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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영국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잉글랜드 중서부지역)에 위치한 트위크버리(Tewkesbury school) 중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수학 선생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3시간 후, 가해 학생은 경찰에 체포되었고 피해를 입은 선생님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사건 당시, 일대 모든 학교는 문을 닫고 학생들은 귀가 조치시켰다. 안전을 이유로 학교를 일시적으로나마 운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일부 학교들은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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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아직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지 않았다. 가해 학생은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선생을 칼로 상해 입히지 않았다 주장하고 있다. 선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았고 현재 관계자 조사 중이라고 하니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숱한 괴롭힘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미국에서는 학생이 선생을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하고,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고, 총까지 쏜 사례가 발생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학생들도, 학부모도, 이상하리만치 선생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 지구적인 공통 문제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걸까?

 

맞고 자란 아이들

 

초등학교 3학년 때. 10살도 되기 전이었다. 학교에 가면 안 맞는 날 보다 맞는 날이 많았다. 구구단을 외우다 틀리면 손바닥을 맞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는데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면 종아리를 맞았다. 간혹 짓궂은 장난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을 피곤하게 하면 출석부로 머리를 맞았다. 그래도 이상한 줄 몰랐다. 다들 그렇게 맞고들 사니, 안 맞으면 한 대 맞고 시작해야 마음이 편했던 때였다.

 

나의 아들은 10살이다. 아무리 봐도 손댈 곳이 없다. 회초리로 때릴 구석이 없다. 그런데, 저렇게 작고 어린아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매질했는지, 난 왜 그토록 맞고 자랐어야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어렵다. 내 나이 40 넘어 과거 나를 가르쳤던 선생의 나이와 비슷한 때가 되어 보니, 그때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보여줬던 언행이 얼마나 수준 미달이었는지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어 있다. 선생들의 수난 시대. 최근, 억울함을 호소하는 선생들의 어려운 상황도 이해가 간다. 허나, 마음 속, 어딘가 이상하게 찜찜하다. 도대체 이 감정의 근원은 뭘까.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맞고 자라온 세대의 비틀린 감정 탓인지, 마음 한편에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위험한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 교직에 계신 분들은 잘못이 없다. 실제로 아이들을 두들겨 패던 세대는 은퇴하고 연금 받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는데 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상황인가.

 

해방 이후 70년간, 이유 없이 선생에게 두들겨 맞고, 정신이 피폐해진 학생, 목숨을 잃은 학생, 학교로부터 도태되어 사회로부터 낙오자가 된 아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단순히 체벌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체벌이라는 단어도 미화됐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촌지를 주는 학부모를 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배경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구분해 난도질했던, 지난날의 일상은 지금 적자생존의 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인터넷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만나봐도, 과거, 선생들의 만행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한 경우를 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1학년 때를 제외하곤, 선생이라는 이들에게 안 맞은 학년은 기억할 수 없다. 매년 매해, 이런저런 이유로 맞아야 했던 지난날. ‘사랑의 매(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때리긴 해야 하는데 마땅한 사유가 없어 만들어진, 이해할 수 없는 단어)' 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폭력의 도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둘리게 했던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금도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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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가장 마지막에 발견한 인권

 

지금 내가 있는 영국 또한 이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교권이 학생 인권 너머에 있던 시절, 영국의 옛 선생들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훈육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등의 방식은 영국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더 잔혹한 방법이 있었으니 독방 감옥이다. 잘못이 의심되는 아이, 뭔가 부족해 보였던 아이들을 조그만 독방에 가두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혼자만 일찍 등교하게 시키는데 사실은 학교가 개교기념일 등으로 쉬는 날이었다든지, 다른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일 등 기상천외한 벌들이 8-90년대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기억 속에 남아있다. 때리는 선생들도 있었다. 영국은 ‘사랑의 매’와 같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만한 도구는 없었다. 다만 발로 차거나 따귀를 때리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40대 이상의 영국인과 만나면 마치, 동년배 한국인처럼 얘기가 통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얘기가 통하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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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교육부 입구

 

<출처 - 링크>

 

인권의 마지막은 아동이라 했던가? 여성의 인권, 남성의 인권, 노인의 인권, 아동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등 다양한 인권이 있겠지만,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장 나중에 성립된 보호 성역이 아동이었다. 좀 더 스펙트럼을 넓혀 보자면 학생까지도 포함될 수 있겠다.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재를 키우겠다는 발상으로 시작된 전 지구적인 주입식 교육의 시작은 현대적 의미의 국가라는 기틀이 마련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현재 진행 중이다.

 

어른들의 때릴 권리

 

수십 년간 교육을 빙자한 폭력 앞에 방치되어 왔던 학생들을, 국가가 뒤늦게 법안을 마련하며 보호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안이 실효성을 갖게 되면서 학교 내 체벌이 전면 금지되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체벌을 금지하는 운동에 동참, 세계에서 62번째로 전면적인 아동에 대한 체벌 금지 국가로 발돋움했다. 체벌은 학교 체벌과 가정 체벌이 구분되어 적용되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엔 어디서든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얼마 전까진 아이들 때리는 걸 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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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체벌 금지와 함께 부각되는 건, 교권이 무너졌네, 부모의 권위가 사라졌네, 하는 식의 얘기들이다.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때리면 권위를 세우기 어려웠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 자녀의 징계권 조항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데 법적인 근거까지 있었던 셈이다. 집에서 두들겨 맞으니, 학교에서도 좀 맞아도 됐던 지난날에 대해,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에 대한 국가 심의를 통해 “법률 및 관행상의 간접체벌과 훈육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것”을 권고했고, 2021년에서야 안 맞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두드려 맞으며 자랐단 얘기다. 

 

영국도 아이들에 대해선 비슷한 상황이다. 시기적으로 조금 앞섰다 뿐.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아동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은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 1987년이니까 우리보다 약 25년 정도 앞서 법제화하여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했다. 이후, 1989년 아동보호법을 통해 학교에서의 체벌 및 아동학대를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가정에서까지 완벽한 체벌 금지를 이루는 데는 3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고, 영국도 2020년이 돼서야 가정에서의 체벌까지 금지했다. 힘없고, 의지할 데라고는 부모와 선생밖에 없던, 힘없고 연약한 아이들을, 때려서 말 듣게 하던 지난날은 야만의 시대였다.

 

맞고 자란 아이들, 부모가 되다

 

그렇게 맞고, 또 맞고 자랐던 세대가 자녀를 낳아 키워 학교에 보낸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천지가 개벽하지 않은 이상 선생을 신뢰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란 말도 된다. 이렇게 의심하고 저렇게 걱정하고. 매 순간, 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면 어디서 어떤 학대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 모르긴 몰라도 지금 세대 부모들의 이상 행동에 나름의 이유를 차지할 게다. 

 

그럼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요즘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학교에서 고쳐야 한다고? 이런 식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리다 체벌을 다시 도입하자는 과거로의 회기는 역시나 가장 정신 나간 소리다. 과거, 선생들의 만행은 문제지만, 과거의 일로 현재 교직에 봉직하는 분들이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 이번 정권에서는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몰라;;;; 걱정되는데, 체벌이 허락되면 당연히 아이도 아이지만 선생은 또 무슨 죄인가.  

 

그야말로 얽히고설킨 엉망진창 실타래.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우주적 교육현장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