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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스모그로 뒤덮힌 영국 런던의 모습

출처-<링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논란인 요즘. 과거 영국에서도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사안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런던 스모그는 1952년에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전인 1850년대, 이미 런던은 대기 오염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영국 의회는 'Smoke Nuisance Abatement Act(매연이나 기타 오염된 물질이 대기로 침투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세기에 발생한 런던 스모그보다 심각성이 덜하고, 사상자도 비교적 적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대기오염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공장을 소유하고 있던 귀족과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 간의 싸움이었다. 공장 소유자나 필지를 가진 귀족들은 매일 같이 공장을 돌려야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환경오염, 노동력 착취와 같은 유토피아적 발상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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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당시, 1페니짜리 숙소를 사용한 노동자는 의자에 앉아 로프에 기댄 채 잠을 잤다

 

당시는 다섯 살 된 아이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18시간씩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귀족들은 노동자 계층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대기가 오염되거나 어린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일은 그들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물론, 사회주의가 시작된 나라인 만큼 영국엔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법을 제정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또한 귀족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때까지만 해도 대기 오염이 그렇게 큰 재앙으로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런던을 덮친 이산화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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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복원한 런던 스모그 당시 모습

출처<링크>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시작한 나라로, 기계화의 선봉장이었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 사회와 비교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영국의 자동화를 위한 기계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대규모 생산을 위해 막대한 에너지원이 필요했고, 그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를 가동했다. 대표적 에너지원은 석탄이었다. 공장 기계를 돌리고, 각 가정의 난방을 위해 너도나도 석탄을 땠다. 이산화황이 무엇인지, 대기오염은 또 어떤 것인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이미 많은 정치인과 학자는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석탄 사용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당장 보이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다량의 석탄을 일시적으로 소모하게 될 경우, 평균보다 5배가량 농도가 짙은 아황산가스가 배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국 의료협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는 이러한 대기 오염이 시민들의 호흡기 질환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보고서도 발표했다. 이외에도 여러 환경운동가가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열어 향후 런던의 대기오염, 스모그 현상이 많은 질병을 야기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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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남부 포트 탤벗의 한 철강 노동자의 차고 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 <SNOW>. 아이 위로 떨어지는 것은 눈이 아닌 불에 탄 '재'로, 공업 도시와 철강 생산으로 인한 공해를 경고한 작품이다.

출처-<뱅크시 홈페이지>

 

물론… 쇠귀에 경 읽기였다. 석탄산업과 관련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단체, 그리고 일부 정치인은 석탄발전소 가동을 지지하고 대기 오염과 스모그의 직접적인 원인이 석탄 연소에 있다는 주장에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무시했다. 산업화와 동시에 진행되던 도시화로 인구 과밀이 발생한 런던에선, 예상대로 석탄 사용량이 급증했다. 당연히 아황산가스 배출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다 죽을 거 빤히 보이고 아는데, 그냥 당해야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1952년, 닷 세 동안 4,000명이 숨지고, 이후 10개월간 호흡기 질환으로 8,000여명이 추가로 숨을 거뒀다. 1년 만에 1만 2,000명이 목숨을 잃는다. 당사자였던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정말 1m 앞도 보이지 않았어. 다리를 건너는데 반대쪽에 걸어오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계속해서 어깨를 부딪쳤다니까 …”

 

1950년대, 런던에서 20대를 보내며 사업가로 성공을 꿈꿨던 한 청년이 훗날, 은퇴 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할아버지가 되어 런던 스모그를 떠올리며 했던 말을 기억한다. 우연히 대화 중에 들었던 런던 스모그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 사전에 막을 수 있었고,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인류의 역사는 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주의를 주고 문제를 제기할 때 들었어야 했다. 아황산가스의 위독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때 귀를 닫고, 당장 내일 가동해야 할 공장의 에너지 공급에만 신경을 썼다. 밖이나 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던 영국의 겨울 날씨는 영국 가정에 엄청난 양의 석탄 소비를 불러왔다. 경고를 무시했던 결과는 결국 생명과 맞바꿔야 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런던’에 관해 공부하면 가장 먼저 ‘스모그’에 대해 배웠다. 많은 단어 중 왜 ‘스모그’일까? 의아했던 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이었기에 그랬던 것 아닌가 싶다.

 

핵심은 삼중수소의 내부피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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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안전성 홍보를 위해 일본 부흥청에서 제작한 삼중수소(트리튬) 캐릭터

출처-<일본 부흥청>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바다로 방류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발전소를 계속해서 가동하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말을 무시했던 영국의 일부 정치인들처럼, 우리 국회에서도 전문가의 말은 무시한 채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 고려하는 중이다. 일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다 하여 콩고물을 떨어지는 것도 아닐 터. 어떻게 된 건지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일심동체 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삼중수소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처리한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할 것이며, 이는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ALPS는 삼중수소를 거르지 못한다(물론, 일본은 삼중수소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의 “외부 피폭”에 집중한다. 삼중수소는 베타선을 방출하는 핵종으로 외부 피폭 시 인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별문제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만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외부 피복보단 내부 피폭 시 훨씬 위험하다. 삼중수소가 인체에 침투하면 다른 방사성 핵종보다 세포에 더 큰 손상을 일으킨다. 

 

가령, 고에너지의 감마선 핵종은 투과력이 강해 세포를 통과해 체외로 방출된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투과력이 약한 저에너지다. 몸을 통과하지 않고 세포 내에 머무르며 세포에 연쇄적인 손상을 일으킨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언론은 세슘을 언급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삼중수소다. 삼중수소가 바다에 있는 생물체인 플랑크톤, 어패류 등을 통해 섭취되면 체내 유기화합물과 결합하게 되어 인체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최대 500~600일까지 머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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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흥청에서 제시한 자료에는 "삼중수소는 빗물, 바닷물, 인간의 몸 속에도 존재한다"며 삼중수소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삼중수소를 실제로 먹거나 마시게 되면, 몸 내부에서 집중적인 내부 피폭을 일으킨다. 

 

아황산가스 별거 아니라고 주장했던 영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세슘이니 삼중수소니 하는 것들 다 별거 아니라고 하는 일본 정부와 대한민국 일부 정치인들은 닮았다. 논란 가라앉히기에만 급급하니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일본에는 분명한 이득이 있다. 방사능 오염수를 계속 들고 있어 봤자 좋을 거 없으니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방류하면 결과적으론 이득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뭐가 남나? 아무리 눈 비비고 살펴봐도 잃는 장사다. 어떤 정치적 이익 관계가 엮여 있길래, 대체 무엇을 위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뜻을 같이 하고,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지 그 속셈이 심히 의문스럽다.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문제는 과거의 영국과 너무나도 비슷한 사례다. 1850년 당시, 대기오염으로 사람들이 죽게 될 거라, 100년 후 런던 도심 한복판에서 4천 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무기력하게 오염수 방류를 맞아야 하는지도 모를 이 시점.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영국의 역사를 복기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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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3호기 폭발 장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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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기일보>

 

최근, 영국 대기질(Air Polution)을 보면, 평균적으로 Index 2-3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이 Index 80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숨을 들이마셨다는 이유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던 영국에 어떤 변화가 불었을까?

 

1956년에 만들어진 청정대기법, 이름하여 ‘깨끗한 공기 법’(Clean Air Act 1956)은 산업 시설은 물론 각 가정의 화로로부터 발생하는 먼지 및 연기 배출을 통제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연기 통제 구역’(smoke control areas)을 설정하여 ‘아황산가스’(sulphur dioxide)를 비롯한 특정 물질은 배출을 금하도록 했다. 단순히, 산업지구, 가정 등을 제재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특히, 런던의 탬스강 주변에 있던 2개의 거대 발전소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와 ‘바터시 화력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 사용을 중단하는 업무협약을 통해 석탄발전소의 중단을 위한 정책 시행에 속도를 가했다. 

 

이후,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들이 이산화황이나 미세먼지가 폐는 물론 혈액으로도 침투할 수 있고 이는 폐 질환으로 숨진 이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할 수 있도록 자본을 투입했다. 위와 같은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서야, 이를 법제화하고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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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한 국민의 힘 김영선 의원이 수조 물을 떠 마시고 있다

출처-<김영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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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회만 열심히 먹겠다"고 밝힌 국민의 힘 장제원 의원

출처-<뉴스원>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 찬성 반대의 쟁점화를 넘어 객관적인 자료를 내고, 이익집단과 합의하고 설득해 법을 제정했다. 물론 대가는 치러야 했다.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기업에도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대로 있다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죽게 생긴 마당에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지난 60여 년간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에서 살 수 있는 도시로, 또 살기 좋은 도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영국 정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공기 질을 개선하고 지금은 미세먼지 농도 ‘낮음’을 유지하고 있다.

 

IAEA는 핵과 원자력 에너지 사용에 대한 사안을 관할하는 기구다. 자원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전문 기구가 아니다. 도쿄 전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일본의 국영 기업이다. 오염수 방류에 있어서 신뢰할 만한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아니라는 뜻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본 정부에 끌려갈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아니, 끌려가긴커녕, 일본 정부의 의사와 뜻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 그리고 도쿄 전력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든 한국은 한국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적극 채용해 해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50-100년 후,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이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린…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소리 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