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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해, 남향의 햇살, 서향의 경치를 즐기는 집

 

부부는 아침에 일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전한 소망 중 하나는 집에서 해 뜨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집의 위치와 배치를 정해준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매일 일출을 볼 수 있는 집이라. 낭만적이긴 하다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정확한 집의 위치를 설정하고 위도와 경도를 지정해야 한다. 춘분, 추분, 하지, 동지의 태양 궤적을 계산에 넣는다. 그 모든 것을 염두하여 창의 위치와 높이를 정해야 한다. 창문 하나 내려고 이 짓을 하고 있다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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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그거 꼭 봐야겠어요?”

 

시선이 통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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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부부의 11가지 소원이 이뤄질 땅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부부의 땅에 찾아가서 측량을 해봤다. 집을 앉힐 대지에서 이웃집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을 찾아봤다. 딱 적절하게 동쪽으로 막힘 없이 트여 있는 곳이 한 곳 있었다.

 

부부의 땅이 이웃집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멀리 산까지 시선이 통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곳에 안방 침실을 놓아봤다. 침대 머리를 서쪽으로 둔다면, 부부는 매일 떠오르는 햇살로 아침잠을 깰 수 있을 것이다.

 

안방이 정해지자, 진입로부터 안방으로 가는 공간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안방을 집에서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 두려면 그것을 앞서 두르고 있는 공용 공간이 필요할 터다. 거실과 주방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경치가 좋은 서쪽에 거실을 두는 게 좋아 보인다.

 

그 앞에는 당연히 현관이 필요하겠지. 그 앞에는 포치, 또 그 앞에는 진입로, 그리고 마침내 대문. 자연스럽게 집의 동선을 포함한 조닝(zoning, 공간의 성격으로 영역을 구분)과 배치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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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치란, 지붕이 돌출되게 지어진 건물의 출입구를 말한다.

사람을 마중하거나, 비바람을 피할 때 사용된다.

 

처마로 그림자 드리우기

 

대지에서 바라보는 서쪽 풍광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보였다. 첫 미팅에서 부부에게 물었다.

 

“이곳에 정착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부부가 동시에 답했다.

 

“전국을 다닐 만큼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끌렸던 곳이 없어요.”

 

건축사로 일을 하면서 많은 의뢰인을 만났다.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마치 홀린 듯 이곳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운명적인 공간,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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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본 완성된 '우주'

 

부부의 집이 마련된 이곳, 양평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훗날, 공사를 시작하면서 부부가 극찬한 일출, 일몰을 직접 감상한 나로서는 그 말에 일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서향 풍경은, 꼭 담아야 할 필수 요소가 되었다.

 

거실에 큰 창을 내기로 했다. 다만,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창이 크면 클수록 복사열이 집 안에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 서향의 따가운 햇볕을 가리는 게 관건이었다. 빼어난 풍광은 취하면서, 불편한 일사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먼저, 처마를 길게 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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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 건물 외벽보다 돌출되어, 물리적으로는 눈과 비를 막고, 계절 별로 받아들이는 일조량을 조절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에는 태양이 높게 뜨고, 겨울에는 낮게 뜬다. 따라서 처마가 있으면, 여름엔 햇빛을 막아 그늘을 만들고, 겨울엔 집안까지 빛을 들여 추위를 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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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현대식 건축물과의 차이점은 건물의 높이다. 한옥은 높이가 낮아, 위와 같은 햇빛양 조절이 용이하다. 하지만 현대식 건축물은, 처마를 깊게 만들어도 건물 자체가 높기 때문에, 햇빛을 비교적 적나라하게 받아들인다.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건물과 창이 높게 설계된 것이다.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보통 전동 루버를 추가로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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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이동에 따라 처마 밑으로 그림자가 시시각각 변한다.

처마는 집의 표정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일종의 패시브 하우스

 

서쪽의 경치가 클라이맥스라면 남향은 하루 내내 잔잔하고 평온한 빛을 담당한다. 

 

집은 남향으로 구해라.

 

남향집이 좋다고들 하는데, 왜 좋은지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에서 언급한 처마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겨울에는 햇빛을 깊이 받아들여 따뜻하게,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유지하는 처마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최대한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건축 방식, 일명 “패시브 하우스”의 원조 격이었던 것.

 

롱샹 성당의 나팔모양 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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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주주에 위치한 롱샹 성당

 

부부의 집(이하 '우주')을 큰 지붕이 집 전체를 감싸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큰 지붕에 다양한 천창을 냈다. 천창을 통해 낮에는 햇빛을 들이고, 해가 지면 밤하늘을 관측한다. 비 내리는 날, 빗소리와 함께 빗물이 쪼르륵 흘러내리는 천창은 운치를 더한다. 무엇보다, 천창은 창의 크기가 작아도 햇빛을 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실내를 밝고 따뜻하게 채우는 역할을 한다.

 

천창은 프랑스 롱샹 성당의 창을 오마주했다. 롱샹 성당은 스위스 태생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으로, 성당이 준공되자마자 거의 모든 건축 잡지사가 기사로 써낼 정도로 혁신적인 건축물이었다. 롱샹 성당의 백미 중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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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벽의 두께를 이용해, 빛의 확산을 극대화했다는 것.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일 때, 현장에서 처음 본 '우주'의 천창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공사가 진행될수록 지붕 안에 두꺼운 단열재가 채워진다. 천장 속에 추가 설비가 들어가고, 지붕은 점점 두꺼워졌다. 천창을 통해 지붕으로 들어오는 빛은, 틈에 갇혀 있는 것 같이 답답해 보였다.

 

문득, 롱샹 성당이 떠오른다.

 

천창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천창의 실내 부분을 나팔 모양으로 퍼지게 만든다. 건축가가 욕심을 부리자면, 천창의 가로, 세로 모두 나팔 형태가 되도록 시공할 수도 있다. 이왕이면 롱샹 성당의 것과 같이 랜덤한 모양의 천창을 내는 것도 미학적으로 훌륭한 수정이 된다.

 

하지만 건축가가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안전성”이다. 시공 단계에서 가로, 세로 천장을 모두 깎는 작업은 벽면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약간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욕심을 버리고, 세로 방향으로만 나팔 모양 천창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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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방향으로 나팔 모양을 낸, '우주'의 천창

 

천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세로 방향으로 길게 뻗는다. 직사각형으로 뚝 떨어지던 이전과 달리, 빛이 위아래로 은은하게 퍼진다. 살짝 흩어지는 빛만으로도 방은 아주 온화하고 밝은 느낌을 냈다.

 

아름다운 것도, 실용적인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건축물은 견고하고, 안전해야 한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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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부부가 작성한 소망 노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아침에 명상 & 요가 (일출이 보이면 금상첨화)” 

 

여기서 “일출”이라는 단어가 또 한 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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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뜨는 해를 보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도심 속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면 큰마음을 먹고 움직인다. 새해에 한 번, 간절히 바라는 것이 생겼을 때 또 한 번. 새벽같이 일어나 산을 오르거나, 해안 지역까지 차를 몰고 이동한다. 힘을 얻으러 가다가 남은 에너지마저 빼앗기고 마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런데 일출을 침대에 누워 만끽할 수 있는 집에 산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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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우주'에서 아침에 몸을 깨우는 의뢰인

 

건축주는 매일 새 인생을 맞이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는 새벽녘에 일찍 일어나 명상으로 몸을 깨운다. 요가하던 중 일출을 맞이한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 위로 노란 햇빛이 떨어진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해넘이를 볼 땐,

 

하루를 건강하게 온전히 살아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주'는 이 모든 게 가능한 집이고자 했다.

 

읽다 보니 이게 집 짓는 이야기인지, 비문학 과학 지문인지 헷갈린다. 건축이란 게 그렇다. 공학 설계, 미학, 실측과 계산, 과학적 판단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 즉, 건축학은 다양한 학문의 총집합체이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전문적인 영역은 건축사에게 맡기면 된다. 건축주가 해야 할 건 단 하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

 

내가 원하는 집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지막엔 나의 "워너비 하우스"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건축주 부부에게 '우주' 시공 계획을 알렸다. 안방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천창은 나팔 모양으로 햇빛이 퍼지게끔 만들 예정이다. 의뢰인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고생길은 훤하지만, 의뢰인이 좋아하니 또 맘이 녹는다.

 

"자연을 보면서 반신욕할 생각하니까 너무 설레요!"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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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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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욕조에서 하면 안되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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