 5월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핀란드는 올 4월에 가입이 됐지만, 스웨덴은 헝가리와 튀르키예의 동의를 얻지 못해 가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7월10일, 나토 정상회담에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크리스터숀 스웨덴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출처-<AFP>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걸려 있었다.
첫째, F-16 팔아라
둘째, EU 가입할래
F-16... 이거 참 말 많고 탈 많다. 당장 운영하는 F-16 만해도 250대 가까이 된다. 튀르키예의 공군력,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S-400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미국의 F-35도 100대나 계약했다. 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등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나라다.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화물선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출처-<Reuters>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미국산 전투기 수입이 어려워졌다. 이때 느닷없이 전쟁을 일으킨 푸틴 덕분에 튀르키예의 살길이 열렸다. 당장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제하는 튀르키예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세계 밀수출 1위, 5위 국가다. 두 나라가 전쟁하는 동안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했고, 우크라이나가 식량을 수출하려면 튀르키예가 해협을 열어줘야 했다).
결국 미국은 F-16을 두고 튀르키예와 ‘딜’을 시작했다.
터키군이 보유한 F-16의 무장한 모습
출처-<링크>
미국: “너네… F-16 개량사업 어쩔 거야?”
튀르키예: “니들이 사업 엎었잖아!”
미국: “언제까지 티격태격할래? 이참에 털 건 털고... 다시 사이좋게 지내자.”
튀르키예: “그럼, 전투기 팔 거야?”
미국: “너 하는 거 봐서”
액수로만 200억 달러가 넘어가는 대형 계약이었는데, 튀르키예랑 관계가 어그러지면서 무산됐었다. 미국이 다시 제안한 ‘미끼’는 F-16 40대 수출과 244대에 달하는 튀르키예의 F-16을 업그레이드. 당장 튀르키예를 달래야 했기에 거래를 꺼냈지만, 미국은 튀르키예(정확히 말해서 ‘에르도안’)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을 어떻게 믿지? F-16 받자마자 푸틴한테 달려갈 수 있어!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하는데…”
튀르키예가 핀란드의 NATO 가입을 승인하자, 그제야 미국은 튀르키예가 보유한 F-16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계약(3억 달러가 약간 안 되는 계약이었다)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번에 스웨덴까지 승인하고 나면 나머지 F-16 계약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F-16과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지만, 이 말을 누가 믿겠나? 바이든과 에르도안은 ‘승인 먼저’, ‘F-16 먼저’를 말하며 서로 간을 보고 있는데 말이다.
푸틴 등에 칼을 꽂은 에르도안?
2022년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 참석한 에르도안과 푸틴 대통령
출처-<Reuters>
튀르키예 국내 정치는 모르겠지만, 국제 정치 무대에서의 에르도안은 배울 점이 꽤 많은 정치인이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몸값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았고, 미국과 러시아, 유럽 사이에서 ‘거래’를 해왔다.
물론 이러한 태도 때문에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이것이 무슨 큰 문제일까?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이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했다. 튀르키예에 ‘따뜻한 가스’를 안겨준 푸틴의 뒤통수를 친 것도 에르도안이다(까놓고 말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동맹에 목숨 거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조금 전까지 러시아에 딱 붙어 있던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푸틴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래서 미국은 에르도안과의 거래에서 끝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언제 그가 다시 러시아에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F-16 받고, EU 하나 더 얹어!”
에르도안은 튀르키예가 EU 문턱에서 50년을 서성였다고 생각했다. 튀르키예의 EU 가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NATO국가의 상당수가 EU에 가입했는데, 튀르키예는 여기서 빠져 있다며 EU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의 “아무도 유럽에서 튀르키예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이다.
얼마 전까지 러시아의 동반자였던 튀르키예. 느닷없이 푸틴의 뒤통수를 치더니…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준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터키를 방문해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났다. 회의가 끝나고 에르도안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출처-<Yetkin>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튀르키예의 중재로 포로 교환을 해왔다. 마리우폴 전투에서 80여 일간 항전하다 러시아군의 포로가 됐던 5명의 지휘관이 있었는데, 러시아는 포로 교환 협상에서 단서 조항을 달았다.
“얘들은 우크라이나로 보내면 안 돼. 전쟁 끝날 때까지 튀르키예에서 데리고 있어야 해.”
하지만 에르도안, 이번에도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을 우크라이나로 돌려보냈다. 젤린스키는 이들 5명의 지휘관을 데려가면서, “이들이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한다.”라고 인사했다.
이때가 7월 8일이었다. 소식을 접한 러시아는 발끈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NATO 정상회의 전에 NATO 동맹국들이 ‘착한’ 에르도안을 압박한 것이라 생각했다(더 솔직히 말하면 에르도안을 붙잡으려 애써 눈을 감았다고 할 수 있다).
포로를 보낼 때 에르도안이 젤린스키에게 덕담을 건넸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러시아로서는 혈압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에르도안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러시아를 배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르도안이 다시 줄타기에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튀르키예의 입장 변화, 다음 편에서 조금 더 깊게 드가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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