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때 탈퇴했던 4대 그룹(삼성·SK·현대·LG)이 전경련에 복귀할 것을 점치는 기사들이 나옵니다. 더불어 8월에 예정된 새로운 전경련 회장 선임에도 귀추를 주목합니다. 조직을 만드는 거야 자유이니 존중하나 윤가카께서 노조를 '이권 카르텔'이라 하시니, 그 명명을 빌려 저 역시 전경련을 칭한 점을 이 글의 전제로 하겠습니다. 이권 카르텔은 과연 어디일까요?
1. 카르텔이란 무엇인가?
카르텔의 사전적 의미는 '이윤 증대를 위해 시장을 독점하는 연합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동종업계의 기업이나 사람이 경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격, 생산량 등에 대해 협정을 맺는 것이죠. 윤석열 정부는 꾸준히 노조를 '이권 카르텔'로 지칭하며 사회적 적폐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노조 결성은 사용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고 쟁취하기 위한 행위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노동 시장은 다른 상품과 달리 시장에 맡겨두면 다수가 손해를 보기에 헌법에서 보장한 터이지요. 오히려 법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카르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조의 행동도 모두가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노조로 인해 사회와 노동계가 발전한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노조보다 더 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이권 카르텔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칭할 때는 '카르텔'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름처럼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위해 모인 단체인양 포장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전경련은 그 시작부터 정경유착의 부산물이며, 경제인이라고 자칭하는 대기업들의 특권을 위한 단체로서 그야말로 이권 카르텔의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때깔 좋은 전경련 건물
출처-<전경련 홈페이지>
2. 전경련의 시작
전경련은 1961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었던 박정희로부터 출발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급성장하던 삼성·삼호그룹·럭키 화학·현대건설 등 기업 총수들의 부정 축재를 조사하다가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며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박정희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면담하고
"부정 축재 기업인들에게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
는 명분으로 모두 사면되었습니다. 이후 1961년 이병철 회장이 다른 대기업들을 모아 한국경제인협회를 창립했고 1968년에 주요 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회원을 다수 확보하며 이름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칭하였습니다. 이후 규모를 키워가며 업종별 67개 단체와 대기업 436개 사로 구성된 전경련이 오늘에 이르렀지요.
출처-<전경련 홈페이지>
전경련의 설립목적은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라고 하나, 실상은 부정 축재로 처벌 위기에 놓인 재벌들이 자신들을 대변하기 위해 급조한 단체였을 뿐입니다. 참고로 전경련을 창립할 때 "재벌 총수를 처벌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가고, 재벌들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으니, 정상참작이 필요하다"라고 한 논리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들과 사법부에 통하는 궤변이 되었습니다.
3. 전경련과 정치자금
전경련은 태생부터 정경유착의 산물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처음 단체를 만들 때 일본의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을 모델로 했는데, 이 경단련도 일본의 대기업들이 연합하여 회원사로부터 정치자금을 모금해 보수 우익단체에 정치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당연히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만들도록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죠.
2010년 가카와 전경련 멤바들
최태원(SK), 정몽구(현대), 구본무(LG) ,
가카, 조석래(효성)
출처-<전경련 홈페이지>
전경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1961년 시작부터 박정희 정부와 재벌들 간의 거래로 탄생했습니다. 이후 1988년 전경련이 전두환과 관련된 일해재단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 밝혀졌는데, 이 금액이 무려 600억 원에 달합니다. 또한 1995년 노태우의 대선 당시 비자금도 전경련에서 지원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LG·현대 등이 연루된 불법 대선자금 전달 사건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출처-<2003년 12월 10일 자 한국일보 지면>
이후 2002년 그 유명한 '차떼기당' 사건인 한나라당 이회창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고, 가장 최근인 2015~2016년엔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박근혜-최순실의 미르재단의 설립에 전경련의 기금 미련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2017년 삼성·현대·SK·LG가 전경련에서 탈퇴하며 전경련 회비의 77%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은 아직 해체하지 않고 있으며, 명칭을 바꾸면서 쇄신을 강조하는 등 이권 카르텔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어버이연합에 자금 지원을 했던 전경련
출처-<연합뉴스>
4. 경제단체
전경련은 흔히 한국의 경제 5단체로 불립니다. 경제 5단체에는 전경련을 비롯하여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가 있습니다. 대한상의는 상공업의 발전을, 무협은 무역과 수출 활성화, 경총은 노사 간의 조정과 인사 문제,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이익을 그리고 전경련은 대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5개 단체 중 규모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전경련이 대표 단체를 맡고 있으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국가 행사에 기업인 사절단이 필요할 경우 전경련이 경제단체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4대 그룹의 전경련 탈퇴, 문재인 정부 아래 전경련과의 관계 단절 등으로 경제단체 대표 역할은 대한상공회의소로 변경되었습니다.
출처-<'월요신문' 기사 갈무리>
대한상공회의소는 일반인들에게 자격증을 주관하고 관리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곤 있는데, 사실 위의 단체 중 유일하게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만들어진 정부 단체입니다. 조선시대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한성상업회의소가 모체입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단체의 대표역할을 하며 그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2021년 대한상의 회장으로 SK 최태원 회장이 취임하게 됩니다. 4대 그룹의 총수 중 최초로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된 최태원 회장은 그간의 경영업적과 글로벌 역량 등을 고려했을 때 적임자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의 수장이 되면서 대한상의는 물론이고 경제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NC 김택진 대표가 IT(정보통신) 기업인 최초로 부회장단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동행하여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에 관한 미국 투자를 확대하며 정상회담을 지원하고 미국 재계와 실질적인 경제협력에 나서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3년 대한상의 부회장 목록
출처-<대한상의 홈페이지>
5. 전경련의 현재
4대 기업의 탈퇴와 문재인 정부 시절 관계 단절로 사실상 전경련의 역할은 없는 터입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일자리위원회의 유관기관에서 전경련이 제외되었고, 남북정상회담과 각종 행사에서도 전경련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취임 후 경제5단체 단체장과의 회동에서만 포함되었을 뿐, 12월 비공개 만찬과 UAE 순방 등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이후 2023년 현재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회장직을 사임했고 차기 회장을 찾았지만, 다른 기업 총수들이 회장직을 고사했습니다. 그 뒤 현재 윤석열 정부 인수위 출신 김병준 전 의원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되었지요. 김병준 회장 취임은 또다시 과거를 답습하여 기회가 만들어지면 정경유착을 시도하려는 것일지 모릅니다. 실제로 김병준 회장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정부의 방일·방미 과정의 경제사절단을 준비하기도 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김기현과 김병준
출처-<뉴시스>
여담이지만 방산업체인 풍산그룹의 류진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풍산그룹은 중견기업이지만 류진 회장은 미국 민주·공화당을 아우르는 폭넓은 인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순한 연줄 정도가 아니라 미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국 순방에 동행했으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 '미국통'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태양광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고 있고 현지 기업과 합작도 늘어나는 터에 미국 정부의 입법·규제 동향을 살피고 정치적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자 류진 회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01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조지 부시 옆에 앉아 있는 류진 회장
출처-<연합뉴스>
류진 회장은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하고 있습니다만, 올 8월에 김병준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새로운 회장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회장이 교체된다면 전경련이 쇄신의 길을 걸을지 또다시 유착을 통해 권력에 추종할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6. 전경련은 필요한가?
지난 4월경 전경련에서 주도한 행사인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갓생 한끼'라는 행사에 현대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1호 주인공으로 참여했습니다. 일각에서 전경련에 복귀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니, '현대그룹에서는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 참여일 뿐이다'라고 했지만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전경련은 그 탄생부터 적절하지 못했고, 계속되는 정경유착을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재벌과 대기업 친화적인 활동을 하며 대기업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입법을 저지하거나 반대하고, 대기업 총수들의 횡령이나 배임, 비자금 조성 같은 경제 범죄에 정부의 선처를 요구하는 등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압력단체가 되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 발언들, 주 69시간 같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 기업들의 법인세 인하와 같은 정책은 전경련이나 그 유관 기업들이 여전히 권력과 가깝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전경련 부회장 목록
출처-<전경련 홈페이지>
재벌총수들은 "글로벌 기업 총수가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으면 투자가 위축되고 경영 공백이 발생해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세울 수 없어 급변하는 국제 경제에 대응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근본적으로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경영의 투명성과 쇄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아 협박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7.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가 조직쇄신일까
전경련의 핵심이던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그동안 전경련이 강화하겠다던 싱크탱크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전경련에 속해 있을 때도 그랬지만, 재벌 대기업 산하에 존재하는 각종 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전경련을 통하지 않고도 우리 경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4대 그룹이 전경련에 연구비를 지원할 이유가 있을까요?
출처-<파이낸셜뉴스>
또한 과거 대기업과 정부 주도를 통한 경제개발 시기엔 이런 단체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겠지만 이미 경제성장은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발전 시기에 특정 산업과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그 결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가 수많은 부작용과 경제의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대기업을 대변하는 조직은 존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재 전경련은 쇄신을 강조하고 MZ와의 소통에 힘을 쏟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해체해야 할 조직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쇄신을 강조한다는 집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이름을 한국경제인연합회로 바꾼 것뿐입니다. 거기다 더해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까지 이야기되고 있으니, 복귀가 성사된다면 쇄신이라기보다 퇴보인지도 모릅니다.
경제단체로서 역할이나 타국과의 외교 시 민간사절단 역할 등은 이미 대한상공회의소가 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전경련이 이런 역할을 다시 해야 한다는 근거도 명분도 미약합니다. 쇄신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서 권력과 유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특정 대기업들만을 위한 대변 집단이 유지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서두에 했던 질문을 다시 던지며 마무리 짓습니다. 윤가카께서 입만 열었다 하면 이야기하는 이권 카르텔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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