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universoreverso>
할리우드는 계속 파업 중이다.
작가조합(WGA)는 5월 1일부터, 배우조합(SAG-AFTRA)는 7월 14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TV는 올해 가을부터, 영화는 올겨울부터 신작 공개가 불가능해졌다. ‘할리우드 (작가+배우) 쌍파업’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링크).
필자는 배우조합 소속은 아니지만 조합 소속원들이 주변에 있다. 그래서 이번엔 그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더 상세하고, 현장감 있는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말이다. 그들에게 할리우드 노동자들이 계속 개선을 요구해 왔던 문제점들과 이번 파업에 대한 생각을 직접 물어봤다.
이야기를 들으며 든 생각은, 그들이 말하는 노동권 문제가 영화 촬영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조건과 노동권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에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독자 여러분도 본 기사를 읽으며,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자!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다. 빨리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배우 A씨’의 이야기
배우 A씨는 경력은 몇 년 안 되지만, 특이한 외모를 살려 영화와 넷플릭스 영화, 그리고 광고 등에 개성파 조연으로 출연하는 배우다. 개인 사정이 있는바, 그와의 인터뷰는 익명으로 공개한다.
Q1. 최근 배우 업계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전에는 직접 대면 오디션을 봤죠. 캐스팅되면 그야말로 좋은 거고, 안돼도 좋은 인상을 남기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인맥을 만들게 되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오디션 기회도 많아지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물론 오디션장에 가느라고 비행기를 타야 할 때도 있고, 지옥 같은 교통체증도 뚫고 가고, 냉방도 안 되는 대기실에서 땀 뻘뻘 흘리는 일도 있긴 하지만요.
불과 3년 전만 해도 영화 캐스팅은
대면 오디션이 당연했다.
출처-<wallpaper flare>
요즘은 모든 게 달라졌어요. 오디션은 배우 본인이 직접 카메라로 찍어서 보내야 하고, 감독, 작가 미팅도 요즘은 Zoom 같은 온라인으로 합니다. 사실 Zoom 미팅까지만 가도 거의 캐스팅된 거나 다름없죠. 나야 이제 경력도 있고 개성이 있어서 오디션 비디오에 크게 신경을 안 씁니다. 내 출연작이 바로 경력 증명서니까요. 하지만 신인 배우들은 온라인으로 오디션 등 모든 걸 하면서 고생 많이 합니다.
Q2. 신인 배우라도 온라인 오디션으로 하면 대면 오디션보다 편한 부분도 많지 않나요?
신인 배우들은 달라요. 예를 들어 금발, 파란 눈의 몸매 좋은 백인 남자배우가 할리우드에 몇 명이 있을 것 같습니까? 몇천 명? 몇만 명? 지옥 같은 경쟁률입니다.
예전에는 약속 시간에 맞춰서 대면 오디션에 가면,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머지는 운에 맡기면 됐지요. 어차피 배우 지망생들을 찍는 오디션 촬영 장비나 시설 등은 다 똑같으니까, 나머지는 나의 몸 관리, 외모 관리, 연기실력에 달렸다는 믿음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조그만 컴퓨터 모니터에 안에서 비슷비슷한 외모들끼리 어떻게 자기를 차별화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돈으로 발라서 승부하는 겁니다. 신인 배우가 수만 달러를 들여서 4K 화질 카메라, LED조명, Lav 마이크를 설치하게 됩니다. 그걸로 자기가 오디션 테이프(셀프 테이프 오디션, self-taped audition)을 찍어서 업로드해서 감독에게 보내야 합니다.
웨이터 알바 뛰며 시급 20달러를 버는 친구들이 그런 돈이 어딨습니까? 결국은 주변에 손을 벌려야죠. 그런 값비싼 장비가 월세 1,000달러짜리 단칸방 아파트에 설치돼 있으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셀프 오디션 테이프 촬영 요령을 알려주는
웹사이트의 모습
출처-<Vision8studio>
Q3. 취지는 알겠지만, 굳이 값비싼 장비를 돈 주고 사기보다 필요할 때 빌려도 되지 않나요?
물론 가능합니다. 비용이 부담스러운 친구들은 주변 스튜디오를 시간당 130달러에 빌리고, 카메라 감독을 시간당 80달러씩 내고 고용해서, 자기 돈으로 오디션 테이프를 찍어 감독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다 카메라랑 조명을 사게 됩니다. 감독이 “특정 역할의 오디션 동영상을 찍어서 몇 시간 안으로 보내시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언제 스튜디오나 장비 빌릴 시간이 있습니까? 결국은 돈이 많아서 자기 집에 4K 카메라 있어서, 빨리 비디오 찍어서 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Q4. 하지만 배우 본인이 오디션 테이프를 찍으면, 좀 더 자기 개성을 잘 나타낼 수 있지 않나요?
될 사람은 핸드폰 카메라로 오디션 비디오 찍어도 캐스팅이 되겠죠.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무명 배우들은 카메라, 조명에 돈 몇 푼 아꼈다가 할리우드 데뷔가 안 되면 어떡하나 하고 목돈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 본인들이 지출하는 비용에 한계가 없게(no limit) 됩니다.
셀프 테이프 오디션 촬영 요령을 알려주는
언론 기사
Q5. 오디션 말고도 모든 사전 미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나요?
코로나19가 끝나고 나서도 모든 게 온라인으로 계속됩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감독이나 배우끼리도 영화 촬영 직전에는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감독이 몇 시에 Zoom 미팅하자고 하면 30분 안에 컴퓨터 앞에 달려가서 미팅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날 잡아서 미팅하고 끝나면 서로 맥주 한잔하면서 고향 이야기를 하거나 좋아하는 스포츠팀 이야기를 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이게 정말 영화 찍는 게 맞기는 한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직접 만나지 않고 Zoom으로만
모든 것을 찍은 공포영화 ‘호스트’
출처-<영화 캡처>
지나친 ‘할리우드 온라인화’로 고통 겪는 배우들의 이야기
A씨의 이야기는 할리우드를 파업으로 몰고 간 중요 문제 하나를 지적하고 있다. 바로 사람들끼리의 접촉이 사라진 비인간적인 ‘할리우드의 온라인’화.
모두 알고 있듯,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타격을 받았고,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결과 할리우드 제작사 절대 다수는 다음과 같은 결단을 내렸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모든 미팅을 온라인으로 하라”
배우, 작가들은 이에 군말 없이 따랐다. 수십 명이 모여서 좁은 공간에서 촬영하는 영화, 드라마의 특성상,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단 촬영장 내 코로나19가 퍼지면 최소 2주는 촬영 일정이 중단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필자도 드라마 촬영 후 며칠 동안 자가격리했던 적이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연령이 안 된 미성년자 배우가 나중에 코로나19 증상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톰 크루즈 형이 이랬을 정도로,
코로나 관리에 엄격한 분위기였다.
출처-<BBC 코리아>
그런데 문제는 작가 미팅과 오디션을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 생각 외로 편리하고 돈도 절약된다는 사실을 제작사가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제작자 입장에서만 따졌을 때.
예전 같으면 날 잡아서 스튜디오와 사무실 스케줄을 잡거나 대여하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하면 제작사가 지불할 비용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는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이런 상황을 유지했다.
하지만 배우들과 작가들에게는 문제가 생겼다. 위에 설명한 대로 신인배우들은 ‘셀프 오디션 테이프’를 찍느라 금전적 부담이 커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직접 얼굴 보면 차마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말도 온라인으로는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다.
2020년 11월 20일에 있었던 배우 루카스 게이지(Lucas Gage) 셀프 오디션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그는 줌(Zoom)을 통해 감독에게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웹캠 카메라 저편에서 드라마 감독의 말이 들려왔다.
Zoom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는
배우 루카스 게이지의 모습
“저 가난한 친구가 사는 쪼그만 아파트가 보이네. 저기 뒷배경을 봐봐. 최소한 TV는 갖고 있구먼. 그리고 말이야...”
루카스는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Zoom 카메라 앞에서 받아쳤다.
“저, 마이크 안 끄셨는데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이 아파트 X같은 거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저에게 일자리를 주세요. 그래야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으니까요.”
당황한 감독은 말을 더듬는다.
“오 이런, 정말 미안하네. 부끄럽군.”
“저는 상자곽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괜찮아요. 그러니까 저에게 배역을 주세요. 그러면 모두가 괜찮아질 겁니다.”
트리스트람 샤피로 감독과
그가 만든 시트콤 ‘커뮤니티’
출처-<IMDB>
무례한 말을 한 감독의 정체는 시트콤 ‘커뮤니티’의 트리스트람 샤피로(Tristram Shapeero) 감독이었다. 이 영상은 업로드되자마자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그리고 배우들은 ‘나도 오디션 중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봤다’고 잇달아 폭로했다.
그런가 하면 LA타임스(링크)는 작가 겸 배우인 루이 리날디(Louie Rinaldi)의 사례를 소개한다.
리날디는
틸다 스윈턴 주연의 ‘케빈에 대하여’로 알려진
조연배우다.
출처-<IMDB>
「한 제작사에서 셀프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달라고 제 에이전트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누드로 출연해도 괜찮냐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셀프 오디션 테이프도 누드로 찍어달라는 것이었죠.
제작사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찍는 건 자유인데, 우리는 누드로 찍는 게 부담 없어 하는 배우를 원한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배우를 원한다.”
나는 기분이 나빴고 거절했어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겠어요?
어떤 제작사는 나보고 1시간 안으로 셀프 오디션 테이프를 찍으라고 지시했어요. ‘비디오를 빨리 보내면 보낼수록 좋을 것’라고 덧붙여서 말이죠. 다시 말해, 셀프 테이프를 찍을 때는 나의 삶이나 일상생활 따위는 제작사가 상관 안 한다는 거죠.」
작가들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긴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작가실’에 여러 작가들이 모여 아이디어 교환, 노하우 전수 등이 이뤄졌지만, 온라인 미팅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작품 대본을 쓰면서도 동료 작가들과 미팅 한 번 못 하고, 촬영장에도 한 번 못 가는 사례가 수두룩해진 것이다. 결국 작가들은 감독이나 배우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못 보고 몇 개월만 일하고 잘리는 경우가 많아지게 됐다.
지난 기사(링크)에서도 다뤘던, ‘왕좌의 게임’ 작가 조지 RR 마틴이 지적한 ‘작가실’ 폐지 문제다.
작가파업 시위에 동참한 조지 RR 마틴
따라서 배우조합은 제작사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해왔다.
1. 배우가 셀프 테이프 오디션 비디오를 찍느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라.
2. 셀프 테이프 오디션 비용과 부담을 배우가 아닌 제작사가 책임져라.
3. 주말과 연휴에는 셀프 오디션 주문을 하지 말라.
4. 캐스팅이 이미 완료됐으면, 응시자를 계속 기다리게 하지 말고 연락을 줘라.
물론 제작사연합은 이러한 배우조합의 요구를 거절했고, 파업 중인 현재까지 합의는 도출되지 않고 있다.
작가 호세 리베라(Jose Rivea)의 이야기
호세 리베라(Jose Rivea)는 TV쇼 작가이고, 작가노조(WGA) 라티노 작가위원회 부회장이다. “Unusual Suspect”(2016), “Betrayed”(2019), “Twisted Love”(2019) 등 주로 TV 재연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에 참여했다.
이 리베라 작가를 Zoom 기자회견을 통해 인터뷰했다.
Zoom 미팅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호세 리베라 작가
출처-<Ethnic Media Service Zoom 영상 캡처>
Q1. 파업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10년 전만 해도 TV 방송 수입의 대다수는 광고에서 나왔죠. 그래서 드라마가 성공하면 연장 방송을 하고, 그러고 나선 제휴 방송사에 팔리고, 그런 후엔 재방하고 재방하는 것이죠. 1990년부터는 DVD로도 팔렸죠. 그렇게 거둬진 광고 수입은 배우, 작가, 제작사가 합의한 규칙에 따라 재방료(residual)로 배분이 됐습니다. 이렇게 받는 돈이 매년 몇천 달러에서 몇만 달러까지 됐습니다.
고물상주인 당신도 아시겠지만, 작가와 배우는 기본적으로 계약직입니다. 프리랜서죠. 그래서 어쩔 때는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일거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재방료로 받은 수표가 작가, 배우로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고, 일거리가 없을 때에도 버틸 수 있게 해줬죠. 그리고 의료보험도 받을 수 있었죠. 다시 말해, 이 업계는 지속 가능한 모델(sustainable model)이었던 것입니다.
한 배우가 우편으로 받은 재방료 수표의 모습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여기저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리밍 모델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구독자(subscription) 숫자에 따라 운영이 되죠. 따라서 광고 수입이 없습니다. 따라서 재방에 따른 광고 수입도 없고, 제휴 방송에 판매 수입도 없습니다. 이제 DVD 판매 수익도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DVD를 봅니까?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백 편의 드라마를 볼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서 60년 동안 지속됐던 비즈니스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모델 변화로 일어난 문제는 재방료 액수가 터무니없이 줄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배우와 작가가 드라마에 출연하면, 1만 달러 기본 수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작품 하나가 히트하면 6개월 후쯤에 5,000달러에서 1만 달러 정도가 재방료로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스트리밍 시대에는 이제 단돈 5달러에서 10달러만 준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닌 것입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배우 키미코 글렌이 받은
재방료 수표 인증샷
또 다른 문제는 제작 예산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드라마 한 시즌당 22회 정도를 찍었고, 배우와 작가들은 여기서 벌은 돈으로 1년을 살았습니다. 스트리밍 시대에는 시즌당 8회에서 10회만 주문합니다.
드라마 횟수가 줄어들고, 예산이 줄어들고, 미니룸(정식 작가실이 아닌 임시 작가실)이 생기고, 스태프 숫자도 줄어들면서, 영화, 드라마 일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가 아닌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고용주가 필요할 때만 사람을 불러 임시로 일시키는 것)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1년 단위로 일하면서 의료보험도 받고, 은퇴 계획도 세울 수 있었어요. 이젠 그런 혜택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작가와 배우들은 1년에 10주만 일할 수 있습니다. 재방료 액수도 줄었고요. 수입이 엄청나게 줄게 된 겁니다.
Q2.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입니까?
여기서 할리우드에 대한 오해에 대해 해명하고 싶습니다. 할리우드 사람들은 다 백만장자(millinonaire)라는 신화 말이죠.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해리슨 포드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1년에 수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여러분, 드라마나 영화 한 편 볼 때 엔드 크레딧을 한번 보세요. 거기엔 말 그대로 수백, 수천 명의 이름이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나 제니퍼 로렌스는 수백만 달러를 받겠지만, 그 밖의 나머지 사람들은 1년에 1만 달러 벌면 운이 좋은 편입니다. 아주 운이 좋다면 말이죠.
제니퍼 로렌스와 해리슨 포드가 각각 출연한 영화
출처-<각 영화 포스터>
할리우드는 기본적으로 블루 칼라 산업(blue collar industry)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기술직입니다. 목수도 있고, 페인터도 있고 건축업자도 있죠.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들도 있고, 헤어 스타일리스트, 아티스트, 그리고 엑스트라가 있습니다. 물론 작가도 있죠. 모두 돈을 많이 못 법니다.
영화 촬영 중인 스태프
출처-<Wikimedia commons>
현재 배우조합 소속 노조원이 16만 명인데, 이들 노조원들의 평균 연수입이 1년에 2만 6,000달러입니다. 2만 6,000달러가 왜 중요하냐면, 최소한 이 정도를 벌어야 조합원 의료보험 가입 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 업계 사람들은 넉넉지는 않아도 월세 내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tech)이 이런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공정한 임금(fighting for fair wage)를 위해 싸우는 것이죠.
(영화일의 특성상 할리우드 노동자들이 물가 높은 LA나 뉴욕에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우조합원 평균 임금 2만 6,000달러는 아파트 월세값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Q3. 그렇다면 노조가 파업을 통해 제작사에 요구하는 게 무엇입니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작사들이 지난해 거둔 수익이 2천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노조는 지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사 수익 2천억 달러의 2%만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작사가 4억 5,000만 달러만 더 내놓으면 우리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그 2천억 달러 중에 말이죠.
저는 이 정도 요구사항이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를 위한 경제 모델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배우와 작가들은 다시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고, 창작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어 다시 수백, 수천만 달러 수익을 내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제작사에서 모두를 위해 2%만 내놓으면 모두가 경제적으로 안정될 것입니다.
Q4. 파업의 이유 중 하나가 AI 문제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사실 2022년만 해도 AI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AI가 부상했고, 제작사가 AI를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AI가 감독, 작가, 배우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죠.
우리는 이번 싸움이 생존권을 위한 투쟁(existential fight)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나서서 몇 가지 안전장치(safeguard)를 걸어놓지 않으면, AI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직업군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현재 몇몇 유명 영화가 AI를 이용해 사망하거나 나이 든 배우를 재창조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스타워즈 영화(스타워즈 9편 라스트 제다이)에서 그랬고, 최근 해리슨 포드 영화(인디아나 존스)에서 딥페이크 기술(deep fake)을 썼습니다.
2017년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레이아 공주역의 캐리 피셔가
2016년 사망함에 따라
대역과 CGI로 촬영했다.
사진-<루카스 필름>
이제 AI 기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욱 발달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AI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배우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배우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면 영화에 AI 기술을 사용해도 됩니다. 만약 배우가 사망했다면 최소한 배우의 유족에게 허락을 받고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면 괜찮다고 봅니다.
최근 넷플릭스를 비롯한 몇몇 제작사에서 엑스트라 출연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몰래 끼워 넣은 적이 있습니다.
『배우의 외모, 체격, 그리고 얼굴을 스캔해서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그 데이터를 원하는 목적으로 뭐든지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신인 배우라고 가정해 봅시다.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넷플릭스 작품에서 엑스트라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유명 배우가 되어 수백만 달러를 벌게 됐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여러분의 외모, 체격, 얼굴을 아무 데나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러한 권리를 10년 전에 100달러를 주고 팔아버렸기 때문이죠.
내가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영화 계약서에도 같은 문구가?
필자가 엑스트라로 일했던 영화의 계약서의 일부분
위 계약서에도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와 촬영분, 포즈, 연기, 행동을 제작사에 양도하며, 본인의 이름, 외모, 사진을 상업 목적과 홍보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허락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사실 AI에 대한 리베라 작가의 지적은 엑스트라나 단역 배우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는 문제다. 제작자 협회와의 협상 결렬 다음 날인 7월 13일 배우노조 대표단은 파업 선언 기자회견을 다음과 같은 폭로를 했다.
“제작자 협회는 어제 AI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엑스트라 배우들의 전신을 스캔하고, 하루치 일당을 주면, 영화사가 그들의 이미지, 외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영원히 자기네가 원하는 프로젝트에 쓸 수 있다는 것이죠. 본인 동의 없이, 추가 수당 없이 말입니다.”
영화제작사협회와 협상 결렬된 다음 날인 7월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파업을 선언하는 배우조합 대표단.
출처-<게티 이미지>
엑스트라 알바 뛰는 B씨 이야기
배우조합의 이러한 폭로는 엑스트라 단역배우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엑스트라 알바를 뛰고 있는 B씨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7년인가 2018년이었을거에요. 대규모 예산의 영화 촬영장에 갔는데, 커다란 트레일러에 데리고 가더니 내 몸을 스캔하겠다는 겁니다. 무슨 서류에 서명하라고 시키면서, 거절하면 일당 없이 돌아갈 거라고 하구요. 트레일러에 들어갔더니 온통 까만 배경에 수많은 모니터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몇 가지 몸짓을 했습니다. 저처럼 그날 도대체 몇백 명이 스캔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이미지가 나도 모르는 새 AI에게 활용된다면 기분 나쁠 겁니다. 우리에게 생계유지가 가능한 일당을 안 주고 굶어 죽든 말든, 우리를 자르고 AI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이 슬플 뿐입니다. 나는 배우조합원은 아니지만 조합이 이 문제에 대해 들고 일어섰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응원합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만 적용되는 문제일까
지금까지 미흡하나마 현업 종사자들의 의견을 직접 소개해 봤다. 이렇게 길게 할리우드 파업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여러분이 재밌게 보는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거고, 그 사람들도 부양할 가족이 있는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서 ‘꿈의 공장’ 할리우드 사람들도 이런 고민이 있다고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둘째, 할리우드 파업 이야기가 과연 할리우드 영화계에만 머무는 문제냐는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과 오르지 않는 최저임금, 과도한 노동시간, 그로 인해 ‘지속 가능한 경제’가 불가능해질 때 파업 등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법이다.
과연 할리우드 파업이
바로 내일 여러분의 직장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출처-<연합뉴스>
또한 대면 업무가 아닌 온라인 업무를 통해 커지는 ‘일터의 비인간성’ 역시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문제다.
출처-<경향신문>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런 식의 리뷰 갑질, 별점 테러가 서로 얼굴 보고 주문했다면 할 수 있을까? 서로 얼굴 안 보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에 고용주와 직원, 업주와 손님 사이에 이런 식의 극단적 갑질이 난무하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 우리 일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할리우드 파업은 이러한 ‘온라인의 비인간성’을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투쟁이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 힘을 보태고 싶다면
지금 우리 생활에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우리가 할리우드 파업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노동자들에게 바다 건너 한국에서 힘을 보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배우조합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조합은 보이콧을 요구한 적 없습니다. 부디 영화와 TV를 계속 즐겨주세요. 그래야 제작사가 우리 배우들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진짜 사람의 영혼과 감정을 AI가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화,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우리의 협상력(bargaining power)이 낮아집니다. 이건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부디 TV와 영화를 계속 즐겨주세요.」
호세 리베라 작가 역시 일반 시청자들이 계속 TV와 영화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현재까지는 배우, 작가노조에서는 TV나 영화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파업 이전에 우리가 일한 결과물은 현재 공개가 되고 있고, 그 작품에서 나오는 수입이 현재 파업 중인 노조원들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TV와 영화를 계속 봐주세요.」
검색어 제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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