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 이야기, 한 줄 요약
1. 요동에 진입한 조선군과 명군은 후금 군대를 만났다.
2. 두 나라 군대는 후금 군대에 의해 학살이라 할 정도로 대패했다.
3. 살아남은 조선군은 후금의 포로가 되었다.
4. 하지만 적국에 포로가 된 상황에서조차 미친 짓을 한 양반들이 있었다. 후금 여인을 죽이기도 하고, 강간하기도 한 것.
5. 화가 난 누르하치는 가해 조선인을 포함한 그 주변 조선인 포로 4-500명을 죽였다.
6. 포로 중에는 제대로 된 양반도 있었다. 이들은 최대한 후금이 조선에 화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중 조선이 후금에 답서를 보냈고, 내용을 본 누르하치는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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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의 분노를 지속적으로 달래야만 했다
1619년 6월 1일 - 『책중일록(柵中日錄)』
누르하치를 비롯한 후금 인사들이 도원수 강홍립을 불러서 물었다.
후금 : 조선의 국서는 왜 국왕이 아닌, 평안도관찰사가 썼는가?
강홍립 : 우리나라는 원래 외교는 관할지역에서 담당한다. 일본과 교류할 때에도 경상도 감사가 담당한다.
후금 : 국서에 후금이 아닌 건주(建州)라고만 썼는데, 이건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강홍립 : 건주는 예부터 쓰던 관용 표현이다. 분명 ‘귀국’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으니, 후금이 나라임을 조선도 인정한 것이다.
후금 : 국서에 ‘사방 국경에 요새가 많다.’라는 표현이 있던데, 이것은 명과 연합하여 우리를 포위하겠다는 뜻인가?
강홍립 : 그런 게 아니라, 단지 현재 요동이 전쟁터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후금 : 우리가 분명 조선인들을 돌려보내 줬는데, 어째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가?
강홍립 : 국서에 보면 ‘나중에 모두 돌려보내기를 청합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또한 ‘이웃 나라와의 우호’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감사의 표현을 담고 있다.
후금 : 우리가 문자에 익숙하지 않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소. 마땅히 칸(누르하치)께 말씀드리겠소.
조선이 자신들을 ‘개무시’하고 명과의 연합에만 목맨다고 여기던 후금의 의심은 강홍립을 비롯한 지휘부의 임기응변 덕분에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 후금 지휘부 대다수가 한문 사용자가 아니었고, 조선이 사용하던 ‘고급 외교 한문’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에 더욱 오해가 생겼죠.
하지만 강홍립을 비롯한 조선군 지휘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금과의 화친을 주저하는 조선의 태도에 후금 내부에선 강경론이 점점 힘을 받았습니다.
1619년 6월 2일 - 『책중일록(柵中日錄)』
(후금 2대 황제가 되는) 홍타이지를 비롯한 누르하치의 여러 아들이 모두,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스스로 부자 관계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예물을 가져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화친할 뜻이 없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포로들을 다 죽이는 게 낫겠습니다.”
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후금 인사는
“언젠가 조선을 공격하지 않으면, 저들은 절대 화친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조선을 공격해야만 합니다.”
라고 했다 한다.
‘조선을 직접 타격하자’는 주장을 들을 때마다 억류된 조선의 인사들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을 겁니다. 최악의 결과였으니까요. 다가올 후금의 침공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강화협상은 필수적이었습니다만, 지지부진한 협상은 1년을 훌쩍 넘기게 됩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요?
광해군의 말을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1620년 5월 28일 - 『책중일록(柵中日錄)』
통사(통역사) 하서국이 후금 측 사신과 함께 조선에서 돌아왔다. 우리 국왕께서 누르하치에게 전한 말을 들었다.
“명나라의 감시가 너무나 삼엄하여 사신을 보낼 수가 없다. 특히, ‘조선은 이제 후금과 소금, 쌀, 소 등을 교역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어, 명나라 관리가 직접 압록강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만약 사신을 보내다가 명나라 측에 발각되면, 일이 완전히 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 두 나라는 전부터 원수진 일이 없다. 이렇게 화친하는 것은 장수들이 붙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죽이고 살리는 건 그쪽의 뜻에 달렸다. 최근 일부 여진족 남녀가 조선으로 귀순하였으나, 서로 후대하는 의미로서 이들을 돌려보내겠다.”
그 말을 듣자, 누르하치가 매우 기뻐하였다.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의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나라의 국력을 갈아가며 임진왜란을 도와줬더니, 관망만 한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을 더욱 압박하고 옥죄었습니다.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것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조선군이 요동에서 대패하자 명나라는 조선을 더욱 쥐어짭니다. 명은 몽골과 조선을 좌익과 우익으로 삼아 후금 봉쇄 정책을 강화했는데, 조선이 이 전선에서 벗어나면 후금의 약진을 막을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죠. 명은 마른 수건을 짜듯 더 높은 강도로 조선을 쥐어짰습니다.
조선을 더 쥐어짜래해!
이런 명나라의 태도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었는데, 명나라 군대의 내부적 문제가 극심해서 명나라 관리들조차도 자신들의 군대를 믿을 수 없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 내부에서는 최악의 경우, 조선과 후금을 전쟁으로 소모시킨 후, 명나라가 상황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한편, 후금은 조선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명나라를 공략하려는 자신들의 뒤통수에 바로 조선이 위치했고, 명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도 조선의 협조가 절실했기 때문이었죠. 나아가 후금은 경제 봉쇄 조치로 인한 식량난도 조선을 통해서 해소되길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중원의 천자’가 되고자 했던 후금의 야망을 위해선, 조선과 같은 ‘충실한 번국’의 입조가 굉장히 필요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광해군의 외교 난이도는 극악이었습니다.
출처-<영화 '광해'>
일단, 비변사를 비롯한 주요 대신들은 대부분 친명파&주전파였습니다. 조선을 압박하는 명나라의 관리들은 수시로 압록강 근처의 전방과 한양을 들락거리며 조선의 정세를 감시했죠. 내부적으로는 광해군의 궁궐 공사와 정치 행위를 비판하는 상소가 연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폐모살제’의 정치적 부담도 여전히 짊어지고 있었죠. 때문에 이 시기 여러 사료에선 광해군의 ‘비밀 외교’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개인적인 외교 채널을 이용해 최대한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려 했죠.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평가는 때에 따라 달라졌는데요. 8~90년대에는 중립 외교가 매우 후한 평가를 받았던 반면, 00년대 이후에는 사료 발굴과 광해군의 실정이 더욱 부각됨에 따라 ‘중립 외교 자체가 없었다’라는 박한 평가까지 받습니다.
최근에는 ‘중립 외교 자체는 시도되었지만, 내부적 실정이 너무 커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라는 평가로 모이고 있습니다. 즉, 광해군이 뛰어난 국제 감각을 기초로 자국 중심의 외교 전략을 짠 건 맞지만, 광해군이 저지른 잇따른 국내 실정이 이런 외교 전략을 현실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죠. 정치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고통스런 포로 생활의 끝, 그러나...
칙서를 대신한 광해군의 ‘구두 회답’은 상황을 반전시킵니다. 마침 명나라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인해 식량난에 시달리던 후금도 더는 포로를 관리하기 힘들었죠. 근 1년 사이에 개인적으로 도망친 조선군 포로도 많았으나, 후금은 고위 관료가 아니면 그다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왕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도 얻었으니, 누르하치로서는 석방의 명분을 충분히 얻었습니다. 드디어 이민환은 집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그의 남은 삶 앞에는 어쩌면 후금에서의 생활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고난과 치욕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계속>
추신
빵꾼, 인사드립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에 이어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내놓았습니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의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며 그 정책들이 백성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사회 단면을 만들었는지를 야무지게 담아놓은 책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아내고자 시도했습니다.
매번 책 소개를 드리기가 죄송하고 쑥스러워 이번에는 책 발간을 비밀로 하려 했으나, 딴지 편집부에서 귀신같이 알고 책 관련 원고를 써오라고 협박해서 기사로도 책 속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 최약 계층 지원 정책」(링크) 챕터 일부 이야기를 소개했었습니다.
조선의 복지정책에 대해 다방면으로 열심히 담아놓은 책이니, 자신만만하게 말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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