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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자였나 싶다. 강남을 잠깐만 걷더라도 억 소리 나는 자동차가 상당하다. 요즘 출마설이 나도는 어느 정부 민정수석이 탔다는 마세라티는 물론 코너링이 탁월했다는 그의 아들이 탔던 포르쉐까지, 길에 채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입차 시장 규모는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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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정수석의 마세라티

<출처 - 링크>

 

지난해 우리나라에 판매된 벤틀리만 775대. 아시아 태평양에서 일본을 제치고 1위였다. 람보르기니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이 팔리고, 포르쉐 판매량은 법인 설립 이후 9년 새 4배 넘게 증가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는 BMW가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팔리고, 메르세데스-벤츠는 6번째로 많이 팔리는 시장이다.

 

다들 어떻게 돈을 버신 건지, 우리나라에 부자가 이렇게 많았는지. 웃픈 말로 '벼락거지'가 된 것 같아 차트를 볼 때마다 자괴감 들고 괴롭다. 푸념은 이 정도로 하자. 이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우리나라에서 수입차가 잘 팔릴수록 씁쓸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던 이야기다.

 

홍 박사... 아니 레이싱홍을 아세요?

 

요즘 유행하는 '홍박사 챌린지'라거나 '레이싱을 즐기는 홍준표'의 줄임말, 그런 거 아니다. 정확히는 '레이 싱 홍'(Lei sihng hong)이 정확한 표현.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다. 아시아와 호주, 유럽 일부에서 자동차 판매와 부동산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말레이시아 화교계 라우 가문에서 7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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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라우 초 쿤(Lau Cho Kun) 회장은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빌리어네어이며, 말레이시아 50대 부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개인 자산은 21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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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자본이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다. 레이싱홍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문어발을 펼쳐놓고 있으니까.

 

이 회사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자. 글의 끝까지 계속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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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세데스-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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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울·경 지역 벤츠 딜러 스타자동차, 한성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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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르쉐 최대 딜러사인 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SS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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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로 큰 포르쉐 딜러 용산(!!!!)스포츠오토모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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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QDA 모터스>

 

5. 람보르기니 단독 딜러 스쿠다(SQDA)모터스

 

이 회사가 모두 레이싱 홍 소유다.

 

람보르기니 판매량의 100%, 벤츠 판매량의 65%, 포르쉐 판매량의 50% 이상을 책임지는 알짜 중의 알짜 회사다. 뿐만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분 49%, 메르세데스-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20%를 소유하고 있다. 포르쉐코리아의 지분 25%도 2019년까지 갖고 있었다.

 

이젠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포르쉐코리아 구성원 중 상당수가 여전히 SSCL 출신이다.

 

선수가 심판까지 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벤츠다. 레이싱홍은 벤츠의 최대 딜러사이면서 한국법인, 벤츠코리아의 지분 절반을 가진 2대 주주다. 이 지위를 바탕으로 불공정거래를 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지적됐다.

 

다음 달 공식 프로모션 혜택을 미리 알아낸 뒤 다른 곳과 차별화된 프로모션 정책을 펼쳐 고객을 빼앗아 온 일화도 유명하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서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지위 남용에 대한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메르세데스-벤츠 독일 본사가 권장하는 엔진오일은 모빌원이다. 이와 별개로 세계 각 지역마다 공급사를 선정해 서비스용 엔진오일을 납품받는데, 중국과 일본이 속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독일 훅스에 이어 일본 JX니폰 등이 선정됐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제품은 2017년 돌연 미창석유공업의 제품으로 바뀐 적이 있다. 이 회사. 레이싱홍이 소유한 스타자동차가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결국 벤츠코리아는 논란이 된 오일 공급사를 돌연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끝이냐고? 아니다. 최근까지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벤츠는 지난 2021년 프리미엄 장기렌터카 사업을 하기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모빌리티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 회사, 레이싱홍 산하 스타렌터카를 인수했다.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패턴, 어디서 많이 본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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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레이싱홍 산하에는 한성인베스트먼트라는 부동산 투자회사도 있다. 이 회사는 한성자동차의 전시장, 서비스센터 등의 토지를 소유한 소유주다. 그리고 한성자동차는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의 임대료를 한성인베스트먼트에 지급하고 있다. 한성자동차의 경우 임차료 항목이 5년 사이 3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새롭게 전시장을 추가하고 확장 이전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인상이 됐다. 더군다나 임차료를 지급하는 대상은 한성인베스트먼트다. 건물주가 자기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데 스스로 셀프 임대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 사업의 경우 임차료를 높여 이익을 낮추고 세금을 줄일 수 있다. 부동산 임대 사업은 상대적으로 조세특례제한법을 활용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감가상각을 통한 이연법인세 항목을 활용해 세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이 의심된다.

 

그래서 얼마나 벌어들이냐고? '조' 단위다

 

금감원 공시를 보자.

 

레이싱홍 산하 한성자동차의 지난해 매출은 3조 6576억 원. 영업이익은 855억 원이었다. 2020년엔 2조 6694억 원, 2021년엔 3조 3286억 원을 벌어들이는 등 매년 조 단위 매출을 내고 있다. 그리고 2021년엔 1200억 원, 2022년에는 1000억 원 등이 레이싱홍 모기업에 배당됐다.

 

아까 레이싱홍이 벤츠코리아의 2대 주주라고 했던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이게 다가 아니다. 주주로서 벤츠코리아에게 배당금도 받는다. 당장 지난해, 벤츠코리아의 당기 순이익은 1779억 원. 이 중 49%는 레이싱홍이 가져갔다. 정작 벤츠코리아가 쥐고 있는 돈 없이, 3년째 이 같은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레이싱홍이 가져가는 돈에 자금줄이 마르다 보니, 이는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벤츠코리아가 매년 수만 대의 자동차를 팔면서 정작 국내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벤츠코리아의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지출 비중은 1.03%.

 

2020년(1.8%), 2021년(1.3%)에 이어 2년 연속 하락세다. BMW가 1.3%, 폭스바겐그룹이 4.2%, 포르쉐가 4.3%인데 반하면 상당히 짜다.

 

이런 와중에 근로자들과의 갈등까지 불거졌다

 

한성자동차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이유로 들고 일어난 것. 지난달 26일 성수 서비스센터에서 출정식을 열고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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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이들의 요구 사항은 식대 10만 원 신설, 설·추석 여름휴가 상여금 지급, 근속 수당 신설 등이다. 영업직에서는 판매 인센티브 인상, 서비스직을 포함한 비영업 직군에서는 기본급 20만 원 및 자격 수당 10만 원 신설·증액 등을 원했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조 단위의 매출을 내는 회사가 휴가, 명절 상여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정작 사측은 강경하게 나오는 모양새다. 직원들에게 발송한 메시지에서 꽤나 세게 말했다.

 

"최근 불안한 글로벌 경제 상황은 회사의 경영 환경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이러한 내·외부 환경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대화보다는 파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매우 아쉬울 따름"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에 대한 '입막음' 시도 정황도 파악됐다. 사측이 배포한 '미디어 응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 기자의 취재 요청에 직접 답변은 지양할 것,

 

2. 사소한 언론사 문의라도 홍보 담당자에게 공유할 것, (현장에 방문한) 기자를 보내기 위해 강제로 끌어내거나

 

3. 감정적으로 대응(손으로 카메라를 막거나 몸으로 저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조직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내걸고 있는 정황도 보인다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8700만 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 퍼지고 있다. 이는 사실과 분명히 다르다. 각 기업이 금감원에 제출토록 하고 있는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한성자동차가 제출한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직원 급여로 1236억 6062만 1558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신고된 한성자동차 임직원 수는 2026명으로, 단순 계산상 1인당 6103만 원이 지급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마저도 허수에 가깝다. 비상장회사 특성상 임원 수가 몇 명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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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블라인드 등 관련 포털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한 직업 포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성자동차 근로자의 45%가 3000만 원 미만의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다. 3000 미만이니까 2999만 원이라고 치자. 단순 계산상 근로자의 45%가 실수령액 220만 원대의 근로자다. 최저임금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누구 말처럼 주 100시간은 일해야 좀 고액 연봉이라고 하겠다. 그다음으로 높은 연봉대는 3000~4000만 원 선. 일부 언론이 말하는 8700만 원은 터무니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입차 딜러사라는 곳의 현실이 이 정도다. 다른 회사는 어느 정도일지 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을까. 도이치모터스 문제, 중요하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 화교 자본 한성자동차, 그리고 레이싱 홍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입차가 잘 팔리면 팔릴수록 조금은 씁쓸한, 우리 수입차 시장의 단면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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