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없이 자라는 아이들
출처 - 영화 <바람>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녀석이 뒤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조용히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친한 척하라는 말을 귀에 속삭이고는 찻길 너머 주공아파트 벤치로 향했다.
길에서 삥을 듣기는 건 처음이었다. 이때 나는 별로 두려울 게 없었다. 기댈 곳 없이 자란 놈에게 삥정도야 뭐... 이 키 큰 녀석이 어떤 멘트로 내 지갑을 열게 할지가 궁금했다. 이렇게 성가신 상황에 엮이는 게 오히려 반가웠다.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뒤숭숭했으면 그랬을까.
키 큰 친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부산 구서동의 주공아파트에는 벤치가 'ㄷ' 자로 배치된 넓은 공간이 있었다. 주변엔 등나무가 가득했고, 아파트 뒤쪽으론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그날같이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에는, 바로 옆 길가를 지나는 사람도 벤치쪽에 누가 있는지 볼 수 없는 외진 곳이었다.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무리에게 최적의 아지트였다.
가로등 불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등나무 그늘 아래. 왜소하고 키 작은 녀석 한 명과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빡빡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소한 녀석은 불안해 보였다. 내가 멀리서 걸어올 때부터 계속 다리를 떨었다.
도착한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무도 말이 없다. 덩치 큰 녀석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마침내, 한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어깨에 팔을 둘렀던 녀석이다. 녀석은 '사냥꾼' 역할이었다.
"야, 니 돈 얼마 있노?"
잠깐이지만, 어깨동무를 하고 걸었던 시간 때문일까? 녀석에게선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맥락없이 주머니 사정을 묻는 모습에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멘트도 기대보다 후졌다. 다음 작업은 조금 덜 후지기를 바라며, 주머니에 있던 500원을 내보였다. 나름의 관람료 같은 것이었다.
500원을 낚아챈 녀석은 한껏 인상을 구겼다. 다시 나를 위협했다.
"마! 뒤져서 나오면 십 원에 열 댄 줄 알아라."
아.. 식상하다. 저런 구닥다리 멘트를 치는 녀석들이 아직도 있다니. 녀석들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받기엔 글렀다. 건낸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가져가지나 말지. 녀석들은 돈은 돈대로 챙기고 금액이 적다고 불퉁대는, 시시한 양아치들이었다.
나: "진짜다. 함 뒤져보든가."
남자1: "새끼가 계속 반말이고? 니 돌았나?"
양아치들은 나의 덤덤한 태도에 화가난 모양이었다. 돈을 달라는대로 줄테니 보내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오히려 당당하니 녀석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이번엔 내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상황을 지켜 보고만 있던 우두머리 녀석이 말했다.
"그만!"
또래 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굵고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꽤 나이 들었다. 나보다 형인 건 확실하다.
남자2: "니 어느 학교 다니노?"
나: "남산중 다니는데요."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을 뒤지던 녀석이 으르렁 쏘아붙였다.
남자1: "거짓말 하지 마라! 이게 뒤질라고."
성가신 녀석이었다. 우두머리는 다소 흥분한 녀석을 제지했다.
남자2: "야, 좀 가만 있어봐라. 니 담임이 누꼬?"
나: "이XX 선생님이요."
담임 선생님 이름을 들은 우두머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곤 턱을 까딱 들어, 나에게 얼른 가보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남자2: "야 우리 후배네. 돈 주가꼬 보내라."
사냥꾼 녀석은 한참동안 나를 노려봤다. 손에 500원을 꼭 쥔채 움직이지 않았다. 비 내리는 날, 힘들게 잡은 먹잇감을 순순히 보내기 아쉬웠을 터다. 하지만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나는 500원을 돌려 받았다.
우산을 펼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혹시나 돈을 도로 뺏았길까봐 그랬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새로운 자극을 기대한 나로서는, 더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비실이가, 저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남자3: "여기서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연 덕(?!)을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새롭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순순히 따라간 것에 비해, 상황이 싱겁게 끝나 맥이 빠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머니 속 5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괜히 심술이 나고, 세상이 얄궃어 보였다. 마지막엔 쓸쓸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녀석들과 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삥 듣길 걸 알면서도, 따라갔다.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구경하기 위해서. 녀석들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뭣도 없었던 내가 나름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깨달았다. 우린 비슷한 존재라는 걸.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방황하는 존재. 부모님의 그늘이 부족한 아이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에겐 지금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계속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젖었다. 끈적이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선 아버지가 티비를 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부엌 일을 하고 계셨다. 온몸이 빗물에 젖어, 물을 뚝뚝 흘리며 집에 들어와도,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도 난 우리집에서 투명인간이었다.
'평범한 가정'이라는 얻기 힘든 출발선
출처 - <응답하라1988>
어머니는 졸린 눈으로 싱크대 옆에 서 계셨다. 아버지는 김치찌개와 소주를 꺼내놓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미 밖에서 거하게 드시고 취한 상태였다.
평소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꼭 주무시던 어머니를 깨웠다. 밖에서 배부르게 먹고 온 날도, 어머니를 깨워 밥을 차리라고 했다. 어머니가 쉽사리 깨지 않으시면 발목을 지끈 밟아서라도 깨웠다. 이날도 그랬던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무슨 권리로 어머니를 노예처럼 부리는 걸까?
아버지의 못된 심보에 불만이 쌓여갔다. 나에게 가난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구색을 갖추고 여유롭게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었다.
내 평생의 소원은 화목한 가정이었다. 식사 시간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힘들었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정말 평범한 가정 말이다. 그것이 나에겐 사치였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건 말건 소주에만 집중하는 아버지와 그 옆을 피곤한 얼굴로 지키고 계신 어머니. 그 모습이 그날따라 끔찍하게 다가왔다. 온몸이 젖어 질척거렸던 기분이 진흙 속으로 더욱 가라 않는 듯했다.
넋이 나간 채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 "니도 밥 무글래?"
나: "아니, 별로 배가 안 고프네."
나는 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점심 때 빵 하나 먹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자다 깬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 쉬길 바랬다.
방바닥에 엎드려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500원 동전 하나 얻기 위해 모인 아이들. 기댈 곳 없는 외로움이 그 세 명을 함께 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이 그러한 행동의 변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들은 앞으로도 힘없어 보이고 만만한 아이들에게 돈을 갈취할 것이다. 나에게 조용히 따라오라고 말 한 것은, 앞서 가던 어른의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실이가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외쳤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몇 가지 특징으로 도출할 수 있는 키워드, 바로 '어른'이었다. 녀석들은 어른을 두려워 한다(지금, 담배 피지 말라는 어른을 때려 패기도 하는 세상인 것을 감안하면, 90년대 불량 청소년들은 꽤 순수했던 것 같다. 물론 붓싼(?!)정서상 그런 청소년들이 보이면 주위에서 다 다구리를 놓을 것 같긴하다... 빠꾸없는 아재들의 도시...). 그럼 어른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 실험을 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빠!”의 등장
등굣길에 긴 시멘트 계단이 하나 있었다. 그곳엔 늘 '노는 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힙합 바지에 비니 모자를 쓴 남학생 여럿과 여학생 두 명의 구성이었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 대한민국을 휩쓸던 때라, 서태지 패션을 따라한 학생이 많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힙'한 패션이었다
출처 - <컴백홈MV>
나는 속으로 킥킥대며 계단을 올랐다. 서태지를 흉내 낸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나 어설퍼 보였다. 아파트 담을 따라 걸어가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야... 야!"
뒤에서 등을 탁 치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계단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었다.
나: "어? 왜?"
학생: "니 좀… 따라와 봐."
녀석 등 뒤로, 계단에 앉아 이리 오라고 손짓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비니 모자를 쓴 녀석과 여자 아이들이 깔깔댄다.
주공 아파트에서 만난 무리보다 훨씬 어설펐다. 사냥감을 잡아 오려면 먹잇감을 제압할 위력 있는 추격자를 보내야 하는데, 녀석들은 무리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놈을 보내왔다. 쭈뼛쭈뼛 다가오는 모습이, 무리에서 왕따 당하는 녀석 같기도 했다.
녀석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 "마! 니 내 아나?"
학생: "어…?"
세게 나오자 녀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
나는 처음 본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정말 한 가정의 가장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빠"라는 말에 그는 나를 쳐다 보았다. 한 쪽 팔을 붙잡고 나를 쫓아온 녀석과 계단에 앉아 있던 무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빠! 점마들이 내보고 돈 달란다!"
처음에는 “뭐꼬?”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상황 파악을 한 아저씨는, 짐짓 역정이 난 표정으로 고함을 쳤다. 녀석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저씨: "이~~~~~누무 쉐끼들!!! 브얼건 대낮부터 으데 못된 짓을 처하고 앉아 있으? 그라고 처몬된 짓을 처하고 그라믄 안돼!!!(말에 '처'를 자주 넣는 게 핵심이다?!?)"
나를 쫓아왔던 녀석은, 이미 내가 아저씨를 향해 돌아설 때부터 도망가고 있었고, 계단에 앉아있던 몇몇 녀석은 골목으로, 비니 쓴 녀석과 여자아이들은 계단 위를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여자 아이 하나는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져 무릎을 찧고는 절뚝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아무리 또래에서 일진이라고 으스대 봤자 “강약약강”인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조금 전까지 여유 만만하던 녀석들은 혼비백산 흩어져 사라졌다. 걱정이 되었던 아저씨는 나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아저씨: "괘안나? 무슨 찌끄래기들이 낮에부터 저래 설치노"
나: "괜찮습니데이. 고맙습니다"
아저씨: "으디까지 가노? 저기 두실역까지 같이 가주까?"
아저씨는 정말 내가 걱정이 되어 근처 지하철역까지 동행해주려 했다.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나로서는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목까지 차 올랐다. 큰 개에게 쫓기는 나를 보며 도와주지 않고 멀리서 웃기만 하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나: "아입니데이. 다 도망갔는데요 뭐. 아저씨. 감사합니데이."
아저씨: "진쨔 괘안켔나? 그라믄 마 조심해서 가래이."
돌아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나의 아버지도 저런 듬직한 등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번 생애 다정한 아버지를 만날 운은 없는 것이라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든든한 부모가 없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나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 부산 금정구 두실의 한 골목
나의 결핍과 사각지대의 우리들
출처 - 영화 <바람>
내가 만났던 불량 학생 대부분은, 어른들이 다가오기 전에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더러 잡힌 녀석들은 뒷덜미를 잡힌 채 귀싸대기를 맞는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일이지만 우리 때는 종종 그렇게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 혼을 냈고 아이들도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비행 청소년을 고발하면서 쾌감을 얻었다. 어른 등 뒤에 숨어,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혼날 만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내가 원하던 신선한 자극과 유사했고, 어쩔땐 그 감정이 즐거움에 가까웠다. 그늘 없이, 땡볕에서 척박하게 자란 나의 결핍을 이상한 방법으로 채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악취미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낄낄대던 무리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나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치되어 엇나갈 수밖에 없는, 부모의 그늘 없는 우리들. 이런 상황으로 내몬 어른들과 세상에 대한 화가 치밀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는 길이 옳은지 아닌지 알려주는 어른이 부재했다. 그래서 좁디 좁은 시야로, 발을 헛디디며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은 “가해”이며 그에 상응하는 훈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느끼는 씁쓸한 감정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간 정의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량 학생들을 고발하고 비난하던 나의 악취미, "비행 청소년 사냥"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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