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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 각종 재난의 연속이다. 

 

2022년 폭우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었고, 서울 한복판인 신림에선 반지하 집에 머물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약 3달 후, 이태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올해는 폭우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재산, 인명 등 수많은 피해가 있었다. 충북 청주시의 오송 지하차도에서는 사망자만 14명이 나왔다. 엄청난 폭염으로 국제적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잼버리도 있다.

 

이런 재난을 맞이할 때, 언론은 어떤 보도를 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의 재난 보도를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점이 보인다. 이번 기사에선 그 차이점을 말하며, 언론은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짚어보려 한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드가자.

 

 

미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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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트리나'

출처-<위키피디아>

 

2005년 8월 29일 미국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쳤다. 사망자 최소 1,254명(1,836명으로 추산하는 곳도 있다), 실종자 135명을 발생시킨 미국 현대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카트리나 피해가 가장 큰 곳은 루이지애나주의 최대 도시 ‘뉴올리언스’였다. 이곳에서만 무더기 사망자가 나왔는데 최소 986명에서 최대 1,577명이 추산되었다. 뉴올리언스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던 건 제방이 붕괴하며 물이 도시를 완전히 덮쳤기 때문이었는데, 도시의 80%가 물바다가 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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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출처-<pixabay>

 

미국 전역의 언론이 루이지애나로 몰려들어 취재 경쟁을 벌였다. 그중에는 CNN 진행자였던 앤더슨 쿠퍼도 있었다. 지금은 ‘CNN 하면, 앤더슨 쿠퍼’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그냥 수많은 CNN 진행자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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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 쿠퍼

출처-<CNN>

 

앤더슨 쿠퍼는 9월 1일 저녁 7시 30분 뉴스에서 루이지애나 상원의원(민주당) 메리 란드루(Mary Landrieu)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싶은 분은 <클릭>)

 

 

미국에서 화게가 된 앤더슨 쿠퍼의 인터뷰 

 

쿠퍼 : 메리 란드루 상원의원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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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게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하는 상원의원. 하지만 앤더슨 쿠퍼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돌직구 질문에 들어간다)

 

쿠퍼 : 연방정부가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가 지금 상황에 대해 사과해야 하지 않습니까? (Should they apologize for what is happening now)

 

란드루 : 그 문제(사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합니다. 앤더슨, 그리고 CNN 프로듀서와 디렉터, 그리고 모든 뉴스 네트워크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밤낮으로 시간을 들여 요구사항에 대처해야 할 때입니다(한마디로 사과하기 싫다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래서 몇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강력한 입장 발표와 격려사에 감사합니다. 또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를 방문해 준 지도자들께 감사합니다. 또한 대민 지원에 나선 군에 감사드립니다. 또 프리스트 상원의원과 리드 상원의원(당시 미국 공화당, 민주당의 원내총무)의 특별한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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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기 덕분에 부시와 클린턴 등 ‘높으신 분들’이 루이지애나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줬다는 간접적 메시지를 내보인 후, 그녀는 본격적인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란드루 :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연방의회는 긴급 회기를 소집하여 연방재난관리청(FEMA)와 적십자를 위한 100억 달러 지원예산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쯤에서 슬슬 빡친 앤더슨 쿠퍼가 참지 못해 한마디 했다)

 

쿠퍼 : 잠깐만요, 상원의원님. 끼어들어서 미안한데요. 난 최근 4일 동안 정부에게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미시시피강에 떠다니는 시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인들끼리 자기들끼리 칭찬하고 감사하는 소리를 듣고 있죠. 제가 지금 한 말씀 드리죠(I am going to tell you). 지금 이곳에는 화가 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엄청나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말이죠.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곳에서 서로 칭찬하고 감사하는 소리를 국민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는 말 그대로 거리에 시체가 방치돼 있습니다. 그리고 쥐들이 그 시체를 파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성의 시신이 48시간 동안 거리에 방치돼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여인의 시신을 안치할 시설조차 이곳에는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여기 국민들이 분노한 사실을 알고나 있습니까? (Do you get the anger that is ou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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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빡친 것이 역력한 앤더슨 쿠퍼, 그리고 점점 표정이 썩어가는 상원의원의 모습이 확 티가 난다. 사실 상원의원쯤 되면 서열상 미국 대통령, 부통령 다음가는 존재다. 그 누구도 자기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형식상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데, 란드루 상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란드루 : 나도 분노한 사람이에요. 내 가족이 사는 집도 망가졌습니다. 내 집도 망가졌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압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도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고요.

 

(해당 지역구 상원의원이면서도 유체 이탈 스킬을 시전하는 그녀에게 쿠퍼는 콕 집어 질문한다)

 

쿠퍼 : 그래요? 그럼 당신이 분노하는 대상은 누굽니까? (Well, who are you angry at?)

 

란드루 : 나는 아무에게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전 국민이 단결하고, 모든 군대와 국력을 결집해 이 상황을 버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나라라고 믿습니다.

 

(책임소재는 제껴놓고 ‘국난 극복을 위한 전국민 단결’을 되풀이하는 정치인들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쿠퍼 : 수많은 국민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There are a lot of people here who are kind of ashamed of what is happening in this country right now). 그리고 당신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지요. 

 

국민들은 무조건 누구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문제는 아무도 이 상황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No one seems to be taking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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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앤더슨 쿠퍼에게, 상원의원은 거의 영혼이 가출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신이 말한대로 나중에 자세히 생각할 시기가 있겠죠. 그런데 상원의원님, 모든 건 때와 장소가 있단 말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대답’을 원하고 있습니다. (This seems to be the time and the place. there are people who want answers) 국민들은 지금 누군가가 일어서서 이렇게 말해주기를 원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좀 더 잘 대처했어야 하지 않을까.”

 

란드루 : 앤더슨... 앤더슨...

 

쿠퍼 : 그리고, 저는 주 방위군이 여기 온 걸 지금 처음 봤습니다.

 

(쿠퍼는 허리케인 상륙 직전부터 7일째 루이지애나에서 머물면서 보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군이 허리케인 상륙 후 너무 늦게 왔다고 까는 것이다)

 

란드루 : 앤더슨.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슬슬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는데, 이 상원의원이 또 하는 말을 들어보시라)

 

저도 국민들의 고통을 압니다. 주지사도 알고요. 군 지휘관들도 압니다. 그리고 모두들 이 상황을 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비터 상원의원(란드루의 동료 지역구 의원), 그리고 우리 의회 대표단은 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통령님께 감사합니다. 대통령님께서 내일 이곳을 방문하십니다. 그리고 군이 현재 대통령 각하 방문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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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 상원의원은 꿋꿋하게 ‘대통령님, 성은이 망극합니다’를 외치며, 대통령이 이렇게나 신경 쓰게 만들었다는 자기 정치 홍보만을 했다. 그리고 자기도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참 늘어놓는다. 이 부분은 너무 길고 짜증 나서 생략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열심히 복구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십시오. 당신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쿠퍼 : 오늘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바쁘실텐데 말이죠. 상원의원님.

 

 

책임을 분명히 추궁하는 미국 기자들

 

대형 재난에 맞서 정부 기관에 책임을 물은 언론인은 앤더슨 쿠퍼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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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시겔

출처-<NPR>

 

미국 공영방송(NPR)의 로버트 시겔(Robert Siegel)은 주관부서인 국토안보부의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 장관과 인터뷰를 하며 추궁했다.

 

“장관님, 대피소에 있는 우리 기자들에 따르면 물과 식량,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죠?”

 

“앵커님, 그건 사실이 아니라 뜬소문입니다.”

 

이에 시겔 앵커는 이렇게 받아쳤다.

 

“우리 기자들은 허리케인은 물론이고, 이라크 전쟁과 난민 대피소도 취재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곳곳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우리 기자들이 뜬소문을 말한다는 것입니까?” 

 

결국 처토프 장관은 항복했다.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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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R과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의 인터뷰

출처-<NPR> 링크

 

ABC뉴스의 나이트라인 앵커 테드 코펠(Ted Koppel) 역시 주무부서인 연방재난관리청(FEMA) 마이클 D. 브라운(Michael D. Brown)을 불러다 희생자가 총 몇 명이냐고 물었다(출처 링크).

 

그런데 브라운 국장이 머뭇거리자, 그는 쏘아붙였다

 

“당신들(정부)은 TV도 안 봅니까? 라디오도 안 듣습니까? 우리 기자들은 희생자에 대해 며칠째 보도하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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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코펠

출처-<ABC>

 

CNN 기자 솔리다드 오브라이언(Soledad O’Brien) 역시 브라운 국장을 대상으로 생방송으로 분노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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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오브라이언, 오른쪽이 브라운 국장

 

“어떻게 피해 상황에 대해 주무부서가 기자들보다 모르죠? 정부가 비행기로 공수한다는 물과 식량은 어디 있나요? 하다못해 인도네시아 정부도(2004년 쓰나미 발생) 이틀 만에 반다아체에 낙하산으로 음식을 공중 투하했단 말입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며, 감정에 치우쳐서 주관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대부분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에서도 일부 평론가들은 앤더슨 쿠퍼와 기자들이 너무 감정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CNN의 동료 진행자였던 조나단 반 메터도 방송 직후 앤더슨 쿠퍼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스런 말을 했다(출처 링크).

 

“자네, 상원의원에게 너무 나간거 아냐?”

 

왜 그러냐면 당시 ‘쌀벌했던’ 미국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2005년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4년, 이라크 전쟁이 터진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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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직후

출처-<The U.S. National Archives>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몰면서 “문명화된 세계는 미국 편에 붙을 것이다.”라고 연설했던 때다. 미국민들은 “국가적 위기에 맞서 뭉치자!”, “미국 정부 까면 테러리스트”라고 외치던 때였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 편에 안 붙으면 비문명국 테러리스트이고, 미국의 불벼락을 맞을 것이라는 뜻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누구도 감히 정부 발표에 토를 다는 게 쉽지 않을 때였다. 언론도 이런 애국 분위기에 예외가 아니었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언론들도 부시의 ‘이라크 대량살상 무기’ 발표를 아래 기사와 같이 그대로 받아쓰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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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욕 타임스>

 

뉴욕 타임스의 대굴욕 되시겠다. 뉴욕 타임스는 나중에 오보임을 인정하고 해당 기자를 해고했다.

 

대랑 살상무기가 몽땅 거짓말이었다는 사실, 지금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물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정말 있기는 하냐”라고 의문을 제기한 몇몇 언론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비애국적’이라며 엄청난 탄압과 왕따를 당했다. 

 

그 몇 년 동안은 언론을 포함한 누구도 미국 정부 발표에 감히 토를 달지 않는 쌀벌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허리케인 카트리나 앞에서 앤더슨 쿠퍼를 비롯한 언론들이 고위 정치인에게 “내가 너한테 한마디 하는데, 누가 책임질 거야? 사과해”라고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다. 

 

 

객관적 보도 vs 감정적 보도

 

언론은 흔히들 제3자로서 편향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들 한다. 또 감정적이고 주관적으로 보도해선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앤더슨 쿠퍼를 비롯해 분노했던 기자들의 보도는 객관성에서 크게 벗어난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앤더슨 쿠퍼를 비롯한 현장 언론들의 비 객관적, 감정적인 보도는, 9.11이래 계속됐던 미국 언론의 ‘소위  객관적 보도’(사실은 정부 받아쓰기 보도)를 확 바꿨다고 LA타임스(링크)는 평한다. 

 

또한 미국 언론인들의 감정적이고 분노한 보도 방향에 대해 ABC 부회장 스티브 카퍼스(Steve Capus)의 발언을 인용해 이렇게 평했다.

 

“그들은 거대한 비극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다. 기자들은 정부 발표가 자신들이 목격한 바와 다를 경우, 정부 대표를 대상으로 질문할 권리가 있다.”

 

CBS의 마시 맥기니스 부회장 역시 이렇게 평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정부 발표와 언론보도가 불일치한 적이 없었다. 그럴 때 질문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우리 기자들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데, 정부는 왜 저렇게 이야기하나, 라고 말이다.”

 

(또한 브라운 FEMA 국장은 NPR 인터뷰 며칠 후 경질됐다. 9.11 당시 미국 정부 밀어주기 분위기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시청자들도 이들의 감정적 보도에 열광했다. 블로거와 시청자들은 란드루 의원 인터뷰를 보며 ‘Go Anderson’을 외쳤고, 그가 진행하는 ‘앤더슨 쿠퍼 360’ 시청률은 400% 급등했다. 지금 언론인으로서의 앤더슨 쿠퍼의 신뢰도와 인기는 바로, 이 인터뷰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현장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에게 가히 영웅 대접을 해줬다.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대중잡지에 화보가 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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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기자 ‘앤더슨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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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 기자 ‘브라이언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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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뉴올리언스 타임즈’의 스텝들

출처-<배너티 페어> 링크

 

미국민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감정적, 주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인들을 왜 영웅시했는가?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링크)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완벽한 발음과 멋진 헤어스타일을 갖춘 붕어빵 같은 앵커들에게 지쳐 있다. 이제 진짜 살아있는 인간(real human beings) 같은 언론인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단체도 거대한 비극 앞에서 객관적 보도란 없다고 말한다.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우수언론 프로젝트’의 톰 로센스틸(Tom Rosenstiel)은 LA타임스(링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 보도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비극의 거대함 앞에 당파란 없다. 이 사건은 너무나 커다란 비극이어서, 기존의 정치적 당파적 보도의 형식으로 담아낼 수 없다. 이 소식은 시대를 초월할(transcendent) 뉴스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비극 앞에서 언제까지 객관적일 것인가

 

한국도 최근 몇 년간 비극을 겪었다. 그중 가장 처음이자 큰 비극이었던 건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두 가지 언론을 보았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객관적 숫자를 보여주는 공정한(?) 언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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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이 진행될 때,

피해자들이 받을 보험금을 계산했던 MBC 보도

 

비극의 현장에 가서 유족들과 함께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주관적 언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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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때 어느 언론인이 존경받고, 어느 기자가 ‘기레기’가 됐는지 안다. 물론 기자들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았고, 나름 반성과 비판의 움직임도 보여줬다. 일부 기자들은 정부 당국에게 책임 소재를 추궁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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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누군가는 “9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이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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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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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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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보도

 

세월호 비극 9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언론들은 아직도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균형만을 맞추며 양쪽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만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책임자에게 책임 소재를 직접 물어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복잡하게 꼬인 재해 원인을 심층 보도해서 지금 당장 책임 소재를 가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수사기관이 할 일이니까 말이다. 단지, 거대한 비극 앞에 정부 발표와 시민단체, 유족 발표를 50:50으로 보도하는 것은 공정한 보도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그냥 바라는 건 언론이 주무부서 장관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보도자료/기자회견 말고, 직접 눈앞에 두고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궁금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누가 책임질 겁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거대한 비극 앞에서 객관적인 보도란 없다. 이럴 때 국민들은 당장 대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때론 국민들은 말끔하고 차갑고 객관적인 언론보다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언론을 필요로 한다. 

 

글을 마치며, 앤더슨 쿠퍼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보도 후 ‘래리킹 라이브’ 인터뷰에서 한 말을 남겨본다.

 

“국민들의 실망감을 이해한다는 정치인들의 수사를 듣는데 나는 너무 지쳤습니다. 이건 실망감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죽어간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