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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튀르키예 추파를 퇴짜 놓은 유럽

 

2차대전 때까지 중립국이었던 튀르키예는 나토 가입과 동시에 친 서방 국가가 됐다. 이때 튀르키예가 서방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소련 때문이다.

 

"저 새끼들 또 우리한테 시비 걸려고 한다!"

 

세계 패권 국가로 발돋움한 소련과 맞서 싸우려면 서방의 힘이 필요했다. 툭 까놓고 말해 러시아와는 사이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오스만 시절부터 러시아가 내려와서 계속 싸웠다.

 

친 서방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1991년에 있었던 걸프전 당시 나토군 공군기들은 튀르키예의 인시르리크 공군 기지에서 날아갔다. 같은 무슬림 형제 국가를 공격하는 터임에도 튀르키예는 나토 편이었다.

 

이런 친 서방 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었다. 에르도안 정권의 등장 때부터다.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튀르키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냉전이 사라지고, 미국 일국 패권 체제에서 다시 다극 체제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튀르키예는 엄청난 '배신감'을 서방 세계로부터 느껴야 했다.

 

"아니, 씨바 냉전 시절에는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소련 침공 때 우리 공군기지 이용해 먹었고(냉전 시절, 미국은 튀르키예 공군기지에서 U2 정찰기를 날렸고 이를 막기 위해 소련은 미사일로 요격했다), 우리가 소련 막는 최선봉이라고 했잖아! 근데, 싸울 때는 같은 나토면서 같이 경제권 합칠 때는 왜 쏙 빼는데?"

 

튀르키예는 유럽의 일원이 되고 싶었으나 유럽은 튀르키예를 상대하지 않았다. 당장 튀르키예인들이 유럽에 이민하여서 받는 차별과 반이민 정서는 튀르키예의 민족감정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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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에 영토 3%를 걸치고 있는 튀르키예

출처-<나토 홈페이지>

 

당장 독일만 해도 전체 인구의 9%에 달하는 720만 명 정도의 이민자가 있다. 이들 중 220만 명 정도가 튀르키예 출신이다. 튀르키예 국적을 가졌지만,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275만 명의 튀르키예인이 독일에 산다. 튀르키예는 유럽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유럽은 튀르키예를 2등 시민 정도로 바라봤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펜스' 정도 위치로 봤다.

 

"너희 오냐오냐해 줬더니, 우리랑 같은 급으로 아는데.. 그거 선 넘는 거다."

 

그리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 게 바로 '쿠르드족' 문제였다. 유럽은 툭 하면 튀르키예의 약점인 쿠르드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너희 군대 동원해서 1984년부터 1999년까지 죽인 쿠르드족이 4만 명이 넘어. 야, 너희가 백정이야? 고문도 했다면서? 쿠르드족 출신들 모두 모아서 쉽게 관리하겠다고 강제 이주하고.. 네들이 사람이야? 이러고 EU 들어오겠다고? 꿈 깨라 이 백정놈들아!"

 

튀르키예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쿠르드족이 튀르키예 전체 인구의 19%나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계속해서 독립을 주장했다. 이걸 그냥 내버려 뒀다간 나라가 어찌 될지는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터이다. 그런데 EU는 이걸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거다.

 

2. 에르도안의 묘책: 쌈, 마이웨이

 

에르도안은 다부토을루(Ahmet Davutoğlu) 외무장관을 기용하면서 본격적인 제3의 길을 모색한다. 다부토을루.. 이 아저씨 생각은 간단하다. 서구 중심 국제질서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튀르키예는 현재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정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였다. 쉽게 말하면 오스만튀르크 시절까진 아니어도 '지역 패권' 정도는 가보자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 튀르키예가 선택한 정책이 바로 '갈등 제로 정책(zero-problem policy with neighbourhood)'이었다. 이 정책은 튀르키예가 주변국(이슬람 국가)의 긴장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거다.

 

"야야, 싸우지 마! 좋은 말을 두고 왜 주먹질이야? 자자, 좋게 좋게 말로 풀자고.. 이 형한테 말해봐. 형이 다 들어줄게."

 

이런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튀르키예는 국제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이게 꽤 설득력 있는 게, 튀르키예는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민족적 유대는 물론, 종교적 연대도 가능했다. 즉, 다른 서방 국가와 달리 상당히 많은 '접촉면'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이를 기반으로 튀르키예는 경제 협력 등 다양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중동, 유라시아, 지중해 연안에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야야, 50년 넘게 유럽 애들 비위 맞춰 줬는데, 돌아오는 건 무시밖에 없었어. 이제 우리끼리 뭉쳐서 살아보자!"

 

에르도안이 괜히 이슬람 원리주의에 힘을 싣고, 지역 패권을 잡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게 아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구상이 날아가 버린 사건이 터진다. 바로 '시리아 내전'이었다.

 

3. 시리아 내전, 튀르키예를 왕따로 이끌다

 

시리아 내전이 터졌을 때 EU의 입장은 간단했다.

 

"아사드 개객끼! 이색희 당장 쫓아내야 해!"

 

이때 튀르키예의 반응은 간단했다.

 

"야, 시리아가 어떤 동네인데 무조건 쫓아내려고 해? 그냥.. 그래, 개혁안을 내놓자 응?"

 

여기까지는 그냥 참고 넘어갈 만했는데, 미국이 튀르키예의 발작 버튼을 눌러버렸다. 2014년 미국이 ISIS 격퇴를 명분으로 참전한다. 이때 미국이 파트너로 삼은 게 쿠르드 민병대였다.

 

"야! 너희가 그러면 안 되지! 우리랑 쿠르드 사이 어떤지 다 알잖아?"

 

그러나 미국은 다 무시했다. 그러다가 튀르키예는 2019년 12월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과 쿠르드 민병대, 시리아 정부군을 개 패듯이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평화의 샘' 작전이다. 여기서 튀르키예가 쿠르드 난민을 유럽에 보내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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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바로 얼마 전까지 갈등의 중재자로 나서겠다고 했는데, 튀르키예는 온 사방을 적으로 만들고 싸우게 된다. 여기에는 러시아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와 짝짜꿍이 돼서 이들을 지원한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인 1950년대부터 시리아와 친했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이 없었으면 진즉에 개판 났을 터이다. 푸틴이 힘을 실어주는 덕에 아사드 정권이 살아남았다. 푸틴도 2017년 시리아의 타르투스항과 라타키아 흐메이밈 공항을 얻게 되면서 나름 쏠쏠한 이익을 챙겼다. 러시아 유일의 해외 군사기지이자, 지중해와 중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교두보를 얻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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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터였다. 결국 튀르키예가 러시아 공군기를 격추하고, 이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관련 기사 링크 : <전쟁, 나토, 그리고 터키 3 : 격추된 러시아 전투기의 미스터리>여기까지만 보면 튀르키예는

 

"왕따를 자처하는 국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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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국경 인근에서 격추당한 러시아 전투기

출처-<링크>

 

 

4. 2016년 에르도안과 푸틴의 뜻밖의 화해

 

주변의 모든 국가와 싸웠으니..말 다했지 않은가? 그러다가 2016년 이 모든 상황이 급반전되는 사건이 터진다. 에르도안이 러시아에 사과했는데, 러시아가 화답한 거다. 튀르키예에 쿠데타가 터졌는데, 푸틴이 발 벗고 나서서 에르도안을 도와준 거다.

 

"내가 또 한 번 밀어주면 화끈하게 밀어주거든?"

 

푸틴은 에르도안의 손을 잡았다. 몇 년 사이 악큐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해저 가스관 연결사업, S-400 미사일 수출 등등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처럼 굴었다.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를 서방세계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쿠데타 실패 이후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마자 푸틴은 연락해서, "야, 고생했다. 대충 수습하고, 러시아로 놀러 와라.. 형이 한잔 쏠게"라며 덕담을 나눴다. 미국 쪽은 연락이 없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에르도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 국무부 장관이었던 존 케리가 쿠데타 사건 끝나고 4일 만에 연락한 게 다였다. 이때 감정이 상한 에르도안은 3주 뒤에 러시아로 건너갔고, S-400을 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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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S-400 지대공 미사일 구성 이동식 차량

출처-<국방신문>

 

이렇게 보면 푸틴과 에르도안,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새로 만난 친구처럼 끈끈하게 지냈을 거 같지만, 역시나 러시아는 러시아였다.

 

5. 관계 기복이 심한 사이: 푸틴에게 콧잔등 얻어터진 에르도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푸틴은 에르도안을 한 번 제대로 엿 먹였다. 2020년 3월 5일 푸틴과 에르도안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의 핵심은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휴전 합의였다. 시리아에서 서로 미사일 쏘고, 전투기 격추하고 하던 짓을 정리하자는 거였다.

 

이 휴전의 국제정치적 의미는 컸다. 당장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가 필요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간에 필요한 걸 얻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을 저지할 수 있었고, 당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됐던 아스타나 평화 협상(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평화 회담으로 러시아·튀르키예·이란이 중재했다)을 계속 이어 나가게 됐다. 결정적으로 둘 다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바로 '서방 견제'였다.

 

튀르키예도 러시아도 서방 세력, 그러니까 미국과 EU가 꼴 보기 싫었던 거다. 여기까지만 보면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 같은데.. 근데, 우리 푸틴 형은 보통 형이 아니었다.

 

2020년 3월 5일 푸틴은 늘 하던 대로(?!) '푸틴식 외교 접대'를 에르도안에게 했던 거다. 뭐.. 원래 푸틴이 정상 회담할 때 사람들 기다리게 하고, 기죽이기 위해서 정상들이 싫어하는 것(혹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을 내보내고 하는 건 일상이다(개를 무서워하는 메르켈 총리 앞에 개를 끌고 온다거나).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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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에르도안

출처-<AP>

 

그래도 서로 의지하며 살자고, 새로 사귄 좋은 동생 취급해 줬던 푸틴인데.. 제대로 엿을 먹였다. 당장 에르도안은 푸틴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 단위가 아니라 2분 정도였는데.. 문 앞에서 대기하는 장면이 TV 생중계로 나갔다. 모스크바까지 날아갔는데, 이런 무시를 당하다니..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회담이 열리는 장소에는 튀르키예를 엿먹이는 '조형물'이 가득했다. 

 

당장 눈에 띄는 게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의 동상이다. 수보로프 이 아저씨 장난 아닌 아저씨다. 이 사람의 증손자가 그 유명한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평생 한 번도 전쟁에서 지지 않은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대원수이다. 세계 대전이라 할 수 있었던 7년 전쟁에서 맹활약했고, 오스만 제국을 개 박살 낸 제7차 러시아-투르크 전쟁, 제8차 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승리했다. 말이 승리지, 그냥 학살로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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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수보로프(1729-1800)

 

한국으로 치자면 셔틀 외교로 온 일본 총리 앞에 이순신 장군 동상, 초상화를 잔뜩 깔아놓은 격이다. 덤으로 예카테리나 대제의 동상도 있었다. 뭐, 예카테리나 대제는 워낙 유명하다. 러시아의 국력 신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인이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우리 땅 훔쳐 간 나쁜 여자!"

 

가 될 거다. 옛날 크림반도에는 크림 칸국이 있었다. 이 나라는 쉽게 말하면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나 속국 같은 관계였다. 예카테리나 대제가 그냥 쓸어버렸고, 크림반도를 날름 먹은 거다. 튀르키예는 알짜배기 땅을 빼앗긴 거다. 이런 인물의 동상들을 배치한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야, 내가 네 위야. 우리가 아무리 친하지만.. 선은 지키자? 알지?"

 

이런 거였다. 외교무대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메시지가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메시지를 날렸다는 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에르도안은 모스크바까지 끌려가 개망신을 당한 거였다.

 

친했고, 친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역시나 국제정치 무대는 무서운 곳이었다. 에르도안이 푸틴의 등을 찌르기 전에 이미 푸틴이 에르도안의 콧잔등을 때렸던 거다. 서방세계라는 공통된 적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서열은 있어야 했고 나름의 규칙은 있었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에게 다시 한번 비상할 기회가 주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