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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스물셋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데 이 일이 어디서도 공론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19일 트위터에서 봤다. 원글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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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20일부터 언론들이 각종 보도들을 쏟아냈다. 죽음을 둘러싼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다. 21일, 서울 교사노조의 입장이 올라왔다. 사실관계가 분명해졌다. 고인은 평소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그 후 정권의 나팔수들이 충직하고 뻔뻔하게 다분히 의도적으로 교사의 죽음을 우울감에 의한 개인사로 몰고 가려 했으나 시민들의 냉소만 샀다.

 

물론, 이후에도 언론들은 여전히 진실 은폐와 본질 흐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교사는 을이 아니라는 둥, 김어준 같은 이들이 만드는 가짜 뉴스가 더 문제라는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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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교사의 유족이 블로그에 남긴 글 일부 캡쳐

 

출처 - 링크

 

서이초 교사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리 타살이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살인이다. 누구라도 이런 처지에 있으면 극단적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으리라.

 

생각해 보라. 어려서부터 꿈인 선생님이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됐다. 그런데 현실에 나와 보니 “너 까짓 게”, “감히” 같은 정서적 학대를 당해야 한다.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없다. 학교 측은 자꾸 참으란다. 일을 키우지 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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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사람은 건물에도 깔려 죽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권력에도 깔려 죽는 법이다. 서이초 선생님은 죽은 게 아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28년 전 삼풍사고 생존자다. 가족 중에 자살한 이가 있었고 나 또한 자살을 시도해 본 바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마음에 대해서,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아마, 그래도,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아닐까 싶다. 그 교사는 외로웠으리라.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두려웠으리라. 막막하고 절박했으리라.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사는 건 어렵고 죽는 건 쉽다 생각했으리라.

 

이 일을 두고 현직 교사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다. 갑인 학부모 앞에 교사는 을조차 되지 않는다고. 공교육 붕괴, 교권 추락, 교권 하락 이런 얘기들은 일선 교사들에겐 문제의식마저 희미해진, 감내해야 할 당연한 일상이었다고. 이런 비극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고 말이다.

 

분향소 가는 길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서이초 선생님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떠나간 다른 무고한 이들을 떠올렸다. 방송 제작 현장의 야만성에 깔려 죽은 CJ E&M 이한빛 피디가 떠올랐다. 위험의 외주화와 정규직의 횡포 사이에 끼여 죽은, 구의역 김 군도 생각했다. 얼마 전 분신하신 건설 노조 노동자와 SPC 노동자도 기억했다. 너무 많은 안타까운 죽음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 그렇다.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세월호나 이태원까지 갈 것도 없다. 천지가 참사고 사시사철 애도 기간이다.

 

인근 상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학교로 향했다.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상가 주차장도 학교 주변도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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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보이는 학교가 가까워 지자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눈에 보였다. 학교 담벼락을 조화들이 빼곡히 채웠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동료 교사들의 화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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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후배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리본에 적힌 문구들은 하나같이 전부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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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분향소에 갔다. 국화꽃을 올리고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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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도 고인의 사진도 없었다. 10·29 참사가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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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연이은 참사로 애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자도 있었다. 추모가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막걸리인지 말인지 모를 말도 있었다. 분향소에 차오르는 연기가 답답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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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00년생이라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이미 태어난 젊은이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출산율을 장려하고 저출산 대책을 내놓는 게 우습게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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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곳곳에 내 걸린 여러 시민들의 마음을 읽으며 만약 이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선생님 편에 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없는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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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2023년도 교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혼자 감당하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창창한 나이에 모진 결단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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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돌이 나오는데 일전에 “교권 추락”을 토로하던 지인 초등학교 교사가 떠올랐다. 당시엔 그 얘기가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선생님은 절대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이 정도로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몰랐다. 전혀 몰랐다.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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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한가운데 서 보니 빙 둘러 울창한 아파트 숲이 초등학교를 에워싸고 있었다. 저 안에 분명, 가해자들이 살고 있겠지. 누군가는 커튼 뒤에 숨어 서이초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왜인지 모르게 운동장을 걸었다. 커튼 뒤에선 누군가가 내가 입은 검은색 옷을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돌아가신 선생님의 뒤에 서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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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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