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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는 6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항만 하역 노동의 구조적 변화가 야마구치구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봤다. 항만 하역 노동의 기계화・일관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용직 노동자를 확보, 관리하는 야쿠자 조직의 역할이 작아졌다. 결국 고베항을 큰 수익원으로 여기던 야마구치구미는 큰 경제적 바탕을 상실한 꼴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야마구치구미가 새로운 시노기(シノギ, '야쿠자나 폭력단의 수입 또는 수입을 얻기 위한 수단'을 뜻하는 속어)를 찾아 토건업에 진출하는 모습을 엿보고자 한다.

 

1. 야마구치구미, 토건업에 진출

 

딱히 숙련된 기술이 없으며 아무 일이나 해서 그날그날의 끼니를 챙겨야 하는 노동자들을 부리고 거느리는 업무는, 근대 야쿠자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었다. 특히 토건 노동 분야는 야쿠자들에게 항만 노동과 똑같거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활동 영역이었다. 그래서 건설 현장에는 야쿠자의 그림자가 꼭 붙어 다녔다. 야마구치구미 3대 두목 타오카 카즈오가 1946년에 야마구치구미를 주식회사로 등기했을 때, 그 사업 목적을 "토목 건설 하청업"으로 신청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토건업 노동자의 관리・통솔이 야쿠자들의 전문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60년도 중반에 이르러서야 타오카(3대 두목)가 본격적으로 토건업에 진출하게 됐는지는 불가시의하다. 일단 46년 즈음엔 토건업에 대해 야마구치구미가 항만 하역 분야에서 보이던 관리・통솔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60년대 야마구치구미 내부에 산하 기업을 운영하는 "경제 전담팀" 문제 해결에 완력이 필요할 때 나서는 "폭력 전담팀"은 있어도, 인부들의 오야카타(공인이나 제자를 지도・보호하는 스승과 같은 존재)가 돼서 거느리는, 말하자면 “현장 노동자형" 구성원은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야마구치구미는 어떤 식으로 토건업에 파고들려 한 것인가. 바로 기존 기업에 대한 잠식이었다. 즉 이미 사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토건 회사의 운영에 개입해서 토건 사업에서 거둬진 이익을 빨아들인다는 수법이다. 이 방식은 당시 야쿠자 조직으로서는 생소한 이익 창출 방식이었다. 이 새로운 그림을 그린 이는 역시, 야마구치구미 사업 부문의 총재 오카 키요시(岡精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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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 키요시(岡精義)

 

2. 나카니시 공무점(中西工務店)

 

일본어에 공무점(工務店)이란 단어가 있다. 건설, 건축, 토건을 업으로 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야마구치구미의 사업 부문을 이끌던 오카 키요시는 2차대전 중에 이미 토건업을 비롯 택시, 레미콘 사업을 하는 나카니시 히토시(中西均)와 서로 아는 사이였다. 스스로도 미츠토모기업(三友企業)을 창립해서 그 정관상 사업 목적으로 토건업을 기재하기도 했었다. 오카는 나카니시에게 다가가 그가 운영하는 토건 회사인 '나카니시 상점'이 겪는 여러 트러블을 해결해 주었다. 여기까지는 기존 야쿠자 업계가 종사한 경비, 경호 도급이었다. 하지만 오카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

 

오카는 트러블 처리 외에도 나카니시에게 고민거리가 생길 때마다(그야말로 정성껏)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러다 어느새 나카니시 상점의 임원으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바로 일반 기업의 운영 체제에 야쿠자가 구조적으로 편입된, 선구적 사례다. 1962년, 영세 토건 회사였던 나카니시 상점을 공무점으로 새로 설립할 때, 오카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 오카 본인은 물론 보스 타오카 카즈오 아내, 타오카 후미코(田岡文子)가 새 회사에 다액의 출자를 했다. 야마구치구미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야마구치구미는 일반 기업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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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카 카즈오 사후, 남편을 대신 야마구치구미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타오카 후미코.

 

야마구치구미 핵심 인사를 자기 회사 임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카니시에 있어서도 남는 장사였다. 당시(아마도 아직까지도) 토건 업계에서는 입찰에서 담합은 다반사였다. 나카니시에게 야마구치구미라는 백그라운드는 담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데에 요긴했다. 발주자가 임의로 시공사를 뽑는 수의 계약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즉

 

"나카니시 뒤에는 야마구치구미가 있다"

 

는 인식이 퍼지면서 나카니시 공무점은 수주하는 업체, 수주 내용, 수주액 등 입찰-수주 과정을 전면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수의 계약에 있어서도 야마구치구미의 이름은 발주자에 대한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지명이나 계약을 거부하기가 큰 부담이 됐던 것이다. 나카니시 공무점의 수익은 급속하게 늘어났다. 야마구치구미 입장에서도 수익의 일부를 환류해 주는 나카니시 공무점은 괜찮은 자금원이었다.

 

이에 더해, 야마구치구미는 나카니시공무점이 맡은 건축 현장에 일어나는 소란에서 회사를 지켜 주는 보수로 이른바 모리료(守り料 경비료)를 받았다. 이후 건축 현장에서의 모리료는 사실상 제도로서 정착돼 버린다. 뿐만 아니다. 고베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를 도급받게 된 원청 업체는 꼭 야마구치구미에 '인사' 명목의 모리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관습이 생겼다.

 

물론 원청 업체들에 받는 모리료가 완전 불로소득은 아니었다. 술집이나 유흥업소가 내는 '미카지메료'(이것 역시 경비로 비슷한 개념)도 그랬듯이 야쿠자 조직이 모리료를 받는 이상,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가오'를 지킬 수 있었다. 대형 건설사가 수주한 대규모 공사에서는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공사를 나눠 맡기 마련이고 하청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중에는 성질이 거친 건달이나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자 비슷한 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 그들이 일으키는 트러블을 대형 건설사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 곤란한 것들이었다. 적어도 형식상 합법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면, 만만찮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으며, 거칠고 사나운 노동자들을 제압할 만한 담력(膽力)과 완력을 갖춘 엘리트 사원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건축 현장에서 발생하는 트러블 처리를 아웃소싱하는 것은 대형 건설사나 원청 업차 입장에서도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3. 야마구치구미의 토건업 진출의 의미

 

나카니시공무점의 경영을 계기로 토건 업계에 진출하며 새로운 활로를 찾은 야마구치구미. 그런데 그 새로운 길이 단순한 새로운 돈벌이 수단의 확보에 그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이다.

 

애당초 야마구치구미는 오키나카시(沖仲仕, 앞바다에 정박한 배에서 일하는 항만 노동자(이 연재 제2회 참조-기사링크)를 통솔하는 조직이었다. 항만 하역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 조직을 모체로 한 오야카타(親方)-코가타(小方) 관계의 연장선에 있는 오야붕-꼬붕 관계에 기초한 야쿠자 조직이었다. 즉 야마구치구미의 본래적 성격은 노동자들이나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공동체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야마구치구미의 강점이자 근대 야쿠자로서의 본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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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한, '기존 회사의 경영에 관여해 자금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식'은 그러한 근대 야쿠자의 모습에서 일탈했다는 것을 뜻한다. 바꿔 말하면 노동자나 하층 사회에 기반을 두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벗어나 지배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야마구치구미의 토건업 진출은, 단지 돈벌이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야쿠자 조직의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60년대에 들어서, 야쿠자의 마지막 경제적 기반인 건축∙토목 분야에도 기계화의 파도가 밀어닥친 것도 상기해야 한다. 초기에는 못과 망치가 전동드릴로 대체되었고, 70년대에는 톱, 대패까지도 기계화되었다. 항만 노동 분야에서 기계화가 진행된 결과 노동자를 모으고 관리하는 하청 업체가 쇠퇴했다. 기계 대여 업자가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노동자를 확보해서

 

“노동자랑 세트로 기계를 파견한다.”

 

는 형태가 건축 현장마저 지배하게 된 것이다. 기기 발달은 지역 사회나 일터에서 야쿠자의 영역을 밀어내고 있었다. 야마구치구미는 일본 사회 전체를 휩쓴 고도성장의 파도 속에서 일찌감치 스스로 노동 현장이나 지역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존 기반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야마구치구미의 이러한 변화는 조직 전체의 변화를 초래했다.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기업을 운영해서 돈을 번다는 수익 구조가 무너지고 오로지 폭력만을 배경으로 해서 이권을 확장하며 확보하는 순수 폭력 조직으로 성격을 바꿔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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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야마구치구미 장례식에 참석하는 두목 타오카 카즈오와 간부들

 

【오늘의 야쿠자 용어(19)…갓파(かっぱ)와 안코(あんこ)】

 

이 코너에서는 되도록 본문과 관련된 용어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제 슬슬 소개할 만한 용어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본문과 전혀, 하나도 상관없는 용어를 소개해 드릴게요.

 

야쿠자 삶을 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를 때가 종종 있을 겁니다. 경찰이나 검찰에 조사받고 재판받아 징역형이 선고되면 교도소로 가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교도소에서는 같은 성별끼리만 모아놓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인간으로서의 기본 욕구는 교도소에 같은 성별끼리만 모아 놓는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꼭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남자끼리 서로 사랑을 나누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표현하기 약간 민망한 스타일로랄까, 유형무형을 불문하고 어떤 위력을 행사함으로써 욕망을 만족시키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저는 아직 수감을 당해 본 적 없어서 실태가 어떤지 정확히 모릅니다만).

 

그래서 말이죠. 그런 사랑의 교환 내지 억지스러운 관계와 관련된 은어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갓파(かっぱ)와 안코(あんこ)입니다. 각자가 맡는 역할에 따라 갓파가 되며 안코가 되는데요. 남다르게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필자는 그 역할을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을 알지 못해 그쪽 분야에 밝은, 딴지일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물어봤습니다. 죽돌 편집장의 답변은, 갓파는 "탑", 안코는 "바텀"이라고 하면 된답니다(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여튼. 갓파는 체인계 스시집 이름으로도 쓰이는 그 갓파인데 원래는 강에 산다고 전해지는, 인간의 상상이 낳은 동물입니다. 인간하고 개구리하고 거북의 혼열 같은 외모를 갖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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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