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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해병대 일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폭우로 전국 이곳저곳에서 물난리가 났었고, 해병 1사단도 대민 지원 차원에서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해병대 1사단 제7포병 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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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해병대원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그저 인간 띠를 형성해(서로 손잡고) 탐침봉으로 수색 작전을 펼치다 급류에 떠내려갔다. 당시 3명의 해병들이 휩쓸려 갔는데, 2명은 헤엄쳐서 빠져나왔지만, 1명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그 한 명이 채수근 일병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두 가지가 나온다.

 

첫째, 대민 지원을 왜 해야 하는가?

 

둘째, 채수근 일병의 죽음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다. 하나씩 설명해 보자.

 

대민 지원, 왜 하는가?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군대에 ‘강제로’ 끌려간다. 이들은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해 군복을 입었다. 즉, 나라 지키러 간 거다. 그런 군인이 대민 지원을 한다는 건... 이건 문제가 있다.

 

“나라 지키러 간 군인이 재해로 힘들어하는 민간인들 돕는 건... 그것도 국방 아냐? 민간인들을 지키는 거나, 돕는 거나 똑같은 거 아냐?”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건 ‘강제노동’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협약을 보면,

 

- 강제노동이라 함은 처벌의 위협하에서 강요받거나 임의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무로서 다음의 다섯 개 항목은 포함되지 않음: 의무군복무, 공민으로서의 특정 의무, 교도소 내의 강제노동, 비상시의 강제노동, 소규모 공동체 노무

 

라고 나와 있다. 이 ‘강제노동’에 관해서는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게, 당장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따로 모아서 대체 복무를 시킨다고 했을 때 이들이 하는 ‘노동’이 강제노동인지 아닌지가 쟁점 사항이 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ILO는 이를 ‘강제 노동’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 당시 ILO 협약을 비준할 때 이 ‘강제 노동’ 협약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이거 비준하게 되면 공익근무가 없어지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가 그만큼 특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만큼 뒤처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지금 우리나라에는 ‘강제 노동’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우리가 이 체제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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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문제는 현역병이다. 이들의 경우는 명확히 따지면 강제노동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왜? 이들은 나라 지키러 간 군인들이다. 그것도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비군사적인 용도. 즉, 대민 지원에 투입되는 건 강제노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재해가 터졌을 때 군인을 동원하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쉽고, 편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을 잔뜩 모아놓은 상황에서 이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계급 체계가 있고, 이들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들이 있으며, 장비도 있다. 결정적으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을 써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 하지 않은가?

 

태풍이나 홍수, 산불 같은 재해에 투입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인력이 없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군인들을 이렇게 투입하곤 한다. 천조국 미군이나 딸기 군인이라 놀림받는 대만군도 태풍이나 허리케인 지나가고 나면 대민 지원이라며 이들을 투입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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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군인을 투입하는 게 맞냐는 논란이 있어 왔다.

 

“야, 군인이 나라 지키러 왔지 노가다 하러 왔냐? 쟤들 왜 불러? 그냥 사람 불러! 전문가들 부르라니까!”

 

란 말이 나오곤 한다. 역시 이 말이 맞는 게, 사람을 구조하는 일을 하러 간다면 군인보다는 전문 훈련을 받아 온 구조 전문가들을 투입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번 해병대 사망사건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숙련되지 않은 비전문가를 보낼 경우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다.

 

결국 대민 지원이란 건 공짜 노동력으로 쓸 수 있는 ‘잡부’의 역할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거다. 가끔 공병대들을 동원해 긴급 지원이나 시설 공사를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도 딱히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리나라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던 시기에 공병대를 불러 일부 구간 공사를 맡긴 적이 있다. 실제로 계획 구상 당시부터 공병감을 불러 앉혀 놓고, 부지 선정부터 같이했다. 수원-대전 구간과 대전-부산 구간에 1202 공병단과 1203 공병단을 투입해서 공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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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구 간 고속도로 기공식에 참여한 군과 장비

<출처 - 한국도로공사>

 

이게 지금 기준으로 옳은 건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당시 기준으로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누가 봐도 강제노동이다. 여기에 투입된 병력들은 자의에 의해서 군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군복을 입어야 했던 이들인데, 이들에게 ‘노동’을 시킨 거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민간인 신분으로 공사에 참여했을 때 받는 임금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고 일을 했다는 거다.

 

즉, 국가는 값싼 노동력을 ‘군 복무’라는 요술 방망이로 만들어 냈고, 억지로 끌려온 이들에게 일까지 시킨 거였다.

 

재미난 사실은 서로 대치 중인 남북한 모두 군인들을 ‘강제노동’시킨다는 거였다. 북한이 자랑하는 130만 대군 중 최소 30~40만은 건설 부대(청년돌격대)이다. 이들은 건설 현장, 탄광, 광산 등에 배치돼서 그냥...‘노다가’를 한다.

 

이건 북한만이 그런 게 아니라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한 제도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게, 자본주의 체제하, 시장경제하에서,

 

“아, 가방끈도 짧고 배운 기술도 없으니... 노가다나 뛰어야지.”

 

라면서 새벽에 인력사무소를 찾는 인원이 있겠지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국가가 개인에게 직업을 줘야 하는데,

 

“자네 적성은 노가다야.”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다. 문제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건설 현장에서 잡부는 필요하다는 거다. 이걸 확보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은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도록 하면 되지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이게 어렵기 때문에 아예 ‘군대’란 개념을 만들어 낸 거다. 오죽하면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가졌다는 동독에서조차도 ‘건설병(Bausoldaten)’이란 제도를 만들었을까. 

 

대민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군 복무를 해 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민 지원... 그러니까 국가 단위의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투입되는 대민 지원이 아니라 부대 단위의 대민 지원, 그러니까 추수철에 쌀 포대 나르는 것이라든가, 주변 하천 청소, 그리고 눈 왔을 때 제설지원 등등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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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처음엔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는 재미, 밖의 음식 얻어먹는 재미가 좋았지만 점점 짬이 차다 보면 이게 뭐 하는 것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이걸 또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생색내기 혹은 이권 챙기기 등등으로 이용해 먹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많은 부분 인식이 개선됐고, 사건사고에 대해 워낙 민감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문제는 많이 나아졌다.

 

그렇지만, 국가에 대형 재난이 벌어지면 여지없이 동원되는 게 군대라는 인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 있었던 새만금 잼버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문제가 터지자, 군 의료 인력과 공병대를 투입했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에 이런 비상사태에 투입하기 딱 좋다. 그만한 인력이 있고, 장비도 있다. 결정적으로... ‘공짜’다. 어차피 나가는 월급이기에 더 들어갈 돈이 없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부담 없이 이들을 활용하는 거다.

 

문제는 군대는 나라 지키러 간 사람들이란 거다. 징집돼서 간 이들이기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선택권이 없는 조직에 유일하게 명분을 줬던 게,

 

“나라 지키는 일에 투신한다.”

 

라는 거였다. 그런데, 나라 지키는 일 말고 다른 일에 징집해 이들의 노동을 쓴다면, 이건 전제 자체가 틀어지는 일이 된다. 나라 지키러 간다며 끌고 가서 장군들 그늘막 만드는 데 쓴다면 이건 말이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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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대민 지원’이란 탈을 쓴 강제노동에 우리의 아들딸들을 집어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