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엥? 갑자기 무슨 얘기야?”
“잼버리 말야. 엉망이라고 하던데, … 너네 나라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글쎄. … 무슨 일이 있었을까…”
“너네 나라 그동안 잘했잖아. 평창 올림픽도 그렇고, 지난번 코비드 때도 한국이 엄청난 위상을 떨쳤고, 지금까지 국제적인 행사들을 잘 치러왔잖아. 근데 이번에 보니까 너무 엉망이라던데, 무슨 일이냐고"
매일같이 보도되는 BBC의 잼버리 관련 소식. 좋은 말이 없다. 욕만 안 했다 뿐. 실제로 자녀를 혹은 자녀의 친구들이 보내오는 한국에서의 잼버리 경험담에 혀를 내 두른다. 만나는 이들마다 한마디씩 거드는 이유다. 개중에는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도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대부분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사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다 할 이미지라는 게 없었다. 그게 솔직한 표현이다. ‘코리아’(Korea) 하면 주로 ‘노스’(North)를 기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각종 K- 열풍으로 한껏 드높아진 우리의 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선은 새롭다. 한국, 우리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에 좋은 시기다. 이제 막 흰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덧칠하고 있으니, 명작을 만들기엔 안성맞춤 아니던가.
국내에 있으면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해외에 있으면 실감한다. K-POP을 시작으로 영화/드라마, 그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각종 생활 습관 등이 다른 나라들뿐 아니라 영국인들에게까지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한국말을 하면 한국 사람이냐 물어보고, 우리말로 답을 듣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따금씩 빈정이 상하면 우리말로 욕 한마디 했던 과거와 다르다. 말도 가려 해야 한다. 아무리 외국이라지만 누가 들을까 겁날 정도.
이뿐이랴. 어디를 가도 한국 음식점과 슈퍼마켓이 있다. 나름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식당들엔 코리안 바비큐 메뉴 하나쯤은 달고 있어야 장사가 된다. 사실,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레시피를 만들어 공장에서 생산해 식료품으로 판매를 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마켓에 가면 우리 음식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에는 보도가 되지 않고, 때문에 알 수도 없는 문화 행사들이 세계 각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런던 시내를 둘러보다 보게 된 ‘안녕 코리아 축제’ 현장. 지나가던 영국인들 혹은 외국인들에게, 영국의 킹스크로스역에서 실시된 이 행사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운 경험과 함께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예쁜 물감을 칠해주기에 충분했다. 실로 엄청나다. 해외에서 피부로 느끼는 한국 문화의 위상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굳이, 우리가 월드컵도 개최를 했었네, 엑스포니, 세계육상선수권, 수영선수권, 그리고 동계 평창 올림픽을 잘 치렀노라 수식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Covid-19로 전 세계가 락다운을 실시할 때 유일하게 밖을 노다닐 수 있던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 정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충분히 엄청난 국가적 재난 상황 국면에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선진국이라 불릴만하도록 해 주었다. 이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동방의 한 변방 국가가 아니다. 적어도 1년여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
영국 스카우트연맹 대표 멧 하이드는 지난 8월 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치러진 잼버리에 문제가 많았다 지적했다. 특히 위생과 음식, 위기(폭염 등) 상황에 대한 대책 미흡, 그리고 불충분한 의료 서비스 제공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았다.
변명의 여지는 있다. 용변 후 손을 씻는 문제가 그렇다. 대변이야 그렇다 치지만, 남성의 경우 소변 후 손을 씻지 않는 경우가 우리나라엔 여전히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이따금씩 한국에 방문하면 느끼는 문화충격 중 하나가 소변 후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반면, 영국에선 소변이든 대변이든 용변을 본 후 손을 안 씻고 나가는 사람을 본 사례가 없다. 영국 스카우트 대표가 화장실에 비누가 없어 손을 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었을까라고 구차하게 변명할 수 있겠다.
음식의 경우도 비슷한데, 영국은 음식을 섭취하는 데 있어 보다 세밀한 점검 과정을 거친다. 가령, 영국의 모든 슈퍼마켓에는 ‘글루텐 프리’(Gluten Free – 밀가루 없이 많든 식료품) 코너가 별도로 존재한다. 카페나 식당과 같은 음식점에도 밀가루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별도로 주문할 수 있도록 메뉴가 있다. 카페인이 없는 커피(디카프), 우유나 아몬드 등 다양한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한 음식들도 역시 별도로 준비된다. 특별한 식단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때는 이러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고 어느 정도 변명은 할 수 있겠다.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 영국 내 식당에서는 화기(부르스타, 숯불 등)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다. 그런데 약간의 논란이 있다. 누구의 안전을 위한 것인가라 물을 때, 단순히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닌, 식당 종업원의 안전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은 장시간 실내에 오래 있는 식당 직원들이, 화기 사용으로 인해 자칫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적한다. 실내에서의 화기 사용을 엄격하게 금하는 이유다. 물론 있긴 있다. 하지만 허가를 받기가 어렵고, 이를 위해 안전성 확보를 위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화기 사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안전에 대한 인식도 다르니 “안전하지 않다"라는 영국 스카우트 대표의 말도 단순한 문화 차이 정도로 넘길 수 있을까?
35도가 웃도는 날씨가 예상되면서도 그늘막 하나 없이, 텐트 하나로 어떻게 무더위를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이해가 어렵지만, 안전에 대한 대비도 모자라 의료 서비스가 전혀 지원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 게다가 일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가격에 2-3배씩 받아 이익 두둑이 챙기는 철면피 상술까지 그야말로 국가 이미지 구기는데 딱 좋은 기간이었다.
<출처 - 링크>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에서 열리는 잼버리에 참가하기 위해 스카우트 대원들이 적게는 1년, 길게는 2-3년씩 용돈을 모으고 모금을 해 참가비(£3,500, 우리 돈 약 600만 원)를 마련해 왔다고 했다. 10일간의 추억을 위해 수년간 기다린 아이들에게, 속된 말로 삥을 뜯는 양아치 같은 행동을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운영이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번 잼버리 최다 참여국(약 4,400명)인 영국의 스카우트는 폐막을 1주일 앞든 지난 8월 5일 조기 퇴영했다. 그리곤 약 백만 파운드, 우리 돈 약 16억에 해당되는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 가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서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국 스카우트는 향후 3-5년간, 계획 한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일 뿐 대다수의 참가국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렇다. 그동안 쌓아왔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을 불과 10여 일 남짓에 불과했다.
무식한 변명
영국이 성명을 발표한다. 우리(영국)가 가장 큰 규모의 스카우트 파견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철수하면 그래도 인원이 많이 줄어들고, 때문에 행사장 사용이 보다 편해질 수 있으니, 이러한 결정이 타국의 스카우트들의 철수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체 무슨 말일까? 우리가 빠지면 나머지 스카우트들이, 좀 덜 붐비는 곳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일까? 실제로 우리 언론은 정부나 운영 측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아니니 부정적인 평가는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영국 스카우트 대표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진의는 뭘까. 다음과 같다.
우리가 먼저 철수하는 모범(?)을 보일 테니 겁먹지 말고 다 따라나서라.
우리 정부와 언론은 영국이 몇 가지 문제만 지적하고 정부를 직접 비난하지 않았으므로 별일이 아니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이는 영국인들의 언어습관과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으려는 영국의 외교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1도 없기에 가능한 헛소리다.
사실, 영국인들은 실생활에서조차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직접적인 비판이나 평가도 삼간다. 서로에게 감정 상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방식이 그렇다. 무슨 말이냐. 직접적인 비난을 하는 순간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계속 볼 사이 아니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아무리 억울해도 비수를 꽂지 않는다는 뜻.
외교에 있어 ‘능구렁이’라는 별명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로 영국은 과거 자신들이 식민 지배를 했던 국가들과 연방 국가로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는 수백 년 동안 식민 지배를 하며 착취했고, 여타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늘 그럴듯하게 ‘교역’,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왔지만, 약탈과 착취의 가해국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전 세계 54개국이다. 이 많은 나라들을 연방 국가로 묶어두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원동력이 뭘까.
직설적으로 비난을 하지 않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 불평하지 않으며, 완곡하게 표현한다고는 하나 목적을 빙빙 돌려 말하는 영국인들의 습관이 이러한 외교술의 근간이다. 결국 영국인들의 언어습관이 지금의 영국을 만든 셈. 정부와 언론은 이런 영국의 성명에 대고 직접 비난하는 말이 없으니 별일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대체 언론사에 국제부는 왜 있으며, 외교학 공부한 정부 관료들은 다 어디 울릉도 출장 보낸 건가. 이게 지금 얼마나 무식하고 뻔뻔한 소리인지 아는 자들이 있을 거 아닌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끄러운 변명이라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면서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저렇게 당당하게 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출처 - 링크>
부끄러움은 우리 몫
한국을 방문해 보는 게 꿈이었다고 말하는 스카우트 대원들, 그리고 그들을 저 멀리 이역만리 외국 땅으로 보내 좋은 경험을 하게 하고픈 학부모들과 그 지인들로부터 듣는 잼버리에 대한 소식은 그야말로 ‘재난’이었다(실제로 “Disaster”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돌아온 아이들이 한국에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게 되면 어쩌나 싶다. 한국에 다녀온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마주할 때마다 얼굴이 뜨겁고 미안하다. 그 어떤 실수와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을 대신해, 부끄러움은 일단 외국에 사는 우리 몫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결국 더 크게 한국에 사는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출처 - 연합>
어쩌면 이 부끄러움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이미지가 될지도 모른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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