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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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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예출판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고대 로마는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최고의 예우를 했다. 그 예우의 정점에는 개선식이 있었다. 승리한 장군은 얼굴을 붉게 칠한 채,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군사 퍼레이드를 하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런 대우를 받는 개선장군은 자신이 영웅이 된 듯한 벅찬 감동에 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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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

 

개선장군이 탄 마차에는 천하디천한 노예 한 명이 동승한다. 노예를 개선장군의 마차에 태우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퍼레이드가 절정에 달하고 더불어 개선장군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때, 그때 노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판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 최대 도시, 페테르부르크의 커다란 법원 건물 안에서 휴정 시간을 이용해 모인 판사와 검사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손에 들린, 아직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신문에 실린 부고 때문이었다. 그 부고는 그들의 동료인 항소 법원의 판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이반 일리치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방에 모인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가져올 자신과 지인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관한 것였다.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은 죽은 이가 자신이 아니고 이반 일리치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의 빈소를 찾았다. 미망인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남편의 절친인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보고 그에게 서글픈 한숨과 함께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리고 조언을 구할 것이 있다고 말하며 그의 팔에 기대어 거실로 갔다. 그녀는 소파에 앉고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낮고 푹신한 의자에 앉았는데, 그 의자는 스프링이 망가져 영 불편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기세로 요동치는 스프링을 누른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하는 미망인을 보았다.

 

그녀는 연금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척했지만,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보기에는 그가 미처 모르는 부분까지도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경우 국가로부터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으며, 다만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예의상 인색한 정부를 성토하며 더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실망한 미망인은 한숨을 쉬며 이 조문객에게서 벗어날 핑곗거리를 찾는 눈치를 보였다. 그것은 표트르 이바노비치도 바라는 바였다. 

 

그는 향내와 시신 냄새로 가득 찬 이곳을 어서 벗어나 오늘 밤 열릴 카드놀이에 참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추도식이 끝나고 빈소를 빠져나와 즉시 마차를 탄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제 막 첫판이 끝나고 새로 게임을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에 카드놀이 장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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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길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삶은 굉장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아주 끔찍하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는 페테르부르크 관청에서 여러 직책을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린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중요한 업무도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지만, 단지 그 일을 오래 했고 직위가 높다는 이유로 자리를 지킨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6,000루블에서 10,000루블까지, 꼬박꼬박 돈을 챙기며 여생을 느긋하게 살았다.

 

이반 일리치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그가 법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십등문관으로 임용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샤르메르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추고, 은사인 공작에게 작별 인사도 하고, 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송년회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돈을 주었다.  

 

이반 일리치는 한때 다른 이들처럼 자유주의 사상을 탐닉하기도 했으나, 그는 결코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십등문관으로 5년을 근무한 이반 일리치는 예심판사 자리를 제안받았고, 이를 받아들였다.

 

현의 권력층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한편 법조계 관리들이나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귀족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정부에 조금쯤 불만을 품고 온건한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시민의 모습을 갖췄다.

 

예심판사로 근무한 지 2년째, 이반 일리치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를 만났다. 그녀는 훌륭한 귀족 가문에서 자랐으며 아름다웠고 재산도 좀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그녀의 인생관이 자기와 비슷하다고 여겼고, 그녀 같은 여성을 아내로 맞는 것은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는 것뿐이 아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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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

 

그러나 결혼 생활은 이반 일리치에게 인생 첫 시련을 안겨 주었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이 그것이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달라졌다. 그녀는 임신과 동시에 예민하고 사나워졌으며 출산 후에는 온갖 경우에 남편이 함께해 주길 요구했다. 그녀는 가끔 불같이 화를 내며 심지어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아내와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이반 일리치는 더욱 일에 몰두했다. 그의 명예욕도 예전보다 강해졌다. 이반 일리치는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품위 있는 삶, 즉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결혼 생활에 확실한 태도를 정했다.

 

결혼 생활에서는 아내가 제공해줄 수 있는 편리함, 즉 따뜻한 식사와 집안 관리와 잠자리만 요구하기로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가정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었다.

 

일에 몰두한 이반 일리치는 우수 관리로 인정받아 3년 뒤 검사보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7년 뒤에는 검사로 승진하여 새로운 도시로 발령받았다. 또 7년 뒤, 그의 큰딸은 열여섯 살이 되었고, 아들은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딸은 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아들은 공부를 꽤 잘했다.

 

 

이반 일리치에게 찾아온 생애 최초의 위기, 그리고 반전

 

결혼 후 17년이 흘렀을 때, 이반 일리치에게 생애 최초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대학 도시의 수석 판사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분노한 그는 가까운 상급자들에게 항의했으나 모두에게서 냉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인사에서도 밀려났다. 

 

남들은 그가 검사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자리에서 3천 5백 루블을 받는 것을 부러워했으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 유지를 위해 빚까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최소 5,000루블짜리 일자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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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발... 이렇게 살 순 없어!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단호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이 여행은 이반 일리치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알려줬다. 쿠르스크역에서 그가 탄 기차 일등칸에서 만난 지인이 정부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에 대한 정보를 준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로비에 나섰다.

 

이 인사이동 덕에 이반 일리치는 뜻밖에도 예전 직장에, 그것도 동료들보다 두 직급이나 높은 직책에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연봉 5천 루블 외에 이사 비용으로 3천 5백 루블까지 받았다. 그러자 눈엣가시 같던 사람들과 예전 일하던 부서에 대한 원망이 어느새 사라졌고, 이반 일리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흔들리던 그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내와의 사이도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는 근사한 집을 발견하고 자신이 직접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벽지를 고르고 고상한 가구들을 구입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응접실과 안락하면서도 멋스러운 서재를 꾸미고...... 하나하나 단장할수록 집안은 그가 마음속으로 그리던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며 집 단장 내내 그는 즐거워했다. 작은 사건 하나를 제외하고는......

 

한번은 그의 말을 못 알아듣는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려고 직접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튼튼하고 민첩한 덕에 완전히 균형을 잃지는 않고 창틀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치기만 했다. 부딪친 곳이 아프긴 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이반 일리치는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 가족들을 새집으로 데려왔다. 하얀 넥타이를 맨 하인이 꽃으로 장식된 현관문을 활짝 열자, 가족들은 연방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의사와 판사의 공통점 

 

이반 일리치는 공적 업무에서는 자존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꼈고, 사교 생활에서는 허영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꼈다. 그의 집에는 중요한 사람들과 장래가 보장된 젊은이들이 드나들었고, 그의 딸은 부자 아들인 예심판사 ‘페트리셰프’와 혼담이 오갔다. 이반 일리치 가족의 삶은 별다른 변화 없이 흘러갔으며, 그들은 모든 것에 만족해했다.

 

가족 모두 건강했다. 이반 일리치가 이따금 입 안에 이상한 맛이 느껴지고 왼쪽 옆구리가 어쩐지 거북하다고 하긴 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집 단장 도중 부딪힌 왼쪽 옆구리가 점점 거북해져갔고, 입맛이 이상하게 변해갔다. 이반 일리치는 식사 때 곧잘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의 관계도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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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할 때는 그녀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바랄 정도였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월급도 사라질 테니 말이다.

 

의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반 일리치의 생명이 아니라 그의 병명이 유주신(신장이 생리적 이동 허용 범위를 넘어 상하로 이동하는 것)인가 맹장염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내 의사는 이반 일리치의 눈앞에서 아주 멋들어지게 맹장염인 걸로 결론을 내리면서 단, 소변검사에서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 다시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의사의 태도나 화법은 이반 일리치가 피고인들에게 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의사 역시 그처럼 의기양양했고 짐짓 근엄한 체하는 표정 역시 이반 일리치가 늘 법정에서 보이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환자나 피고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 알아서 해결하거나 판결할 테니 따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같았다. 이반 일리치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내가 위중한가 아닌가?’였으나 의사는 끝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히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잠시도 멈추질 않았으며, 입 안에서는 자꾸만 이상한 맛이 느껴지고 굉장히 역겨운 냄새가 나서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도 빠졌다. 이제 더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무시무시하고 낯선 일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일이 이반 일리치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

 

이반 일리치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병에 걸린 것은 순전히 그의 잘못이며 그 병 때문에 자신을 또 불행하게 만든다고 떠들어댔다. 법원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를 곧 자리를 비울 사람으로 여기는 듯,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토록 좋아하던 카드놀이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인생에 독이 스며들었고 이 독은 다른 이들의 삶에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독은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져 그의 몸 전체에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통증 속에 잠이 들어 통증 때문에 깨어야 했다. 그러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이 되면 옷을 입고 법원에 출근해 말을 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스물네 시간 꼬박 집에 틀어박혀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파멸의 끝자락에 매달려 자신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갔다.  

 

 

죽어가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거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이 밤보다 더 까매졌기 때문이었다. 아프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서재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혼자 잤으며 어쩌다 아내가 다정하게 굴기라도 하면 기쁨보다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긍정적인 마음을 먹으려 노력하면 조금 좋아지는 듯했지만, 곧 익숙한 통증과 익히 알던 역겨운 맛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봐야 뭐하겠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나만 빼고 다들 분명히 알고 있잖아. 문제는 몇 주 혹은 며칠이 남았느냐인데, 어쩌면 지금 당장일 수도 있겠지. 이곳에 있던 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온통 어둠뿐이구나. 나 역시 이곳에 있지만 곧 사라지고 말겠지! 대체 어디로 말인가?”  

 

이반 일리치의 절망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공포에 휩싸였고 그럴 때는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자신이 꾸민 응접실에서 자기가 떨어진 곳을 보고 있노라면 응접실 꾸미는 일에 목숨을 바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 왔다. 서재에 외롭게 혼자 있으면 죽음이 다가와 옆에 서서 자신을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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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고통과 별개로 그의 집은 여전히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의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그 손님들을 접대했다. 어쩌다 그녀가 다가와 돈을 아끼지 말고 저명한 의사를 부르자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을 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내를 향한 증오심이 치밀어 올라왔다. 병치레 석 달째가 되자 아내와 딸, 아들, 하인들, 지인들, 의사들, 그리고 누구보다 이반 일리치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언제 자리를 비워줄 것인지, 그래서 자신의 존재 때문에 산 자들이 겪어야 하는 구속을 없애주고 그 자신 또한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쏠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편에 의존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이제 이반 일리치는 하인의 도움 없이는 용변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위로가 돼준 사람은 가족이 아닌 그를 돌보는 젊은 하인 ‘게라심’이었다. 게라심만이 이반 일리치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를 가엾게 여겼다. 게라심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수척하고 허약해진 주인을 그저 가엾게 여길 뿐이었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거짓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들 이반 일리치는 병이 들었을 뿐 죽는 것은 아니며 안정을 취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빤한 거짓말을 했다.

 

 

죽음을 앞두고 떠오른 생각들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통증 때문에 새벽 세 시까지 몽롱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좁고 컴컴한 자루에 넣고 자꾸만 더 깊숙이 밀어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외로움과 사람들의 냉혹함, 그리고 신의 무자비함이 서러웠다. 순간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울음이 멎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는 문득 숨 쉬는 것까지 멈추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러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분명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네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였다.

 

그는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다. 사는 것이라고. 고통 없이.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회상했다. 그 회상은 어린 시절에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에 이를수록 좋은 순간이 점점 드물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활기라고는 없던 공직 생활과 돈에 대한 걱정들.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가던 날들. 그는 자신이 산을 오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꼭 그만큼 발밑에서 삶이 멀어져 갔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내내 이반 일리치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또 두 주일이 지났다. 이반 일리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의사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에게 이제 환자에게 아편으로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것 외에는 달리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내 삶 전체가, 의식적인 내 삶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지?’

 

고통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끝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는 젊은 날 한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고 싶다는 충동,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 자신의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 이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변호해 보려고도 했지만 헛되다는 느낌에 포기했다.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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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한 시간 전, 이반 일리치가 마지막으로 본 것

 

그로부터 사흘 동안 이반 일리치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반 일리치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몸부림치는 사형수처럼 온몸을 버둥거렸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것을 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기 한 시간 전,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아들의 손이었다.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내도 안쓰러웠다.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그래, 내가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구나.’, ‘다들 안됐어.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훨씬 괜찮아질 거야.’.

 

이반 일리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아이가 불쌍하고 당신도 불쌍하다고.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그는 이제 식구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이 고통에서 구해내고 자신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통증이 사라지고 죽음이 사라졌다. 죽음이 없어지니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어졌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갑자기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잠시 시간을 더 끌다가 이반 일리치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 그대로 멈추더니 몸을 축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었다.

 

“다 끝났습니다!”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행복한 죽음을 위해 해야 할 일

 

인간의 일생을 생각해 보니 의외로 간단합니다. 네 글자로 정리가 됩니다. 그것은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입니다. 인간은 우연히 태어나 우연과 필연이 섞인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일하고도 완벽한 필연, 그것은 오직 죽음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곧 하루하루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 누구든지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누구나 다 마치 죽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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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1828-1910)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사(死) 앞에는 대부분 병(病)이 있습니다. 얼마나 앓다가 죽는가와 어느 정도로 앓다가 죽는가, 즉 기간의 차이나 고통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 투병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이 기간에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의 4단계 심리 변화를 거쳐 마지막으로 ‘죽음의 수용’이라는 5단계에 도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요동치는 심리적 변화 전과정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마주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반 일리치는 무지막지한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죽음 앞에서 떠올린 자신의 삶에 대한 불신과 후회가 그를 더욱 괴롭힌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시간 대부분을 우아한 품위 유지를 위한 승진에 사용했고, 그의 결혼은 사랑 때문이 아닌 귀족 가문의 처녀라는 조건과의 결합이었습니다. 

 

그가 산 인생은 자신의 인생이 아닌 상류층 사회 일원으로서의 인생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죽음은 동료들에게는 승진의 기회였고, 아내에게는 사회적 신분에 대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서도 인간으로서의 애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것에 자신이 잘못 산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와 그것에 이어지는 후회감이 그 고통에 더해져 더욱 힘겨워했던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죽음이 아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죽음 직전에 마주치게 될 내가 살아온 길을 회상할 때, ‘난 그래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비록 아쉽고 슬프기는 해도 비교적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끝낼 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나의 바람대로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야겠습니다. 그 대가로 인생이 좀 피곤해진들, 노후가 좀 불안해진들 행복한 죽음보다 더 큰 의미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나의 인생입니다. 내 것인데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비겁한 사람의 행동입니다. 더 이상 나의 삶을 겁내지 않으렵니다.

 

“짐승처럼 미쳐 날뛰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죽음, 그는 이제 그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알베르 카뮈, ‘행복한 죽음’ [책세상]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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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삶은 항상 죽음과 함께 합니다. 삶과 죽음은 서로 필연적입니다. 나의 삶을 겁내지 않는다면 나의 죽음도 겁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 해야 할 일, 그것은 용기있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공한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무엇이 성공한 인생인가에 대한 답은 각자가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면 성공한 인생이란 곧 행복한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겠지요. 이것이 행복한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하는 이유입니다. 죽음. 인생의 마지막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것. 그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잘 산 인생이자 제대로 산 인생일 테니까요.

 

박정희가 저지른 희대의 간첩단 조작 사건인 ‘동백림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그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천상병 시인이 생각납니다. 

 

천상병 시인.jpg

천상병 시인

출처-<경기도뉴스포털>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으로 쉰세 번째 인생 탐구를 마무리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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