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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신용등급의 의미

 

2023년 8월 미국의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최고등급)에서 한 단계 내린 AA+로 발표했습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개인 신용등급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 신용등급이 한 사람의 채무나 상환능력 등을 종합하여 결정하듯 국가 신용등급도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평가합니다. 정치체제, 국제금융시장과의 연계성, 국가안보 상황과 같은 정치적인 요소와 소득수준, 경제성장률, 외화 보유액 등 경제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국채와 관련 있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는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다른 국가나 개인, 기관들이 그 국가의 국채를 구입하면 국채를 판매한 국가는 만기에 이자와 함께 상환하지요. 흔히 생각하는 어음이나 채권·채무 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돈을 빌렸을 때 이를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국가의 신용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신용도가 최하위권인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를 생각했을 때, 국가 신용등급은 이들 국가와의 거래뿐 아니라 이들 국가 내의 기업들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해당 국가 기업들의 회사채도 시장에 유통이 어렵고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세계 금융시장 '불안' (2023.08.03_뉴스투데이_MBC) 0-46 screenshot.png

출처-<MBC>

 

국가 신용등급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줍니다. 외국인들은 국가 신용도가 높은 국가에 관심을 두고 주식투자에도 적극적입니다. 예를 들었던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의 해외주식에 투자하실 정도로 야수의 심장을 갖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대부분 사람은 해외에 투자할 때 국가 신용등급을 중요한 척도로 삼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AA-, A1 등급으로 이탈리아나 호주·스웨덴 등과 함께 우수한 신용등급을 받았지만 이후 크게 하락하였다가 2001~2002년에 다시 A등급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AA 등급으로 프랑스·아부다비와 비슷한 수준이며 A+정도인 일본·중국보다 높은 국가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우리 금융시장이 출렁_ (출연_ 박정호) [월드 이슈] _ KBS  2023.08.03. 0-49 screenshot.png

출처-<KBS>

 

2. 3대 신용평가사

 

그렇다면 이런 국가의 신용등급은 누가 정하는 걸까요? 세계은행이나 IMF 같은 국제적인 금융기관에서 정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기관은 일반 사기업입니다.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무디스(Moody’s)·S&P·피치(Fitch) 세 곳이지요. 미국의 3대 신용평가 회사이자 전 세계 신용평가의 95%를 차지하는 국제 신용평가사입니다. 우리나라의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와 비교할 수 있겠죠.

 

참고로 NICE평가정보와 KCB(코리아크레딧뷰) 같은 개인신용평가 회사입니다. 개인 신용평가사는 개인 금융기록을 수집하고 평가해서 신용점수와 신용정보를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업무를 합니다. 카드를 발급받거나 대출을 조회할 때 접하는 곳이지요. 우리가 '신용평가', '신용등급'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업무를 하는 곳이 바로 개인신용평가회사입니다.

 

언급한 미국의 3대 신용평가회사의 업무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품이나 신용공여(信用供與. 당사에 예탁된 주식, 채권, 수익증권이나 현금 및 매수·매도되는 주식을 담보로 현금을 융자하는 것)의 원리금 상환 가능성과 기업이나 정부 등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3대 신용평가회사가 국제적인 위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신용평가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고 이를 체계화한 까닭입니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한몫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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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비즈니스포스트>

 

① 무디스(Moody’s)

무디스는 1900년에 설립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Moody’s Investor Services입니다. 사명을 창업자 이름 존 무디스에서 따와 명명하였지요. 당시 미국의 철도회사들은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덩치를 키우고 발전했기 때문에 훌륭한 투자처였습니다. 1909년 무디스는 미국 최초로 철도회사의 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대공황이 터지기 직전, 무디스가 발표한 자료에 '투자적격등급'이라고 표시된 회사들이 있었는데, 이 회사들만 대공황 때 살아남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순식간에 세계적인 신용평가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이후 성장을 지속해 기업뿐 아니라 국가 신용등급까지 평가하는 기업이 된 것이지요.

 

참고로 무디스의 기업평가 기준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의미하며 지구 환경과 기업윤리, 노동환경에 대한 책임경영을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세계 144개국에 대한 ESG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1등급을 받은 11개국 중 우리나라가 있습니다.

 

 S&P

S&P는 1860년 헨리 바넘 푸어(Henry Varnum Poor)가 당시 미국 철도회사들에 관해 체계적인 기업분석을 한 책을 출판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864년 푸어스(Poor's)를 세운 후 매년 책을 갱신하였습니다. 한편 루서 리 블레이크가 'Standard Statistics Bureau(표준통계국)'라는 기관을 세워 1906년부터 일반 기업들의 재무 정보를 출판합니다. 이 두 회사가 1941년 합병하여 Standard & Poor’s Corp, 즉 S&P가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S&P는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다른 두 곳에 비해 정치적 요인을 상당히 많이 반영하지요.

 

21세기에 S&P를 각인시켰던 순간은 2011년 8월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최고등급이었던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강등시켜 버리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순간이었죠. 전망까지 Negative(부정적)로 하향했고, 이후 9월에는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유럽의 주식시장에도 큰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참고로 많이 거론되는 미국의 주가지수인 S&P500은 이 S&P에서 개발한 지수이며 이 밖에도 각종 지수개발과 주식시장 평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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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헤럴드경제>

 

 피치(Fitch)

1913년 뉴욕에서 설립되었고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두 곳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허스트(Hearst)라는 미디어 그룹의 자회사입니다. 무디스와 S&P가 세계 신용평가회사 점유율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피치는 10~15% 정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특징으로서 다른 두 회사에 비해 정치적인 요인을 덜 반영합니다. 다른 두 회사에 비해 신용등급을 후하게 부여한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번 미국의 신용등급을 1단계 강등해 발표한 곳이 바로 이 피치사입니다. 아래에 더 설명하겠지만, 신용등급 강등이유로 국가 부채비율 증가, 국가 부채 관련 법안 협상 지연, 거시경제 약화 등을 들었습니다.

 

나라 빚 1천조 넘었는데…한국 신용등급은 안전_ _ 연합뉴스TV (YonhapnewsTV) 0-53 screenshot.png

출처-<연합뉴스TV>

 

2011년 미국 신용등급 하락을 잠시 짚고 넘어간 뒤에 2023년 신용등급 하락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3. 2011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11년 S&P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습니다. 이는 1941년 국가별 신용등급이 발표된 이후 70년 만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신용등급 강등 이유에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GDP보다 많은 부채였습니다. 2011년 8월의 미국 정부의 부채는 14.58조 달러로 2010년 미국의 명목 GDP 14.53조 달러보다 많았습니다. 둘째는 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 리스크(risk)입니다. 부채한도 협상이 디폴트 직전까지 합의되지 않아 미국의 디폴트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정 적자를 불러온 예산운영이었습니다. 의회에서는 2.4조 달러의 예산감축이 필요하다고도 했지요.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로 8월 8일 미국 S&P500 지수는 7% 가까이 급락했고, 이후 자꾸 하락하여 -20%까지 급락했습니다. 미국 외 다른 국가들의 주가지수도 7~12%가량 급락했으며, 달러를 대신한 안전자산인 금의 가격이 10%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다른 안전자산인 유로화, 엔화 등도 상승했습니다. 이런 충격은 2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한국경제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제는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여서 주요 수출국들의 환율 인상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전자산으로의 자금 이동 덕에 한국 주가는 내려가고 환율은 상승했습니다. 코스피(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 KOSPI. 한국종합주가지수)는 8월 2200을 바라보다가 9월에 1600대로 24%가 급락했고 이후 5년 동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환율도 8월 1,050원대에서 9월 1,200원을 돌파하며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률이 세계 주요 10개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주요 국가의 주가 하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당시 폭락을 경험했던 많은 기관과 투자자는 조금 더 보수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했을 것이고 이 같은 심리는 연쇄적으로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으리라 봅니다.

 

나라 빚 1천조 넘었는데…한국 신용등급은 안전_ _ 연합뉴스TV (YonhapnewsTV) 1-5 screenshot.png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한국의 국가 채무

출처-<연합뉴스TV>

 

4. 2023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

 

2023년 8월 피치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습니다. 신용등급 강등의 원인은 2011년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S&P지수를 포함해 나스닥과 다우존스 모두 1~2% 내외로 하락했고 유럽과 아시아의 증시 주가도 1~2%가량 하락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2011년과 대조적입니다. 똑같은 신용등급 하락인데 이토록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심리와 학습효과일 것입니다. 2011년의 충격으로 단기간에 급락했던 지수들은 신용등급의 하락이 가져올 결과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물론 신용등급 하락은 그만큼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임은 틀림없지만 당사자가 미국입니다. 마치 모의고사 성적이 전 과목 1등급만 나오던 학생이 한 과목 2등급 성적표를 받아들인 것이랄까요.

 

더불어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유럽의 재정위기 그리고 중동지역의 민주화 혁명 등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런 부분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세계 금융시장 '불안' (2023.08.03_뉴스투데이_MBC) 1-19 screenshot.png

출처-<MBC>

 

2023년 미국의 통화정책은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긴축정책입니다. 만약 신용등급 하락으로 위기가 도래했을 때 여차하면 통화정책으로 시장에 자금을 풀 수 있다는 점도 2011년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2011년에 비해 2023년의 미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이러다 보니 JP모건 체이스 회장은 피치의 결정을 두고,

 

"말도 안 되고 중요하지도 않다"

 

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피치는 기이하고 무능한 결정을 내렸다"

 

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세계 금융시장 '불안' (2023.08.03_뉴스투데이_MBC) 1-52 screenshot.png

출처-<MBC>

 

5. 결론과 사족

 

2011년과 2023년 두 번의 신용등급 강등에는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미국의 부채한도란 쉽게 말해 마이너스 통장 같은 것으로, 미국 정부가 특정 항목에 예산을 지출할 때 의회의 동의만으로 쉽게 정부 지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마이너스 통장에서 계속 돈을 쓰다가 한도가 다 차면 한도 협상을 통해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늘리는 것이지요.

 

부채한도가 초과한다고 해서 미국이 바로 디폴트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추가적인 국채 발행이 불가능해서 재무부나 연준(연방준비제도, Fed)의 기능이 약화한다는 것이지요. 미국은 1960년부터 지금까지 79번의 협상을 통해 부채한도를 증액했습니다. 2011년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은 디폴트 시한까지 합의되지 못했었습니다. 바로 이때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이 강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부채협상이 타결된 이후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2011년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는 2% 정도 수준이었고 지금은 4%가 넘는 고금리입니다. 지금처럼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결국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가고 국채 가격은 하락할 것입니다.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국채금리 인상, 국채 가격 하락을 통해 미국 정부는 자금 확보가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받을 수 있는 금리는 높지, 국채 가격은 하락하지, 이러면 국채를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번의 신용등급 강등을 미국은 달가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2011년의 피해가 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 환율이 1,320원을 넘어가고 있습니다(8월 28일 기준). 물론 국내유가 상승과 중국발 부동산 위기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와 국가부채 문제도 심상치 않기에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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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추이

출처-<네이버 금융>

 

어쨌든 이번 강등사태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경미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평가들이 많습니다. 그 기간과 수준이 2011년에 비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만 말이지요. 결과적으로 미국은 국채금리를 올려서 많은 국가와 투자자들이 국채를 구입하도록 할 듯합니다. 결국 트럼프 시절부터 이어오던 미국 우선주의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유효한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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