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GblDRSwhl36xQObPYb0jJfQfg-vRE7TwJ5XWcp4odMNKCtFLLG3JutcVI9Ye1eKjBopeOEYu1W9S78sWSisqaQ1kinjKjzAIekohWaTFxdrPqlhGwD3ZOmUoCbeCCWza6ehWoTJOHuWV-ZOMoEJgvQ.jpg

 

1812년에 있었던 미영전쟁은 미국과 영국, 두 나라 모두에 ‘상처’만 남겼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국가(國歌)'라도 건졌다는 것. 하지만 그것 외엔 그 누구도 얻은 것 없는 소모적인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미영 전쟁은 ‘생각 없는 정치인들의 선동은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라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당시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감정을 자극해 전쟁을 선동했는데,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인기를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잘 이용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미국은 전쟁을 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었다. 독립 직후부터 대통령에 대한 권한은 물론, 연방정부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막기 위해 상비군 규모를 억제해 왔던 미국으로선 병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요구했다면 병력 확충을 해줘야 하는데, 그건 또 반대했다. 연방정부의 힘은 계속 억제하면서 전쟁을 통해 인기도 얻고 싶었다.

 

전쟁을 선동했지만, 그 책임은 지기 싫었고 자기 잇속은 챙기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미영 전쟁의 전략 거점, 볼티모어

 

캡처.JPG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별모양의 맥헨리 요새. 1814년 9월, 체서피크만에 침입한 영국 해군 함대가 볼티모어 항구를 공격했을 때,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National Park Service>

 

말 많고 탈 많은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별이 빛나는 깃발)은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의 시, 맥헨리 요새의 방어전(Defence of Fort McHenry)에서 그 가사를 가져왔다.

 

우선 이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영국군이 워싱턴을 불태우고 난장질을 한판 벌인 다음 볼티모어로 치고 들어가게 된다. 당시 볼티모어는 미국이나 영국에게 있어서 주요한 전략 거점이었는데, 당장 영국의 상선을 공격하던 사략선의 본거지였고, 미국을 남북으로 가를 수 있는 거점이었다. 

 

사략선(corsair)이란, 국가에서 공인한 해적을 말한다. 국가가 해적질할 권한을 주고, 적군의 상선을 공격한다. 해적이기보다는 ‘노략질을 할 수 있는 해군’ 정도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지금으로 치면 통상 파괴 작전을 펼치는 ‘사설 군대’로 볼 수 있다. 선원들은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나포한 화물이나 선박을 돈으로 환산해 분배받았다.

 

USS_Constitution_vs_Guerriere_Landscape.jpg

19세기까지 많은 국가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졌던 사략선. 1896년, 스페인을 제외한 주요 유럽 국가들은 '파리 선언'을 통해 사략선의 해적 행위를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출처-<Ameriacn battlefield trust>

 

'l;';l.JPG

 볼티모어로 귀환 중인 사력선 선원(사병)을 환영하기 위해, 시민들이 해안가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출처-<National Park Service>

 

이런 전략적 판단을 내린 영국군은 볼티모어로 치고 들어갔는데, 이때 영국군을 막아선 것이 바로 볼티모어를 방어하던 '맥헨리 요새'였다. 맥헨리 요새(Fort McHenry)는 미국의 전략적 거점인 볼티모어를 방어하기 위해 1798년에 건설된 요새로, 미영 전쟁 때 그 위명을 드높이게 된다. 

 

당시 영국군은 맥헨리 요새를 밤새도록 공격했는데, 이걸 영국 군함에서 목격한 프랜시스 스콧 키는 시 한 편을 쓴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 새벽의 여명 속,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하며 맞았던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이 이 치열한 전투 가운데

 

우리가 보고 있는 성벽 위에서 당당히 나부끼고 있는 것이?

 

가사를 보면, 프랜시스 스콧 키가 당시 얼마나 국뽕에 차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엮인 사연이 하나 있다.

 

붉은 로켓의 섬광

 

당시 스콧 키는 영국 해군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시민을 데려오기 위해 협상 진행 중이었다. 여차저차 해서 미국 시민을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는데, 마침 이때 영국 해군이 맥헨리 요새를 공격하기 직전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영국 해군은

 

“우리가 볼티모어를 공략할 때까진 배에서 내릴 수 없다.”

 

고 말했다. 배에서 내려 미군에게 정보를 넘길 위험이 있으니 영국 해군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결국 스콧 키는 밤새도록 영국군이 맥헨리 요새를 공격하는 걸 보게 된다. 밤새도록 영국군의 포격을 받았지만, 새벽녘에 꿋꿋이 나부끼고 있는 맥헨리 요새의 성조기를 보고는 스콧 키는 국뽕이 차올랐다. 그때 그 감정을 정리해서 쓴 시가 바로 ‘맥헨리 요새의 방어전(Defence of Fort McHenry)’이다.

 

 

이 시에 작자 미상의 영국 권주가 "To Anacreon in Heaven(천상의 아나크레온)"이 붙었다(당시 이 노래가 미국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별이 빛나는 깃발’은 1889년 미국 해군이 공식 행사에 사용하기로 했고,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군대 행사에서 연주할 것을 명령하면서 준 국가 대접을 받다가, 1931년 3월 3일 미국 의회가 관련 법안을 결의하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미국 국가는 국가로서 상당히 불친절한 곡이다. 가사는 둘째 치고, 음역대가 한 옥타브 반에 이르러 일반인이 따라 부르기 쉽지 않고, 음 맞추기도 어렵다. 

 

1절 가사 클라이맥스 부분을 보자.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로켓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이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밤새 우리의 깃발이 그곳을 지켰음을 증명할지니

 

란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 애국가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같은 고색창연한 가사가 등장한다면, 미국 국가엔 “로켓”이 등장한다. 

 

"로켓의 붉은 섬광"

 

이게 뭘까? 

 

1814년 영국 해군의 로켓 발사 모습.JPG

1814년, 영국 해군의 로켓 발사 장면

 

간단하다. 영국군은 로켓을 사용했다. 그 당시 개발되어 영국군의 최신 병기였던 콩그리브 로켓(Congreve rocket)이 그것이다. 이 로켓의 뿌리는 남인도의 강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이 인도를 정복하겠다고 뛰어들 때쯤, 인도 남부의 마이소르 왕국은 자국 로켓을 개량해 알리 로켓(혹은 티푸 로켓)이란 걸 만들어 낸다. 이걸 아낌 없이 영국군에게 쏟아부었고, 영국군을 놀라게 하는 걸 넘어서 ‘녹다운’시켜 버렸다.

 

wrwerwer.JPG

마이소르 군대의 로켓 공격을 받은 영국군의 모습 

 

당시 유럽에서 로켓이라고 하면 고작 불꽃놀이 정도였는데, 인도인들은 로켓 앞에 청룡도 칼날을 달아서 아낌없이 쏘고(당시 남인도는 초석의 주산지라서, 화약 걱정이 없었다) 영국군을 핀치에 몰아붙였다.

 

4차 전쟁까지 가서야 영국군은 겨우 마이소르를 제압하고 승기를 잡게 된다. 이후 영국군은 인도인들이 사용한 알리 로켓을 가져다 연구를 시작한다. 이때, 울위치 조병창 책임자였던 콩그레브 중장의 아들 윌리엄 콩그리브(William Congreve)가 등장한다.

 

맥헨리 요새에 뿌려진 "콩그리브 로켓"

 

Sir_William_Congreve,_2nd_Bt_by_James_Lonsdale.jpg

영국 육군 장교 출신으로, 로켓 포병 분야의 선구자로 알려진 윌리엄 콩그리브

 

평소 하늘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는(열기구를 타고 달나라로 갈 생각을 했던 인물이다), 로켓에 열광하게 됐고 가져온 알리 로켓을 개량 발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콩그리브 로켓이었다.

 

마이소르 왕국에서 가져온 로켓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크기를 용도별로 세분화하고, 전용 발사대를 만들고, 어떤 상황에서 로켓이 얼마나 날아가는지 정밀한 사격표를 만들어 불필요한 화약 낭비를 줄이는 선에서 개량을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로켓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콩그리브 로켓’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윌리엄 콩그리브 책의 삽화.JPG

윌리엄 콩그리브의 저서 삽화

 

이렇게 만들어진 로켓은 ‘대군’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요새’, ‘도시’ 등을 공략할 때 훌륭한 성과를 보여줬다. 정확한 사격은 어렵지만, 광범위한 제압 사격을 할 때 용이했다. 1805년, 최초의 영국제 군용 로켓 시연에 성공한 다음 180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콩그리브 로켓이 맥헨리 요새 주변에 밤새도록 뿌려졌다.

 

미국 국가는 가사 자체가 호전적이다(뭐, 프랑스 국가나 독일 국가와 비교하면 그다지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국가에 로켓과 노예란 단어가 나온다는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이란 나라의 국가(國歌)이니, 로켓과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전쟁으로 만들어졌고, 전쟁을 통해 성장한 국가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