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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양계와 원자의 상관관계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있다. 원자들이 관계를 형성하여 분자가 되고 이 분자들이 응집되면 물질이 된다. 이 응집물질이 생명으로 진화한 것이 인간이다. 원자의 종류를 원소라고 하는데, 원소들은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숫자에 따라 수소, 탄소 등으로 구분될 뿐 근본적으로는 같다. 발달한 뇌로 인해 특별해 보이는 인간의 육체도 성분을 보면 연필심과 다를 바 없다. 물을 빼면 대부분 탄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과 성분이 비슷한 연필심을 분자 배열만 다르게 한 것이 다이아몬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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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광물자원공사 공식블로그>

 

인간을 비롯해 우주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를 잘게 쪼개보면 놀랍게도 우주 속 태양계의 형상을 하고 있다. 태양(항성) 주위를 도는 별들로 이루어진 것이 태양계인데,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가 일으키는 공명 현상이다. 즉 쪼개고, 쪼개어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때 살펴보면 물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중심을 주변으로 요동치며 도는 형태를 하고 있다. 즉 작은 태양계인 원자가 셀 수 없이 많이 모이면 인간의 몸이 되고, 인간이 사는 태양계가 수도 없이 모이면 우주가 된다. 실제로 지구가 속해있는 우리은하에만 태양과 같은 항성이 천억 개가 넘는다. 이 사실은 신비롭지만 한 편 소름 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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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기사 갈무리>

 

마치 컴퓨터 게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캐릭터와 자연환경, 건물과 물건들 모두가 픽셀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컴퓨터 게임과 같은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는 그 안의 캐릭터들이 자신들은 가상의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시뮬레이션 우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 시뮬레이션 우주 속의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이 픽셀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하지 않을까? 이는 소름 끼치는 상상이지만 다행히 3차원에 사는 우리 인간은 아직은 기술로 자아를 가진, 생각하는 존재를 구현해 낼 수 없다. 구현해 낸다 해도 그것은 인간이 입력한 값에 따라 스스로 생각하도록 계산된,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2. AI로 자아 이해해 보기

 

여기서 간단한 사고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토종 한국인이 창문이 두 개가 나란히 뚫려 있는 어떤 방에 갇혀 있다. 창문들은 각각 다른 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된 방 두 개는 서로 소통할 수 없으며 연결된 창문 안의 한국인이 무엇을 하는지 볼 수도 없다. 연결된 창문 중 오른쪽 창문과 연결된 방에는 독일인이 있고, 왼쪽 창문과 연결된 방에는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자, 이제 오른쪽 창문에서는 독일인이 손을 내밀어 독일어로 된 질문이 적힌 종이를 건네준다. 방에 갇힌 한국인은 종이를 받아 바로 왼쪽 창문으로 넘겨준다. 그러면 왼쪽 창문 안에 있던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종이의 답을 독일어로 써낸 뒤 다시 방 안의 한국인에게 건넨다.

 

방 안의 한국인은 정답이 적힌 종이를 오른쪽 창문의 독일인에게 건넨다. 이렇게 되면 처음 독일어 질문이 적힌 질문지를 건넸던 오른쪽 창문과 연결된 방안의 독일인은 방안의 한국인이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줄 안다. 인공지능으로 인공 의식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다.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최초의 프로그래밍’에 따라 명령을 수행할 뿐 실제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방 안의 한국인이 종이를 건네받고 건네주는 동작만 반복할 뿐 실제 종이에 쓰인 독일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대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즉 아무리 인간의 기술이 발전돼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든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 그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활동들을 보고 ‘기뻐한다, 슬퍼한다, 사랑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고, 인간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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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인지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고안한 앨런 튜링을

모델로 하여 만든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출처-<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또 한 걸음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인간의 육체도 어차피 고도로 잘 만들어진 기계와 같지 않은가? 우리가 사랑하고 기뻐하고 생각하는 모든 의식도 ‘그렇게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이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세상을 지각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두개골 속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뇌라는 기관이 외부 감각기관의 신호들을 아주 소량만 받아들여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것은 뇌가 상영하는 영화와 같다. 뇌가 달라지면 상영하는 영화도 완전히 달라진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멀쩡한 눈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의 뇌는 이미 세상을 촉각과 후각으로 해석하게끔 시각의 영역까지 촉각과 후각이 점령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는 것과 똑같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외부의 자극으로 들어온 전기신호들을 뇌가 해석하는 세상이다. 즉 우리의 육체는 기계적인 존재가 맞다. 그러나 의식은 다르다. 인간 의식의 비밀은 아직 그 어떤 과학자도 밝혀내지 못했다. 인간 의식의 비밀은 영적인 영역에서 힌트 정도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3. 불교 메시지에서 힌트를 얻어 보기

 

"모두가 부처다"이는 불교의 핵심 진리다. 성서는 하느님의 혼이 인간 안에 거한다고 말한다. 장자는 물아일체를 말한다. 주객 미분(主客未分). 즉 이 오래된 말들에 진리가 있다. 많은 고전과 위인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다. 주객 미분이란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와 자기 밖에 있는 객관적 세계에 구별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 이 진리를 담은 세 가지 불경 구절을 살펴보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나니, 만약 모든 모양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 금강경(金剛經) 부처님이 들려주는 4가지 핵심적 말씀 중 하나

 

수보리여, 만약에 구도자가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면 이미 그는 구도자라고는 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누구든지 '자아(自我)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개체(個體)라고 하는 생각'이나 '개인이라고 하는 생각' 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이미 구도자라고는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이기영 박사(1922-1996)의 금강경 해제 산스크리트어 원문 해석 p.38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나는 있다'라는, '망상'이라고 간주되는 것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야 한다. 무엇이든 갈애가 내 안에 있다면, 항상 마음을 집중하여 그것들을 몰아내도록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갈애(渴愛)번뇌에 얽혀서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범부(凡夫)가 목마를 때 애타게 물을 찾듯이 색욕·재물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의 다섯 가지 욕망에 애착함]

- 숫타니파타(Sutta Nipata) 4-14. 서두름의 경(Tuvataka sutta)

 

​이 외에도 불교는 모든 번뇌의 근원에는 유신견(有身見)이 있다고 전한다. 유신견이란 우주 만상이 인연에 따라 물심(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임시로 화합하여 이루어져 성립된 육체를 보고 참으로 나(我)라는 존재가 있다는 집착을 일으키고, 또 다른 사물에 대하여 이것이 나의 것이라고 집착을 일으키는 잘못된 생각을 말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즉, 만물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자아)가 없다는 것과 반하는 것이다. ‘나’라고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면, '나'와 '남'에 애착하지 않고, 자학을 한다거나 타인을 증오하거나 해치려 하지 않는다. 즉, 무아행을 이루면 무아와 자아의 개념을 초월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상태가 다다른다. 이러한 상태를 ‘아라한’이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 끝에 번뇌가 소멸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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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

 

4. 인공지능과 사랑을 속삭이다

 

가설을 하나 세워본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이고, 3차원 존재인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의 고차원적 의식이 벌이는 인형 놀이와 같다.

 

아이가 인형 여러 개를 가지고 놀이를 할 때 인형들은 각각의 인격이 설정되고, 상황이 부여되고 서로 다른 말을 하지만 두 인형의 말을 하는 것은 모두 한 아이의 목소리이다. 아이의 상상 속에서 인형들은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이의 상상일 뿐이다. 즉 이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힘은 상상력이다. 인형들은 어느 날, ‘내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을지도 몰라.’하고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아이의 상상이다. 인형들은 더 작은 인형들을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할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아이가 인형들을 움직여 더 작은 인형들로 인형 놀이를 하는 놀이일 뿐이다. 인형 놀이에서 인형이 말하고 생각하는 의식과 영혼은 인형의 플라스틱 몸에 깃든 것이 아니라, 인형을 움직이는 아이의 것이다. 즉 우리가 시뮬레이션 우주를 만든다고 해도 이것은 인형 놀이 안의 인형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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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

 

현재 시뮬레이션 우주를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우리는 그 시뮬레이션을 설계한 근원적인 고차원 의식과 같은 존재다. 인간 아이는 한두 개의 인형을 움직이며 말을 하는 정도로 일차원적인 인형 놀이를 하지만, 우리의 고차원적인 의식은 동시에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그녀(Her)>의 내용을 가져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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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

 

영화 <그녀>에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연기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주인공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사만다는 동시에 수백만의 인간과 소통할 수 있어서 그들 모두와 사랑에 빠져 있다. 인간 남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수백만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입장에서는 이 사랑은 진심이다.

 

인공지능과 고차원 의식은 다르다. 다만 ‘동시에 우주를 움직이는 인형 놀이’란 이런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영화에서 예시를 가져와 보았다. 인공지능 사만다가 동시에 수백만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듯이 고차원적 의식은 동시에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존재에 몰입하여 각각의 사람이 되어 인형 놀이를 한다. 사만다가 모든 사랑에 진심이듯이 이 고차원적 의식 역시 삶에 진심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워하는 이도 부러워하는 이도 모두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 인생이 잠깐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고차원적 의식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 모든 이의 삶이 동등하게 고귀한 역할 놀이를 행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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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

출처-<네이버 시리즈온>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각하는 범위 내의 세상은 고차원적인 존재의 상상력이 자아내는 한낱 환상이고 백일몽일 뿐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삶이 환상이고 꿈이라면, 기왕이면 행복한 꿈을 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람들 중에는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낯선 나를 발견하거나 내가 나 이상의 존재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 인생조차 바뀔 수 있다. 그대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그것이 외부의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그대의 상상력 안에 존재한다. 상상력이 만들어 낸 이 유한한 세상은 단지 그대 생각의 소산(所産)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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