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을 듣다가, 뭔가 강렬하게 꽂히는 회차가 하나 있었다.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
좌측이 모지민
남자의 몸을 한 여자. 여자의 영혼을 가진 남자. 요즘 세상에 촌스럽게 단순히 그런 게 궁금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그녀가 만나온 세상에 대해서.
물론 그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모어>를 봐도 될 일이고, 심지어 <털 난 물고기 모어>라고 직접 책까지 써놨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게 있지 않은가. ‘왠지’ 또는 ‘왠지 모르는’이라는 이끌림. 왜인지 모르게, 그녀를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에 대하여
지민이, 그러니까 모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여태까지 자신이 여성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만나 본 지민은 나보다 훨씬 우아하고 여성스러웠다. 어려서부터 앉아서 오줌을 싸고 싶었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치마를 입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남자'라는 껍데기를 걸치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치마를 입고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어린 날의 일상이었겠지만, 지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영혼이 원하는 어느 것 하나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모어는 자신의 영혼과 껍데기가 덜그덕거리는 것을 처음 느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이 시작 됐다."
그 후, 세상은 지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단지 그가 많은 살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것은 틀렸다는 결론으로.
어려서부터 그는 유난히 춤추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로 국민체조를 하는 그에게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한마디 건넸다.
“너는 타고났구나. 무용에 소질이 있다. 그러니 꼭 그 길을 가라."
선생님의 한마디에 시골 촌부였던 그의 부모님은 앞뒤 재지 않고 그에게 발레복을 사준다. 백만 원 정도 들었다. 삼십 년 전 시골에서는 큰돈이었다.
지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목포 시내에 플래카드까지 걸렸다. 서울에 유학 온 기쁨도 잠시, 그는 학교에서 한 학년 높은 선배에게 그는 냅다 얻어맞는다. 때리는 손보다 때리는 말이 더 아팠다.
“너 그 여성성 버려"
충격에 빠진 그는 세상의 조롱을 피해 숨 쉴 곳이 필요했다. 제 발로 이태원 트랜스바로 찾아간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였다는 사실을.
지민은 그곳에서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고 드래그 쇼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쇼는 장장 20년 동안 이어졌다. 그의 표현대로 '욕창 같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코로나”였다. 가게가 문을 닫고 공연이 멈추자, 그는 무대를 지상으로 옮긴다. 때마침 그의 퍼포먼스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던 순간이었다. 그 결과 2019년 스톤월 항쟁 50주기 기념 뉴욕 공연 등의 해외 무대에서 러브콜이 쏟아진다. 이를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엘지아트센터 등으로 무대를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티켓파워도 대단하다. 오는 9월에 엘지아트센터에서 있을 ’ 로미오와 줄리엣‘은 티켓 오픈과 함께 전회 전 좌석 매진 신화를 기록했다.
그의 영화와 책 모두 평단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뉴욕 파리 런던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고 제42회 황금촬영상 제4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58회 대종상영화제 수상 등의 쾌거를 이뤘다. (참고로 영화는 OTT 서비스가 아니라 VOD로 볼 수 있다) 또 “그녀의 책 털 난 물고기 모어” <은행나무 출판>도 지난해 이어 올해까지 꾸준한 매출 추이를 기록하고 있다.
요즘 코가 높을 대로 높아진 모어는 매체 인터뷰를 잘 안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간 너무 애썼다 “는 이유다.
하지만 그건 지민의 사정이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sns로 장문의 인터뷰 요청을 보냈다. 답장은 의외로 빨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민은 내 메시지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언니도 보통 미친 인간이 아니구나’
미친 인간들의 대화
우여곡절 끝에 만난 지민에게 처음 꺼낸 대화 주제는 사랑이었다. 지민이 가족들에게 받은 무한하고 압도적인 사랑. 어딘가 분명 좀 다른 셋째 아들을 그저 오롯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관하여.
만나자마자 우리는 서로 말을 놓았다. 그래도 된다는 걸 서로 알아봤다.
모어 (이하 '모') : 아마 가족이 아니었으면 여태 못 버텼을 것 같아. 가족의 그 무한한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싶어. 우리 엄마 아버지는 나한테 한 번도 너 왜 그러니 소리를 하신 적이 없어.
산만언니 (이하 '산') : 조선판 ‘빌리엘리엇’이네. 전라도 무안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모 : 그런 셈이지.
산 : <월말 김어준> 인터뷰는 어땠어?
모 : 재밌었어. 그런데 나는 녹음할 땐 이걸 누가 듣나 했거든? 근데 사람들 많이 듣더라. 깜짝 놀랐어.
산 : 김어준 총수는 어땠어?
모 : 그대로지 뭐. 근데 언니 방송 끝나고 나한테 폰을 달라는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나랑 셀카를 찍더니 돌려주더라. 나 깜짝 놀랐어. 사진 안 찍을 생각이었거든.
산 : ㅋㅋㅋㅋㅋㅋ 아마 다들 방송 끝나고 사진 찍자고 하니까 그랬나 봐.
모 : 몰라 ㅋㅋㅋ 근데 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 김어준 씨도 똑똑하시고.
산 : 모어는 폭력 속에서 살아왔다고 했잖아. 자살 시도를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어를 살게 한 힘은 뭘까?
모 : 가족의 영향이 참 크지. 근데 나는 어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었어. 내 소원이 그거잖아. 관속에서도 춤을 추며 잠드는 것. 지금도 그렇게 살다 죽고 싶어.
산 : 일단 공연을 한다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잖아.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게 왜 하고 싶어? 왜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 싶어?
뮤지컬 〈13 fruitcakes〉 흑조 장면, 아르코 예술극장, 2021 ⓒ모지웅
모 :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거야. 도저히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산 : 하긴 모든 예술이 그렇지. 차마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런 것들이 작품이 되는 거고. 그걸 또 관객들이 알아봐 주는 거고.
모 : 맞아. 그런 거 같아.
산 : 영화가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하던데. 가족들 반응은 어땠어?
모 : 영화 시사회 때 가족들을 다 초대했었어. 영화 끝나자마자 아빠가 나한테 그랬어 "고맙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 그 얘기 듣고 그날 나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집에 와서 정말 오열했잖아.
산 : 그것도 참 특별하다. 보통의 퀴어 가족들이 다 그렇지는 않잖아.
모 : 그렇지. 모르겠어. 나는 내 삶을 사느라고 나를 다른 시각으로 안 보잖아. 그래서 이게 특별한 건지 모르고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산 : 9월 공연 준비는 잘 되고 있어? 티켓은 완판됐던데.
모 : 어 다들 뒤늦게 물어보는 거야. 표 남은 거 없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게으른 너희는 내 공연을 볼 자격이 없다.
산 : 우리 딴지 독자들은 아재 감성이 좀 충만하거든. 우리 아재들한테 혹시 공연 볼 때 이런 이런 에티켓은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있을까? 가령 조는 건 괜찮다 하지만 고개는 떨구지 마라 랄까.
모 : 안돼. 조는 것도 안 돼. 나 되게 공연에 엄격한 편이거든. 공연 왔으면 즐겨야지 왜 졸아? 그것도 돈 내고 들어와서? 그리고 그거 싫어. 쪼리 신고 오고 공연에 집중 안 하고 휴대폰 보고 늘어져 있고 그러는 거. 그럴 거면 내 공연 보지 마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다. 차라리 표를 양도해라.
산 : 아니 근데 조는 건 괜찮지 않냐? 나는 조는 건 이해되던데.
모 : 그래 그럼. 혹시 졸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나한테 인사를 했다. 그러면 끝나고 남기로 해. 하이힐로 정수리 한 방씩 맞고 가는 거야. 그러면 될 거 같아.
산 : 풀스윙으로 때릴 거야?
모 : 당연하지.
산 : 태극기 부대 앞에서 네가 수영복 차림으로 춤추는 장면, 나는 그게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이었어. 또 하필 그때 정수라의 <대한민국>이 깔리고 있더라고. 그 모든 부조화들이 조화를 이루는 게 상당히 인상 깊었어. 대단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의 힘 같은 게 느껴졌어. 다름을 죄악시하는 태극기 부대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는 것 같은 짜릿함도 있었고.
모 : 그 장면을 생각하면 신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 그냥 우리는 그날 광화문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었어. 그런데 그날 하필 그 시각 그 장소에 태극기 부대들이 내 뒤로 지나간 거야. 그래서 완벽한 장면이 이루어졌지. 영화 음악을 맡은 친구 이랑이 88 올림픽 때 가수 정수라가 부른 ‘대한민국’을 깔았지. 그거 알고 보면 완전 당시 상황과는 다른 이야기였잖아.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 농촌엔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사실 먹고살기 힘든 때였잖아. 게다가 살벌한 군부독재. 자유는 무슨 자유야. 그런데 그때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는 말이지. 그게 너무 우스꽝스러운 거잖아. 현실과 다른 이야기들. 지금 우리 문제도 그렇지. 동성혼은 고사하고 생활동반자법 차별금지법도 여태 통과 안 됐고,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산 : 이런 얘기 하면 악플에 시달리지 않아? 괜찮아?
모 : 어, 난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냥 악플 달리면, 그래 참 너도 애쓴다. 그러고 말아.
산 : 하긴 그래. 악플 달려면 진짜 귀찮잖아. 로그인도 해야 하고 비밀번호도 알아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줄여야 하고, 그거부터가 피곤해. 나도 진짜 댓글 안 달거든. 정말 좋은 기사에는 추천 누르는 게 고작이야.
모 : 어. 그 모든 걸 참고한다는 거잖아.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나는 그냥.
산 : 끝으로 딴지 독자분들께 더 할 말은 없어?
모 : 일단 관심 가져주시고, 많이 응원해 주셔서 고맙지 뭐. 아 그리고 이 말 하고 싶어. 트랜스라고 하면 제발 풍자 아냐고 나한테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어. 다들 나더러 너도 풍자처럼 유명해져서 돈 벌어라 그러는데 우리는 가는 길이 달라.
산 : 맞네 맞네 풍자는 예능인이고 지민은 예술인이고.
모 : 빙고.
산 : 요즘 근황은 어때?
모 : 좋지 뭐. 영화 끝나고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어. GV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고, 넘치는 사랑도 받았고, 그 좋아하는 공연도 계속하고 좋아.
산 : 꿈이 있다면?
모 : 내가 하고 싶은 공연 마음껏 원 없이 하는 것. 남들은 로또 맞으면 뭐 하고 뭐 하고 그런 말 하잖아. 난 그 돈 있으면 내 마음대로 공연할 거야. 근사한 공연.
모어 모지민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민이가 자란 순기능 가정과 내가 자란 역기능 두 개의 가정이 있다. 나와 지민이를 각각의 가정으로 삼신할머니가 보낸다 치면 내가 삼신할머니라도 지민이네 집엔 지민이를 우리 집엔 나를 보내겠다고. 그가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고. 또 세상의 모든 퀴어들이 지민이처럼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힘들이지 않고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앞으로 살면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퀴어에게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과 지지를 보내야겠다고.
인터뷰를 빙자해 우린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활보했다. 털털한 바지를 입고 나온 내 옆에 예쁜 원피스에 토트백을 들고 높은 구두를 신고 걷는 그녀가 있었다.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라이더는 저러다 사고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끝까지 쳐다본다. 순간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민이는 그저 예쁜 옷을 입고 좋아하는 가방을 든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버거워할까.
지민을 만나고 돌아와 나는 지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한평생 지키려고 하는 아름다움 어떤 혹독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 예술에 대한 그 순수한 열정. 끝끝내 해내고만 지독함. 그것들에 대한 존경이었다.
그녀의 답장은 심플했다.
"언니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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