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엔 삽이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이미 개발된 주택용지를 재설정하거나 용도 변경하여 주택을 늘릴 수 없는 이유, 지자체에서 거주지 재개발 / 구획 재설정을 시도할 때마다, 거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동네 곳곳에는, 다세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푯말이 곳곳에 박혀있다. 여기에는 환경보호, 과밀화 방지라는 이유가 붙는다. 여긴 원래 소수의 주민들이 자연에 둘러싸여 살던 곳이니, 이를 그대로 냅두자는 것이다(반대하는 단체이름이 그래서 Right Size Mclean).
<출처 - 링크>
환경보호,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환경보호가 유독 잘되는 지역이 있고, 난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집값 때문이다. 이미 크고 비싼 저택을 보유하고 있는 주민들은, 고급 주택이 있던 자리에 여러 채의 일반 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동네 땅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주택이 부족한 상태로 남아 본인의 집에 프리미엄이 붙는 게 훨씬 이익이다. 개발 반대론자들은 겉으로는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지만, 뒤로는 자신들의 재산도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동네에는 미국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자체에서 재개발을 추진할 때마다, 기업가와 법조인(심지어 판사들도 껴있다)들이 소송 러쉬를 걸어 계획을 좌절시킨 사례는 많다(이 동네 이사 오고 제일 놀란 것은, 미국도 부촌 부심이 졸라 심하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는, 이지역에 위치한 초중고를 졸업하고 자녀들도 이 지역에서 학교를 보냈다는 게 자랑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8학군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거다. 병원에서 사는 지역을 말하니까, 의사가 자기도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고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건 적도 몇 번 있다. 이전 살던 동네에서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다).
거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재개발 계획이 막히는 일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뉴욕처럼 주택 공급 문제가 심각한 동네일수록, 재개발이 안 된다. 실리콘밸리 북부에 Atherton이라는 도시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금천구와 비슷한 크기인데, 지역주민이 고작 7,500명 정도다. 이 동네엔 정말 엄청난 스케일의 저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 집값은 평균 구십억이 넘어간다. 최근 지자체가 이 동네 주택 수를 늘리려고 하자, 동네 주민들은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 반대운동에 참가한 주민 라인업은 어마어마하다. 유명 벤쳐투자자, IT 창립자 그리고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의 빅테크 전현직 임원 등. 이름을 검색하면 얼굴과 직책이 바로 나오는 네임드들이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주민들이었던 것.
이들이 소속된 대형 IT기업들은 그동안 실리콘밸리 인근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기금을 출연해 온 바 있다. 이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문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원들은 정작 자기 동네가 재개발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히 이기적이지만, 잘못됐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개인 부동산 문제까지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따를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부촌은 왜 재개발이 안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여담이지만,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건축 허가가 안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2022년 연말 기준으로, 주택 건축 허가 발급까지 무려 600일이 넘게 걸린다. 미국에서 가장 주거 문제가 심각한 동네인데, 집짓기도 가장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주택공급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싼 집이 씨가 마른 이유
지금까지 얘기를 요약하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주택 공급 계획이 대거 취소되면서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시작되었다. 여기에 지역 이기주의, 각종 규제 등이 더해지면서 주택용지 확보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때 감소했던 신규 주택 공급량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재비와 인건비마저 폭발적으로 올랐다. 미국의 주택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다.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대규모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일반주택 건설 시 철근 + 콘크리트 조합이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레미콘 같은 경우, 공장에서 혼합 후 두 시간 내에 공사 현장에서 배출되어야 한다.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은 환경에서는, 레미콘이 사용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미국에서 나무는 가장 싸고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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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팬데믹 기간중에 목재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른 건축 자재와 달리, 목재는 수작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기계의 많은 도움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직접 가서 벌목하고, 운반하고, 가공해야 한다. 무슨 얘기냐.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공급량이 단기간에는 늘어나기 힘들다는 거다.
주택 건설 증가로 갑자기 늘어난 목재 수요를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목재 가격이 급등했다. 게다가 코로나 확산 영향으로 수많은 제재소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일도 있었다. 이는 환기도 안 되는 공간에서 여러 노동자가 밀집해서 작업하는 열악한 환경에 많은 근로자들이 노출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이다. 코로나 이후로도, 육체노동 기피와 외국인 노동자 유입 감소의 영향 등으로 벌목지 / 제재소는 노동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거기다가 캐나다산 목재에 대한 반덤핑 과세가 부과되면서 수입산 목재 가격 또한 상승했다. 이 모든 사태의 영향으로, 일부 목재의 가격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세배 가까이 올랐다. 그나마 최근에는 미국 인건비가 많이 오른 덕에, 그나마 목재 생산이 정상화되고 있긴 하지만 목재 가격은 여전히 판데믹 이전 대비 40% 이상 높다.
알루미늄, 철강을 비롯한 모든 건설 자재의 가격이 올랐다. 한국에서도, 순살자이, 흐르지오같이 신축 아파트에서 부실시공이 발견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그만큼 건축 자재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주택용지 부족으로 인해, 토지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여기에 주택 건설비용까지 올라버리자, 신규주택의 분양가는 폭발적으로 오른다. 이제는 35만 불 밑으로는 집을 짓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신축 비용이 오르면, 기존 주택의 가격 또한 오른다. 이미 지어진 기존 주택을 대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차 가격이 오르면 중고차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것 같이 말이다.
살 사람에게만 판다
신축 비용이 35만 불을 넘겼다는 사실은 꽤나 중요하다. 첫 내 집 마련을 시도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예산의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사실 35만 불은 낮게 잡은 거다. 작년 한 해 동안 거래된 주택의 중위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45만 불을 돌파했다. 약 30만 불이었던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50% 가까이 오른셈 이다. 2000년대 초반에 집값이 20%쯤(20만 불 ->24만 불)오른 것 가지고,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 고점으로부터 주택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 평범한 미국인이 내 집 마련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 근로자의 중위소득은 1년에 약 5만 5천 불 정도. 평균적인 주택 (45만 불)을 구입하려면, 9년 치 소득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한다. 게다가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까지 크게 올랐다. 미쳐버린 가격과 금리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의 주택 구매력은 역대 최저치로 내려간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낮아져 수요가 감소하면, 생산자들은 보통 가격을 낮춘다. 제품이 안 팔리면 재고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겐 서브프라임모기지 때, 대규모 미분양 사태의 경험이 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의 최근 트렌드는 정반대이다. 건축업자들은 갈수록 더욱 비싸고 큰 집을 짓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앞서 길게 설명한 대로, 최근의 주택 공급 가격 상승에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크다. 토지비용, 건축 허가 비용, 건축비용이 모두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일반 구매자들이 원하는 가격대(35만 불 미만)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비용 구조상 불가능해졌다. 여기서 주택 건설업자들이 내린 선택은 고급화다. 어차피 대중의 수요를 맞출 수 없다면, 아예 더 비싸고 좋은 집을 지어서 주택 구매력이 남아있는 소수를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출처 - 링크>
과거 미국 주택 시장에는 스타터홈이라는 게 존재했다. 스타터홈은 기본적인 기능만 넣어서 작고 저렴하게 지어진 소형주택이다. 주로 지갑 사정이 가벼운 신혼부부, 첫 집을 장만하려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건설업자들도 여러 채를 찍어내듯이 빠르게 건설할 수 있는 데다가, 잘 팔렸기 때문에 스타터홈을 짓는 것을 선호했다. 스타터홈은 지금,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기에는, 양(주택 토지 부족)과 가격 (주택 건설 비용 상승) 모두 어정쩡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건설업자들은, 주택 고급화를 통해 주택당 얻는 마진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다. 고급 주택 구매자들의 수요에 맞춰, 외관, 인테리어, 붙박이 가구/가전제품 등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택을 짓는 데 드는 비용과 건설 기간은 늘어나기 시작한다. 주택의 고급화가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의자 게임 : 앉을 데가 없다
어떤 제품의 고급화 / 가격 상승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외면하는 것이다. 재고 부담을 느낀 공급자들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많은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주택을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주택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나이대는 33살 정도다. 그 나이쯤 되면 어느 정도 경제력도 생기고, 결혼/출산 등으로 집을 사야 할 이유가 생긴다. 내가 지금 딱 33살인데, 비슷한 테크트리(30대 초반 결혼 및 출산, 주택구입)를 탄 입장에서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최근 1-2년새 집을 장만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참고로 X세대가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섰던 게 2000년대 중반이다. 늘어나는 주택구입 수요로 인해 주택 버블이 생겨났고 결국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2023년은 밀레니얼 세대가 30대 중반이 되는 시기다. 그러니까 지금이 미국 인구 구조상 주택시장의 신규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출처 - 로이터>
여기에 기술적인 요인이 겹친다. 부동산 시장은 의자 앉기 게임과 비슷하다. 기존 집주인/신규 주택구매자 모두 자신들이 거주할 집 한 채(자신이 앉을 의자)는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나가려면, 우리 식구가 이사 갈 집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런데 공급 부족 문제로 인해,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매물로 올라온 집의 수도 많지 않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내가 사는 집의 가격이 아무리 올랐어도,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의 가격이 더 오르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가, 내가 집을 살 때보다 너무 올랐다.
이게 생각보다 졸라 크다. 현재 나는 부동산 담보 대출로 2%의 이자만을 내고 있다. 금리가 낮을 때 30년 만기 고정대출로 이율을 고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를 가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새로 받을 경우, 7.5%(최근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이자를 내야 한다. 같은 금액의 원금을 대출받는다고 했을 때, 이자 비용만 3.5 배가 오르는 것이다. 이자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 집을 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집주인들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기존 부동산 담보 대출 이자율의 80%가 4% 미만이다. 그런데 신규 부동산 담보 대출의 이자율은 7.5%다. 집주인의 80%는 이사를 가게 되면(부동산 담보 대출을 새로 받게 되면), 이자 비용이 두 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집주인들은 존버하는 중이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자신이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는다. 이로 인해 주택 구입 수요가 어쩔 수 없이 신규 건축 시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부동산 사짜 감별법
현재의 미국주택시장은 한 마디로 졷됐다. 갈수록 집 지을 땅은 줄어드는데, 지역 이기주의와 규제로 인해 주택용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건축자재의 공급 지연/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주택 건설 비용도 크게 올랐다. 이렇게 분양가격이 오르니까, 건설사들은 모두를 위한 집을 짓는 걸 포기하고, 집 살 능력이 되는 소수를 위한 집을 찔끔찔끔 짓고 있다. 그 와중에 부동산 담보 대출 금리가 너무 올라서, 주택거래량/매물은 증발해 버렸다. 주택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걸 걱정한 실수요자들은, 영끌해서 주택을 구입하고 있다. 어느 하나를 특정해서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원인들이 얽히고섥켜서 현재의 파멸적인 주택시장 상황을 만들었다.
수요 공급 법칙을 영원히 벗어나는 시장은 없다. 부동산 시장도 언젠가는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야말로, 현재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높은 주택 가격은 건설사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주택을 짓도록 유도할 것이다. 벌목소, 제재소, 건설 현장이 풀로 돌아가면, 주택 공급 문제도 균형을 찾으리라. 만약 지나치게 높은 가격 때문에 더 이상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건설사들은 좀 더 저렴한 주택을 짓거나 기존 주택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이런 조정이 없더라도, 건축 자재 비용이 정상화되거나 존버중인 집주인들이 매물을 풀기 시작하면 부동산 시장은 안정될 것이다.
<출처 - 연합>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주택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은 굉장히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해서 발생한 현상이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예를 들면 주택용지 관리법을 개정한다던가 저렴한 건축방식의 도입같은)이 있지않고서는 단 기간 내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부동산 광풍이 지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시장이 앞으로 하락한다거나/상승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 많은 원인 중에 한두가지를 가지고서 얘기한다. 부분적으로는 분명 맞는 얘기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틀리거나 혹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방송만 나오면 얼을 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어떤 전문가가 집값이 내린다 혹은 오른다는 식으로 단언한다면, 그 사람이 사짜가 아닌지 의심해야 하며, 높은 확률로 사짜다.
도박묵시룩 딴지 편집장
나는 부동산 문제에 있어 완벽한 사짜다. 평생 동안 집을 딱 한 번 사봤고(심지어 집 보러 간 첫날, 첫 집을 그 자리에서 덜컥 사버렸다), 그 이후로는 부동산과 전혀 상관없으니까. 이왕 사짜인 김에, 한번 예측을 막 질러보겠다.
향후 부동산 시장은 한국 날씨처럼 변할 것 같다. 한국 날씨는 겨울엔 시베리아처럼 춥고, 여름엔 아프리카처럼 덥다. 미국 주택 시장도 앞으로 그렇게 널 뛸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나 많이 올랐는데, 건설업자들은 신규 분양에 미지근하고 기존 집주인들은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분간은 더 오를 여지가 남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무한정 치솟을 수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주택 가격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더 이상 구매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온다. 그리고 상승의 폭이 컸던 만큼, 이번 조정기는 그만큼 끔찍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주택시장의 사이클이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부동산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다. 얼마 전 딴지 편집장과 잡담을 하는데 이 양반이 갑자기 자기 집을 팔아서 전세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꽂힌 것이다(한 번 꽂히면 바로 실행하는 양반이라 이미 그날 집을 내놓고 나에게 말했다...).
원래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가뜩이나 부동산에 대한 전망도 나쁘니까 이 기회에 집을 팔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옆에서 졸라 뜯어말렸다(재태크 문제에 정치적 신념을 얼마나 반영시킬까 하는 것은 일단 논외로 치고). 주택시장 사이클이 고점을 향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하락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데도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일반인이 이런 거대한 주택시장의 사이클을 타는 것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1) 주택시장이 고점을 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고점이 지금이 될지 아니면 10년 뒤가 될지는 모르는 거다. 그 타이밍을 내가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낮은 확률이지만, 지금 살던 집의 가격이 생각보다 더 오를수도 있다.
2) 부동산이 거시적인 영향(경기 전망, 금리 등)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 부동산의 가격은 미시적인 영향(개발 호재, 주거 선호도 변화)을 더 받기도 한다. 무슨 얘기냐면, 부동산 가격이 전체적으로 빠지는 와중에도 내가 팔았던 집의 가격은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것도 맞춰야 돈을 벌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다. 편집장은 40대 평범한 직장인이다. 40대 가장의 투자는 잃을 게 없는 젊은이의 투자와는 다르다(물론 편집장은 내려갈 거니까 팔아야지~, 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타이밍이 딱딱 맞아서, 고점에서 지금 살던 집을 팔고, 이 돈으로 다른 투자에 성공한다고 해보자. 꽤 괜찮은 수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히 단타를 잘 치지 않는 이상 큰돈은 못 벌 것이다. 막 건물 사고 이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투자를 조금만 삐끗하면, 내가 보기에 편집장은 평생 손해를 복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편집장이 판 가격보다 집값이 20% 이상 오르거나 아니면 집 판 돈으로 벌인 투자가 실패하면? 평생 그 집 다시 못사는 거다. 멀쩡하게 잘살고 있던 집을 날리고, 계속 전세로 살아야 될 수도 있다.
편집장의 생각이 틀렸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물론 틀릴 확률이 높다. 이 양반, 경제 관념은 좀 꽝...). 집값이 앞으로 조정받을 것이다. 혹은 경기 침체가 찾아올 것이다는 일종의 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보면, 지금 살던 집을 팔고 존버하다가 다시 사는 게 아마 이득일 것이다. 그러나, 정론과 확률만을 믿고 포지션을 바꾸는 것(주택 보유 -> 무주택자)은 대단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이클이 길어지고 그 낙폭이 커질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낮은 확률이지만, 집값이 지금보다 더 오르거나, 하락세가 훨씬 늦게 찾아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이클을 타고 넘으려는 위험한 시도가 실패하면, 인생이 졷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개인들은 사이클 앞에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언제든 자신의 예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기에 맞추어 가능한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가 주택을 새로 구입해야 되는 입장이라면, 아마 구입 시기를 2-3년정도 늦추면서 관망하거나 아니면 시세 하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저렴한 주택을 알아볼 것 같다. 분명히 사이클상 고점이 다가오고 있고, 최근 지어진 주택은 가격/퀄리티로 봤을 때 가성비가 안 나오니까.
확실한 건, 무리해서 영끌할 타이밍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미 주택을 보유한 입장이라면, 앞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하락기를 대비해야 한다. 담보 대출이 너무 많아서 이자 내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라면, 진지하게 지금 사는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걸 고려해 볼 타이밍인 것 같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지금 살던 집에서 계속 존버하는 게 좋다. 앞으로 주택 가격이 내려가면 속은 좀 쓰리겠지만, 그거 한번 피해 보겠다고 편집장처럼 도박(...이라기 보다 사실 그냥 생각이 없...)을 하는 걸 권하지 않는다. 과하게 대응할수록, 손실 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사이클에 내 몸을 맡기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다.
잠시, 책광고 들어갑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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