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지난 기사

     

(47) 장마 : 국군과 빨치산 아들을 둔 두 할머니 이야기

 

(48) 연인 : 백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의 고통스런 사랑

 

(49) 수직의 도전자 : 내가 고개 숙이지 않는 이유

 

(5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로운 짝사랑은 왜 멈출 수 없는가

 

(51) 홍어 : 어머니는 더 이상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았다

 

 

 

소설 『제르미날』

 

책표지.PNG

출처–<문학동네>

 

<나도 광부가 되겠지>

 

우리 아버지께서는 광부로서

탄을 캐신다. 나도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최우홍 6학년,

사북 초등학생들의 시 모음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 보리출판사’ 中-

 

 

1980년 사북 총파업이 실패한 이유

 

1980년 강원도 사북, 국내 최대의 동원 탄좌에서는 3,000명이 넘는 광부들이 연간 160만 톤의 탄을 캐내었고, 하청 탄광에서는 2,000여 명의 광부들이 연간 70만 톤을 캐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채탄량의 11%에 달했다. 이곳 광부들의 월평균 임금은 15만 5천 원이었으나, 당시 최저 생계비는 24만 원이었다. 이들의 분노를 막는 것은 ‘국토개발대’라는 전과자들 조직과 지역 조폭들이 장악한 어용노조였다.

 

사북 노동자.jpg

1980년대 사북 광산 노동자들

출처-<조세희, 침묵의 뿌리>

 

그러나 광부들도 사람이었다. 언제까지고 무력과 공포로만 광부들의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1980년 4월, 광부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사북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파업은 격렬했고 경찰은 자본가들의 개였다. 파업은 유혈사태로 진화했다. 광산이라는 성격상 무기고와 화약고가 있었으나 노동자들은 자체 사수대를 조직해 철저히 통제했고 사북읍을 완전히 점령했다. 사북은 3일간 노동자들의 해방구가 되었다. 그리고 노사정이 합의에 도달했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사북파업.PNG

1980년 4월, 강원 정선군 사북탄광 주변에 모인

탄광 노동자들과 가족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두환을 두목으로 하는 정치 군인들,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계엄을 선포한 후 노사정 합의를 깨고 부녀자를 포함해 31명을 구속하고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하였다. 모진 고문과 감옥행이 뒤따랐다. 사북은 진압되었고 노동자들은 패배했다. 그리고 사람대접을 원했던 막장 인생들의 피와 눈물과 땀과 좌절된 희망만이 안개처럼 사북을 감쌌다.

 

 

프랑스 제2제정 시대, 탄광촌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19세기 프랑스 제2제정 시대, ‘몽수’ 탄광촌 노동자들은 빵 한 조각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삶 모두를 500미터가 넘는 지하로 처박고 있었다. 광부들은 자주 콜록거리며 가래를 뱉어댔다. 가래는 늘 검은색이었다. 광부 가족들은 침대를 나눠써야 했고, 오직 물 한 통만을 써서 여자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욕해야 했다. 

 

1.PNG

영화 ‘제르미날(1994)’ 中

 

8살만 되어도 갱속으로 내려가야 했다. 아내는 남편의 묵인하에 동전 몇 푼에 서슴없이 치마를 걷어 올렸고, 소녀들은 열 살만 넘으면 엄마의 흉내를 냈다. 그래서 이곳의 여자들은 열댓 살만 되어도 아이를 가진다. 

 

탐욕스러운 갱은 하루치 식량인 7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을 집어삼켰다. 이 시각, 그들은 거대한 개미집 같은 이곳에서 고목을 갉아 먹는 벌레처럼 대지 곳곳에 온통 구멍을 내고 있었다.

 

몽수 ‘르 보뢰’ 탄광의 거대한 홀 중앙. 그곳에 광부들을 지하 554미터 아래로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짐승의 입이 있었다. 수갱(수직 갱) 입구 앞에서 이제 막 광부가 된 스물한 살의 청년 ‘에티엔’은 자신의 굶주린 배와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작업 책임자의 뺨을 때려 해고된 지 일주일. 에티엔은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왔고 광부 ‘마외’ 작업조의 조원이 되었다. 마외의 딸 ‘카트린’과 아들 ‘자샤리’도 그의 조원이었다. 에티엔은 목을 죄어오는 불쾌한 느낌 속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케이지에 올라탔다. 케이지는 덜컹거리며 광부들을 어둠 속으로 떨어뜨렸다. 

 

2.PNG

 

갱도는 그런 식으로 채탄부들이 내리는 적치장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들을 집어삼켰다.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에티엔은 카트린과 함께 탄차를 밀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갱도에서 납작 엎드린 채로 땅속을 기어다녔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스러운 노동은 몇 시간을 수년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에티엔은 자신이 짐승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역겨움이 밀려왔고, 그의 자존심은 그에게 반란을 부추겼다. 에티엔은 카트린을 보았다. 문신을 한 것처럼 검게 물든 발목으로 씩씩하게 탄차를 미는 그녀의 모습을. 빈혈을 앓는 것처럼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맑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였다. 그 눈동자를 보며 에티엔은 이곳에 머물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다시 갱 속으로 내려가 고통받고 싸우기를 원했다.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땅속에 웅크린 채 인간을 포식하고 있는 신을 떠올렸다. 만 명이 넘는 굶주린 사람들은 정체도 모르는 그 신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있었다.

 

 

지도자로 성장하는 에티엔과 파업의 싹

 

몇 주, 몇 달이 흘렀다. 에티엔은 점점 갱에 적응해 갔다. 마냥 힘들기만 했던 새로운 노동과 습관에 자신의 삶을 맞춰갔다. 그는 이제 석탄가루도 거리낌 없이 들이마셨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들을 뚜렷이 볼 줄 알았다. 에티엔의 성실성과 빠른 적응에 작업반원 모두가 놀라워하며 그에게 호감을 보였다. 마외는 굶주림에 맞서서 씩씩하게 석탄과 싸우는 이 청년의 용기에 감탄했다. 

 

3.PNG

 

그러나 단 한 사람, 마외 작업조의 채탄부 꺽다리 ‘샤발’만은 예외였다. 샤발은 카트린을 자기 것이라 여겼다. 그는 에티엔을 향한 카트린의 태도를 질투했고, 에티엔에게 적의를 품었다. 그리고 끝내는 정복욕에 사로잡혀 수컷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카트린을 덮쳤다. 카트린의 저항은 이내 멈췄다. 

 

성숙해지기도 전에 아무 데서나 드러눕게 만드는 유전적인 순종심을 가진 여자아이들과 빈혈이 좀먹고 퇴행성 발육부진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몸과 지독한 궁기에 찌들어 추해진 모습의 더 어린아이들. 이것이 몽수 탄광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에티엔은 샤발과 카트린을 애써 외면했다.

 

“모든 걸 싹 쓸어버려야 하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빈곤의 싹이 다시 자라나고 만다고.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정부주의야. 이 땅에 더이상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거지. 피로써 세상을 씻어내고, 불로써 정화하는 거라고!...... 그런 다음에 다시 생각하는 거야.”

 

주점 ‘아방타주’에서 ‘수바린’은 에티엔을 향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수바린은 러시아 귀족 가문과 의대생이라는 신분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탄광 기계공이 된 사회주의자였다. 아방타주는 에티엔과 수바린의 하숙집이기도 했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4.PNG

 

백 년 전의 대혁명(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오직 부르주아들의 탐욕을 채웠을 뿐이었다.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허울 좋은 선언만을 던져주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얻은 자유란 짐승처럼 살다가 굶어 죽을 자유일 뿐이었다. 에티엔 역시 대변혁과 노동자들의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청년이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한 신과 신의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스스로가 이 땅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

 

에티엔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도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몽수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샤발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말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우울한 삶을 비추었다. 끝없이 대물림되는 가난, 짐승처럼 억척스레 해내야 하는 일, 가죽을 벗기고 끝내 멱을 따서 죽이는 가축처럼 살아가는 삶,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에티엔은 말했고 스스로 믿었다. 그는 신의 자리를 정의와 평등과 박애가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5.PNG

 

에티엔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39세의 나이에 일곱 명을 출산하고 찌든 가난 속에서 머리마저 탈색된 마외의 아내 ‘라 마외드’에게는 에티엔의 말이 그녀 평생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희망이 되었다. 그녀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에티엔이 말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자신의 팔을 잃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다.

 

에티엔은 몽수 노동자들의 통솔자가 되었다. 드디어 몽수에 탄광 노동자들의 공제조합이 건설되었고 에티엔은 지부장이 되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광부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곡식의 낟알처럼 땅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어느 날 아침, 들판 한가운데서 그 싹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될 터였다. 그렇다, 인간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정의를 바로잡을 한 무리의 인간들이.

 

 

거칠게 타오르는 파업의 불길

 

월요일, 르 보뢰 탄광 사장 ‘엔보’ 씨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네 시에 파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6.PNG

이 생퀴들이...

 

광부들의 임금을 줄이는 새로운 임금 지불 방식을 발표하고 적용했을 때에도 군말 없이 받아 갔던 그들인데,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날은 광산 투자자인 ‘그레구아르’ 부부와 그들의 딸 ‘세실’을 초대한 날이기도 했다. 자신의 조카인 ‘폴’과 세실을 빠르게 결혼시키기 위해서였다. 폴과 폴의 숙모인 자신의 아내가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였기 때문이다.

 

“우린 사장님께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기를 택하겠다고 말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헛되이 힘을 빼지는 않을 테니까요..... 우린 갱을 떠났고, 회사가 우리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7.PNG

 

르 보뢰 탄광이 괭이질을 시작했을 때부터 마외의 조상들은 광부였다. 그의 아버지도 8살 때부터 탄을 캤고 마외와 그의 자식들도 지금 탄을 캐고 있다. 그런 마외가 사장에게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마외는 자신에게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그에게서 힘겨운 노동과 짐승 같은 거친 삶, 집집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광부 측과 회사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두 주가 지나고 셋째 주가 되자, 파업에 참가하는 광부들의 수는 더 늘어났다. 그리고 파업은 르 보뢰 탄광만이 아닌 몽수의 다른 탄광들로까지 확산되고 있었다. 최초의 파업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르 보뢰 탄광의 채굴물 집하장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더이상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거대한 작업장이 텅 빈 채 버려져 있는 광경은 죽어버린 공장을 떠올리게 했다.

 

 

파업의 고통

 

파업을 통해 얻은 광부들의 자존감은 곧 현실적인 고통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굶주림이었다. 회사의 대응책은 명확했다. 그들은 탄광촌 사람들을 굶주리게 해 파업을 끝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에티엔은 공제조합 기금 3,000프랑을 한 푼이 절실한 가족들에게 나눠줬지만, 기금은 곧 바닥이 났다.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고 탄광촌은 눈 속에 파묻혔다. 굶주린 이들에게 추위는 더욱 잔혹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구걸에 나섰고 폐석 더미 위의 석탄재를 주웠다. 마외의 집도 그 석탄재를 태우며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광부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힘겨운 겨울나기는 더욱더 길게 느껴졌다. 샤발과 같은 배신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8.PNG

난 이제 못 하겠소!

 

“조용히 좀 해요! 아이는 막 숨을 거두었어요......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딸아이는 굶어죽은 거란 말이오. 게다가 굶어 죽은 아이가 이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옆집에도 하나 더 있고 말이지......”

 

라 마외드는 절규했다. 자신의 아홉살  딸 ‘알지르’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신을 저주했다. 알지르는 곱사등으로 태어난 불구였지만 7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영리하고 유순한 아이였다. 조그맣고 앙상한 두 손으로 움푹 팬 가슴을 꼭 움켜쥔 채, 그렇게 아이는 굶주림으로 죽었다. 에티엔은 고통스러웠다. 

 

 

진압당한 파업과 수바린의 선택

 

그러자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이 정말로 총을 쏜 것이다! 여전히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군중은 입을 벌린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이내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파업이 길어지자, 회사는 벨기에 광부들을 투입했다. 분노한 탄광촌 사람들이 르 보뢰 갱으로 달려갔으나, 군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가진 여인들이 먼저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곧 더 많은 돌들이 병사들을 향해 날아 왔다. 

 

9.PNG

 

500여 명의 군중에 둘러싸인 60명의 병사들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발포가 시작됐고 그것은 곧 일제사격으로 이어졌다.

 

얼굴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이도 있었고, 몸 어딘가에 총알 구멍이 난 채 자신의 아내와 껴안은 채 죽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마외는 가슴 한복판에 정통으로 총알을 맞고 탄가루가 시커멓게 쌓여 있는 물웅덩이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죽었다. 아직 죽지 않은 부상자들은 울부짖었다. 여기저기 시커먼 탄가루로 물든 땅이 드러난 진흙탕에는 굶주림으로 인해 깡마른, 조그맣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 뒤쪽에 있던 수바린의 이마에는 가로로 굵은 주름이 생겨나 있었다. 그의 확고한 신념이 마치 불길한 징조처럼 이마에 못박혀 있는 듯했다.

 

탄광 건물 곳곳에 이사회의 벽보가 붙었다. 거기에는 월요일 아침부터 다시 모든 갱의 문을 열 것이며 개선할 부분들이 있다면,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침 나절에만 만여 명의 광부들이 벽보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그 앞을 지나갔다. 탄광 투자자 그레구아르의 딸 세실과 사장 엔보 씨의 조카 폴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렸고, 엔보 씨는 파업에 강력하게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훈장 수여가 결정되었다.

 

10.PNG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수바린은 가져간 죔쇠로 브래킷들의 나사를 풀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힘을 주면 모두 뜯어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것은 미치치 않고는 할 수 없는 무모한 짓이었다.

 

수바린은 몰래 갱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갱도 방수벽의 변형이 가장 심한 곳의 브래킷 나사들을 풀어 놓았다. 수바린은 르 보뢰의 갱과 탐욕을 끝장내기로 했다. 

 

11.PNG

 

 

무너진 광산과 카트린의 죽음

 

그러자 끔찍한 혼란이 시작되었다. 각 갱도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줄줄이 정신없이 뛰어와 한꺼번에 케이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떼밀면서 먼저 올라타겠다고 서로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12.PNG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방수벽을 이룬 나무판자들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물이 갱도에 쏟아져 내렸다. 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백여 명의 광부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채 케이지에 매달리거나 물에 빠지기도 했다. 케이지를 움켜잡으려다 더 깊은 갱 속으로 추락하는 광부도 있었다. 에티엔은 케이지가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수갱이 완전히 막혀버린 터라 케이지가 다시 내려올 가능성은 없었다. 에티엔은 말없이 흐느끼는 카트린을 품에 안았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깊은 땅속에 납작 웅크리고서 인간의 육체를 집어삼키던 음험한 짐승은 더이상 거칠고 긴 숨을 내쉬지 않았다. 르 보뢰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깊은 구렁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수갱이 무너지며 지반이 주저앉았다. 권양기탑이 무너져 내렸고 하치장과 기계실이 사라졌다. 땅은 흔들렸고 모든 건물들이 무너졌다. 땅속에서는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무너지는 건물들이 회오리바람을 만들었고, 그 바람이 선탄장과 하치장에 쌓여 있던 잔해들을 모두 휩쓸어 가버렸다. 보일러실도 터졌다. 30미터 높이의 굴뚝만이 흔들리면서도 버티는 듯했으나 그것마저 거대한 양초가 녹아내리듯 통째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르 보뢰 탄광 전체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땅속 에티엔과 카트린은 암흑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다. 그들은 물 위에 떠 있는 나무를 잘게 쪼개 씹어 삼켰다. 에티엔은 자신의 가죽 허리띠를 물어뜯어 작은 조각을 내 카트린이 먹도록 했다. 옷 쪼가리를 몇 시간이고 빨아대며 버티고 또 버텼다. 9일 지나자, 카트린은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앞에 황금빛 태양이 내리쬐는 밀밭이 펼쳐졌다. 카트린은 에티엔에게 안아달라고 말했다. 에티엔이 그녀를 꼭 껴안자, 그녀는 몸을 비벼대며 행복해했다.

 

13.PNG

 

그들은 마침내 지하 무덤 깊숙한 곳에 갇힌 채 진흙 침대 위에서 첫날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의 표출이었다. 그리하여 두 남녀는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이 절망스러운 순간에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한참 후 에티엔은 자신의 무릎 위에 누운 카트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을 만져보았을 때는 이미 차갑게 식은 후였다. 카트린은 죽어 있었다. 그러나 에티엔은 그녀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 에티엔은 카트린과의 행복한 삶을 상상하며 그 역시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그렇게 이틀이 더 흘러갔다.

 

어느 순간, 에티엔은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어디선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면서, 부서진 바위들이 그의 발치까지 굴러왔다. 램프 불빛을 알아본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혁명의 씨앗은 계속 자라난다

 

탄광촌을 떠나는 에티엔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따뜻한 태양이 대지를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여덟 시 기차를 타기 위해 걷고 있었다. 에티엔은 문득 자신의 발밑 깊은 땅속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느꼈다. 그의 동료들이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자신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가 더 뚜렷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어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다.

 

14.PNG

 

 

고급 아파트가 쓰레기로 넘쳐나길 바란다

 

막장. 갱도의 끝, 땅속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암흑의 공간에서 기도와 폐를 덮치는 탄가루에 콜록대며 탄을 캡니다. 뿐만 아니라 갱이 무너지면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다는 공포와도 싸우며 중노동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진 노동의 대가는 저임금과 끝내 찾아오는 진폐증입니다. 

 

그들의 노동으로 사람들은 겨울철 난방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노동자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존경은커녕 오히려 ‘막장 인생’이라는 말로 광산 노동자들과 그와 비슷한 육체노동자들의 삶을 비하합니다.

 

노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은 인간과 인간 세계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생산활동입니다. 그런데 노동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노동자들을 배신합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세계이지만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당합니다. 쉽게 말하면 제빵 노동자가 마음 놓고 빵을 사 먹지 못하는 것이며, 거리를 깨끗이 만드는 청소 노동자가 자신은 지저분한 반지하에서 사는 것이고, 아파트 건설 노동자들이 평생을 살아도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 소외’입니다.

 

이 노동 소외가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박힌 곳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노동이 천대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을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게 해 주는 것과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유일한 행위가 파업입니다. 

 

하지만, 파업이 일어나면 우리 사회는 언론이라는 것들을 선봉에 세워 말 그대로 십자포화를 퍼붓습니다. 정당한 파업임에도 ‘귀족 노조’ 프레임을 씌워 선동질을 해대고,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시민의 불편함’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합니다. 그 외에도 각종 무시무시한 반인륜적 단어로 그들을 난도질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은 동조합니다. 7미터 높이의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를 경찰이 곤봉으로 후려갈기는 야만적인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15.PNG

지난 5월 30일, 7미터 철탑 위에서

머리를 맞고 끌려 내려온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모 위원장을

머리를 무릎으로 짓누르며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

출처-<서울신문>

 

반면, 프랑스에서는 사뭇 다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났고 대중교통은 멈췄습니다. 심지어 교사들까지 파업에 동참해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일부 학부모들은 출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일상생활이 마비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국인 TF1은 파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닫았으면 닫은 거죠. 전 그들(파업하는 사람)을 내버려 둘 거예요. 제가 가서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하면서 귀찮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아니요. 안 그럴 거예요. 그게 그들의 권리니까요." 

 

16.jpeg

TF1과 인터뷰하는 한 프랑스 시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회 전반이 마비될 총파업이면 더 좋겠습니다.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기본 몇십억은 넘는 고급 아파트 같은 곳들이 쓰레기로 넘쳐났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산다는 높으신 분들이 악취에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으면 합니다. 법복을 입은 자들, 펜대를 놀리는 자들, 금융을 움켜쥐고 고소득을 올리는 자들, 이런 자들이 노동의 가치와 위대함을 느끼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노동 소외’가 아닌 ‘노동 존중’으로 의식의 전환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파업이 없는 나라를 내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새뮤얼 곰퍼스, 미국노동총연맹(AFL)을 창설한 미국 노동운동의 아버지 -

 

새뮤얼 곰퍼스.jpg

새뮤얼 곰퍼스

출처-<위키피디아>

 

우리는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인생이 ‘막장 인생’이 아닌 ‘인간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일하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아빠는 노동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아버지를 자식들이 존경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옳은 사회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소설 ‘제르미날(Germinal)’은 프랑스어로 ‘파종의 달, 싹트는 달’이라는 의미입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것의 의미를 ‘새로운 인간의 자라남’, ‘캄캄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일하면서 발버둥 치는 노동자의 노력’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밀 졸라의 말로 쉰두 번째 인생 탐구를 마치겠습니다.

 

에밀 졸라.PNG

에밀 졸라

출처-<Pinterest>

 

짐승에 불과했다.

이제 점차 인간이 되어간다. 

제르미날.  

 

-소설의 최초 구상, 에밀 졸라-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