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가는 왜 오르나요?

 

"물가가 너무 올랐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라는 말을 일상에서 흔히 듣거나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이야기하려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간단히 개념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설명하기 위해선 '가격'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가격이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 중 한 가지 품목을 이야기합니다. 가령 작년 특정 시점 1kg 1,000원에 팔던 상추를 올해 같은 시점 1kg 2,000원에 판매한다면 이는 물가가 아니라 가격이 상승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추 외에 배추와 호박 등 많은 상품 가격이 작년에 비해 모두 상승했다면, 이는 '물가'가 올랐다고 표현합니다.

 

가격이 상승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농산물은 작황에 따라, 공산품은 원자재 가격이나 소비자의 구매력 등에 따를 터이지요. 물가가 변동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올랐던 물가가 다시 내려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출처-<연합뉴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지속해 발생하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과 함께 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경제가 성장해서 시장에 자금이 돌면 화폐가치가 하락하며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오르지요. 하지만 경제성장을 동반하지 않는 물가 상승은 구매력을 감소시키고 경기침체를 가져옵니다. 그러다 보니 각국 정부가 물가 상승률에 관심을 두고 이를 조절하려고 하지요.

 

물가가 오르지 않고 하락하면 더 좋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물가가 지속해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그 근본 원인이 경제성장 둔화 혹은 역행의 부가적인 효과이기에 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사례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의 거품 붕괴를 본다면 이에 동의하실 겁니다.

 

물가 상승과 하락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물가 상승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올바른 선택입니다. 하지만 급격한 물가 상승은 당연히 독이 되기에 경제 성장과 발을 맞춰 상승해야 합니다.

 

2. 물가가 오르는 이유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화폐적 현상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화폐적 현상이란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더 빠르게 증가할 때 발생한다는 의미인데, 시장에 돈이 많으니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봉지에 1,000원짜리 빵이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지만, 통화량만 2배가 되면 빵의 가격은 2,000원이 됩니다. 2,000원이면 2개를 살 수 있었던 빵을 이제는 1개밖에 살 수 없지요. 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것이 꼭 정부에서 실물 화폐를 발행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나 저금리로 인한 대출금의 증가와 같이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출처-<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경제학의 이론 중 노동자 임금인상이 물가 상승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물가 상승이 100% 임금 때문에 상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자재 가격의 인상이나 공공요금, 임대료의 인상과 같은 각종 비용의 인상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그중에 임금 상승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의미지요. 이런 이유에서 추경호 부총리는

 

"대기업의 임금인상을 자제하라"

 

라고 발언한 적이 있지요. 물가가 상승하면 임금 인상을 유도하고 인상된 임금은 다시 물가를 상승시킨다는 '나선효과'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악순환'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지요.

 

임금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임금이 100원 올랐을 때 물가가 100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 임금이 10% 인상되었을 때 생산자 물가에 반영되는 가격전가율은 2022년 기준 2%로 나타났습니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시절을 거치며 중간재 수입 물가의 가파른 상승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2021년 조사에서는 임금 10%가 상승할 때 생산자 물가는 0.1% 상승에 그쳤습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같은 기간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간재 비용의 생산자 물가 전가율은 중간재 비용 10% 인상시 제조업 5.3%에서 8.2%, 서비스업 0.5%에서 0.7% 상승했습니다.

 

미국에서 1970년대 임금이 물가에 반영되는 비율은 60%에 달했지만 이후 급속히 하락하여 1990년대에는 20%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즉 임금이 물가에 영향을 주지만, 원자재 비용과 같은 각종 비용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물가 상승을 임금의 탓으로 전가하기엔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지요.

 

3. 탐욕 인플레이션

 

2021년 3월, 2.6%였던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6월, 9.1%까지 오른 뒤 2023년 6월엔 3%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시장의 통화량을 억제해 왔습니다. 수요억제 정책을 사용한 터이지요. 그런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총수요 증가가 과도하지 않았기에 수요의 증가만으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 시절 정부의 재정지출이 수요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후 발생한 러-우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의 파괴로 에너지와 식량 부분의 가격상승 등을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과 식량 공급이 안정화가 된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이 멈추지 않자,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그것이 기업의 과대 이윤입니다. 최근 이를 탐욕 인플레이션(Greedflation)이라 일컫지요. 기업이 비용 상승분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기업의 수익 극대화 행위가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이론이 제시되었을 때 학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로 치부했습니다.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에서는 기업은 가격과 수량을 놓고 기업들 간에 경쟁하므로 제품 가격이 물가 급등을 촉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주류 이론인 필립스곡선(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반비례 관계로 나타나는 곡선)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출처-<이은영/오마이뉴스>

 

하지만 이후 각국에서 발표된 보고자료는 탐욕 인플레이션을 뒷받침합니다.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Union Bank Switzerland)의 보고서에서는

 

"일반적인 경제에서 인플레이션 영향을 분석하면 기업의 제품 중간 마진(이윤) 확대가 15% 수준인데 최근 50%에 다다랐다"

 

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EPI)도 2020년 2분기에서 2021년 4분기까지 물가 상승 요인의 54%는 기업의 이윤 증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처-<연합뉴스>

 

과거의 물가 상승에서 기업의 이윤 증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금보다 낮았지만 코로나19와 그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은 기업 이윤이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미국의 100대 기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분기 이윤이 2년 전보다 49% 증가했습니다. 2023년 1분기 유럽 인플레이션 원인에 기업의 이윤 증가가 약 45%, 수입 비용 증가가 약 40%를 차지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요컨대 최근 인플레이션의 책임은 노동자가 아닌 기업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의 가격 결정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합니다.

 

출처-<연합뉴스>

 

4.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통한 물가 상승

 

작년 국내산 삼겹살이 한 근에 15,000원이었더라도 올해는 한 근에 10,000원 또는 20,000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입산 돼지고기가 들어오며 총공급이 많아져서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고, 돼지 콜레라 등으로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올라갈 수도 있겠죠. 이 같은 시장가격은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판매하는 물건에는 이 시장가격이 통하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서 가격에 반영했다는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지요. 한편 동종 업계 한 기업이 총대를 메고 가격을 인상하면 업계 전체 가격이 상승하는 때는 쉽게 봅니다.

 

출처-<서울신문>

 

치킨이라는 품목을 보면 원재료인 육계 가격은 10여 년간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치킨 가격은 한두 업체가 원자재와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매년 조금씩 인상합니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소비자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동종 업계의 모든 기업이 서서히 가격을 인상하여 모든 치킨 가격은 기존보다 상승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몇 년간 꾸준히 반복되니 이를 치킨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출처-<한국농어민신문>

 

사실 기업은 제품가격을 올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가격이 올라 소비자가 구매를 포기하거나 경쟁기업의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가격 인상이 계속될수록 소비자는 가격 인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소비자의 가격저항이 낮아진 것인데, 한두 개 기업이 아닌 거의 모든 기업이 가격 인상에 동조하기에 소비자는 가격 인상을 불가피하다고 인지합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호텔의 과일빙수 가격은 매년 상승하여 이제는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과일 가격이나 호텔 직원의 임금이 그만큼 올랐기 때문일까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가 가격 인상을 허용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인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결국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처럼 상승하는 가격에 서서히 익숙해지면 그것이 시장가격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출처-<연합뉴스>

 

5. 가격통제 카드를 만지작

 

18세기 프랑스에서는 혁명과 전쟁 등으로 물가가 폭등했고, 당시 정치인 로베스피에르는 물가 상승을 억제할 방안으로 곡물·고기·기름 등에 최고가격제를 도입했습니다. 상인은 정부가 고시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만 물품을 판매할 수 있었고, 정책이 도입된 후 생필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정책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공시 가격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었던 상인들이 물품의 판매와 생산을 중단했고 이에 따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수량이 급감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결국 정부의 감시를 피해 암시장에서 웃돈을 얹어가며 거래하기 시작했고, 귀족보다 서민이 생필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로베스피에르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출처-<KBS>

 

위 사례를 들며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장가격을 통제하는 행위가 곤란함을 지적합니다. 역사적으로 정부 주도의 가격통제가 성공한 사례는 전시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것도 맞습니다. 설령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 더 큰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기업의 이윤추구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의견이 많아지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도 석유와 화학, 유통 등 특정 기업의 상품 가격상승이 전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기에 이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속해서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정부 주도로 라면 가격을 통제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곡물 가격 인상을 이유로 라면 등 밀가루 가공식품들의 가격이 올랐는데, 곡물 가격이 하락했으니 올랐던 가격을 다시 내리라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 일부 라면 가격이 내려갔지만, 물가에 얼마큼 영향을 주었는지 체감하기 힘든 정도인 터지요.

 

출처-<연합뉴스>

 

2008년 가카께서도 'MB 물가지수'라는 걸 발표했습니다. 생필품 50여 개의 가격을 관찰하고 가격을 조정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물가가 잡혔을까요? 물가는 잡히지 않았지만, 지지율은 상승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정부의 이런 보여주기 정책은 물가를 안정시키기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KBS>

 

6. 결론

 

시장에 통화량을 감소시켜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가져오게 하는 전통적인 통화정책도 부작용은 뒤따릅니다. 특히 이 같은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이 아닌 노동자임이 문제입니다. 실업률 증가와 실질임금 감소 등 물가 상승 원인을 따져보기도 전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당연히 체질 개선을 통해 덜 흔들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겠지만, 정부의 친기업·반노조 성향과 정책은 경제 문제의 원인을 오롯이 노동자에게 돌립니다. 앞서 언급한 해외 경우처럼 우리나라 기업의 가격전가율이 높아졌지만, 거의 아무도 기업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미국 버니 샌더슨 의원 트윗

출처-<연합뉴스>

 

물론 모든 걸 기업의 책임으로 넘기자는 것은 아닙니다.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지요. 필요하다면 여러 정책을 시행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현재의 물가 상승에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가 원인을 제공한다면 이에 강력한 비판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추진하여 기업의 과도한 이윤을 제어하고 있지요.

 

시장경제는 완전경쟁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과연 완전경쟁 속에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도 사람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겠지요.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의 손은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작금의 물가 상승에서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