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학년이 된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혼내거나 때리면 안 된대.”
“그래? 아이들은 왜 어른한테 혼나면 안 되는 거야?”
“아빠도 나처럼 어렸을 때가 있었잖아. 누구나 그런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미숙하다고 혼내면 안 되는 거지.”
“으응~ 그렇구나ㅎㅎ 그건 네 생각이야?”
“아니? 선생님이 말해 주셨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해 보니, 아이로부터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거나 꾸중 들었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물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모가 일일이 다 알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었어도 아이가 전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 학교생활에 관해 물으면 아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나 오늘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이를 혼내거나 나무라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는데, 어떤 할 말이 더 있을까.
교사에게 따로 면담 요청한 적도, 아이 일로 직접 담당 교사와 연락한 적도 없다. 한 학기에 두 번, 15~30분가량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담임 교사와의 면담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 별도로 지정한 시간이다.
선생님은 1년간 아이를 관찰해 노트를 작성한다. 그리고 면담 시간에, 아이의 학교생활과 학습 효과는 어떤지 아주 면밀하게, 그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해 준다. 학년을 마칠 때쯤 받는 “아이에 대한 리포트”는 A4용지 5~6장 분량이었다.
학교 운영 시스템이나 선생님들의 교육 내용을 보고 있으면, 특별히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학교. 아이를 집에서 떠나보내도 안심이 됐다. 단순히, 시기가 되었으니 보내야 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부모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하고, 아이의 사회화가 이뤄지는 곳이었다.
물론, 세상에 장점만 있는 교육 시스템이 어딨겠나(글고 공립, 사립도 따져 보아야 할 터이고!). 장단은 디테일하게 들어가야 하겠지만 중요한 건 아이를 혼낸다거나 칭찬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국 학부모들은 학교 선생님과 교육 기관을 최소한 신뢰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내 자식은 소중하니까
출처-<(링크)>
지금 한국에서 이 사달이 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바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를 맞아도, 학부모가 선생에게 따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이전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되려, 집에서는 아이를 때린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선생님께 혼나면, 집에 와서 부모님께 또 한 번 혼나야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되도록 숨겼다. 친구에게 한 마디 위로받는 게 다였다. 선생이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던 시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진다. 잘못한 게 없어도 선생으로부터 맞고 학대당한 학생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때의 학생 중 누구도 사과받지 못했다. 나 또한 10살이 채 되기 전부터 국민학교에서 회초리,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체벌은 배움이 필요한 학생의 숙명 같은 것이었기에 그냥 견뎌야 했다.
출처-<연합뉴스>
시대가 변하고, 학생 인권 문제가 떠올랐다. 상황이 역전되면서 이번엔 선생님들이 거리로 나선다.
학생들에게 말 한 번 잘못하면 고소 고발을 당하고, 걸핏하면 아동학대 죄목이 붙는다. 학부모의 도 넘는 언행이 빈번해지고 반인륜적인 사례도 들린다. 목숨 잃은 교사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학부모의 태도가 그랬다. 분명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선생님이 내 아이를 이유 없이 혼내거나 때리지는 않을까?"
물론, 부모로서 걱정되는 건 당연하다. 내 자식은 소중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걱정이 교사를 감시하거나 의심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부모가 보이는 불신의 태도는, 아이들마저 선생님을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한다. 나 귀한 것만 알고, 선생님에게 폭언을 일삼는 아이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학생과 선생, 학부모와 선생의 첨예한 갈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선생이라는 개인을 넘어서 학교와의 관계까지. 복잡한 소용돌이 내에서 각자의 어려움이 있기에,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갈등을 조정하고, 근본 원인을 찾는 일.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 기관이고, 여기서 교육부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
출처-<영국 교육부>
말 많고 탈 많은 영국이지만 한국보다 먼저 선진국이 됐던 나라들은 문제를 먼저 겪었다는 점에서 참고할만하다. 나는 영국의 문제 해결방식을 주로 접했으니 조금 썰을 풀어 보자면 영국의 경우, 폭행/범죄/합리적인 처벌에 대한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에 대해 오랜 기간 논의해 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영국 교육부 (DoE, Department of Education) 홈페이지(링크)에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작은 멍이나 상처, 붉게 변한 피부,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
등은 ‘폭행’으로 간주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물리적 폭력 외에, 정신질환을 야기하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에 대해 학교는 어떤 과정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규칙도 세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행하는 처벌의 수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물리적 제재는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소지해서는 안 될 만한 물건을 지닌 경우(칼이나 신체에 가해 무기가 될 수 있는 물품), 혹은 학생의 물리적인 힘에 의한 위협 행위가 있을 시, 선생은 학생에 대한 강압적인 제압이 허용된다.
학부모는 개별적으로 교사와 연락할 수 없다. 일단 연락처를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연락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각종 비리나 문제들이 개인적인 연락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애초에 이를 법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학부모 의견이 있을 땐, 반드시 학교 행정기관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한국처럼 밤늦은 시간, 선생이 학부모의 연락을 받는 일이 없다.
영국도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사건 사고도 발생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료로 수집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사건들을 종류별로 세세하게 분류해 '실질적' 기준을 세운다.
영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 현장”은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게 맞다는 게 아니다. 똑같은 문제를 겪은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지 참고할 건 참고하자는 말이다).
뒷짐 지고 구경 중인 교육부
자, 그럼, 지금 한국 정부와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들은 “왕의 DNA”를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이가 교육부 직원이다(...).
선생이 문제다, 학생이 문제다, 말들이 많은데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뒷짐 지고 남의 집 불구경하는 교육부.
교육부가 중재하지 않으면 선생과 부모는 계속 싸울 뿐이다. 전면에 나서 법을 개정하고,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을, 오만 잡음을 거칠 게 뻔하지만 계속 만들고,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 우리 아이는 귀하니 특별 대우 해달라는 글이나 올리는 것이 교육부 공무원의 본업이 아니란 말이다.
자 상상해 보자. 학생 체벌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혹은 육체적인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런 예외적인 사안에 있어서도 이제는 교육부가 경계를 제시해야 한다. 분명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계속 일어날 일이고, 교육 현장이 바뀌면서 더 강도높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선생은 학생을 강압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학생은 학생의 도리를 지키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과거 학생들이 이유 없이 맞았던 것처럼, 교사들도 이유 없이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나 강려크한 검찰 정부 하에선, 시스템이나 전반적인 신뢰에 대한 고민 없이,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관심 없고 문제가 벌어지면 처벌하는 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구 솎아내고 누구 처벌하는 식이면, 과거로 회귀, 또 한 번 악순환이 벌어질 게 뻔하다.
시대는 변한다. 인권 의식도 달라졌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누구의 편에 서는 것보다 지금 필요한 건 대한민국 교육부의 실질적인 제도 정립과 중재의 역할이다.
그러라고 교육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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